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6월 18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안대로라면 누진제 완화로 최대 1629만 가구의 전기요금이 월 평균 1만 142원 줄어든다. 

그런데 6월 21일에 열린 한국전력(한전) 이사회는 이 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보류했다. 이 조처를 시행하면 전기요금이 최대 2900억 원 덜 걷힐 텐데 정부의 재정 지원 약속이 분명치 않다는 게 이유다.

사실상 공기업인 한전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셈인데, 그동안 정부가 한전을 민간기업처럼 운영해야 한다며 수익 압박을 가해 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특히 수익성을 이유로 자회사를 만들고 노동자들을 쥐어짜 왔는데, 이제 적자 수천억 원을 감수하라고 하니 일관성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정부가 국가 기간시설인 전력회사와 발전사, 발전자회사들을 완전히 국유화하고 필요한 재정을 책임 있게 집행해야 한다. 생활에 필수적인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해야 전기요금 때문에 애먼 사람들이 폭염과 혹한에 숨지는 야만적인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또 고(故) 김용균 씨의 동료들을 한 세기 전에나 봤을 법한 작업 현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값싼 전기 덕을 보며 어머어마한 부를 쌓아 온 기업주들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야 한다. 

한편, 정부가 누진제 완화 계획을 발표하자 진보·좌파 일각에서도 이를 비판한다.

이들의 비판 중 일부는 완전히 합당하다. 예컨대 정부안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조처가 없고, 심지어 전기요금 원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등 환경 재난을 완화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 대책도 없다.

전기 사용량 증가가 기후변화를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온실가스 배출 때문인데 발전 부문은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여전히 전기 생산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의 전환이 없다면 20년쯤 뒤에는 기후변화에 백약이 무효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경고다. 

기업주 부담 떠넘기기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가 필요 없다거나 누진제 완화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도 누진제 완화가 전기 사용량을 늘려 오히려 기후변화를 가속할 뿐이라고 여긴 듯하다. 혹은 이미 너무 많이 쓰고 있어서 줄여야 한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의 13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 비율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오히려 줄었다. 산업용 전기 사용량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늘었기 때문이지만 주택용 전기 사용량의 절대치도 크게 늘지는 않았다. 여름철 사후 요금 감면으로 누진제가 완화된 2016년 이후에도 그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택용 전기사용량은 별로 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산업용과 달리 주택용 전기를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필요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히려 비싼 전기요금 탓에 필요한 전기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기후변화 탓에 폭염이 더 흔한 일이 되고 에어컨이 필수재가 된 지 오래지만,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겨울에도 전기 난방기를 쓰는 경우가 크게 늘었는데 이는 1인 가구가 늘고 소규모 난방을 하기에는 가스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싸진 영향이 크다. 정부가 에너지 공급을 시장화하면서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게 문제다.

유럽 나라들에 비하면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이 비싸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끼리 전기요금 인상 경쟁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필수재인 전기는 병원비, 교육비처럼 노동자들의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유럽 나라들에서 전기요금이 비싼 이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의 지배자들이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상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인하해 왔다. 따라서 전기 사용량이 줄지는 않았다.

독일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은 한국 노동자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니다

게다가 압도적으로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크게 증가하고 있)는 산업(55.8퍼센트)과 상업(24.6퍼센트)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분야 전기 사용료에는 할인 제도가 적용되는데, 그 할인액만 해도 주택용 전기요금 전체와 맞먹는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이처럼 기업주들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구실을 해 왔을 뿐이다. 산업과 상업에 전기요금 할인제를 없애고 높은 누진율을 적용하는 게 더 공정하고 효과적이다. 

재생가능 에너지

기후변화를 멈추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재생가능 에너지의 이용 잠재량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전기의 총량을 훨씬 웃돈다. 그런데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까닭은 노동자들이 전기를 ‘물 쓰듯’ 사용해서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전기를 어떻게 생산할지 결정할 권한이 없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정부와 한전 이사회의 힘겨루기에서 보듯 진정한 결정권은 이들에게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의 위협을 알면서도 눈앞의 이윤과 경쟁 때문에 전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윤 축적이라는 체제의 논리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집단은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이 이끄는 근본적 사회 변혁만이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급격한 전환을 이룰 기초를 놓을 수 있다. 

또한 노동계급이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게 할 민주적 사회를 건설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런 잠재력은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얼마나 발전하느냐에 그 실현 여부가 달려 있다. 

따라서 이들의 생활 조건을 하락시키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기후변화 해결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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