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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은 “반페미니즘 전사”가 됐는가?

증보판에서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난점과 좌파들의 대안 부분을 추가했다.

"새로운" 20대 남자 현상? 새롭지도 않고 현실에 맞지도 않은 '20대 보수화' 주장 ⓒ출처 〈시사인〉 표지

지난 4~5월 동안 〈시사인〉에서 20대 남성의 문재인 지지율 급락 이유(이른바 ‘20대 남자 현상’)를 분석한 글이 기획 연재됐다. 성인 남녀 1000명(20대 응답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나름으로 분석한 글이었다. 이 설문조사는 〈시사인〉이 직접 의뢰해 한 것이다.

이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20대 남성은 취업 기회, 승진, 법 집행, 정부 정책 영역에서 (여성이 아니라) 자신이 차별받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양성평등(페미니즘적) 정책에 유독 반발한다. 20대 남성의 문재인 지지율 하락은 이 때문이다.

〈시사인〉은 설문조사 결과 20대 남성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확고한 반대 의견 그룹이 25.9퍼센트나 된다고 탄식한다. “이 정도라면 ‘정체성 집단’이라고 불러도 될 크기”라며 이들을 다른 세대와 똑 떼어내서 ‘반페미니즘 전사’라고 이름 붙인다.

〈시사인〉 글이 화제가 된 것은 ‘문재인이 페미니즘적 정책을 폈기에 남성들이 반발한다’는 주장이 새로워서라기보다는, 이 주장을 실증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주류 언론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스스로도 공유하고 있다.

물론, 20대 남성 중에는 페미니즘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고한 반페미니즘 ‘정체성’ 때문에 20대 남성 다수가 문재인 지지를 철회했다는 주장은 몇 가지 반증에 쉽게 부딪힌다.

우선, 문재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고 여성 공약으로 나름의 기대를 모은 건 정권 초기인데, 그때는 20대 남성 지지율도 높았다. ‘반페미니즘’이 20대 남성의 정체성(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이라 할 만큼 확고하다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지지율이 80퍼센트까지 치솟았던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문재인이 친여성 정책을 대단하게 편 바도 없다. 낙태죄 폐지 청원을 수용하지 않았고 금융권 채용 성차별 비리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성별 임금격차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20대 여성이라고 실제 득을 본 바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20대 여성이 주된 참가자였던 ‘불편한 용기’ 시위는 ‘말로만 성평등’인 문재인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책임 회피

사실 20대 남성이 ‘반페미니즘’이 됐다는 주장은 새롭지 않다. 1999년 군 가산점제가 폐지됐을 때 일부 남성들이 반발하며 페미니스트 신상을 털고 맹렬히 비난했을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왔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는 “군가산점제가 폐지된 20년 전 … 당시 ‘반페미니즘 전사’들은 어쩌다가 페미니즘에 제법 호의적인 40대 아재가 되어버린 걸까”하고 반문한다.(〈시사인〉 분석에 따르더라도 40대 남성의 페미니즘 반대는 훨씬 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에도 진정한 쟁점은 페미니즘 찬반이라기보다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좁아진 취업문과 강화된 경쟁이라는 맥락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배자들은 20대 남녀 모두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주지도 않은 채 서로를 이간질해 왔다. 20대 청년층 전반에서 공정성, 즉 공정한 기회에 대한 염원이 강력한 이유다(학벌, 집안, 성별 등에 의한 차별에 반대하는 정서).

이런 20대 책임론(이제는 20대 남성 책임론)은 언론과 지배자들이 현상을 과장하며 책임 회피와 이간질의 수단으로 반복적으로 써 왔다.

〈시사인〉 글이 명시적으로 문재인의 책임 회피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20대 남성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런 효과를 낸다.

이번 〈시사인〉 글은 20대 남성 책임론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만 과장하는 방법론적 문제도 보인다. 이번 설문조사가 뽑은 표본이 과연 얼마나 20대 남성의 의식을 정확히 보여 주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20대 남성 중 공고한 ‘반페미니즘’ 의견을 보이는 25퍼센트와 나머지 75퍼센트를 구분해 통계를 냈는데, 그러다 보니 소수인 25퍼센트의 의견이 과대 대표돼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긴다.

예컨대, “여성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일로 성공하려는 노력이 남자보다 약하기 때문이다”라는 질문에 대해 공고한 ‘반페미니즘’ 그룹은 52퍼센트가 “매우 동의”했지만, 전체 20대 남성으로 보면 사실 25퍼센트 정도만 “매우 동의”한 것으로 나온다.

개혁 배신

본지가 누차 지적했듯이,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은 문재인 지지율이 전 세대와 성별에서 하락한 추세 속에서 봐야 한다. 단지 하락 추세가 20대에서 더 빨랐을 뿐이다. 〈내일신문〉 여론조사를 보면 20대의 문재인 지지율은 올해 3월 55.3퍼센트에서 불과 3개월 만에 39.5퍼센트로 급락했다.

