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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진보 인사를 중국에 넘겨줄 법안에 반대해:
홍콩에서 100만 시위가 분출하다

6월 9일 홍콩 100만 시위 ⓒ출처 Kevin Krejci(플리커)

6월 9일 홍콩에서 103만 명이 참가한 시위가 일어났다. 인구 700만 명의 홍콩에서 이 정도 규모의 시위는 매우 이례적이다. 1989년 중국 톈안먼 항쟁 연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라는 얘기도 있다.

이 시위는 홍콩 당국이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 법 개정안’(송환법) 때문에 촉발됐다. 분명 중국 정부가 지시해 추진되는 이 법안이 통과하면, 중국이 이를 악용해 홍콩의 정치적 반대자를 중국으로 소환할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이 이런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 체제를 비판한 인사를 홍콩에서 중국으로 몰래 잡아간 사례가 있다. 2015년 중국 비판 서적을 판매하는 홍콩 서점상들이 잇달아 실종됐는데, 수개월 후에야 이들이 모두 중국에서 조사를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이런 일이 합법이 될 수 있다.

6월 12일 오후 현재 홍콩에서는 다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수만 명이 홍콩 입법회(의회) 법안 심의를 저지하기 위해 입법회와 정부 청사 주변을 에워싸고 바리케이드까지 설치했다. 결국 예정된 법안 심의는 일단 연기됐다. 법안 심의 일정이 중단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시위가 계속 이어질 듯하다.

우산 운동

9일 시위는 2014년 민주화 투쟁(우산 운동) 패배 이후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는 장이기도 했다.(우산 운동의 명칭은 시위대가 최루액 공격을 피하려고 우산을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은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됐다. 그때 중국은 홍콩에 광범한 자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약속은 공문구임이 드러났다. 중국은 홍콩 시민들의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침해해 왔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대중 운동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2003년 홍콩 판 ‘국가보안법’ 제정 시도에 항의해 50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결국 중국·홍콩 당국은 이 법안을 보류해야 했다.

2000년대 내내 홍콩에서 행정장관과 입법회 직선제를 요구하는 운동도 있었다.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선거를 직선제로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4년에 그 약속을 뒤집었다. 사실상 친중 인사만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입후보 자격을 제한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2014년 홍콩에서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와 점거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우산 운동”은 연인원 230만 명이 시위에 참가한 대중 운동이었다. 우산 운동 참가자들은 홍콩 중심부를 79일 동안 점거했다.

아쉽게도 우산 운동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이 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고, 이후에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강화했다. 올 4월에 홍콩 법원은 우산 운동 점거를 주도한 활동가 9명에게 “공공소란죄”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중 4명은 징역 8개월에서 최장 1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9일 100만 시위는 이런 탄압과 정치적 자유 제약에 대한 반격이다.

서구의 음모?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지배자들은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며 중국 정부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폼페이오는 ‘범죄인 인도 법 개정안’이 법치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명령으로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려 한 자가 할 말은 아닐 것이다.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이 “법치주의에 대한 끔찍한 타격” 운운하는 데서는 절로 실소가 나온다. 오늘날 홍콩 민주화 투쟁은 바로 영국 식민지 시절의 저항 전통에 그 뿌리가 있으니 말이다.

이의 거울 이미지로, 중국 지배자들은 홍콩 100만 시위를 서구와 결탁한 음모로 비방한다. 이들은 2014년에도 우산 운동이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색깔 혁명”이라고 왜곡했다. 이번에도 같은 논리로 운동을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겠다고 을러대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음모’로 홍콩 시위를 비난하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다. 설사 운동의 온건한 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에 환상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운동 자체의 성격을 좌우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홍콩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전통이 있다. 홍콩 시민들이 제한적으로나마 누린 민주적 기본권(언론·출판의 자유 등)은 모두 영국 식민 당국에 맞서서 쟁취한 성과물이다. 홍콩 시민들은 지금 그 성과물을 지키려고 투쟁하는 것이다.

홍콩 민주화 투쟁은 더 큰 저항을 촉발할 불씨가 될 수 있다. 바로 정치적·경제적 불만이 너무 많이 쌓여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중국 노동계급의 투쟁 말이다. 그래서 중국 당국이 홍콩 시위 소식이 중국의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적극 차단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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