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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숙명의 트라이앵글, 미국 -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 이후 외

《숙명의 트라이앵글, 미국 -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 이후

1998년 와이 협정 이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고 정착촌을 계속 건설하자 유엔 총회에서는 이스라엘에 정착촌 건설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반대 2표, 찬성 115표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에서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는 뻔하다.

거부주의

노암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매우 훌륭한 책이다. 촘스키는 이 책에서 시온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 침공 뒤의 발전 과정을 연대기순으로 요약하고 있다. 레바논 침공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매우 흥미진진하다. 레바논 침공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면 읽는 사람 자신이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촘스키는 1998년 개정판에서 1983년 이후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의 중동 사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필수적이고 유용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레바논 침공에 연루돼 있고, 레바논 침공과 더불어 미국의 재정·군사적 지원이 엄청나게 증대했다는 사실; 이스라엘의 야당인 노동당의 묵인; 이스라엘이 서안 지역을 확고히 지배하기 위해 PLO를 레바논에서 쫓아내려고 한 점; PLO가 베이루트를 떠나면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보호받을 것이라고 약속한 미국 정부의 거짓말; 레바논에서 아랍인 사상자나 부상자가 늘어남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그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져 갔던 베긴과 샤론에 대한 미국의 엄청난 지원; 용감하지만 실제로는 힘이 없어 여당인 리쿠드 당을 뒤흔들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의 평화 운동.

사브라·샤틸라 난민 수용소 학살(1982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대학살)에 대한 카한위원회가 보여준 사태 얼버무려 넘기기; 사브라·샤틸라와 1903년 러시아 키세네프에서 벌어진 짜르의 부활절 유대인 학살과의 유사성; 학살 사태가 '전 세계에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진정한 정화'라고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는 이스라엘 랍비들의 수가 많아진 점; 미국 신좌파의 예전 지도자 톰 하이든과 제인 폰다 등 미국의 자유주의 좌파가 레바논 침공에 지지를 보낸 점 등.

이외에도 많은 사실들이 이 책에서 낱낱이 폭로되고 촘스키의 끈질긴 추적을 받고 있다.

숙명?

그러나 촘스키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구성하는 몇몇 요소를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적당한 목표"라고 한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몇 가지 중요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했는데 이제는 사실상 통제 불능이 돼버렸다고 주장한다. 촘스키는 미국이 석유 공급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자금을 지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제는 너무 강력해져서 주인에게 대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어떻게 해서 이러한 입장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1970년대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 ― '국제적 합의' 라고 불린 ― 을 두고 벌인 논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유럽, 소련, 아랍 국가들 그리고 PLO가 받아들인 이 합의안은 이스라엘이 1967년 이전의 국경선으로 후퇴하는 대신 아랍 국가들은 그 국경선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안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있는 서안 지역에 팔레스타인 소국가를 세우는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합의'의 원칙들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 시도를 무산시켰다.

촘스키는 가장 두드러진 예가 1971년 사다트 평화안의 운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키신저에 대한 제임스 아킨스(전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 대사)의 회고를 검토하면서 어이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워터게이트가 가져온 진정한 비극적 결과는 닉슨 대통령이 국무장관을 위압할 만큼 강력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중동안을 좌절시키는 키신저의 행위를 방조했다. 워터게이트만 아니었어도 닉슨이 이 지역에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다 주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런 전망이 유망했다.

이런! 팔레스타인인들은 닉슨이 1970년대 초에 더 강력한 위치에 있기를 바랐어야 했단 말인가.

촘스키는 미국만이 이스라엘을 단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은 그렇게 하려는 조짐을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또한 이스라엘의 자율성은 미국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안에만 유지될 것이다. 이라크의 후세인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정권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민족주의

명백하게도 촘스키가 지닌 절망은 미국이 자신의 의지를 '숙명적인 트라이앵글'에 강요할 수 없고 또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런 절망 때문에 그는 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과 시온주의의 정착권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 듯하다.

촘스키는 애초에 미국(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 이스라엘(세계 4위의 군사강국) ― 팔레스타인(일방적으로 억압당하는 소수민족)으로 트라이앵글(삼각구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발상이라고 하면서도 시온주의자들의 '정착권'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촘스키는 그 자신이 'PLO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사기'라고 했던 레이건 평화안(베이루트 사태가 절정에 달했던 1982년 여름에 제출된)에 관해서 이렇게 썼다.

