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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와티의 불안한 앞날

메가와티의 불안한 앞날

  강철구

 지난 7월 23일, 와히드는 메가와티와 군부와 옛 여당이었던 골카르 당과 함자 하즈의 연합개발당 그리고 아미엔 라이스의 국민수권당의 '신성동맹'에 의해 용도 폐기됐다.

 와히드의 저항은 쉽게 제압당했다. 군부는 와히드의 비상사태 선포를 거부하고 수천 명의 병력과 탱크로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이로써 와히드의 21개월 집권은 종말을 고했다. 이제 인도네시아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일은 메가와티에게 넘겨졌다.

와히드 탄핵의 배경

 인도네시아 경제는 1997~1998년에 폭풍처럼 강타했던 재앙적 붕괴로부터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지배 계급의 심각한 분열, 야체 등지에서의 독립 운동, 끊이지 않는 민족 갈등과 인종 분쟁, 학생과 빈민과 노동 계급의 저항이 인도네시아를 더한층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회를 몰아치고 있는 격동의 소용돌이는 지난 3년 동안 3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와히드는 변화에 대한 열망에 힘입어 집권할 수 있었다. IMF는 그가 시장 개혁을 철저히 단행하기를 희망했다. 반면, 노동 계급은 생활 수준의 향상과 민주주의를 원했다.

 그러나, 작년 말 경제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고, 지배 계급의 다양한 분파들 사이의 아귀다툼도 더욱 심해졌다. IMF는 작년 말 이래로 4억 달러에 이르는 대부금을 인도네시아로부터 회수해 가는 것으로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 위기에 대응했다. 세계은행과 일본 은행들도 IMF의 뒤를 따랐다. 자본 유출은 와히드의 퇴진을 촉구하기 위한 시도였다.

 IMF와 선진국 정부들은 와히드가 외국 투자가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시장개혁을 단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확신했다. 해외 자본의 급속한 유출로 루피아 화의 가치는 폭락했고, 정부가 1천4백50억 달러의 외채를 갚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올 11월쯤에는 공무원들에게 지급할 돈조차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초기에 와히드에게 기대를 걸었던 민중의 열망은 쓰디쓴 냉소로 바뀌었다. 대다수의 노동자와 빈민 들이 극심한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와히드의 부패 추문은 거대한 대중적 분노를 자아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정부와 맞서 싸웠다. 올 메이 데이 때 부두 폐쇄에 항의해 8천 명의 항운 노동자들이 수도 자카르타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소수 민족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와히드와 노동자·민중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흉칙한 독재자 수하르토를 타도했던 1998년 5월 민주 혁명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지배자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인도네시아 지배 계급은 와히드를 희생양 삼고 메가와티를 내세우는 것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경제 위기와 정치 불안정의 책임은 와히드의 부패와 무능력 탓으로 돌려졌다. 분노의 표적은 자본주의 체제나 지배 계급 전체가 아니라 와히드 개인에게 맞춰지도록 부추겨졌다. 와히드를 지지했던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 때문에 와히드에게 등을 돌렸다. 와히드에 대한 탄핵안은 별 저항 없이 신속하게 통과됐다.

메가와티의 계급 기반

 침몰해 가는 인도네시아 호의 신임 선장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다. 인도네시아 지배자들과 IMF·서방 열강은 일단 메가와티를 신임했다.

 국제 자본가들은 수하르토 시절에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부패 사슬 때문에 시장 개혁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국제투명성기구(CPI) 조사에서 매년 방글라데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로 지목돼 왔다. 지난해에 세계은행 총재인 제임스 울펀슨은 "세계은행이 인도네시아에 제공한 차관의 10∼40 퍼센트가 부패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메가와티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누구라도 적발될 경우 관용과 용서는 생각도, 기대도 말라"며 취임 일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메가와티는 "적과의 동침"을 통해 대통령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메가와티가 기꺼이 손을 잡았던 군대와 경찰, 그리고 수하르토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대재벌들은 여전히 인도네시아에서 특권적 지위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IMF와 인도네시아 지배자들은 메가와티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게 떠넘기는 데 적임자라고 여겼다.

 군부와 골카르 당(군부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은 학생과 빈민과 노동 계급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있어 당분간 정치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지배자들은 지금으로서는 권위주의적 방식에만 의존하다가는 혁명을 더욱 전진시킬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1998년 11월 수하르토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하비비가 이런 도박을 시도하다 큰 저항에 직면해 후퇴해야만 했다. 지배 계급은 학생과 빈민과 노동계급의 저항 때문에 자유주의 야당 인사들을 끌어들여 지배 방식의 부분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메가와티는 체제의 안전 밸브 구실을 부여받은 셈이다.

