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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회주의자 람치렁 인터뷰:
송환법 반대 운동은 이제 어디로?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은 법안 처리 중단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 홍콩 현지에서는 운동의 방향을 놓고 정치적 논쟁도 벌어진다.

람치렁은 홍콩에서 활동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이고, 좌파 단체 ‘레프트21’ 회원이다. 그에게서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의 상황과 과제를 들어 봤다. 이 인터뷰는 온라인에서 진행했다. 

[ ] 안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홍콩 당국은 송환법 개정안이 정치적 반대자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홍콩 시민들이 그 개정안에 그토록 분노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송환법(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안이 정치적 반대자들만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송환법 개정안이 곧 통과할 듯하자, 4월 말에 서점 주인 람윙키(林榮基, 63)는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2015년 중국 정부에 의해 8개월 동안 구금된 적이 있습니다. 람윙키가 시진핑의 사생활에 관한 책을 홍콩에서 출판해 중국공산당 당국을 화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1997년에 홍콩이 영국 식민 지배가 끝나고 중국으로 반환됐지만, 이른바 ‘일국양제’를 실시하는 홍콩은 중국 대륙과 정치·사법 제도가 다릅니다. 홍콩 시민은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있으며, 비교적 독립적인 사법 제도의 보호를 받습니다. 송환법이 개정되면 홍콩과 중국 대륙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고, 중국공산당 정부는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중국 대륙으로 보내 재판을 받게 하도록 홍콩 특별행정구(특구) 정부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홍콩 시민들의 심기를 건드려 반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람치렁은 홍콩에서 활동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이고, 홍콩 ‘레프트21’ 회원이다

200만이 넘는 거대한 시위가 홍콩에서 분출한 데는 그만한 사회적 맥락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어떻습니까?

홍콩의 노동자와 청년들은 홍콩 반환 후 자신의 삶이 개선됐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공산당 정권은 홍콩 자본가 계급과 결탁해 홍콩이 계속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유지하게 하고, 모든 진지한 노동개혁과 사회개혁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홍콩에서 사회 모순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홍콩의 실질임금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빈곤층은 137만 명에 이릅니다. 다시 말해, 다섯 명 중 한 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삽니다. 빈부격차를 반영하는 지니 계수는 0.539에 이르러, 미국과 싱가포르보다도 높습니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홍콩은 금융과 부동산으로 완전히 기울어서, 노동자 가정의 거주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공공주택 건설이 감소해, 대략 22만 명이 이른바 ‘당방’(劏房: 한 아파트를 몇 개의 원룸으로 쪼개 만든 방)이라는, 사생활이 거의 없는 매우 협소한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홍콩 특구의 정치 제도는 식민지 시대의 홍콩 총독 체제를 그대로 본받았습니다. 행정장관이나 입법 기구 모두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는 홍콩이 민주적 선거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각종 정치·경제적 모순이 누적되면서 결국 2014년 9월에 우산 운동이 폭발했습니다. 지금 ‘중국 송환 반대’ 운동도 시민들의 불만이 다시 폭발한 것입니다.

실제 운동의 전개 양상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요?

올해 6월 내내 홍콩 시민들은 몇 차례의 항의 행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먼저 6월 9일 103만 명이 거리로 나와 항의시위를 벌였고, 그 후 6월 12일 모두 합쳐 4만 명(주로 18~24세의 청년)이 입법회를 포위해 송환법 조항을 재독하는 회의가 소집되지 못하게 했습니다.[홍콩 입법회는 법안에 대해 초독(first reading, 首讀)과 재독(second reading, 二讀) 회의를 열어 반대 의견을 듣고 논의한다.]

6월 12일 경찰은 입법회를 포위한 시위 참가자에게 최루탄과 최루액을 쐈습니다. 심지어 사전 경고 없이 포대탄[안에 있는 작은 납구슬이 발사되는 탄약]과 고무탄을 쏘는 등 매우 폭압적인 수법으로 대응했습니다. 홍콩 특별행정장관과 경무처장은 이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했습니다.

6월 15일 밤 35세의 청년 량링제(梁凌杰)가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입법회 근처의 쇼핑몰 난간에서 떨어져 자결했습니다. 그는 정부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6월 16일에는 분노와 비통함에 젖은 시민이 200만 명 넘게 거리로 나왔습니다.

