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좌파 일부를 포함해 흔히들 일본의 경제 보복을 “경제 침략”이라고 규정한다.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 경제에 타격을 가하고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 흔들기(내정간섭)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저지하는 것이 아베 정권의 진정한 속셈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런가?

많은 한국인들이 아베 정부의 뻔뻔스런 과거사 부정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식민 지배의 기억이 대중 의식 속에 살아 있어서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를 현재 아시아의 긴장과 갈등이라는 맥락 속에 놓고 이해해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역사 해석이 아니라, 과거 전쟁범죄를 부정하면서 현재 일본이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역사적 변화를 간과하면서 현재를 단순히 과거(“경제 침략”이나 민족 억압)와 똑같이 보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변화를 깨닫지 못하면 한국 지배계급(또는 그 한 분파)이 제국주의에 맞설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어리석은 기대를 부추긴다. 변화를 직시해, 현재 아시아의 긴장과 갈등이라는 맥락 속에서 한국 국가가 하는 구실을 포착해야 한다.

둘째, 한일 갈등을 아시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른)라는 더 큰 틀 속에서 조망하면 단편만 보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시야를 한반도 주변에 가두면 세계 체제로서의 제국주의와 그 현 국면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결과 한반도를 둘러싼 사건들의 함의도 알기 어렵다.

과거사 문제와 현 제국주의 질서

그러면, 과거 전쟁범죄를 부정하면서 현재 아베 정부가 벌이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일본의 위상과 개입력을 높이고자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아베는 평화헌법 개정으로 이 길을 더 확고히 다지려 한다.

일본이 정면으로 겨누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아시아·태평양은 복잡하고 모순이 큰 지역이다. 중국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일본·한국을 비롯한 지역 주요국들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가 더 밀접해짐과 동시에, 정치·군사적 긴장과 갈등도 심각하게 증대했다.

이 정치·군사적 긴장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비롯한다. 미국의 전략은 중국의 경쟁국들을 포섭해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인도를 동맹의 주축으로 삼고 그 하위에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묶어 두고 싶어 한다.

아베는 총리 취임 얼마 후인 2013년,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겠다며 “일본의 귀환”을 선언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을 본격화한 지 1년여 만이었다. 그 얼마 전 미국은 일본 하토야마 총리를 굴복시켰다. 하토야마는 “탈미입아”(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중국을 중시하겠다)를 선언하고 주일미군의 전략적 요충지인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뒤 일본은 아시아에서 저돌적인 정치·군사적 조처를 마다하지 않는 세력 과시를 해 왔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적대는 일본이 과거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아서라기보다, 미국과 동맹해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과거사와 현재 제국주의 질서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후자를 위해 전자가 이용(부정, 왜곡, 타협 등)되는 것이지, 과거사 때문에 현재의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니다. 과거사는 중국에게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을 결속시키기에 유리한 쟁점인 한편, 일본에게는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 포위 전략에 끌어들이는 데에 걸림돌이다.

그렇잖아도 심각한 이 지역의 복잡성과 모순은 2008년 이후의 장기 경제 침체와 트럼프의 등장으로 한층 증폭됐다. 특히, 중·미 무역전쟁은 이 지역의 기존 생산분업 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국제 무대에 만들어 낸 틈을 경쟁국들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메우려고 달려들고 있다.

그럼에도, 특정 방향 없이 뒤엉켜 자란 나무만 보지 않고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새처럼) 전체 숲을 보면 아시아 긴장 증대의 핵심을 짚을 수 있다. 그것은 부상하는 중국과 그것을 저지하고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경쟁이다.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는 미국의 전략에서 일본이 미국의 핵심 동맹이고 한국은 그 하위 파트너 구실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한반도 주변에 국한된 시야, 핵심을 놓친다

진보·좌파의 많은 사람들은 최근의 한일 갈등을 이런 맥락으로부터 떼어 내어 이른바 한반도 정세 변화를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은 평화로 향하는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배제돼(“패싱”) 존재감이 약화되고 불안해진 일본이 제 위상을 확인시키고자 벌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는 북미대화(와 그 지렛대로 여겨지는 북한 핵무기)에 대한 착각, 한국 정부의 주도력에 대한 착각, 미국과 일본의 균열(세계 체제의 다극화 정도)에 대한 과장 등 여러 혼란이 반영돼 있다. 트럼프 등장 이후의 불확실성은 이런 혼란에 일조했을 법하다.