 메가와티는 자신을 지지해 준 옛 지배 계급과 싸울 엄두도 못 낼 뿐 아니라 싸울 이유도 없다.

 인도네시아는 공업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8천6백만 명의 노동계급이 존재하는 공업화된 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래서 메가와티와 아미엔 라이스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집권당이 되려고 할 뿐 수하르토가 만들어 놓은 인도네시아 경제 기초와 국가 기구에 타격을 입힐 이유가 없다. 메가와티가 수하르토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 또 그녀의 아버지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이 1965년 수하르토 쿠테타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보냈다는 사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끄는 민주투쟁당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이다.

메가와티가 직면할 딜레마

 그러므로 메가와티의 앞날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아시아의 용"들 중에서도 가장 망가진 경제를 떠맡았다. 외국인 투자의 감소와 국내 자본가들의 만성적인 악성 부채, 신용 붕괴와 국내 소비의 위축은 "추락한 용"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또, 세계 경제의 불황은 수출 주도 경제인 인도네시아 자본주의의 회복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메가와티의 운신의 폭은 매우 제약될 수밖에 없다.

 메가와티는 혁명 덕택에 권좌에 오를 수 있었지만 혁명을 분쇄해야만 하는 처지이고, 자신에 대한 민중의 환상과 지지 덕택에 지배 계급 내에서 대안으로 간택됐지만 지지자들을 짓밟아야 하는 상황이다.

 메가와티는 IMF의 압력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부르주아 경쟁자들, 시장 개혁에 저항하고자 하는 자본가 분파들의 저항,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시장 경제의 신봉자인 메가와티는 석유 가격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축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쥐어짜고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깎아내리는 등의 조처를 실행하려 한다.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대규모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석유 가격 폭등은 1998년 5월 혁명을 촉발시킨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IMF식 엉터리 해결책이 세계 곳곳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시장에 대한 찬미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계급은 아직까지는 정치적 미성숙으로 말미암아 메가와티에게 지지를 보내는 듯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지지는 그리 열광적이지 않아 보인다. 메가와티의 취임식은 환호성과 갈채 대신에 불안함과 의심으로 채워졌다. 각 정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새로운 내각의 인선 발표가 늦쳐졌다. 메가와티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라도 하듯 내각은 다양한 분파의 잡탕으로 구성됐다.

 메가와티는 변화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압력과 열망이 부담스러운 듯 극도로 말을 삼갔다. 진정한 변화와 개혁의 열망이 클수록 엘리트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 좌절이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투쟁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마치 알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메가와티는 노동 계급에게 양보할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점점 힘을 자각하고 있는 노동 계급의 도전에 직면해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설이게도, 메가와티가 수하르토를 닮아갈수록 그녀의 사용 가치는 적어질 것이다. 인도네시아 지배자들은 독재자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자유주의자보다는 사나운 독재자가 사태 해결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메가와티는 36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처했던 운명처럼 인도네시아 군대에 의한 무력 쿠테타에 직면할 수 있다. 전임자인 와히드처럼 지배 계급에 의해 토사구팽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계급의 저항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한 채 메가와티는 어두운 터널길을 힘겹게 지나가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대안

 현재 인도네시아의 사회 변혁 과정에서 지배 계급의 특정 분파에 반대해 지배 계급의 다른 분파인 '개혁파'의 정치적 지도를 노동 계급이 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메가와티는 자신의 계급 기반 때문에 노동 계급과 어떠한 이해관계도 공유할 수 없다. 메가와티는 노동 계급의 적이다.

 안타깝게도, 인도네시아 최대 좌파 세력인 PRD (민중민주당)는 잘못된 단계 혁명 이론에 따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를 추종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는 군대와 옛 정치인들을 추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좌파들은 노동 계급이 열쇠를 쥐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정부패 척결, 진정한 민주주의, 노동 계급과 빈민의 생활 수준 향상 등은 지배 계급 전체에 맞선 노동 계급의 독립적 행동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어떠한 진지한 개혁이나 역사적 진보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임무가 될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소수 민족의 독립 운동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노동 계급의 단결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인도네시아 노동 계급이 야체 등지에서의 독립 운동에 분명한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면 지배자들의 분리 통치 때문에 운동이 약화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선진 노동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저항 운동을 고무하고 생활상의 요구와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노동 계급이 정치 권력을 장악해 사회 전반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