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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가 기후변화로부터 지구와 인류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습을 근본에서 결정한다.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환경 정치를 계급 정치보다 부차적으로 취급한다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인간의 활동에 반응하고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연계를 인간의 필요에 종속시킨다는 비난도 받는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비난은 터무니없이 지나친 단순화[한 마르크스주의]를 전제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철학”의 핵심이다. 이 철학은 불변의 법칙이 자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본다.

엥겔스는 훨씬 더 정교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말할 때 너무 우쭐하지는 말자. 인간이 승리를 거둘 때마다 자연은 우리에게 복수한다. 매 승리는 물론 처음에 우리가 기대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만, 나중에는 그것과 다르고 예기치 않은 결과를 일으켜 처음에 얻은 성과를 무의미하게 만들 때가 많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후변화가 지구상 생명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절대 법칙이 아닌 역사적 과정이 사회를 결정한다고 보는 철학적·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인류와 지구의 관계를 이해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동시대인인 찰스 다윈의 저작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종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생각과 자신들이 인간 사회의 발전을 이해하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봤다.

변화

끊임없는 변화라는 사상은 다윈과 마르크스·엥겔스의 이론 체계의 핵심이다. 이는 자연을 고정된 것으로 여기는 보수적인 자연관과 대조적이다.

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자연을 인간과 별개로 존재하는 영원불변하고 때묻지 않은 것으로 본다.

자연은 인간이 즐기거나 이용하는 것이지 인간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이 실제로 맺는 관계는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 사회가 모순과 갈등으로 분열돼 있다고 봤다. 이런 모순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

예컨대 불모의 행성에서는 이윤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경쟁 체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화석연료를 퍼내고 태운다.

영국 거대 석유기업 BP가 화석연료 기반 사업을 없애면, 경쟁사들은 큰 득을 보고 BP는 궁지에 몰릴 것이다.

그래서 환경 파괴라는 죽음의 행진이 이어진다. 비슷한 모순을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을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세력으로 봤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그러자마자 그것을 빼앗긴다. 그래서 노동계급은 고유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의 물질대사와 생명 활동의 자연법칙이 규정한 물질대사 간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을 낸다고 주장했다.

즉, 자본주의가 촉발한 야만적인 사회적 과정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 그 자체와, 자연·인간 간의 상호작용을 모두 이윤 추구에 종속시킨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이윤의 원천이나 목가적 환상으로 축소한다.

기후변화가 일으킬 재앙을 막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윤 몰이는 더 많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아 그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자들과 지구를 유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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