무엇보다 이런 견해는 시야가 한반도로 국한된 탓에 그 바깥에서 벌어지(고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핵심을 놓친다는 문제점이 있다. 제국주의를 세계적 체제로 보지 않고, 한반도와 특정 강대국의 관계 문제로 협소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미국은 일본을 “패싱”하고 있지 않다. 올해 6월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거기서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시대에도 미국의 “아시아 중시”가 계속될 것임을 보여 준 이 보고서는 중국의 경제·군사적 급부상이 21세기를 규정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부상하는 중국이 이 지역 경제 질서와 안보를 흔들고 아시아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미일 동맹을 주춧돌 삼고 그것을 중심으로 인도·호주·한국·아세안 등 동맹국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중국에 맞서 지역 “평화와 번영”(즉,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이 보고서는 대만과의 파트너십 강화를 공식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얼마나 공세적인지 잘 보여 준다. 많은 분석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놓고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우려해 왔는데, 이런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이런 전체 그림을 보지 않은 채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가 지역 평화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양 착각하고 일본 “패싱”이라는 그릇된 인상에 기대어 한일 갈등을 보면, 반제국주의 운동의 핵심 쟁점과 대상을 놓치게 된다. 아시아의 긴장과 갈등을 부추기는 미일 동맹과 그에 협조해 온 한국이 문제인데, 마치 트럼프와 문재인은 한반도 평화 세력을 대표하고 이를 망치려는 일본 제국주의만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민중주의(진보 포퓰리즘) 전략의 노동개악 반대는 불충분하다

일본 제국주의 반대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한국 진보·좌파는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군사대국화에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정부를 일본에 맞서는 같은 편이라고 믿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진정한 진보·좌파라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그와 독립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물론 노동운동 안에는 문재인 정부가 한일 갈등을 명분으로 규제 완화와 노동시간 연장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비판은 완전히 옳다. 그러나 불충분하다. 정부의 노동정책만 문제이고 외교·안보정책은 이럭저럭 괜찮은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불충분한 태도로는 규제 완화와 노동시간 연장 반대도 효과적으로 하기 어렵다. 한일 갈등 문제를 놓고는 문재인 정부 비판을 삼가고 국민(민족)적 단결을 지지하면서 노동개악에만 반대한다면, 설득력과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민족)적 단결의 분위기 속에서는 정부가 노동자 희생 강요를 정당화하기 쉽다(IMF를 불러들인 경제 공황 때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았듯이). 정의당이 경제보복 대책 민관정협의회에 참여한 것이 안타까운 까닭이다. 비록 규제완화와 노동시간 연장 반대를 표명했지만 이는 그 안에서 군색하고 마이동풍일 뿐이다. 대국민 정치적 상징이라는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진보·좌파는 한일 갈등 문제를 놓고 포퓰리즘(민중주의)이 아닌 대안적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해결책이 설사 단기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를 못 낼지라도 말이다. 노동개악에만 반대한 채 한일 갈등 문제에서는 포퓰리즘 정치를 절반쯤 수용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폭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반제국주의 노선을 채택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지지하고 협조해 왔다. 미국의 전략이 아시아 긴장의 원인이자 일본 제국주의 발호의 발판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자유한국당만의 문제일까? 민주당 정부는 달랐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는데, 그 핵심은 주한미군이 한국 방위뿐 아니라 중국과의 분쟁에도 개입할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이다. 한국 영토를 대중국 발진 기지로 내준 셈이다. 그리고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대한 결정적 협조였다. 중국 봉쇄를 위한 전략적 기지라고 비판받는 제주 해군기지의 신설을 결정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도 다를 바 없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한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말기에 사드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큰소리 치더니, 집권 이후 바로 배치해 버렸다. 사드 반대 운동을 분열시키면서 미국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사드 배치는 미국의 오랜 염원으로, 한·미·일 3국의 MD(미사일방어) 구축 협력의 한 고리이다. MD가 중국 포위 전략의 핵심적 일부임은 전혀 비밀이 아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미·일 3국의 MD 연결을 위한 중요한 협정이다. 이 협정으로 한국과 일본의 군수지원과 정보교류가 원활해져야 한국과 일본의 미사일방어체계 연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재인은 박근혜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사드 배치로 완성해 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게 진지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반대를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정부 일각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론은, 그 중요성을 전제로 미국의 중재를 끌어내자는 지렛대론일 뿐이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균형”(미국과 중국 사이)을 말하면서도 실천은 늘 한미동맹에 충실했다. 그들에게 단호함, 확신, 자신감 부족이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결론이 문제였던 적은 없다. 말에 속지 말고 실천을 봐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반일 투사 행세 이면에서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계속되는 민주당 정부의 대일 협력

최근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도태평양전략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공세적 전략으로, 일본이 주축 구실을 한다.

그동안 이에 대한 지지 표명을 꺼렸던 문재인은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지 입장을 밝혔다. DMZ(비무장지대)에서 열린 깜짝 북미 정상회담에 의해 가려졌지만, 당시 미국 국무부는 트럼프의 한국 방문 성과로 “인도태평양전략 협력 심화”를 꼽았다. 한국 경제지 등 친기업주 언론들은 만시지탄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환영했다.

최근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탈퇴하고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인도태평양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INF조약 탈퇴가 중국을 겨냥해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미사일 배치 후보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것이 한 달 전 문재인의 인도태평양전략 협조 표명과 무관한 것일까?