홍콩 특별행정장관 캐리 람은 ‘사회적 분열’을 초래했다며 사과했지만, 송환법 개정을 철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위대는 다시 집회를 열고 경무처 본부를 포위했습니다.

시위대는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일에 맞춰 다시 거리 행진을 할 계획입니다.

포위

여러 차례의 대규모 거리 행진은 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이라는 연합체가 발의해 성사된 것입니다. 이 단체는 50곳이 넘는 민주적 민간 단체와 정치조직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러나 수백만 시민들은 중국 송환 반대를 위해 거리 행진에 참가한 것이지 민간인권전선의 조직력과 호소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입법회 등 정부 기구를 포위한 것은 분명 자발적이었으며 어느 조직이 지도한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중국 송환 반대 운동은 우산 운동의 무정형적인 운동 형태를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송환법 반대 운동은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대중 저항이다 ⓒ이윤선

2014년 우산 운동도 세계적 주목을 받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동으로 홍콩에서 새 청년 활동가들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운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5년 전 우산 운동 때 저는 주로 가두연설을 하거나 칼럼을 썼습니다. 당시 상황은 적잖은 청년들을 감동하고 분기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홍콩에서는 이와 같은 대중적 거리 점거 같은 행동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산 운동 참가자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한 다음 서로 책임을 지는 풀뿌리 성격의 인터넷망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고, 우산 운동의 발기인 세 명과 학생연합회도 30만 명의 시위대를 조직할 호소력과 의지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시위자들이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제각기 자기 생각대로 행동했습니다.

이 틈을 타고 극우파가 운동에 개입해 운동 발기인들의 대표성에 도전하는 한편, 맹목적으로 경찰을 타격하는 과격 행동도 고무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를 점거하는 것이 점점 시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발기인들은 극우파의 비난을 받을까 봐 우려해 길을 빨리 막지 못했고 결국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중국 송환 반대 시위도 대중행동 내부의 쟁점을 처리할 메커니즘을 찾지 못했지만, 운동의 목표가 비교적 단일했고(송환법 철회), 입법회를 포위한 시위자들이 전체적으로는 무모한 타격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찰이 시위대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면서 결국 정부가 잠시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의 포위 행동은 우산 운동의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습니다. 즉 정부 기구를 포위하되 무모하게 타격 하지는 않고, 전략적으로 철수하면서도 명백히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경찰을 타격하는] “용맹하게 싸우자”는 전술은 더는 이전처럼 칭송받지 못했고, 이제 시위자들은 “영리하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나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 같은 인사들이 송환법 반대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서방 지배자들의 이런 태도를 시위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반면에 중국은 이 시위를 2014년 우산 운동 때처럼 서방이 부추긴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중국공산당 정부는 홍콩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고, 권위주의적 통치의 온갖 추악한 면모를 보여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홍콩 시민들은 중국공산당의 전횡을 혐오하고, 중국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서방 지도자들이 홍콩을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다소간 품고 있습니다. 6월 26일에 시위대는 G20 정상회의가 곧 개최될 시점에 집회를 열고 국제사회에 ‘홍콩에 자유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중국에 대한 압박에 의존하는 것으로 바뀌어, ‘중국 송환 반대’ 운동이 강대국들의 장기말로 이용되다가 최종적으로는 강대국 사이의 물밑 협상에 의해 희생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홍콩의 대중 운동을 묵살하고 중국 대륙과 홍콩 시민들을 분열시키기에도 용이합니다.

외국의 선동?

홍콩은 국제화된 도시이자 중국의 특별자치구로서 외국의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 세력이 홍콩의 수백만 시민들을 선동해 몇 주 동안 거리 시위를 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 송환 반대 운동은 자생적인 것이고 [미국민주주의기금(NED)한테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알려진] 민주파 정당이 소집하거나 조직한 것이 아닙니다.

