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일각에는 경제 위기 때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므로 그저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김하영은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 투쟁이 대안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
  3. 산업정책 참여가 구조조정 대안인가?
  4. 경제 위기 시기 대안을 둘러싼 논쟁

2018년 3월 24일 전국노동자대회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미진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준다. 실업, 불안정 고용, 소득 저하는 노동자 가족과 지역사회를 파탄으로 내몬다. 1997년 IMF를 불러들인 경제 위기로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경험을 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에는 특히 해운업과 조선업 노동자들이 이런 고통을 거듭 겪었다.

문재인은 “일자리 경제”와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워 대통령이 됐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도 채 안 돼 노동자들은 또다시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됐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됐고, 금호타이어가 해외 매각됐고, 중형 조선소에 대한 자구 압박이 계속됐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지만, 문재인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변명하면서 실제로는 기업 편에 서서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지난해 말에는 정부 관리 하의 대우조선마저 매각하기로 하면서, 아예 정부 스스로 일자리를 위협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고용 친화적 구조조정”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가 고통 분담 방식의 구조조정에 합의해 이룬 성과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2018년 8월 또다시 전 직원 2년 4개월 무급휴직에 들어간 성동조선 노동자들의 처지를 보면, 이런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오랜 무급휴직에다 이제는 정부의 휴직 지원금마저 끊겨 현재 노동자들은 벌이가 전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성동조선은 2019년 4월, 3차 매각 절차에 들어갔고 또다시 존폐 기로에 놓였다.

이것은 두 가지를 보여 준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비록 강압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켜 경제 위기의 대가를 치르도록 설득하는 방법을 취했을지라도, 그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이 결코 못 된다. 둘째,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희생과 양보”는 결코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경험한 것은 고진감래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거듭된 양보의 강요였다.

국가가 일자리를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고통을 감내한다고 해도 해당 산업이나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계급 일부의 조건 양보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기고, 이로 말미암은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구매력 저하는 경제 전체를 수축시킬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집권 1년여 만에 제조업 고용이 줄어들었는데, 그 직접적 원인으로 제조업 경기 둔화와 함께 구조조정이 꼽힌다. 이처럼 경제와 노동자 개인의 미래를 보장하지도 못하는 구조조정을 위해 왜 노동자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대안이 있을까?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위기에 처한 산업이나 기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와 조건을 지키겠다고 고집하면 경제 전체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닐까?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러 난관에 부딪히곤 했는데, 그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정치적 혼란이다.

특히,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보면서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추구한다. 여기에는 ‘우리 경제가 살아야’, ‘우리 회사가 살아야’ 일자리도 보호될 수 있으니, 기업과 경제 살리기에 하는 수 없이 협조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해고를 면하는 대신 무급휴직이나 임금 삭감을 수용하는 노사 합의를 추진하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정부 정책이 입안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본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 이후로만 봐도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양보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거듭 확인되고 있다. 지엠 노동자들은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지엠 노동자들은 매각과 감원, 임금 등 조건 양보, 다시 매각과 감원 위협, 조건 양보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김하영, ‘양보 교섭’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노동자 연대〉 240호).

더 많은 활동가와 노동자들은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처럼 ‘양보 교섭’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 부재감에 어쩔 수 없이 양보 방향으로 떠밀린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파산으로 공장 폐쇄나 매각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일자리 보호를위해 정부에 국유화를 요구하며 싸울 수 있다. 국유화만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기존 생활수준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다.

국가만이 이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 말고 대기업 파산에 대처할 수 있는 행위자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국가는 국민의 삶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대중의 압력을 받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 제기에 취약한 처지에 있다.

파산 위험 기업의 고용 문제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칫 해당 기업의 노사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 쟁점을 국가적 차원의 정치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안 부재로 실의에 빠질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 잃는 게 당연하다거나 과잉 인력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기 어려워졌는가?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국유화를 일부 좌파들의 철 지난 요구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화된 오늘의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대기업의 파산이 경제 전체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을 우려하는 각국 정부는 그런 상황에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번번이 나섰다. 가령 2008~2009년 위기 때 미국과 영국 등 각국 정부는 총체적인 추락을 막고자 일부 은행과 기업에 대한 국유화 조처를 포함해 경제에 개입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낯익은 광경이었다.

이처럼 국가는 얼마든지 기업 국유화 조치를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각국 정부는 대개 기업 매각 때까지 임시적 조처로서만 국유화를 유지하려 하는데, 이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채권자 보호와 인수자 특혜를 위해서다. 한국 정부도 부실기업의 일시 국유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공적자금 투입이나 법정관리 후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매각을 하는 것으로, 이런 정책에는 매각 여건에 맞추기 위한 노동자 해고와 조건 악화가 수반된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매각까지의 임시적 조처로서 일시 국유화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상시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 기업에게 퍼주던 돈을 노동자 일자리 보호에 쓰라는 것이다. 또, 국유화했던 기업을 매각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국유화는 사회주의적 조처인가?  

파산에 직면한 기업의 국유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이상적인 경영 모델이거나, 모종의 사회주의적인 조처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요구인 것이다. 이것은 국유화를 대안 경제 모델로서 제시하는 일부 좌파들과 다른 점이다. 좌파적 개혁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국유화를 확장시켜 사회주의로 옮아갈(‘이행’) 수 있다고 본다.

