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을 본격화했다. 

기획재정부는 5월 공공기관 38곳에서 “기관별 보수체계 합리화 계획 조사”를 진행했다. 먼저 공공기관 부설 연구기관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체계 개편 방향은 ‘직무 중심 임금 체계’다. 기재부는 지난해 연말에 이미 직무급 중심의 여러 유형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임금공시제도 개편 방안” 연구 용역을 맡겼다. 이 연구를 통해 각 공공기관의 직무를 분석해 표준 직무 분류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는 직무급제 개편을 위한 첫 단계다. 표준 직무 분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각 기관들의 직무급제 도입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 따라 일부 공공기관 사측도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자체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도 직무급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인사혁신처는 “6급 이하 공무원 보수체계의 연공성을 완화하고 직무가치 반영을 확대할 필요성[이] 증대”해 그에 맞는 임금 개편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들이 추진하다 만 직무급제를 다시 밀어붙이고 있다. 겉으로는 일방 강행처럼 안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말이다. 

직무급제 개편이 노리는 것

문재인 정부는 “직무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 직무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하고, 노력·성과·보상 간 연계성을 강화하여 공정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해서, 현재 한국의 주된 임금체계인 연공급제(근속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정부 정책 연구자들은 파이의 크기가 늘지 않는 저성장 시대에는 일부 노동자들이 계속 연공급 혜택을 고집하면 나머지가 불이익을 보게 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답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으로서 직무급제 도입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노동자 간의 분배 방식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지적해야 할 것은 한국 경제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상대적 몫은 줄어 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공정’한 분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2016년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과 비교해 무려 10퍼센트포인트가 줄었다. 최근 20년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경제 성장과 노동생산성 증가에 못 미쳤다. 같은 기간 OECD 주요 20개 국에서는 평균 노동소득분배율이 2.07퍼센트포인트 줄었다. 한국의 감소폭이 무려 다섯 곱절이다. 이를 계산한 건국대 주상영 교수는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이 “OECD 평균에 부합하려면 노동소득이 지금보다 90조 원 많고 자본소득은 그만큼 적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진정한 ‘불공정’ 문제는 노동자들 간의 분배 기준이 아니라 기업과 대비해 노동자 몫이 줄어 온 것에 있다. 결국 정부는 그 원인을 노동자 간의 분배 문제로 돌리는 책임 전가를 하는 셈이다.

연공급제(한국)와 직무급제(영국)를 비교하면, 직무급제는 직무 등급 간 임금 차이를 분명하게 만들어 임금 격차를 늘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아전인수격 해석

정부가 직무급제를 통해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을 실현한다는 것도 노동자들이 바라는 임금 차별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100여 년간 노동운동은 성별이나 고용형태, 인종 등에 따른 차별에 항의하고 낮은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투쟁의 구호로서 동일임금은 차별 받는 저임금 부문의 임금을 올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하는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은 이와 다르다. 직무 가치가 낮으면 임금이 낮은 게 정당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비정규직이었다가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에게 도입한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전환된 노동자들의 업무는 대부분 가장 낮은 직무(임금 수준은 최저임금)로 분류됐다. 그리고 근속에 따른 임금 인상을 제약해 기존 무기계약직 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이래 놓고는 사업장이 달라도 동일한 직무에 따라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니 공정하다고 한다. 임금이 낮은 것은 직무의 가치가 낮은 데 따른 것이니 차별은 아니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저임금 고착화에 크게 반발하며 호봉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직무급제가 임금 차별 감소는커녕 개선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직무급제가 도입된 영국과 독일에서 근속년수가 길어져도 임금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 직무급제의 임금 인상 억제 효과를 보여 준다 ⓒ자료 고용노동부

공정한 직무 평가는 환상

직무의 가치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평가의 공정성은 핵심적인 논란 거리다. 직무급제 지지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직무 평가 방법들이 개발돼 ‘과학적 측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의의를 측정하는 게 아니다.

