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독자편지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과 그 가족은 보수적일까?

내게는 무슬림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그중 한 명은 알제리인 여성인데, 이 친구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공유하고 싶다.

알제리에서 히잡은 강제가 아니며, 실제로 여성의 3~4할 정도는 히잡을 쓰지 않는다. 알제리 사진을 보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친구는 히잡을 꼭 쓰고 다니며, 해수욕장에 갈 때는 부르키니를 입는다.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인 하루 다섯 번의 기도도 절대 빼먹지 않는 독실한 신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보수적 가치관을 지닌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친구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대학 공부가 마무리돼가면서 몇 달 전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그 후 알제리에서 대중 항쟁이 일어나 대학이 무기한 휴교 중이기에 현재는 일만 하고 있다. 제약 관련 연구하는 일인데, 친구는 그 일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도시로 인사발령을 받게 됐다. 가족들이 전부 이사를 해야 했다. 친구는 가족들과 떨어지기 싫어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친구에게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건 중요한 일이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 혼자서만 그 도시에 머물러서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걸 듣고는 정말 너 혼자 사는 것이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 한국에서도 젊은 여성 혼자서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것을 용납 못 하는 가정이 종종 있는데, 이슬람권에서 그게 가능할까 하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다행히도 내 편견 섞인 질문을 이해 못 한 듯했고, 앞으로는 혼자 살게 될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최근에는 더 놀라운 일도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결혼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 친구의 아들, 그러니까 ‘엄친아’와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 ‘엄친아’는 독일에 사는 엔지니어라고 했고, 당연히 돈도 많이 버는 듯했다. 그래서 친구 어머니는 친구가 좋은 남자와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데, 친구는 결혼하기 싫다고 했다.

사랑 없는 중매 결혼은 싫은가보다 하고 위로(?)를 했더니, 그게 아니라 ‘엄친아’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여성이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꼭 일을 해야겠고, 따라서 그런 가치관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말은 이후에 있었다. 친구가 자신은 조만간 튀니지로 친구들과 여행을 갈 건데, 결혼을 안 하겠다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터라 엄마가 여행을 반대하며 붙잡고 늘어질 테니, 일단 약혼을 해놓겠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약혼하면 무를 수가 없는데 어쩌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은 이미 다른 약혼을 한 번 무른 적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약혼을 두 번씩이나 무르고 나면 엄마도 자신의 가치관을 알고 포기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서 덧붙인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뭐든지 할 수 있어(I can do anything I want).” 페미니스트들의 ‘소녀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라는 구호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그리고서 친구는 아버지는 이 다툼에서 자기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길 바라시며 응원해주고 계시니, 어머니 뜻대로 만은 못 할 거라는 것이다.

친구의 자취와 결혼 두 사례를 보면서 내 편견이 많이 깨졌다. 이슬람에 여성 차별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엄친아’처럼 여성이 집 안에만 있길 바라는 무슬림 남성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건 무슬림 남성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친구의 아버지처럼 여성의 선택을 응원하는 무슬림 남성 또한 있다.

무엇보다 히잡을 쓴 여성이라고 해서 전통을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친구의 사례를 들으면서 최일붕 씨가 프랑스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쓴 글이 생각났다.

“필자가 1994년 말쯤 읽은 국내 일간신문은 프랑스 〈리베라시옹〉 신문의 기사를 인용했는데, 그 기사는 프랑스 일부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것이었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라고 해서 전통을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오히려 히잡 착용을 하지 않는 여성보다 진보적인 경우도 많았다. 즉, 부모가 결혼 상대를 정해 주는 것을 거부한다든지, 가정 바깥에서 직장을 구한다든지, 권리의 불평등을 성토한다든지 등의 태도를 보였다.” (https://ws.or.kr/article/17336)

친구의 사례는 정말이지 이를 잘 보여 주는 경우가 아닌가! 히잡을 늘 착용하는 여성이지만, 여러 면에서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다.

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이슬람 혐오로부터 무슬림들을 방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겠지만, 나처럼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체제가 강요하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사례가 편견을 깨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