2008년 미국 오바마 정부가 일부 기업을 국유화하자 언론들은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물론 일부 언론은 “부자들의 사회주의”라고 비꼬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종종 좌우 모두 공유하는)일 뿐이다. 국유화나 국가 통제가 곧 사회주의인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권력과 이에 따른 사회적 의사결정을 뜻한다. 그 목적은 생산을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평의회 같은 진정으로 민주적인 기구를 통해 스스로 정치 권력을 행사할 때만 가능하다.

물론 성공한 노동자 혁명 이후 노동자 국가는 토지와 은행 국유화를 필두로 기간산업을 전면 국유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위로부터 단행되는 행정적 조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한 노동자 통제의 한 부분으로서 이뤄질 것이다. 국유화를 한다고 다 사회주의인 것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단행되는 기존 국유화는 사회주의와 관계없는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는 여러 경우에 국유화 조처를 취했다. 제1차세계대전 동안과 1930년대에 전쟁(또는 전쟁 준비)를 위해 국유화 조치가 대대적으로 취해졌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효율적인 경제 재건을 위해 기간산업 국유화 조처가 취해지기도 했다. 제3세계에서는 국가가 자원을 집중시키고 산업화를 지도하기도 했는데, 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국유화나 국가 통제가 사회주의라면 박정희 독재 체제도 사회주의 국가였을 것이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부에 의한 국유화도 사회주의와 관계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령 영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노동당 애틀리 정부 하에서 경제의 약 20퍼센트를 국유화했다. 은행, 석탄, 철도, 가스, 전기 등이 국유화됐고, 국민보건서비스(NHS) 같은 공공서비스도 구축됐다. 그러나 해당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무엇을 생산할지, 어떻게 경영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국유 기업들은 사기업과 꼭 마찬가지로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 위계적인 구조를 취했고, 경영자들은 이전 사기업들로부터 충원됐다.

자본주의 국가에 의한 국유화는 노동자와 서민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 전체의 이익에 봉사해 왔다. 국가가 사회기반시설 확충처럼 개별 자본가들이 하기 어려운 투자를 대신해 주거나, 손실을 사회화하면서 개별 자본가의 이익을 보호해 주거나, 경쟁 체제 도입과 관료적 경영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국유화는 무상으로 이뤄져야 하고, 흔히 노동자 통제가 필요하다. 단지 공적 소유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돼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통제는 자본주의적 경영권을 제어하는 것으로, 노동자 국가가 수립되기 전에도 여러 상황 속에서 쟁취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특히 투쟁이 거대하게 분출할 때 노동자 통제 경험이 거듭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업무현장에 기초한 민주적 위원회를 만들어 고용과 해고, 임금, 노동시간, 관리자 배치 등을 통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통제는 그렇게 멀리 나아갈 수 없다. 노동자 통제는 오직 민주적 계획의 틀 안에서만 지속 가능한데, 이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분쇄해야 함을 뜻한다.

이처럼 국유화는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고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그러나 기존 국유화의 이런 한계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국유화 요구를 제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동운동의 일부는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의 국유화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유화 대신 종업원 지주제, 노동자 자주관리, 노동조합 경영 참가 등을 “사회화”라며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는 중요하다. 그것은 대안 경제 모델이 아니라, 대량실업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필요(즉, 정부가 노동자 일자리를 책임지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하에서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 행위자는 국가밖에 없다. 이 명백한 현실을 회피하고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킬 자원을 동원할 수 없다.

어떻게 국유화를 강제할 수 있는가?

물론 기존 국가와 문재인 정부가 사회 개혁의 주체라는 뜻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파산 위험 기업의 국유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인들은 이런 조처가 자신들이 원하는 식의 구조조정(특히 고용조정)에 방해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

정부가 국유화를 추진하도록 만들려면 노동자들이 상당한 수위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대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대안의 현실화 여부는 운동의 규모와 힘에 달려 있다.

보통 임단협처럼 몇 시간 또는 며칠 파업을 하는 것으로는 구조조정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 며칠 이상 가는 파업일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사업장 폐쇄나 매각에 맞서는 데 약점이 있다. 일감이 부족해 며칠 파업이 대단한 위협이 되지 않는 경우도 흔한 데다, 노동자들이 일터를 벗어나면 기계와 원자재를 사측의 재량에 맡기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이다. 점거(연좌) 파업은 사용자들이 실업 불안을 이용한 이간질과 대체인력 투입으로 투쟁을 와해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점거 파업 자체로도 충분하지 않다. 점거 투쟁이 승리하려면 연대가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일감을 다른 공장으로 넘긴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다른 공장에서 생산을 유지해 점거 파업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점거 노동자들은 대표단을 구성해 다른 공장들로 파견해서 다른 노동자들이 점거 노동자들의 일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투쟁에 동참시켜야 한다. 점거 사수를 위한 광범한 연대 행동을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점거 농성장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투쟁을 확대하는 거점이 돼야 한다. 일자리 지키기 투쟁은 많은 노동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더구나 노동자들이 단호한 투쟁을 벌이면 파산 위험 기업의 노동자 일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러면, 그렇지 않아도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지속돼 온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이 깊어지고 정치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사업장 폐쇄나 매각 등이 추진력을 잃고 마비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투쟁을 더 전진시키는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다.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사업장별 구조조정 대응이나 한 기업의 국유화 요구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우려하는 한계를 뛰어넘을 잠재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호에서는 이런 문제를 포함해 구조조정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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