[이 정책은]전에 시도했던 대안들보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훨씬 유리했다. 미국이 확립한 객관적인 제약을 두고 볼 때 팔레스타인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은 레이건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민족적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지만,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이 장악하는 데 있어서 장애물을 쌓아올릴 수는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구체적으로는 PLO의 입장, 즉 서안지구에 소국가를 건설하는 수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을 제한하는 것에 동의하는 주장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완전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무시하는 것이다. 설사 서안지구에 소국가가 세워진다 할지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해방 투쟁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정착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반유대주의(나치와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라는 시온주의자들의 주장을 촘스키를 비롯한 많은 좌파 학자들이 암암리에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어떤 민족이 아무리 억압을 당했다 할지라도(과거 이스라엘처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저항

마지막으로, 이 책 전체에서 촘스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희생자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촘스키는 그들을 혁명적 투사들로는 보지 않는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용감한 전사들'이라며 두려워하고 동경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열정과 용기는 이 책 속에서는 아주 가끔씩만 나타난다. 심지어 그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인티파다'조차 그에게는 '그저 봉기일 뿐' 이었다.

그러나 모든 끔찍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의 젊은 팔레스타인 남녀들이 시온주의를 무력으로 타도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동은 급속히 산업화해 수많은 농민들이 노동자로 바뀌었다.

중동의 산업화와 노동자 계급 형성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은 아랍 지역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함께할 것이다.

장호종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 제임스 로웬 / 평민사

아메리카 대륙의 첫 발견자는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인가? 미국의 윌슨 전 대통령은 우리 나라의 3·1운동에도 영향을 끼친 민족자결권을 몸소 실천한 자인가? 영국에서 박해받은 순례자들이 뉴잉글랜드 지방에 정착해 첫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낸 1620년이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사람들이 정착한 해인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 페트릭 헨리는 존경할 만한 인물인가?

많은 미국인들은 이런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미국 역사 교과서들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몬트 대학 사회학 교수인 제임스 로웬은 미국의 역사 교과서가 진실이 아닌 온갖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고 폭로한다. 그는 10여 년 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 교과서 12종의 내용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연구한 결과물로 이 책을 출간했다. 그는 10개의 장에 걸쳐 역사 교과서의 거짓말을 하나씩 하나씩 들추어냈다.

역사가들은 컬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1492년을 기준으로 아메리카 역사를 구분할 정도로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다룬다. 그러나 신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백인인 컬럼버스가 아니라, 아프리카계 페니키아인이었다. 이 사실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라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교과서는 컬럼버스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탐험가의 모습을 부각시킨 반면 그가 착취자라는 점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컬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대륙의 인디언들을 노예로 팔고 금광 채굴에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조공을 바치라고 명령한 아주 사악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조공을 바치면 주는 동이나 구리 징표가 없는 인디언들은 손이 잘려나갔다.

컬럼버스는 영웅 조작의 대표적 예일 뿐이다. 미 대통령 윌슨은 각료 회의에서 '검둥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집권 전까지 흑인에게 주어지던 관리직마저 빼앗았던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윌슨은 민족자결권을 말했으나 실제 행동에서는 민족자결을 해치는 악행을 수없이 저질렀다. 그는 니카라과,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등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왜곡

미국 역사 교과서는 가짜 영웅을 볼품 있게 치장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만, 진짜 영웅에 대해서는 왜곡·축소해 다룬다. 백인이면서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진정한 영웅 존 브라운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했다.

진실된 미국 역사 교과서라면 아마 인디언 학살과 노예 착취를 기술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역사 교과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노예 무역에 대해서 입을 다문다. 기껏해야 인디언을 야만인으로 그리면서 전쟁과 학살을 즐기는 사람으로 다룬다. 역사 교과서는 인디언 영토 침범을 '인디언 문명화'로 정당화한다.

서부 영화나 소설에서 인디언은 백인 정착민의 역마차를 공격해 물건을 빼앗고 머리 가죽을 벗기는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영화에서 묘사된 인디언의 모습이 미국인이었다. "카우보이 몇 명이 남자가 없는 인디언 가족을 급습했다. 카우보이들은 관습처럼 인디언 아내를 겁탈하려고 좇았다. 그러나 한 여성은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 자궁에 모래를 넣었다."