만약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이 배치된다면 문재인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제주 해군기지, 사드 배치에 이어 아시아 불안정을 몇 곱절 끌어올린 주역이 될 것이다.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INF 조약 탈퇴로 “세계는 핵전쟁을 제어하는 장치를 잃게 됐다”고 논평했다. 아시아는 제어 장치를 잃은 핵무기 전장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도 응하려 한다. 미국의 이란 압박에 동참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003년에 시작한 이라크 전쟁(한국도 참전했다)에서 미국이 패배한 반면, 이란이 이 지역의 진정한 승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에 협조하는 것이자, 인도의 서해를 경유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미국과의 인도태평양 군사 협력에도 부드럽게 편입되는 길일 수 있다.

이처럼 최근의 지정학적 중요 쟁점들 — 인도태평양전략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 호르무즈 해협 파병 — 에서 한국 정부는 한결같이 일본과 행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다고?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억압받는 처지이기는커녕 일본 제국주의의 한 급 아래 협력자이다. 

강대국의 압박이 다 민족 억압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경제 보복은 강대국의 압박 아닌가? 그렇다. 지금 일본은 아시아로 뻗어 나아가는 데서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한국의 타협을 얻어 내려 한다. 아시아·태평양에 걸린 일본의 판돈이 큰 만큼 일본의 경제 보복은 강하고, 장기화될 수도 있다.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경제적·군사적 힘을 과시하고 사용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일상사다. 세계 자본주의는 위계적으로 이뤄진 살벌하고 냉혹한 체제이다. 가령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다른 강대국 지배계급들과 갈등을 빚는다. 단지 중국이나 러시아에게뿐이 아니다.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와 자신의 세계 전략을 수용하게 만들려고 전통적 동맹국들에게도 압박을 가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 설립 방해(1990년대 말),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프랑스와의 갈등(2000년대 초반), 일본 내 주일미군 기지 이전 철회 압박(2009년), 유럽 지배계급들과 다방면에서의 노골적인 갈등(최근) 등이 그런 사례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국가들이 미국의 종속국인 것은 아니다. 또, (중국과 달리) 경제적 갈등이 군사적 갈등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와 강대국 사이의 관계는 좀 더 복잡해 보일 수 있다. 외세의 압박에 대한 기억과 반감이 있어서다. 그러나 옛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일부가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자본 축적의 중심을 이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제국주의 질서 속의 틈새와 모순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유럽 강국의 대열에는 끼지 못하지만, 경제 규모(GDP 기준) 세계 12위, 군사력 세계 7위의 중간 규모 강국이기는 하다. 비록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대등하지는 않지만, 현재 한일 관계가 과거 식민지 종속 상태와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오늘날 한국 지배계급은 일본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제국주의에 협력자 구실을 한다. 그래서 그 질서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 또는 그 한 부분이 노동자·민중과 한편이 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기를 기대하는 것이 환상인 이유다.

마찬가지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일본의 경제 보복을 (식민지) “경제 침략”과 동일시하는 문제점을 보여 준다. 한국민이 단결해 일본산 불매로 대응함으로써 일본 경제에 타격을 가하고(그러면 일본 노동자들도 피해를 볼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특히 그 생산물)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공상적이고 정치적으로 퇴보적이다.

생산이 국제 분업 구조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 일국적 경제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지배계급은 기껏해야 국제적·지역적 분업 구조의 일부를 재편하면서 그런 조정과 효율화에 따른 고통을 노동계급에 전가하려 할 수 있다.

이런 때 노동운동이 일본에 맞서 민족의 이익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보면, 고통 전가에 맞서 노동계급의 조건을 방어하기가 힘들 것이다. 민족주의(그리고 포퓰리즘) 열풍 속에서는 한편으로 국내 지배계급과의 협조(노동자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치자며), 다른 한편으로 일본 노동계급과의 반목이 조장되기 쉽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

이 점에서 민주노총(산하 노조)의 일부 지도부가 한일 갈등을 “경제 침략”으로 섣불리 규정하고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안타깝다. 노동운동이 조중동 등과 자한당만을 친일 적폐세력으로 규정해 반대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가고 사실상 협조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고 노동운동이 약화되기 쉽다.

문재인 정부가 한일 갈등 국면 속에서 민족주의·포퓰리즘 열풍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정세가 정부와 집권당에 유리하게 시나브로 기울어 왔다. 공식 정치 영역 내에서 여야 세력관계뿐 아니라, 정부와 노동운동 사이의 관계도 기류가 그랬다. 주로 노동운동이 포퓰리즘(민중주의)적으로 대응한 효과였다.

노동운동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자국 정부와 (일부)자본가들의 편을 들고 협조해선 안 된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민족주의·민중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을 해야 한다. 자국의 이익이 아니라 (국제)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협조하는 한국 정부에 반대하고, (경제 침략 규탄 불매 운동이 아니라) 아시아 노동자·민중의 공통의 이익인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반대, 호르무즈 해협 파병 반대, 일본 평화헌법 개정 반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에 실질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