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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속 날카로워진 동아시아 열강 간 갈등

5월 28일 일본 항모를 찾은 트럼프와 아베 ⓒ출처 백악관

5월 28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일본 총리 아베와 함께 일본의 가가함에 승선했다. 가가함은 1945년 이래 일본이 처음으로 도입하는 항공모함이다. 그리고 1930년대 일제의 중국 침략에 동원된 항공모함과 이름이 같다.

트럼프는 가가함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가함은 우리[미·일]가 이 지역과 이를 훨씬 넘어선 곳에서 복합적 위협을 방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트럼프가 말한 “위협”이 가리키는 주된 대상의 하나가 중국임은 명백하다.

트럼프가 직접 미일동맹의 강함을 과시한 일은 미·중 무역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중국의 무역전쟁은 악화일로다. 무역전쟁 격화로 동아시아 열강 간 지정학적 경쟁도 더욱더 첨예해지고 있다.

‘화웨이 제재’ 대 ‘희토류 통제’

지금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대대적인 무역 공세를 펼치고 있다. 관세 추가 인상에 이어 화웨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미국은 화웨이 제재를 다른 중국 대기업들로 확대하려고 한다.

중국도 반격을 꾀한다. 자국 내 인터넷 인프라 사업자가 부품·소프트웨어를 구매할 때 국가 안보 위험 여부를 사전에 심사하기로 했다. 이 규제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를 제재한 미국에 대한 보복이다. 그리고 중국 관영 언론들은 희토류 수출을 통제해 미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무역전쟁의 배경에 장기화한 경제 위기가 있다. 2008년 공황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세계경제는 충분히 회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시 하락할 위험도 도사린다. 경제 위기는 자본들 간에 이해관계 충돌을 첨예하게 만들고, 이는 국가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미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5월 26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미국도 유럽과 일본처럼 급격한 경기 둔화 조짐이 있다고 했다. 무역전쟁은 세계경제의 성장을 더 둔화시킬 것이고, 이는 다시 무역전쟁을 더욱더 격화시킬 것이다.

일대일로 대 인도·태평양 전략

트럼프 정부는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기술력 우위를 지키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안보와 직결된다고 여긴다. 무역전쟁이 제국주의 간 경쟁의 일부인 까닭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자국 패권에 대한 직접적 도전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경제적 성공은 미국이 주름잡던 국제 질서에 변화를 낳았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중국은 자국 경제 성장을 유지하고자 일대일로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일대일로는 유라시아의 주요 국가들을 중국 중심의 인프라망으로 연결하는 계획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자국의 수출입선, 해외 투자의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키우고 중국군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짓고 군대를 배치한 것은 그 일환이다.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가 주요 상품·석유 교역 항로 인근인 아프리카 지부티에 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국의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가운데 자국의 세계 패권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골몰해 왔다. 그러나 분명한 묘수를 찾는 데는 실패해 왔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공황은 미국 지배자들을 더 애먹게 했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국제 질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기존 전략이 실패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트럼프는 경제적 애국주의를 표방하며 무역전쟁을 벌이고 국제 생산사슬을 미국으로 옮기도록 압력을 행사해 왔다. 그리고 기존의 자본주의적 국제기구들을 흔들면서 자국 이익을 확고히 추구했다.(물론 이런 방향 전환을 놓고 트럼프 정부 안팎에서는 여전히 논란과 갈등이 있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군사주의 강화로도 나타난다. 트럼프 정부는 새롭게 표방한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 중국을 향한 군사 행동을 늘렸다.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항행의 자유’ 작전이 대표적이다. 미국 군함이 중국의 남중국해 섬에 근접해서 무력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보다 ‘항행의 자유’ 작전을 3배나 많이 벌여 왔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 심화는 대만해협을 다시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불안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 군함이 대만해협을 지나는 무력 시위를 지속하면서, 중국의 반발을 불렀다. 이는 중국과 대만의 갈등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도 트럼프 정부의 중국 견제에 적극 동참하며 미일동맹 강화에 일조하고 있다. 일본이 군비를 급격히 늘리면서,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는 일본의 올해 군사력이 지난해 세계 8위에서 6위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4월에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가들 간의 긴장 심화로 아시아에서 군비 지출이 지속적으로 증대한다고 우려했다.(이 지출 증대 흐름에는 한국도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열강 간 갈등이 심화하며 곳곳에서 위험이 커지고 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는 물론이고,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위기의 핵심에도 제국주의 문제가 있다.

열강 간의 갈등 심화는 국제 정세에 불확실성을 키운다. 불확실성 증대는 결국 제국주의 지배자들도 예측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많아진다는 것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머지 않은 미래에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거나 트럼프나 시진핑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위험해지고 있다.


한반도도 이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열강 간의 갈등 심화는 한반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근본 배경이 여기에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종속돼 있다.

북·미 협상이 중단되자,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중재에 다시 기대를 건다. 문재인 정부도 대화 동력을 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선 비핵화, 제재 유지 등)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에 기대를 걸어 온 이삼성 한림대 교수마저 정부가 한·미 간 공조 유지를 위해 “미국 내 강경파의 노선”에 사실상 순응했다고 비판했다(〈프레시안〉 5월 29일자 기사).

대북 정책을 놓고 트럼프 정부 내의 입장들이 통일된 것은 아니다. 주로 대통령 트럼프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사이에서 엇갈리는 주장이 나온다.

신보수주의(네오콘) 출신인 볼턴에게 북한 문제는 이란, 베네수엘라 문제와 더불어 과거 부시 2세 정부 때 미처 해결하지 못한 숙제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북 강경 노선을 한결같이 고수한다.

트럼프는 볼턴과는 사뭇 다르게 얘기한다. 김정은과 직접 회담을 했던 당사자로서, 트럼프는 당장 대북 정책을 홱 틀어버리는 데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또한 북핵 문제가 다시 악화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을 시급히 처리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볼턴 못지 않게 믿을 수 없는 자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볼턴의 의견을 수용해 회담을 결렬시켰다. 그리고 트럼프에게도 대북 제재를 풀어서 북·미 협상을 진전시킬 의사가 없다.

5월 23일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피터 판타는 트럼프 정부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해상 순항미사일을 북핵 억지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중국을 견제할 핵무기를 한반도 인근에 전진 배치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에게도 위협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하는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노동자 운동은 한반도 기류가 바뀌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