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항쟁이 기로에 섰다. 군부가 항쟁을 분쇄하려 하면서 항쟁이 유혈 낭자한 학살로 이어지거나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투쟁으로 심화할 것이라고 찰리 킴버는 지적한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수단 민중항쟁: 군대 발포로 수백 명 사상”을 읽으시오.

군부와 대치하는 수단 항쟁 참가자들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수단 지배자들이 항쟁을 유혈 낭자하게 분쇄하려 한다. 6월 3일 군부가 수단 수도 하르툼 광장 점거를 침탈해 최소 110명이 죽었다. 실제 사망자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수단 군부는 오랫동안 서부 다르푸르에서 학살을 단련한 살인마 집단인 신속지원군을 풀어 구타, 강간, 살인을 저지르게 했다. 하르툼 외에 13개 도시에서도 연좌 시위가 폭력적으로 해산당했다. 정확한 사상자 수는 아직 모른다.

이는 수단 항쟁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흉폭한 반혁명이 승리하거나 아니면 항쟁이 심화해 더 급진화하고 근본적인 변혁을 밀어붙일 것이다.

2018년 12월 팔라펠[중동식 샌드위치]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것에서 시작한 항쟁은 6개월 동안 발전해 왔다.

항쟁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정치적 성격이 뚜렷해지자 군부는 30년 동안 수단을 지배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를 퇴진시켜야 했다.

그러나 군부는 정권의 수장인 알바시르만 제거하고 정권의 핵심 요소는 그대로 남겨 뒀다.

현재 수단은 군 장성들이 이끄는 과도군사위원회가 통치하고 있다. 이들은 알바시르 없는 알바시르 체제를 원한다. 분열 지배 전략에 의존하는 폭압적 군사 정권 말이다.

상황은 이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거의 두 달 동안 수많은 대중이 광장을 점거해 민정 이양을 직접 쟁취하러 나섰다.

몇몇 기업들에서 파업이 시작돼 산업 전 부문으로 퍼졌고, 5월 28~29일에는 이틀 총파업이 벌어졌다. 군부는 이런 힘이 커질까 두려워 반격에 나섰을 것이다.

구체제의 반격

대중 저항으로 독재 정권이 붕괴하거나 혁명이 일어나면 사회 안에서는 이에 반응해 대체로 세 부류가 나타난다.

첫째 부류는 구체제에서 수혜를 입던 자들이다. 이들은 사회를 기존 통치 체제로 되돌리려 안달복달한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이 지배자 차르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 후 차르의 심복, 기업주, 지주, 군 장성은 “질서를 회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2011년 이집트에서도 혁명으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쫓겨나자, 국가 기구와 산업 부문에 포진한 무바라크 체제 인사들이 구체제를 되살리려 애썼다.

이들은 변화를 되돌리고자 테러와 학살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곤 한다. 대중 항쟁을 상대[분쇄]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그들은 외부 세력의 지원에 기대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과도군사위원회 의장과 부의장은 [하르툼 광장] 학살 직전에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를 순방했다. 이 국가들은 모두 미국과 영국의 중동 지역 동맹들로, 혁명이 두려워 떨고 있다. 이들은 과도군사위원회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댔다.

둘째 부류는 구체제의 몰락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환영하는 부류다. 그러나 이들은 운동이 더 발전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이전 정권의 잔당과 타협하고, 혁명적 수단을 분쇄하려 든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차르 체제 종식 후 수립된 임시정부 주위에 빼곡히 포진했다.

2011년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퇴진 후 선거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도 명백히 일정 정도 개혁을 원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사회를 경제적·정치적으로 대거 재구성하는 것에는 완강히 반대했다.

수단 항쟁 참가자 일부도 이런 부류를 대변한다. 이들은 군부 타도를 원하면서도 대화와 타협으로 큰 소란 없이 군부가 퇴진하길 바랐다.

따라서 이들은 파업과 광장 점거를 협상에서 야당의 입지를 키울 흥정 수단 정도로만 여겼다. 군부는 여기에 장단을 맞춰 주는 척하면서 알바시르 퇴진의 충격을 극복하고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었다. 이후 군부는 다시 공세로 돌아섰다.

혁명적 세력

셋째 부류는 정부 수반 교체나 지배 엘리트의 야바위에 만족하지 않는다. 혁명 초기에 이런 부류는 소수이기 마련이다. 

이들은 혁명으로 낡은 국가를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권력을 창출할 것을 요구한다.

