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대검찰청 ‘공안부’를 ‘공공수사부’로 바꾸는 등 공안 부서에 관한 명칭과 개념을 바꾼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공안부는 학원, 사회·종교 등 단체, 노동 관련 공안 사건을 전담해 악명이 높았다. 

정부가 16일에 입법예고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의 주요 내용은 “학원 관련 사건, 사회·종교 등 단체 관련 공안 사건”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앞으로 ‘공안’ 개념을 공공 안전에 직접적 위협을 주는 것으로 한정하며 이에 따라 공안 수사에 관한 기존 명칭들을 “공공 수사”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안 업무에서 검찰 내 공안 정세 조사와 분석 업무 등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 조처들은 출범 후 논의돼 온 문재인 표 ‘검찰 개혁’의 일부다. 권력기관에 여전한 과거 권위주의적 국가의 유산을 점차 줄여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권력기관들은 혁명적 좌파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운동, 학생 운동, 좌파적 학술 연구, 진보 야당 등 다양한 저항 운동들을 모두 체제를 위협하는 ‘공안 사건’으로 취급해 왔다. 검찰만이 아니라 경찰,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등 ‘공안 수사 기관’들은 공식·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이루며 대중의 저항을 옥죄어 왔다.(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과 헌법재판소장으로 찰떡 궁합을 선보였던 황교안과 박한철이 대검 공안부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공안검사 대부 김기춘이 한몫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 수호

그러나 명칭을 바꾼다고 기구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도대체 몇 번이나 당명을 바꾼지도 모르는 민주당과 자한당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대부분의 문재인 식 ‘개혁’이 그렇듯 이번 조처가 억압의 완화나 우파의 세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대검찰청 ‘공안부 산하 공안 1~3과’는 ‘공공수사부 산하 공안수사지원과, 선거수사지원과, 노동수사지원과’로 바뀌었다. 백 번 양보해도 그저 단순히 형사 사건으로 취급해도 될 선거, 노동 사건이 여전히 명칭만 바뀐 공안부 소속이다.

통상적인 쟁의행위조차 유별난 탄압 대상이 되곤 하는 것에는 노동자 투쟁 자체를 ‘공안’ 수사의 대상으로 삼아 온 탓이 큰데 말이다. 최근 세종호텔노조가 아무런 물리력 행사도 없이 호텔 로비에서 잠시 농성하다 나온 일조차 정식 수사 대상이 된 것도 그 사례다. 그 점에서 공공수사부 명칭 변경은 대중이 바라는 민주 개혁 수준에 전혀 못 미치는 것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올해 1월 민주노총은 공안검찰 행태는 이름을 바꿔도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출처 민주노총

〈경향신문〉사설(7.17)은 “공안부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 사건을 타 부서로 넘길 경우 공안부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왔다”고 폭로했다.

이 사설은 이 반발의 본질을 공안검사들의 “밥그릇 지키기”에서 찾았지만, 실은 “공안부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 사건”이 더 눈에 띈다. 이에 따르면, 공안부는 정말로 이름만 바뀐 셈이다. 그 결과가 학생이나 사회 단체에 대한 수사가 빠진 반면, 노동 사건이 검찰의 공안 수사에 더 공공연한 “공공 수사” 대상으로 남은 것이다.

이런 ‘솔직한’ 변화는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와 자력 투쟁이 지배계급에게 훨씬 더 위협적이고 경계할 일이 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지배계급의 무장한 정치조직으로서 자본주의 국가의 일반적 본질 ― 노동계급의 저항에 맞서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것 ― 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난 50년간 압축 성장을 하며 선진 경제 문턱까지 성장했지만, 여전히 취약하고 모순이 크다. 가장 큰 모순은 한국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달랠 양보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반면, 노동계급 운동은 이제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1987년 이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이 순탄하지 않고 불안정을 겪어 온 이유이고, 한국의 사용자 계급이 노동 문제에서 각별히 표독스럽게 나오는 이유이다.

그래서 모순과 계급간 충돌이 반복돼 왔고, 노동계급이 변화를 추동해 왔다. 1997년, 2016년 경제 위기를 이유로 한 우파 정부의 반동 시도가 모두 노동법 개악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이 주도해 벌어진 대중 투쟁 속에서 패퇴한 것, 그때마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매번 민주당 정부가 개혁 기대와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않은 것 등은 기억해야 할 핵심적 사실들이다.(민주화의 동력, 변혁의 주체 등 좌파의 전략 문제에 시사적인 사실들)

노동 사건

가령, 김대중 정부의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전임 김영삼 정부 때보다 더 많고, 노무현 정부의 노동자 투쟁 구속자가 역대 정부 최다였다. 민주당 역시 한국 자본주의를 수호하려는 (목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정당으로서 실질적 양보를 할 처지가 못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공안’ 문제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이다. 바뀐 정부에서도 공안 공격은 이어져 왔다. 당국의 허가 속에서 무역 거래를 했던 사업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갑자기 구속됐다. 대검 공안부 명칭 변경을 준비하던 올해 초에도 검찰은 “민주노총은 암적 존재” 같은 문구를 노동자 구속영장에 포함시켰고, 급기야는 국회 앞에서 벌어진 사소한 충돌을 빌미 삼아 민주노총 위원장과 집행간부들을 구속했다.(정치적 부담 때문에 김명환 위원장은 금세 풀어줬지만 말이다.)

요컨대, 공안 수사에서 노동 사건이 핵심으로 남은 것은 노동계급의 저항을 경계하고 억누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인 것이다.(그 점에서 노동계급의 운동에 뿌리 내리려고 하는 좌파들도 여전히 감시와 수사 대상일 것이다.) 한편, 최근 경찰이 삼성의 무노조 공작에 함께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검찰은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공안 수사 명칭 변경은 대단한 개혁이 아니라 달라진 환경 조건에 맞게 명칭을 바꾼 것일 뿐이다.

검찰의 공안 정세 분석 기능을 없앤다는 점이 눈에 띄지만, 바뀐 공안 개념에서도 “대공” 수사가 여전히 포함됨을 봐야 한다. 국정원 개혁, 기무사의 명칭 변경(군사안보지원사령부) 등 문재인의 권력기관 ‘개혁’ 모두 “대공” 업무는 유지했다. 게다가 문재인 검찰 개혁이 수사권 일부를 경찰에게 넘겨주는 것임도 유념해야 한다. 즉, 공안 수사의 총량이 줄어들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문재인 식 ‘개혁’은 그 위선적 본질을 드러냈다. 촛불의 눈치를 보며 마치 대중의 기대에 부합하려는 듯한 용어들로 포장하지만, 민주당 정부가 우파 정당보다 더 효과적으로 노동계급 운동을 통제할 수 있음을 지배계급에게 입증하는 것이 그것이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