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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자
경찰은 배이상헌 교사 수사 중단하라! 광주시교육청은 수사의뢰·직위해제 철회하라!

수업 중 성평등 교육을 한 전교조 조합원이 황당하게도 ‘아동학대 범죄 피의자’로 내몰려 경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학생인권조례제정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자치, 학생인권, 성평등 교육을 오랫동안 실천해 온 배이상헌 교사가 그 당사자다.

수사에 착수한 광주 남부경찰서는 성평등 단편영화를 틀어 준 행위가 아동복지법 제17조 2호(성적 학대행위) 또는 5호(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하는지 조사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밀폐된 교실에서 강제로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는지 여부도 고려 대상’이라고 한다. 도덕 교과 과정에 맞춰 다수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한 교실 수업을 마치 범죄 행위인 양 취급한 것이다.

수사를 의뢰한 장본인은 어이없게도 광주시교육청(교육감 장휘국)이다. 배이상헌 교사에게 제기된 민원은 은밀한 공간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 했다거나 성적인 요구를 했다는 게 아님에도,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중죄’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경찰에 넘긴 것이다. 소명 요구도 묵살된 채 수업 영상과 몇몇 발언을 이유로 직위해제를 통보 받은 배이상헌 교사와 그 가족은 수업 배제, 급여 삭감, 정신적 고통 등 여러 어려움을 감당하고 있다.

문제가 된 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프랑스 여성감독 엘레오노르 푸리아가 연출한 것으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뒤바꾼 방식으로 여성 차별의 현실을 담아 냈다. 전교조 여성위를 비롯한 뭇 여성단체들의 추천 영상이기도 하다.

일부 학생은 해당 영화의 표현 방식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곧 성희롱일 수는 없다.

그 영화가 중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교재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토론하며 소통할 일이지 ‘성 비위’로 몰아 경찰 수사의 제물로 바칠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젠더권력과 학생-교사 위계 관계를 제기한다. 그러나 교사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성평등을 가르치고 학교가 성평등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018년 학생의 날에 “이제는 성평등을 배우고 싶다”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스쿨미투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외침을 남성 교사들은 외면하란 말인가.

정당한 비판

광주시교육청은 ‘성희롱,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돌아봐야 한다. 해당 매뉴얼은 피해 호소 학생의 진술을 검증하는 최소한의 확인 없이, 교육청에 신고가 접수되면 모두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직위해제를 한다. 수사 결과 무혐의 처리돼도 ‘공무원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징계한다. 이 때문에 고초를 겪는 교사가 광주에서만 수십 명에 이른다.

지난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전북의 고 송경진 교사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교육청의 칼날에 그 어떤 교사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광주시교육청은 국가의 억압기구인 경찰의 힘을 빌려 자의적인 관료 행정을 정당화하지 말고 배이상헌 교사의 직위해제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애먼 교사를 성범죄자로 몰아 사용자(교육청)와 국가(경찰과 검찰)의 제물이 되게 만드는 광주시교육청의 매뉴얼은 스쿨미투의 애초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반으로 학생들의 피해 호소 중에는 정당한 것들이 많고, 당사자의 불쾌함 역시 진중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지만 사안의 진정한 성격이나 맥락을 따져 보지 않고 이를 절대적인 근거로 적용해 일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권위적이고 숨 막히는 학교생활에 대한 불만은, 애꿎게도 억압적 구조는 그대로 둔채 늘상 만나는 개별 교사들로 향하기 쉽기 때문이다. 학생-교사 간 자유로운 토론과 교육적 성찰을 통한 관계 회복 과정을 생략한 채 사용자나 국가기구의 행정 처벌, 사법 처벌에 집중한 결과,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입은 교사들은 경제적 정서적 고통을 받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매뉴얼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돌아보고, 배이상헌 교사의 직위해제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한편, 배이상헌 교사가 직위해제 항의 투쟁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도 전교조 본부와 여성위가 배이상헌 방어에 나서지 않는 것도 문제다. 광주시교육청의 부당한 조처에 힘을 실어 주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이라 해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는 노동조합이 독립적으로 비판하고 과감히 맞서 싸워야 한다. 게다가 광주시교육청의 매뉴얼은 올해 2월 교육부 매뉴얼에도 반영돼 이미 전국의 교사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배이상헌 교사 사례를 접한 교사들은 수업 때 틀어준 영상과 발언을 돌이켜 보며 아찔함을 느꼈을 것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면 사실관계 확인 없이 직위해제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학생들의 문제 제기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교육청의 부당한 행정조처, 직위해제 등에 침묵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성 관련 민원 뒤에 숨어, 국가기구의 일부인 교육청이 교사의 수업 내용을 징계하고 사법 당국에 넘기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2018년 4월 전교조는 ‘교육부의 교육 분야 성희롱 성폭력 근절 대책 발표에 대하여’라는 논평을 낸 바 있다. 여기서 “(성평등 교육) 노력을 아끼지 않는 교사들은 일상적으로 파면·해고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민원과 법적 소송 등 고통을 당하기 일쑤다”고 지적하며, “성평등 교육 교사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수수방관”해 온 교육부를 비판하고 “교사 보호 대책을 수립”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따라서 배이상헌 교사를 방어하는 것이 일관된 실천일 것이다.

옳게도 전교조광주지부, 전국도덕교사모임, 광주참교육학부모회,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등은 광주시교육청 규탄 성명을 내고 한 달 넘도록 1인 시위와 항의 집회를 이어 왔다.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져 광주뿐 아니라 전국의 활동가들도 ‘성평등 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에 함께하며 광주시교육청의 행정 조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공권력이 교사 노동자의 수업을 탄압하고 통제하는 것을 노동조합이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성평등 교육에 앞장서 온 배이상헌 교사에 자행된 부당한 징계에 맞서 전교조 본부도 적극 싸워야 한다.

배이상헌 교사가 더 고초를 겪지 않고 수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전교조 교사들이 앞장서서 지지하고 연대를 보내자.

이 글은 8월 19일 노동자연대 교사모임이 발표한 성명서를 증보한 것이다. 8월 31일 노동자연대 교사모임이 발행한 리플릿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