미국의 침략 역사는 너무 방대해 일일이 다루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그 어떤 학살보다 잔인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베트남 마이라이 학살에 대해서도 미국 역사 교과서가 침묵했을까? 그렇다.

당시 미군이 "사람들을 강간하고, 귀를 자르고, 머리를 자르고, 인간의 성기를 이동 전화기 줄로 말고, 사지를 절단하고, 신체를 폭탄으로 날려 보내고 ... 재미로 소와 개를 살해하고, 일반적으로 남베트남의 시골 지역을 약탈했"던, 당시 미국이 베트남에서 행한 일상적인 파괴와 약탈 모습을 찍은 사진은 교과서에 단 한 장도 싣지 않았다.

'민주주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같은 역사 왜곡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 교과서는 왜 이런 거짓말을 필요로 할까? 왜 어떤 것은 말하고 어떤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역사 교과서가 상층 계급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생략하고 왜곡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서술되도록 압력을 가한다. 《1984년》에서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현재까지 컬럼버스와 헬렌 켈러, 존 브라운 등을 왜곡하고 미국 사회를 찬양일색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미국 국민들의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방해가 되거나, 미국 사회가 계급 사회임을 드러내는 모든 사실을 역사 교과서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한다.

한 예로 미국 노동의 역사를 다룬 교과서는 "노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색인종은 '중간 계층'의 구성원이다."라고 말한다.

이민의 역사에서는 앤드류 카네기 같은 성공한 자의 이민을 강조한다. 이것은 미국이 '기회의 나라'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넝마에서 부자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미국 행정가와 자본가의 95퍼센트가 상류 계급이나 중상류 계급 출신었다. 1990년대에는 미국 상류층 10퍼센트가 미국 재산의 9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것은 미국이 '기회의 땅'이 아님을 입증해 준다.

미국 지배자들은 이 책이 처음 발간되자 무척 당황했다.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이 책은 미국 사회에 깊은 파문을 던졌다.

과연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란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가? 이런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이 책은 현재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미국이 저지른 야만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사악한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를 조명하기 위해 과거를 조명할 필요가 있으므로.

김은영

 

《민족문제의 재등장》  크리스 하먼 / 책갈피

우리는 민족에 대한 신화를 부추기며 애국심을 강조하는 경우를 흔히 접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민족 또는 역사라는 말이 무언지도 모른 채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끝까지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던 적도 있다.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를 구속하는 절대개념으로 자리해 왔다.

크리스 하먼이 쓴 《민족문제의 재등장》은 이러한 통념에 맞서고 있다. 그는 민족을 규정하는 단일한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민족은 '자동차나 기관총'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의 산물', 즉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다양하고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 사회들은 국가를 통해 조직됐지만, 그 국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민족 국가는 아니었다." 그 국가의 신민(臣民)들은 자신들을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혹은 단일한 지리적 실체에 온전한 충성을 바쳐야 할 의무를 지니는 공민(citizen)으로 여기지 않았다.

"최초의 민족들은 교역망과 행정망 그리고 주요 도시의 후배지(後背地)에서 성장한 언어망에서 탄생"했고, 이 과정은 일국 단위로 시장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민족 국가가 창출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민족 국가와 자본주의의 성립 사이의 연관을 해명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학살하게 만드는 여러 신화들의 힘(제국주의, 전쟁, 인종청소 등)을 이해하고 올바른 대응을 하기 위해서"다.

민족과 마르크스주의

세계 자본주의는 민족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 바탕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각국 지배자들이 끊임없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하먼은 민족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을 가짐을 해명하면서도 모든 민족주의를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추상적인 입장을 경계한다. 그는 마르크스의 지적을 상기시킨다. "억압 민족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민족주의는 자신들을 지배자에게 얽매이게 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만, 피억압민족의 민족주의는 그들의 지배자들에 대항한 투쟁으로 인도할 수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논쟁 소개와 논평은 20세기 초의 위대한 혁명가들이 민족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이를 통해 독자들을 실천적 고민으로 이끈다.