20대에서 다른 세대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이 더 컸던 것은 기대도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경험이 적은 이 세대는 자신들이 참여하고 지지한 촛불 운동을 지지하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개혁을 이뤄줄 걸로 크게 기대했던 듯하다.

그러나 문재인의 개혁 약속 배신으로 이런 기대는 무너졌다. 문재인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청년 실업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김용균 씨의 죽음 같은 가슴 아픈 참사가 반복됐다. 공공부문 양질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안전 등 차별 해소, 최저임금 인상 등 청년들의 현재와 직결된 약속도 뒤집혔고, 집값 폭등 등도 청년들의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결국 현 정부에 더 크게 기대했고 이제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20대층에서 실망과 이탈이 더 빠르게 일어난 것이다.(집권 2년간 꾸준히 벌어져 온 노동자 투쟁은 이런 불만을 표현하고 확산하는 데 앞장섰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중에서도 남성의 지지율 이탈이 더 빠르긴 했지만, 20대 여성과 남성의 지지율은 동반 등락을 보여 왔다. 이 점이 중요하다. 20대 내부의 젠더 갈등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대 남녀 이간질을 이용해 지지율 하락의 이런 본질을 흐리려 했다. 정부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20대 여성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졌고, 20대 남성은 사회적 배려심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시사인〉 기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듯이, 20대 남성이 문재인 지지를 그만두는 것이 곧 정치적 보수화는 아니다. 여전히 20대 남성 80.2퍼센트가 박근혜 탄핵이 옳았다고 본다. 복지국가, 시장 개방 문제에서도 20대 여성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우파적이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내일신문〉 설문조사에서 20대 남성의 자한당·바른미래당 지지율은 합쳐서 1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더 주목할 만한 특징은 문재인 지지에서 이탈한 20대의 향방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 지지 정당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1퍼센트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나머지 연령대는 38~47퍼센트). 이 공백을 차지하려고 정치적 경쟁이 치열한 것이 20대 담론이 유행하는 하나의 배경이다.

좌파는 계급적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20대 남성을 반페미니즘 집단으로 모는 게 문재인 지지율 하락에 대한 ‘남탓’ 담론이라면, 우파 일부는 이를 그대로 뒤집어 ‘문재인 탓’ 담론 만들기에 써먹고 있다. 문재인이 과하게 페미니즘에 경도돼 20대 남성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식이다. 바른미래당의 하태경이 그런 경우인데, 하태경은 워마드 게시판의 몇몇 자극적인 게시물을 소재로 워마드 폐쇄법을 발의했다.

우파의 “문재인 탓” 공세는 사실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가깝다. 문재인이 진정으로 친페미니즘적인 정책을 편 바도 없고, 20대의 평균적 남성층이 “반페미니즘 전사”가 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파는 이를 이용해 문재인에게 즉자적으로 반발하는 20대 청년층 일부를 포섭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들 모두 ‘문재인은 친페미니즘적이고 20대 남성은 반페미니즘적’이라는 프레임인데, 이들의 담론이 일부 효과를 보는 것은 주류 페미니즘 진영의 프레임도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운동 주류는 대체로 급진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현 사회를 다음처럼 분석한다. 지금 사회는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위계적으로 지배하는 체제(가부장제, 또는 여성혐오 사회)로서 남성 일반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성운동 주류는 오랫동안 민주당과 연계해 그 지도자들이 공식정치에 진출해 왔고 문재인이 친페미니스트적이라며 지지해 왔다. 이 두 가지 약점 때문에, 우파가 비집고 들어 올 틈을 준 것이다.

한편,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합리적 문제의식도 자라 왔다. 특히나, 젠더 분리적 접근법은 이 사회의 진정한 분단선인 계급 문제를 경시한다는 난점이 있어, 지배자들의 책임 전가와 위선에 이용되기 쉽다.

20대의 경우 최악의 취업률, 질 나쁜 일자리, 학력 차별 등은 여성, 남성을 가리는 부조리가 아니다. 이런 구조와 차별에 진정한 책임이 있는 것은 기업주들과 정부이고 이 자본주의 체제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을 함께 요구하면서 성별에 따른 차별에 맞서는 데서도 힘을 합칠 가능성이 있다. 힘을 모아 공공부문에 남녀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계급 억압적 구실을 하는) 경찰에 어떤 성별이 더 어울리냐며 대립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여성해방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자. 전자의 여성 해방은 노동계급 남성과 힘을 합쳐야 이룰 수 있고, 남녀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

진보·좌파는 단순히 여성 혐오에 반대한다고 천명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젠더 분리 페미니즘이 아닌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을 내놔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우파에게 기회를 내 줄 수 있다.

좌파는 20대층의 반(反)우파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일관되게 문재인의 위선과 배신을 폭로해야 한다. 동시에 좌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청년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낳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체제에 맞서려면 여성과 남성이 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