또 문재인 정부가 성과에 따른 보상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데서 성과주의 강화라는 전임 정부들의 정책을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에도 직무급을 도입해 점차 확대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정부의 임금 체계 개편 방안이 직무성과급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직무의 분류와 평가는 사용자들의 이익(수익성)을 중심으로 짜여지기 마련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영진과 관리자의 업무가 ‘기술, 노력, 책임’ 요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높은 직무 가치를 인정받는다. 직접적인 수익 성과가 직무가치 평가에 중요하게 반영된다.(당장 돈 되는 업무와 아닌 업무) 

작업 환경과 노동시간 같은 노동조건, 측정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직무 평가 요소에서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해 고된 육체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업무는 낮은 직무로 평가 받기 일쑤다. 

그래서 기업 CEO의 직무는 생산직 노동자의 직무보다 몇십 곱절 높게 평가되는 게 정당하게 취급된다. 또 직무가치 평가 과정에서 나이, 성별, 인종, 학벌 등 온갖 편견도 크게 작용한다. 직무 분석 평가는 ‘공정’하기는커녕 자본주의의 차별 논리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공공부문에서 직무 등급이라는 사실상의 서열을 도입하는 것(차등 정당화)은 양질의 공공서비스 제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공공서비스는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협업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 억제가 진정한 목적

게다가 직무급제 도입 맥락을 봐야 한다.

이미 직무에 따른 직군제 분리가 직군제 ‘정규직화’, 자회사 ‘정규직화’ 방안 등에 이용돼 왔다. 심지어 외주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직무급제로의 전면 개편은 노동조건 악화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직무급 자체가 산별 교섭 체계에서 임금 협상 대상이 되므로 임금 억제 압력을 만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부적절한 이유이다.

자본주의에서 사용자들은 ‘공정 계약’이라는 외관을 전제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임금 지불 방식을 바꿔 착취의 증대를 꾀하곤 한다. 사용자들이 지금은 연공급제를 없애는데 안달이지만, 이 제도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초기에 노동력을 끌어모을 때에는 이윤 증대에 유리한 제도였다.

낮은 숙련을 핑계로 낮은 초임으로 젊은 노동자들을 실컷 부려 먹으면서도 미래의 (평생 고용과 연공급제에 따른) 임금 보장을 미끼로 노동자들의 충성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직장 이동을 줄이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사용자들은 경제 위기가 오래 지속되고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자 인건비 부담을 느끼면서 이를 줄이려고 한다. 연공급제를 핑계 대며 가파른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는 사용자들의 불평은 20여 년 동안 계속돼 왔다. 1987년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초임이 대폭 오르고 근속에 따른 승진과 임금 상승이 제조업으로까지 확대돼 애초에 연공급제를 도입할 때의 이점(청년 노동자의 저임금 부려먹기)이 많이 사라진 것도 큰 불만 사항이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근속에 따른 인상을 억제하며, 임금 결정에 성과 평가 요소를 강화하려 애써 왔다. 이를 위해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직무급제 등 다양한 임금 억제 방안들이 제기됐고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직무급제는 직무 등급 간 임금 차이를 분명하게 만들어 임금 격차를 늘리게 돼 있다. 직무등급 내에 임금 상한선을 정해 둬 상위 직무등급으로 승급하지 못하면 어느 시점에선 임금 인상이 중단된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왜 연공급제를 문제삼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런 설계는 전체적으로 임금 상승을 상당히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가령 새만금개발공사에 도입된 직무급제가 이렇게 설계됐다. 직무 등급 내 임금 상한선이 있고, 같은 직무 등급 내의 임금 인상은 성과 평가 비중을 가장 크게 반영해 개인별로 정하도록 돼 있다. 

물론 직무급제 지지자들은 호봉제를 직무급제로 전환하더라도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저하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장은 삭감되지 않는다 해도 제도 개편의 맥락상 임금 억제 압박은 훨씬 커질 것이다. 수당으로 임금을 보전해 주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그 지속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진정한 목적은 장기화되고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임금 억제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금 체계 개편은 명백한 개악이다.

직무급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둑에 구멍을 내 무너뜨리려는 정부 

정부가 공공부문에 직무급제 추진을 본격화하자 반발이 커지고 있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재부가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추진”한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또, “일방적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9월 하순~10월 초에 대정부 총력 투쟁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중앙행정기관 무기계약직 전환자에게 직무급제(표준임금체계)를 제일 먼저 도입했고 이후 일부 지차제들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노조 또는 노동자 대표와 합의 하에 추진한 것이라지만, 정규직 전환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직무급제를 강요했다. 이렇게 무기계약직 전환자들부터 직무급제를 도입해 정규직까지 넓혀 가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저항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를 일단 청소·시설·관리 등 5개 직종 무기계약직 전환자에만 해당하도록 제시해, 나머지 노동자들은 아직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여기게 하고 있다.