바로 이것이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한 구실이다. 대중이 혹독한 경험을 겪으며 자유주의적 협상가들의 실체를 깨닫게 되자, 볼셰비키에 대한 지지는 더 커졌다.

당시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았다. 토지를 농민에게, 공장을 노동자에게 넘기려 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하는 시기에는 이 세 부류가 영향력과 권력을 두고 경쟁한다.

항쟁이 [사회 관계 전체를 뒤바꿀] 혁명으로 나아가려면 군부를 물리치고 사회를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할 세력이 있어야 한다. 작업장에서 선출하고 민주적 책임을 지는 대표들로 구성된 노동자 평의회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 평의회는 항쟁에서 두각을 보이는 다른 집단들을 포괄하는 구심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여성 단체들, 다르푸르·남(南)코르도판·블루나일 지역에서 평등과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들이 그런 사례다.

노동자 평의회는 그저 바라기만 하거나 연설을 잘 한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평의회는 대중 파업이 벌어지는 현실과 생산·분배를 장악할 필요성에서 나온다.

예컨대 제빵 노동자가 파업하면 노동자는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노동자와 빈민이 제빵소 운영과 빵의 유통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발전소, 병원을 비롯한 수단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단의 광장 점거는 노동자 평의회가 운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장 점거를 운영한 혁명위원회는 초보적인 방식으로 치안, 식량 분배, 통신을 조직했다.

광장 점거의 경험은 노동자 평의회를 발전시키는 씨앗이 될 수 있다.

희망적인 조짐도 보인다. 하르툼 광장 점거 침탈 직후 코르도판 서부에 있는 페트로에너지사의 유전 여섯 곳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교사, 병원 노동자, 일부 공항 노동자 등도 파업에 나섰다. 부르수단 노동자들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도시에서 군부를 규탄하는 대중 시위가 벌어졌다. 하르툼에서는 청년들이 엄청난 용기를 발휘해 신속지원군을 저지할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다.

혁명이 스러지지 않자 군부는 자신감을 잃었다.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인 중장 압델 파타 알부르한은 학살 이틀 뒤 항쟁 세력과의 협상에 무조건 응하겠다고 밝혔다.

살인마 집단 신속지원군의 수장인 중장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는 하르툼 광장 점거 시위대 학살을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다갈로는 “선을 넘은” 모든 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려면 자신부터 처벌받아야 할 듯하다.

군부에 맞서

군대를 분열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조짐들이 보인다.

영국 BBC 〈채널4〉 기자 유스라 엘바지르는 혁명 편으로 전향한 정보 기구 인사를 인터뷰했다.

이 인사는 군부가 [6월 3일] 학살 전에 광장 주위에 배치한 사병들에게서 총을 빼앗고 이들을 광장에서 먼 곳으로 재배치해서 신속지원군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장군들이 기층 사병들의 충성심을 의심한 것이다. 사병들은 시위대 학살 명령을 받았을 때 동요할 것이 분명했다.

단호한 혁명 운동은 적어도 징집병이 다수인 부문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키게 해서 군대의 나머지 부문을 무력화할 수 있다.

군인들의 그런 반란은 신속지원군에게서 혁명을 방어할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군부를 상대로 한 협상과 타협을 일체 중단해야 한다.

30년 동안 수단을 지배했던 독재 정권은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히 스며들어서, 특권과 지배력을 누리는 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수단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군부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해야 한다. 이미 수단 곳곳에서 이를 위한 잠재력과 열망이 나타났다.

5월에 하르툼의 수단 국영 전력 기업 파업에서 노동자들은 [친(親)알바시르 인사인] 최고 관리자와 그의 보좌관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몇 주째 파업 중인 서부 다르푸르 주(州) 교사들은 “전 정권 인사들을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고 전 정권이 설립한 어용 노조를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바로 그런 순간에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는 모든 부문에서 활동하는 혁명적 당이 필요하다. 혁명적 당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혁명을 반만 하다 마는 정치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

1917년 러시아에서 군 장성 코르닐로프가 혁명을 교살하려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혁명은 때때로 반혁명의 채찍을 맞아야 한다.” 대중이 지배계급의 추악한 민낯을 목도하고 나서야 혁명이 급진화하는 상황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수단 혁명을 위한 모든 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자.

이 기사를 읽은 후에 “수단 노동자들, 군부에 맞서 총파업에 나서다”를 읽으시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