로자는 민족 자결권에 대한 지지를 민족 분리주의에 대한 지지이자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저해하는 정치적 오류라고 여겼다. 이에 반해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민족국가는 자본주의 시기 동안에 전형적이고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관계가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더욱 많은 민족 운동의 등장을 의미한다. ... 식민지와 유럽에서 민족적 억압에 대항한 운동 없이 사회혁명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 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민족적 억압이나 불평등에 반대해 투쟁하지 않는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심지어 민주주의자도 아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레닌 주장의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레닌 사후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개량적 민족주의 운동이 범한 오류 나 의도적 왜곡들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합병 주식회사들의 이사회에서 서로 다른 민족의 자본가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공장에서는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나란히 앉아 작업을 한다. 심각하고 중대한 정치적 문제에서 구분점은 민족이 아니라 계급에 따라 나누어진다. ... 모든 민족적 억압과 모든 특권들을 벗어 던지는 것은 민주주의 세력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필수적 의무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함께할 때 엄격히 제한되고 분명한 역사적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프롤레타리아를 배반하고 부르주아지를 편드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는 ... 어떠한 민족적 요구나, 민족적 분리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라는 시각에서 평가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 민주주의의 슬로건은 '민족 문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세계 노동자 계급운동의 국제주의적 문화이다."

레닌에 이어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을 통해 "후진국의 민족 독립 투쟁은 노동계급이 투쟁의 지도권을 장악해 그것을 노동자 권력 획득 투쟁으로 전환시키고,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을 다른 나라들에까지 확산시키는 데 힘쓸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족주의 운동

하먼은 민족주의의 발흥이 체제 위기의 새로운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민족주의적 광기가 계속되는 한 경제적 문제들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민족주의적 광기가 소멸할 때, 경제적 문제들 ― 그것과 더불어 계급투쟁 ― 이 갑자기 그 무대의 중심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러면 민족주의 선동 때문에 비껴나 있던 바로 그 불만들이 민족주의적 선동을 이용해 권력에 올랐던 자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묶인 앨릭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도 반제투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글이다.

계급투쟁의 많은 고비와 전환의 순간에 우리는 분단 상황으로 말미암은 '민족주의'라는 장애물 앞에서 "진정한 사회변혁의 길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민족문제의 재등장》은 이 물음과 고민을 발전시키기에 손색이 없는 필독서다.

이원재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 민음사

이 책의 시공간적 배경은 1936~37년 스페인 내전이다. 당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많은 양심적 노동자·지식인들은 프랑코의 파시즘에 대항하고자 의용군으로 참전하곤 했다. 이 책은 저자 조지 오웰이 의용군으로 참전하면서 경험했던 혁명과 내전에 대한 생생한 르포이다.

혁명과 민주주의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 우리는 노동 계급이 만든 '혁명적 분위기'가 어떠한 것인지 느낄 수 있다.

1936년 7월 스페인 식민지 모로코에서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에 맞서 성공적인 저항 운동을 펼친 노동 계급은 반파시즘 투쟁을 혁명으로 발전시켰다. 오웰이 의용군으로 스페인 땅을 밟았을 때는 혁명적 분위기가 이미 그 절정을 넘어선 때였지만, 그가 느낀 혁명의 기운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혁명 바르셀로나는 대부분 노동 계급의 조직이 장악하고 있었다. 사회 곳곳에 평등주의가 분출했다. 자본주의에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하던 노동자들은 인간임을 당당히 선언했다. 오웰이 가담했던 의용군에서는 위계가 없었다. 모두 혁명을 지향하는 동지일 뿐이었다.

오웰이 보았던 노동 계급의 혁명은 그가 겪은 세계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사회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는 혁명은 반드시 비민주적인 절차를 동반한다는 식의 통념은 위로부터의 혁명만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험은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혁명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부르주아지들에게 자유가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반파시즘 민중전선

그러나 오웰이 보았던 혁명적 기운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37년 5월에 혁명은 질식되고 있었다. 오웰은 당시 반파시즘 투쟁에 함께하고 있던 공산당이 공장과 지역의 노동 계급 권력을 차례로 분쇄하는 것을 목도했다. 사태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렀는가?