정규직 임금체계 개편도 가급적 손쉬운 대상을 골라 물꼬를 터 확대해 가려 한다. 이미 정부는 2018년에 설립된 새만금개발공사에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최근 공공기관 산하 연구기관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는데 규모가 작고 노조가 비교적 취약한 조건을 노린 듯하다. 또 성과연봉제가 아직 폐지되지 않은 기관에서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 노조를 임금체계 개편 논의 테이블에 끌어들이려 할 듯하다. 

따라서 직무급제 도입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직무급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투쟁 태세를 갖춰야 한다. 

직무급제 반대를 분명히 해야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 노조들은 정부의 직무급제 일방적 추진에 반대해 ‘선 노정교섭, 후 기관별 교섭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기관별로 각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정작 직무급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듯하다. 

공공운수노조 지도부 일각에서는 직무급제를 반대만 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있다. 노정교섭에서 “임금체계에 직무 요소 도입 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무급제가 개별 기업별로 성과와 연동돼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노조와의 교섭을 통해 산업이나 사회적 차원으로 도입되면 연공급제보다 공정한 임금체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직무 분석 평가와 임금 수준 등을 노조와 함께 결정하면 사용자의 자의적 평가 같은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제도 개편의 맥락을 봐야 한다. 또, 임금 억제를 위한 제도 개편에 노조가 동의를 해 주는 것 자체가 노동자들의 단결이나 의식 고취에 해롭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직무급이 가능하냐는 문제가 있다. 산업적 차원의 직무급제가 저임금과 격차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직무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른 임금 차등을 ‘합리적(정당한) 차별’이라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계급적 단결에 도움이 안 된다. 

표준임금체계 도입이 개악이더라도 일단 업종별 임금 평준화를 이루면 단결이 쉬워지고 그 단결에 기초해 임금 수준은 나중에 싸워서 올리면 된다고 보는 주장이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단견인 이유다. 정부와 사측이 도입한 제도에 의해서 누구는 깎고 누구는 올리는 과정 자체가 계급적 단결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 체계 개악을 수용하는 대신 임금피크제 폐지, 기존 노동자의 임금 저하 방지, 격차 축소를 위한 정부 재정 투입 같은 요구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임금 하락을 막는 안전 장치가 되지 못 할 것이다. 

정부가 이런 보완 조건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텐데, 왜냐면 애초 직무급제 도입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개악 수용 여지를 열어두는 접근이 더 한층의 후퇴를 강요당하는 효과를 낼 위험이 크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요할 때, 임금피크제 수용을 전제로 노정교섭을 열어 폐해를 줄이겠다는 접근은 중앙 교섭도 안 되고 개별 투쟁들만 약화돼 결국 무기력하게 임금피크제가 단사별로 하나씩 도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조건부 경사노위 참가론은 정부에게 전제조건(최저임금 개악 철회 등등)을 이행하도록 압박하기는커녕 민주노총 내 논란만 키웠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직무급제 수용을 열어 두고 그 보완 조건에 대해 정부와 협의를 하자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

한편, 성과연봉제가 여전히 적용되는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사용자들이 성과연봉제 폐지를 조건으로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요구해 올 수 있다. 일부 노동자들도 성과연봉제보다는 직무급제가 그나마 낫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무성과급제는 성과연봉제와 유사성이 크다. 특히 정부가 일부 공공기관들에서 직무급제 도입의 물꼬를 트려고 하는 것에 부문주의적 관점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임금체계 개악에 반대하는 공동의 투쟁 속에서 여전히 성과연봉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폭로하며 투쟁해야 한다. 그럴 때 지지와 관심을 모아낼 수 있다. 

