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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대표 선거 :
심상정 후보의 현실주의는 과연 현실적인가

7월 2일 TV 방송 토론 중인 심상정 후보와 양경규 후보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양경규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당의 전략과 노선을 놓고 뜨겁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심상정 후보는 현실주의를 강조하며 양경규 후보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심 후보는 두 측면에서 양 후보를 비판했다. (1) 양경규 후보와 자신의 차이는 양적 차이인데, 양 후보가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공연스레 사회주의를 말한다. (2) 양 후보의 정책은 급진적이어서 현실 가능성이 없다.

다소 상충돼 보이는 두 주장을 종합하면, 심상정 후보는 (질적 차이가 아니라) 양적 차이에도 급진성을 느낄 만큼 온건하다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가 주장하는 ‘현실주의’는 당장 실현 가능한 개혁만을 요구해야 한다는 노선이다. 현실 가능성을 판단하는 주된 기준은 국회 내 세력 관계이다. 국회에서 입법 협상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 후보는 국회 밖 투쟁(특히 노동자 투쟁)이 개혁 획득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거나 심지어 비판한다(본지 291호 ‘심상정 후보의 “민주노총 투쟁 방법” 비판 유감’ 참조).

물론 현재 정의당 당원들 다수의 정치 성향은 심상정 후보의 현실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의당의 선거 규칙도 심상정 후보에게 유리한 듯하다. 정의당은 투표 마지막 날 ARS(자동응답시스템) 투표를 한다. 여론 조사와 비슷한 것으로, 당 활동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대다수 당원들은 자신이 아는 후보에게 투표할 공산이 크다. 인지도가 높은 심 후보에 이로운 규칙이다.

그럼에도 정의당 내부에서는 의미심장한 새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박근혜 퇴진 촛불 항쟁 이후 새롭게 좌경화한 청년들이 심상정 후보의 현실주의에 비판적이고 양경규 후보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정의당 지도부의 온건 개혁 노선과 의회 중심 활동에 불만족을 느끼다 양경규 후보에게서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발견한 듯하다.

현실주의의 난점

심상정 후보는 TV 토론에서 한국이 북유럽 복지의 절반 수준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명 북유럽에 견줘 한국의 복지 수준은 형편없다. 그러나 그 나라들에서도 사반세기 동안 복지 제도가 심각하게 공격받아 왔음도 봐야 한다. 양경규 후보는 바로 그 때문에 그 나라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은 ‘노동계급 삶의 조건을 어떻게 개선하거나 적어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국민건강보험을 예로 들어 보자. 건강보험은 지난 시기 성취한 개혁 중 좋은 사례다. 건강보험이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은 19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파업 투쟁을 통해서다. 건강보험제도는 특히 노동자 대중에게 이로웠다. 완전 무상 의료까지 나아가지 못했어도, 사용자가 노동자 건강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등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개혁이었다.

‘개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우파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 후퇴나 탄력근로제 도입 등 노동자들의 조건(과 과거 성과물)을 공격하는 것을 두고 ‘개혁’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정치의 용어로는 그것은 결코 개혁이 아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진정한 개혁을 무(無)로 돌리는 반동일 뿐이다.

실질적 의미의 개혁은 언제나 투쟁의 산물이다. 그 투쟁은 흔히 계급투쟁이다. 그리고 일상적 시기에 이 투쟁들은 구체적이고 제한된 목표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 목표를 위한 투쟁이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심상정 후보는 “원내정당화 전략”, “진보의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운동과 정치를 예리하게 분리시켜 왔다. 대중 운동(무엇보다 노동자 투쟁)이 떠오르면서 정의당이 창당 5년도 안 돼 (대선) 200만 표를 득표하는 대중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의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을 들어 보자. 처음에 지배계급은 모두 박근혜 퇴진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문재인도 처음에는 박근혜 퇴진에 반대했다. 문재인은 퇴진 촛불이 200만 명을 넘어선 12월 초순에야 입장을 바꿨다. 마침내 지배계급의 다수는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지키려 하기보다 양보가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다른 수단(헌법 절차에 따른 조기 대선 실시)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전술을 변경한 것이다.

박근혜 퇴진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대한 결과를 충족시켜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에 유리하게 계급 세력균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박근혜 퇴진 촛불이 이룬 진정한 성과였다. 심상정 후보가 2017년 5월 대선에서 200만 표를 얻은 것은 바로 대중 투쟁 덕분이었던 것이다.

개혁을 위한 투쟁

혁명가들이 현실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개혁을 위한 투쟁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현실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개혁을 위한 투쟁에 임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의식과 조직을 (비록 불균등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개혁 투쟁을 통해서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결정적으로 세 가지 점을 간과함으로써 개혁 제공에 대부분 실패했다. 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인적으로 지배계급의 이익 수호에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의 구실, 사회 구조나 인간 관계를 끊임없이 헤집어 놓는 자본가들의 이윤 축적, 인류의 미래 생존을 위협하는 제국주의.

그래서 괜찮은 개혁을 성취하려면 노동자들은 국내적·국제적 수준에서 권력자와 사용자 계급의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다국적기업 등은 결코 개혁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괴물이다. 그것은 해체돼야 한다.

그래서 개혁 성취는 자주 매우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투쟁의 산물이었다. 하물며 장기적인 경제 위기 시대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현대화’(현실주의 노선의 또 다른 이름)라는 이름으로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현실에 순응한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그 결과, 낮아진 생활수준, 더 나빠진 사회 서비스, 더 가혹한 착취와 빈부격차를 노동계급에 강요하는 쪽으로 후퇴했다. 제국주의에 대한 타협과 순응도 빠뜨릴 수 없다.

정의당은 아직 집권하지 못한 군소 야당이어서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집권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급진적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적 경험은 심상정 후보의 현실주의가 실질적 개혁을 성취할 노선이 되지 못할 것임을 미리 보여 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며칠 전 심 후보의 현실주의 노선은 민주당에게 배신당했다.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손잡기 위해 심 후보를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에서 해고한 것이다.

급진적이고 국제적인 전망에 기반해 노동계급을 기층에서 동원하는 것만이 개혁을 위한 투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