이것은 애초에 민중전선 정부 수립 때부터 예상되던 일이었다. 계급적 기반이 다른 공화파, 공화좌파, 공산당, 사회당 등이 연립해 선거로 당선된 민중전선 정부는 일관되게 노동 계급의 이익을 옹호할 수 없었다.

반파시즘 투쟁을 통해 노동 계급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화파, 공화좌파 등의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과 공산당은 파시즘을 패퇴시키기 전까지 혁명은 유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시즘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정당과도 연합해야 한다는 공산당의 민중전선주의는 혁명을 가로막았다. 노동 계급의 위협이 거세지자, 이들은 혁명 파괴자로 돌아섰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OUM)은 유일하게 반파시즘 투쟁과 혁명의 결합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혁명의 전진이야말로 반파시즘 투쟁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민중전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었다. POUM의 지도부는 동요하면서 민중전선 정부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결정적인 1937년 5월 시가전에서 소심한 모습을 보여 혁명의 질식을 막지 못했다.

민중전선은 혁명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민중전선 내의 좌파들은 대체로 파시즘을 패퇴시키는 것이 먼저이고, 혁명은 나중이라는 식의 단계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반파시즘 투쟁에서 자유주의 부르주아와지의 연합을 추구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을 두려워해 파시스트를 지지했다.

결국 민중전선은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노동 계급을 무장해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노동 계급의 혁명성을 잠재우려 했던 것이다.

민중전선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노동 계급이 혁명 과정에서 획득한 산업에서의 통제권을 빼앗기고 무장 해제당한 결과,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많은 노동자·지식인 들이 붙잡혀 죽임을 당하거나, 강제 구금되었다. 결국 승리를 거둔 프랑코의 파시즘은 1939년부터 1975년까지 노동 계급 운동을 뿌리뽑고 엄청난 인권을 유린했다.

실패에서 배울 교훈

실패한 스페인 혁명에서 배울 점은 부르주아지로부터 독립적인 노동 계급 정치의 중요성이다. 이러한 교훈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해 보자. 스페인의 경험과 흡사한 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8·15를 둘러싼 통일 운동 진영의 태도가 낳는 최근의 혼란이 그러하다.

민족 통일을 위해서는 정부, 자본가, 군장성 등과도 단결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 좌파의 태도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판 민중전선의 결과, 우리 운동은 김대중에게 발목이 잡혀 있다.

오웰이 전하는 《카탈로니아 찬가》는 바로 우리 나라 운동에 충고하는 실패한 혁명의 유언이다.

정병호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노암 촘스키 / 한울

미국이 북한을 '깡패 국가'로 규정하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핑계로 MD 구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이나 회담을 바라기나 하는 걸까? 작년 가을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클린턴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촘스키의 책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이 책에서 촘스키는 미국의 외교정책은 무력에 의한 정치적 패권 유지와 자본가들의 이익 보호가 목적이며, 미국 내의 강경파나 온건파 모두 그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세계를 누비며 민주주의와 개혁을 바라는 민중 운동을 탄압하고 학살하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파괴자 노릇을 했음을 낱낱이 폭로한다.

미국-나치 동맹

촘스키는 제2차대전중에 형성된 서방에 대한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 외교 정책의 진정한 시작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데서, 그리고 미국 기업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서방의 전쟁 피해 복구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반 파시스트 저항 운동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게슈타포 대장을 지냈던 나치 친위대 장교 클라우스 바르비 같은 작자들을 고용했다. 이른바 미국-나치 동맹을 통해서 종종 파시스트나 나치 협력자들을 필요한 곳에 배치하고 '저항 운동'을 억압했다.(이들은 나중에는 라틴아메리카 등지로 보내져 고문기술을 가르치고, 마약밀매꾼,·무기상·테러리스트가 되어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반파시즘 운동을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이 1948년 선거에서 승리할 것을 두려워한 미국은 파시스트 경찰을 부활시키고 노조를 파괴하고 식량 지원을 보류했다.

미국은 1947년 1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리스 내전에서 우익들을 지원했고, 일본에서는 저항 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극우파들이 국가 기구에 포함되는 것을 묵인했다.

"썩은 사과 이론"

미국은 제3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대중 운동을 탄압하고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지배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제3세계에 투자하고 있는 미국의 자본가들을 곤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앙 아메리카만 보더라도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추구하던 운동이 탄압을 받게 되면서 1970년대 후반 이후 친미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거의 20만 명에 이른다.