일부 공공기관들에서 직무급제를 수용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둘 것이 아니라 정부 개악에 반대하는 단일한 저지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정규직 양보론이 격차 해소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직무급제를 임금 격차 해소 방안으로서 주목하기도 한다. 그 중에는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억제 주장도 있다. 그동안 여러 노동조합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정액 임금 인상(액수가 중요할 것이다) 또는 비정규직의 추가 인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격차 축소를 요구했다. 

이와 달리, 최근에는 투쟁을 통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상향 평준화하려 하기보다 정규직 임금 인상을 억제해 그 절감분을 비정규직 임금 인상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소가 내놓은 ‘공공기관 노동조합운동의 임금정책과 임금체계 개편 대응전략 방향’은 그런 사례의 하나이다. “고임금 부문의 인상 억제 총액은 저임금 부문의 추가 인상 재원으로 온전히 환류돼야 한다. 정부 역시 그에 비례해 재원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연대임금 정책의 추진 유인과 불평등 축소 효과를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선제적으로 양보해야 정부와 기업들에게 양보를 요구할 명분이 생기고 실질적인 격차 해소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민간부문에서는 정규직의 임금 양보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사용되도록 사용자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합리적 반론이 즉각 제기된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정부 정책으로 정규직 임금 인상 절감분을 비정규직 임금 인상분으로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는 문재인 정부를 통해 일정한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위 보고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노조의 지향점 사이에 ‘저임금 불평등 문제의 적극적 해결이라는 교집합”이 있고, “그러한 교집합 위에서 상생의 구조개혁 추진”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저임금 불평등 문제 해결에 진지한 관심이 없다. 지난 2년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 준 태도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자마자 효과를 대폭 반감시키고 표준임금체계 모델을 확산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여권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동결론까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의도는 전반적인 임금 억제인데다 민간 부문의 임금체계 개편을 촉진하려는 의미도 크다. 즉, 한국 경제 전체를 보고 추진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선제적 양보는 정부를 설득하기는커녕 정부 논리를 강화하고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 받는 위험한 효과를 낼 것이다. 이 추가 양보 압력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다른 부분으로도 파급된다. 양보의 효과는 노동운동에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일각에서는 정규직 임금 억제를 통해 노조 고위층 간부들이 장차 공공부문 임금 결정의 파트너로 인정받고 공공기관 운영 참여(노동이사제)가 가능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현장 노동자들에게 별로 이롭지 않다. 사용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사회적 대화나 노정교섭의 판을 깨버리곤 했다. 스웨덴에서도 연대임금 교섭은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을 때만 유지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노조 지도자들이 임금을 양보하면,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노조 조직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면 노조 지도자들은 대화 테이블에서 더 큰 양보를 강요 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양보를 통한 교섭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정부를 압박해 임금 억제 정책을 중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임금 방어하며 연대 강화에 힘 쏟아야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 때는 강력한 투쟁을 벌이고 광범한 연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규직 임금 억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임금 총량을 늘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 몫은 경제 상황만이 아니라 계급 투쟁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경제 위기 시기에 임금을 방어하거나 올리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 억제를 수용하자고 설득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전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억제에 정당한 불만을 품으면서도 투쟁에 적극 나설 투지를 발휘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방어하면서 정부의 임금체계 개악에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정부에 맞서 싸울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정규직이 비정규직 차별 폐지를 위해서도 함께 싸우도록 설득해야 한다. 조직된 정규직 노조들이 정부에 맞서 잘 싸우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감하게 투쟁에 나설 자신감도 더 커질 수 있다.

정규직의 임금 양보로 격차를 줄이자는 제안은 비정규직이 스스로 투쟁해 더 나은 임금을 쟁취할 능력과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많은 비정규직이 조직화하고 스스로 싸워 처우를 개선하고 임금을 올렸다. 이런 투쟁으로 일부는 호봉제의 요소를 얻어내기도 했다. 공공부문 지자체들과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비정규직 중 미조직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지난 2년간 노조 조직률 확대의 상당 부분은 비정규직이었다. 이미 조직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들을 노조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유인이 됐다. 공공운수노조의 한 전략조직 담당 간부는 지난 2년간 조합원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2016년 하반기에 벌어진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을 지목했다. 이는 조직 부문의 투쟁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고무해 조건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좌파 활동가들은 정부의 임금 억제 공격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또, 양보론이 아닌 투쟁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며 연대 강화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