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단결권에 관한 ILO 핵심협약의 비준 동의안을 9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주류 언론들은 정부가 기존의 ‘선입법, 후비준’에서 입장을 바꿔 노동계의 ‘선 비준’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총 등 사용자들과 보수 언론들은 “노동자 단결권만 확대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 등에 이은 정부의 친노동 기조가 이어졌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비준 동의안 국회 제출이 정부 입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에 관련한 합의안을 만들고 이를 통해 비준과 국회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는 경사노위에서 합의가 어려우니 공을 곧장 국회 논의로 넘겨 버리겠다는 것뿐이다.

이는 꼼수를 써서 노동계의 ‘선 비준’ 요구를 벗어나고, 공을 국회로 돌려 비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정부의 안은 노동계의 ‘선비준’ 요구를 모면할 꼼수이자, 공을 국회로 넘겨 개악을 준비하는 것 3월 27일 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요구한 전국노동자대회 ⓒ이미진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행을 약속했다. 따라서 약속대로 ILO 핵심협약을 우선 비준하고, 그에 맞게 법 개정을 추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를 경사노위로 끌고 갔다. 정부가 직권으로 할 수 있는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등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문재인이 마땅히 해야 할 ILO 핵심협약 비준을 경사노위로 끌고 간 것은 불순한 목적이 있었다. ‘사회적 대화’라는 형식으로 노동자들에게 후퇴를 강요하려 한 것이다.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 노동권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협약 비준이라는 선물을 받는 만큼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대항권’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의 취지는 노동3권 중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반대급부(사용자 ‘대항권’)를 정부와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결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기본권 사항을 노사간 거래의 대상으로 삼게 한 것 자체가 사용자들에게 유리한 일이다.

이제 공을 국회로 넘겨도 마찬가지다. 자한당의 반대가 뻔히 예상되는 국회로 비준 책임을 떠넘겼으니 더한층 개악하라고 먹이를 던져 준 것과 마찬가지다.

ILO 핵심협약 관련 논의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다른 개혁 약속들을 무력화한 것과 완전한 판박이이다. 가령,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하고는 자회사 전환과 직무급제 도입으로 비정규직 때와 다름없는 처우를 강요한 것.

●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최저임금 제도 개악으로 무력화한 것.

●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 시행한다면서 대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추진해 다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 것.

● 경사노위를 개악 추진의 도구로 사용한 것(비록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지만).

사용자 요구 반영하려는 정부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 이재갑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월 15일 발표된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ILO 핵심협약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냥 정부가 비준하고 법 개정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사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더한층의 개악을 위한 논의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경총은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이하 공익위원안)이 “노동계 입장에 편향된 안”이라며 반발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안에는 이미 사용자들의 요구가 일부 포함돼 있다.

우선 공익위원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재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있다. 노동자들이 변화하는 이해관계와 요구 사항을 둘러싼 투쟁과 교섭을 자주 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효과를 내는 개악이다. 게다가 교섭창구 단일화 때문에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한 소수노조의 경우, 더 오랫동안 단체교섭을 하지 못하게 된다.

사업장 점거파업 금지는 파업권을 크게 제약한다. 현재도 이미 주요 생산시설 점거를 금지하고 있어 파업권이 제한되는데 이를 더 강화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논의에서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 사용자들의 요구는 더욱 심한 개악들이다.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의 경우, 해당 사업장에 고용돼 있던 노동자에 의한 대체근로가 이미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를 더욱 강화해 달라고 한다. 파업을 하나마나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당노동행위 처벌은 노동3권 침해 행위를 규제하는 것인데, 지금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제재와 처벌이 잘 되지 않는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조차 삭제한다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더욱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한편 경사노위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관련해 ‘향후 모색’한다는 추상적인 결론만 내놓았다.

한술 더 떠, 자유한국당 의원 임이자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사용자의 요청만 있어도 단체행동을 봉쇄하고 파업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장하겠다는 노동권도 제한투성이

물론 공익위원안에는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다. 해직자·실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의 노조 가입 허용, 정부가 ‘노조 아님’이라고 통보할 수 있는 권한 폐지 등이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정부안이라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노조법 안들을 보면, 여러 제한 조건을 달아서 여전히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사노위의 논의를 반영해 한정애 의원이 내놓은 노조법 개정안은 해고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대신에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이란 개념을 도입해, 해고자·실업자나 사내하청·파견 노동자, 상급단체·산별노조 간부처럼 해당 사업장 직원이 아닌 조합원의 조합 활동과 작업장 내 노조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올해 2월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 개정안도 문제투성이이다.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 제한을 풀었지만, ‘업무총괄자’는 여전히 노조 가입을 할 수 없게 제한하고 있다. 교원노조법도 창구단일화를 하도록 강제하면서 교육부가 교섭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협상 기대 말고 투쟁에 전력해야

김명환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의 ILO 비준 방침 발표 직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를 ‘선 비준’으로 희망 섞어 해석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 대구본부, 경북본부, 전북본부, 충북본부 등은 정부의 ILO 비준 방침을 곧장 비판했다. 일부 연맹과 지역간부들이 김명환 집행부의 희망 섞인 예측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정부의 ILO 비준 방침을 계기로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중앙위에서 통과시키려던 교섭전략특위는 결국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경사노위에서 개혁을 얻어 낼 수 있다는 전망이 이미 실패했는데도 여전히 정부와의 교섭틀 마련에 힘을 쏟는 것은 투쟁 준비를 분산·약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동안에도 김명환 지도부는 ILO 협약 선 비준을 주장하면서도 실천에서는 경사노위 논의를 활용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선 입법 논의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가령 민주노총 교육원이 낸 2018년 10월 교육지는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를 “전략적 활용”하자고 했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노조 설립 반려와 노조 규약 시정 요구 같은 일들이 박근혜 정부 때와 꼭 마찬가지로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기간제교사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하며 노조 설립에 딴지걸었고, 공무원노조에게는 규약 시정을 받아 내고서야 노조로 인정했다. 서울시도 대리운전노조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에 규약 개정을 요구했다.

이처럼 노동법 개악 의지가 확고한 문재인 정부와 사용자 측을 사회적 대화로 설득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따라서 재차 확인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 계획 앞에서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7월 파업 실질화 등 진정한 총력투쟁의 조직에 매진해야 할 때다. 

정의당, 민중당 환영 논평에 대한 논평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정부 발표가 ‘선 비준 후 입법’을 채택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면서도 행정명령으로 가능한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ILO 핵심협약 비준 책임을 자한당에 떠넘기며 조속한 국회 비준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정미 의원 스스로 잘 폭로했듯이, 정부는 이미 법률 개정 전에 국회비준 동의안을 처리한 사실이 있는데도 비준과 법 개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민중당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관련 입법을 먼저하고 나중에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바꾼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면서도 “당장 국회에 제출하면 될 일을 각계의 의견을 들어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 것은 유감”이라거나, 노동개악 시도를 경계하거나,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등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라고 요구했다.

정의당과 민중당은 모두 ILO 핵심협약 비준 방침이 “개악을 위한 눈속임”이며 문재인이 노동 개악 의지가 확고하다고 경고하지는 않고 있다.

이는 양당 모두 우파의 공세에 맞서 민주당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 정의당은 국회 논의로 넘어오면 자신의 구실이 더 커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자한당이나 사용자들과 함께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도록 이끌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정당이라면 우파에 반대하면서도 노동자 투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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