송환법 추진 중단은 대중 투쟁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정장관 캐리 람은 법안 철회와 사퇴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송환법 반대 운동의 전망은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비록 캐리 람이 법안을 철회하지 않고 잠시 보류했지만, 저는 그의 임기 중 수정 법안을 다시 제출할 기회가 매우 적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의 행동이 이미 부분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투쟁이 더 나아가 캐리 람이 물러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 송환 반대 운동이 인터넷 동원에 기반하며, 탈중심적이고 무조직적인 운동 양상을 보인다며 칭송합니다.

물론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인 사람들 중에는 조직 노동자들의 역량을 동원하고 정치적 파업을 실행하며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6월 17일 노동자 파업과 학생의 휴업 호소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이것이 하나의 의제가 되면서 정치적 파업의 가능성과 의미가 이미 공공 토론의 장에 올라와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운동이 더 많은 성과를 내려면, 조직 없는 운동 패러다임을 빨리 바꿔야 하고 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콩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 운동 속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그리고 무엇이 핵심 과제라고 생각하나요?

현재 시민들의 주요 요구는 송환법 (잠정 연기가 아니라) 철회, 경찰 폭력 조사, 시위자 석방, 폭동이라는 규정 철회, 캐리 람 사퇴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 요구들을 모두 지지하며 대중과 함께 이를 쟁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홍콩에서 진정한 민주적 자치를 실행해야 활로를 열 수 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보통선거로 선출되고 전권을 보유한 홍콩 시민들의 의회를 개최하고 이를 통해 일련의 정치 및 사회경제 개혁을 실시하자고 주장합니다.

이와 동시에 [홍콩 시민들이] 중국 대륙의 노동자 대중과 함께 투쟁해, 중국 전역의 노동자들이 민주를 쟁취하고 일당제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것도 필요합니다.

홍콩의 많은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중국 대륙의 운동들을 지원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홍콩 시위가 대륙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1990년대 이래로 홍콩의 활동가들은 중국 대륙, 특히 남부 지역의 노동자, 인권, 여성, 성소수자, 환경, 권리 보호 법률 등의 영역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형성에 일정한 구실을 해 왔습니다.

홍콩은 남중국에 위치한 고도로 발전한 대도시로서 일정한 시민적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특수한 환경 덕분에 홍콩은 사회운동 지식과 이와 관련한 외국 문헌을 전파하고, 중국과 홍콩 두 지역에서 활약하는 지식인들의 사상적 교류를 촉진하며, 중국 대륙의 사회적 항의를 지원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일정한 우위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대륙에서는 발표할 수 없는 것을 홍콩 사람들을 통해 집필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해 홍콩에서나 출판될 수 있는 서적이나 소책자들이 인편으로나 인터넷망을 통해 대륙에 전파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벌어진 자스커지 노동자 투쟁에 대한 후속 논의 같은 운동 의제들이 홍콩 내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이 홍콩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함에 따라 홍콩이 지닌 이런 우위가 약화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심화되고 중국 사회의 모순이 격화하면서 홍콩 당국은 홍콩의 사회운동이 중국 대륙에 미칠 영향을 더욱 경계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 2000년 이후 태어난 홍콩 신세대는 중국 대륙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 대륙의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전 세대만큼 크지 않습니다.

홍콩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중국에서 벌어지는 투쟁(예를 들면 자스커지 노동자 투쟁)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나요?

홍콩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역량이 취약하고 지리적 한계 때문에 중국 대륙의 사회운동을 간접적으로만 지원하고 있습니다. 집회와 강좌 개최, 인터넷 서명 발의 등이 그런 사례들입니다. 2011년의 우칸촌 주민들의 자치투쟁, 2013년 〈남방주보〉 사건 또는 2018년 마오쩌둥주의 8인청년 독서회 사건 등에서 우리들은 인터넷상으로 서명 활동을 했습니다.

홍콩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중국 대륙의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노동자들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을 지원하며, 중국공산당 당국이 자주적인 노동조합과 노동자 조직 및 노동자 투쟁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 대륙의 일부 마오쩌둥파들이 노동자 투쟁에 개입할 때 보여 준 모험주의적이고 종파주의적 행동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스커지 사건에서 비교적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노동자들과 좌파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까요?

우리는 동아시아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진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쟁취해야 합니다. 미국 제국주의를 반대해야 하고 또한 동아시아 지역의 제국주의에도 반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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