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약속 배신에 항의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워 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그 일부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운 데 이어 올해 3월부터 3개 산별연맹 공동투쟁을 벌여 왔다. 이런 투쟁의 압력 때문에 교육부는 국립대병원을 순회하며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어떤 강제 조처도 하지 않았다. 사실 정부 가이드라인 자체에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보니 강제할 명분이 약할 수밖에 없다. 다른 많은 공공기관에서도 자회사 등 눈가리고 아웅하기 식 ‘전환’이 이뤄진 이유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국립대병원 사용자들이 더 많은 예산 등 부담을 떠안으려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꼼짝 않는 국립대병원 사측과 정부에 맞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파업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보여 준 모범을 따르려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국립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비정규직과 공동파업에 나선다면 그 사회적 여파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6월 26일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2차 공동파업 결의대회’ ⓒ조승진

한편, 부산대치과병원 노사가 6월 21일 파견용역직 정규직화 합의안에 서명했다.

합의 내용을 보면 파견용역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되, 그 조건은 지난해 9월 보건의료노조가 정부와 합의한 ‘공공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이하 표준임금체계)을 적용하기로 했다.

청소, 보안·안내 노동자들을 ‘병원서비스직’이라는 새로운 직군으로 편성하고 기본급은 최저임금으로 한다. 기존 경력은 인정하지 않고 직접고용 시점부터 호봉을 인정한다. 다만 기존 임금보다 저하되지는 않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한다 등.

이 합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9명으로 전체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노동자 규모(5000여 명)에 비해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국립대병원 공동투쟁에서 개별 병원이 따로 합의해 투쟁 대열에서 이탈하도록 방치한 것은 좋지 않다.

투쟁의 최종 결과를 병원별 불균등성에 내맡기면, 일부 병원은 노동자들에게 나쁜 조건을 강요하려 할 것이다. 또, 일부 병원이 표준임금체계를 합의하면, 다른 병원들도 노동자들에게 표준임금체계를 통한 저임금 고착화를 강요하려 할 것이다.

전체 연대 전선을 끝까지 유지해야 노동자들이 불가피하지 않은 후퇴를 강요받지 않고, 균등하고 고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표준임금체계

보건의료노조가 합의한 표준임금체계 자체도 문제다. 부산대치과병원 합의에서도 보듯 이 표준임금체계는 청소·경비·주차·콜센터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책정했다. 이에 따르면 최고 단계에 도달해도 고작 최저임금의 1.17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정규직화는 고사하고 ‘저임금 고착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식당 노동자는 최고 단계 기본급이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안)보다도 13만 원가량 더 낮다. 또, 최하위 직무가 정부의 표준임금체계보다 더 폭넓게 정해져, 주차와 콜센터 노동자도 포함된다. 의료연대본부와 민주일반연맹 등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소속된 다른 노동조합들이 당시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이 합의에 격렬히 반대한 이유다.

이후 이어진 해당 노동조합들의 워크숍과 토론회 등에서 보건의료노조 측도 문제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문제 제기도 영향을 끼쳤다. 이런 문제 제기는 3개 산별연맹·노조 공동투쟁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일단 ‘직접고용’을 쟁취한 뒤에 조건을 개선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일단 나쁜 조건을 받아들인 뒤에 이를 개선하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지금도 자회사 등 ‘무늬만 정규직화’ 된 뒤 개선이 없거나 심지어 나빠진 조건을 회복하려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점에서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부산대치과병원 합의를 단순히 치켜세운 것은 문제다. 최준식 위원장은 지난해 표준임금체계 합의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모호한 입장을 취해 의료연대본부 등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항의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당시 논쟁은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는데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 바람보다 노동조합 상층 기구들의 질서를 중시한 절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3개 산별연맹의 공동투쟁이 시작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3개 산별연맹 지도자들은 공동투쟁의 목표를 ‘직접고용’으로 한정했다. 그러다 보니 보건의료노조 지도자들은 여전히 표준임금체계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협상하고,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를 방치함으로써 자칫 연대가 깨질 위험을 안은 채 싸워 온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소속 국립대병원들이 표준임금체계에 합의할 경우, 공공운수노조와 민주일반연맹 내에서도 표준임금체계 혹은 그것과 같지는 않더라도 일정한 조건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경북대병원에서는 기존에 폐지됐던 직급(8급)을 부활시켜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바람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은 우호적 협력 속에서도 꼭 필요한 논쟁을 회피해선 안 된다.


기사 내용 중 일부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있어 해당 부분을 삭제합니다. 2019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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