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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아쉬운 합의, 투쟁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한 과제

르노삼성에서 1년가량 이어져 온 2018년 임단협 투쟁이 마무리됐다. 악랄한 사측은 노조에 무쟁의를 강요한 데 이어 직장폐쇄까지 단행했다. 노조 집행부는 이에 밀려 전면 파업 일주일, 직장폐쇄 하루 만인 6월 13일 파업을 중단하고 사측과 잠정합의를 했다. 잠정합의안은 14일 조합원 총투표에서 74.4퍼센트 찬성으로 가결됐다.

5월 21일 부결된 1차 잠정합의안에 비해 이번 합의안에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부분적이나마 반영됐다. 사측은 관례를 깨고 파업 기간(전면·부분 파업 포함 312시간) 임금 손실액의 80퍼센트를 보전해 주기로 합의했다. 이 때문에 사장들의 신문이라 할 수 있는 〈한국경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깨졌다며 신경질을 냈다.

그러나 상당한 아쉬움도 남았다. 이번 합의는 애초 요구했던 임금이나 노동강도, 구조조정 문제 등에서 1차 잠정합의안과 거의 차이가 없다. 더구나 파업 기간 임금을 보전받는 대신 신차 XM3의 출시와 판매를 위해 “노사 평화 기간”을 선포하기로 했다. 사측이 요구했던 “무쟁의 선언”과는 일부 (표현상) 차이가 있지만 투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또, 애초 전 직원에게 지급할 예정이었던 격려금의 일부(150만 원)를 조합원에게만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투쟁 참가율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노조 측이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부적절한 요구였다. 투쟁 지지 세력으로서 연대를 끌어내야 할 (아직은 비조합원인) 노동자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반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업이 갑작스럽게 종료되자, 좀더 싸우기를 바랐던 노동자들은 크게 아쉬워했다. 전면 파업으로의 전환으로 신차와 수출 물량의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전면 파업 후에도 공장이 큰 지장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사측은 관리자들과 파업 불참자들을 모아 공장을 운영하려 했지만 공장 가동률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전면 파업의 효과가 상당히 컸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단호하게 파업을 지속했다면 사측을 한 걸음 더 물러서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사측은 가만히 있지 않고 직장폐쇄라는 강수를 뒀다. 노동자들이 이에 맞설 수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을 보면, 직장폐쇄에 맞서는 효과적인 방법은 공장 점거다. 점거 파업은 생산 차질로 압박받는 사측을 더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고, 노동자들의 결속력을 높이고, 연대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제한적인 투쟁 전술

보수 언론들은 노조 집행부의 강경한 투쟁 기조 때문에 조합원들이 노조를 외면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막판의 파업 참가율은 절반 이하였지만, 핵심 생산 부서인 조립 라인의 파업 참가율이 높았다. 정비를 담당하는 영업지부의 파업 참가율은 70퍼센트가 넘었다. 직장폐쇄에도 500여 명이 공장 앞 집회에 참가했다.

투쟁 초기에는 대다수 조합원이 파업에 참가하는 등 열기가 더 높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노조 집행부가 너무 제한적인 투쟁 전술을 사용해 수 개월간 제한적으로 부분 파업을 했고, 이 전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대오가 절반으로 줄었다.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62차례 총 241시간의 부분 파업을 했다. 1주일에 2~3번 2~4시간 파업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생산 물량이 줄어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는 사측에게 실질적 타격을 가하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본사가 수출 물량을 주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고 사측이 심하게 압박하는 상황에서, 올해 4월 노조 집행부는 신차 생산에는 협조하기로 지침을 바꾸기도 했다. 이런 제한적인 전술은 파업 효과에 대한 회의를 낳고 일부 조합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며 4월에 파업 참가율이 떨어졌었다.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올해 초부터 전면 파업으로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제기가 있었지만, 집행부는 너무 소심하게 행동했다.

이번 투쟁을 통해 남겨야 할 교훈은 효과적인 투쟁 전술을 단호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려 사측을 압박할, 보다 투쟁적인 지도력이 필요하다. 현재 노동자 투쟁은 성장 추세이고, 지배자들도 분열해 있는 등 정세는 노동자들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더 과감하게 투쟁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자동차 산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사용자들은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사측은 노조의 투쟁력을 꺾으려고 매우 강경하게 나왔다. 보수 언론들은 르노삼성이 생산할 물량이 줄어든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다고 거짓 보도를 쏟아내며 사측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했다.

이런 공격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한 치의 유보 없이 일관되게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며 투쟁과 연대를 확대하려고 애쓰는 혁명적 좌파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조직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측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도 아쉬움을 느끼고 있지만, 사측도 원했던 바를 다 이루지 못했다. 사측은 이번 투쟁에 강경하게 대처해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꺾고 싶어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을 통해 최초의 전면 파업과 최장기간의 부분파업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또 그 과정에서 투쟁적인 활동가들이 형성됐을 것이다. 과거에 르노삼성 노동자들은 “노사협력의 모범생”이라고 불렸지만, 노동자들은 그런 오명을 깨고 투쟁 잠재력을 보여 줬다. 이것이 이번 파업이 남긴 가장 중요한 성과일 것이다.

이번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르노삼성 노동자들이 다음 투쟁에서는 한 발 더 전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