1980년 3월부터 엘살바도르 정부는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더러운 전쟁'을 계속 지원했다. 1981년 미 육군 특수부대의 반게릴라전 전문가들이 잔혹한 학살 부대인 '아틀라카들 부대'를 창설하고 무기를 지원했다. 이 전쟁으로 엘살바도르 국민 수만 명이 학살당했고 백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생겼다.

1944년 혁명으로 군사 독재가 타도된 뒤 등장한 과테말라 새 정부가 "과격한 민족주의 정책"을 시행하려 하자, 중앙정보국(CIA)이 쿠데타를 감행했다. 미국은 이 학살극을 전폭 지지했다.

니카라과에서는 미국이 지원하던 소모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산디니스타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은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미국은 '적성 국가'인 이란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그 돈으로 콘트라 반군을 후원했다.

미국이 진정 원하는 것은 지배 계급과 자국 기업체의 안전이었다.

이들에게 전 세계 노동자·민중 운동은 "안정"을 좀먹는 바이러스였다. 그것에 감염된 한 국가가 "좋은 선례"가 되어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썩은 사과 하나는 결국 사과 박스 전체를 썩게 만든다. 그러므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썩은 사과는 박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제3세계에서 미국이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는 "썩은 사과 이론" 또는 도미노 이론이다.

평화와 민주주의의 수호자?

미국은 언제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회를 내동댕이쳤다. 1960년대 후반까지 미국은 베트남에서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기회를 봉쇄했다. 베트남 증후군과 세계적 차원의 반미 운동의 성장 때문에 미국은 은밀한 테러를 사용하거나 '더욱 사악한 적'을 결정적이고 신속하게 파괴해야 한다는 정책적 제약에 시달렸다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자본가 지배계급의 민주주의다. "재계 부문과 그에 관계된 엘리트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미국의 민주주의에서도 "대중은 구경꾼이지 참여자가 아니다. ... 대중의 일부가 무관심에서 벗어나 여론을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허용하는 건 자본에 방해가 되지 않을 때만이었다.

레이건 정부는 과테말라를 도살장으로 만든 "과테말라의 히틀러" 리오스 몬트를 민주주의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인물이라며 극찬했다. 쿠데타 몇 개월 만에 70만 명을 학살하고 동티모르를 합병하면서 인구의 4분의 1을 제거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온화한' 인물로 칭송받았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시아파 민중 봉기와 북부 쿠르드 족을 진압했을 때는 미국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았지만, 쿠웨이트를 침공해미국의 석유를 위협하자 '인권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됐다. 파나마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노리에가가 집권을 위해 저지른 1984년의 부정선거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그를 쫓아내려 했던 1989년에는 부정선거가 비난의 대상이 됐다.

미국이 말하는 평화의 과정은 전쟁과 강압, 침략을 의미한다. 촘스키는 이러한 이중화법을 이해하기 위해 통역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언론이 지배 계급이 말하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감추기 때문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의 안정과 그 안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전쟁광 미국이 날뛰도록 가만히 놔 둘 수는 없다. 미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노동 계급간의 진정한 연대가 필요하다. 1999년 말시애틀 시위에서 시작한 반자본주의 시위는 새로운 연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세원


《글로벌 드림스》 리처드 J 바네트, 존 캐버나 / 고려원

하루에만 수천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최근 세계적인 기업들이 대량 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필립스는 5천5백 명을 해고할 계획이다. 스웨덴의 휴대폰 업체 에릭슨 사는 1만 2천 명을 해고할 계획이고, 미디어 업체인 로이터는 1백50년 역사에서 최대 규모인 1천1백 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반자본주의 시위대가 "환경을 파괴하고 세계화의 확산에 기여하는 다국적 기업들도 극력 반대 대상에 포함키로 했다."는 기사를 전했다.

NGO 활동가들은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동안, 나이키의 제3세계 노동 착취를 비판하는 마라톤 행사를 열었다.

수만 명의 일자리를 빼앗고 환경을 파괴하는 다국적 기업이지만 각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의 지부와 공장을 유치하기를 바란다.

김덕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