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전국의 화물 노동자 4000여 명이 서울 세종로 공원에 모여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 실시’를 촉구하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화물연대는 4월 13일 특수고용 노동자 총궐기를 시작으로, 6월 1일 부산, 7월 6일 단양, 8월 31일 서울까지 네 차례나 전국동원 집회를 열며 안전운임제의 제대로 된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8월 31일 오후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장한빛

안전운임제는 운임(임금)의 하한선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제도이다. 이는 화물 노동자에게 적정 임금을 지급해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도로 안전의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턱없이 낮은 운임은 화물 노동자들을 과로·과속·과적 운행으로 내몰고, 이는 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20년 전부터는 운송료가 거의 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한 달 꼬박 일해도 200만 원, 그러다 보니 한 번이라도, 한 짐이라도 더 날라야 한다는 압박에 늘 시달리죠.”(40년 경력의 부산 화물 노동자)

한 조사를 보면, 화물 노동자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이다. 정상 수면시간인 7~9시간보다 1시간 이상 모자라다. 정상 수면시간보다 1시간 덜 잘 경우 교통사고의 위험이 2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물류방’은 낮은 운임을 더욱 부추긴다. 모바일로 화주와 화물노동자를 연결해 주는 어플리케이션인 ‘물류방’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덤핑으로 운임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짐인데 지난주보다 낮은 가격이 떠도, 빈 차로 오기 싫으면 일단 잡아야죠. 안전운임제를 제대로 안 하면 운임은 계속 떨어지게 돼 있어요.”(경남지역 화물 노동자)

정부의 배신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들이 화물연대를 만들어 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주된 요구였다. 표준요율제, 표준운임제에서 안전운임제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말이다.

2005년과 2008년에 각각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노동자들의 투쟁에 밀려 제도 도입을 약속했지만, 이내 말을 바꾸고 기대를 저버렸다. 2016년 말 화물연대 파업 직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벌어지고, 이듬해 표준운임제를 약속한 문재인이 집권하자 화물 노동자들은 다시금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2018년 3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된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개정안’은 애초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다. ‘안전운임’이 전 차종, 전 품목에 도입되지 않고, 컨테이너 수출입 차량과 시멘트 운반차량(전체 40만 화물차량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에서만 시행된다. 다른 부문은 운임 산정 시 ‘참조’(즉 강제력이 없는) 사항인 ‘안전운송원가’만 공표한다. 그조차도 2020년부터 2022년 12월까지 3년간만 한시적으로 시행한 뒤 이후 지속, 확대 여부를 검토하는 일몰제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안전운임제를 대폭 후퇴시킨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빈 껍데기로 만들려 하고 있다.

7월 초부터 화주(화물 운송을 의뢰하는 사용자), 운수업체, 화물 노동자(화물연대)를 대표해서 각각 3인과 공익위원 4명으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는데, 이 위원회는 다음 해에 적용될 안전운임과 안전운송원가를 10월 31일까지 공표해야 한다.

그런데 논의 초반부터 “화주, 운수업체 모두 운임을 적게 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화주 측은 “안전운임제와 도로안전은 관계가 없다”며 안전운임제의 취지를 아예 부정하는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공익위원들의 ‘중재’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사용자들의 압력이 수용되도록 돕는 구실을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공익위원들이 인상률을 억누르려는 사용자의 긴밀한 조력자 구실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안전운임을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면, 저임금을 개선하고, 도로 안전도 강화한다는 취지가 무색한 빈껍데기로 전락할 것이다.

화주가 75만 원의 운임을 지불해도 화물 노동자에게 쥐어지는 것은 44만 원에 불과하다(국토부 자료). 다단계 구조에서 중간 수수료를 40~50퍼센트나 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지입제라는 낡은 병폐 때문에 ‘번호판값’, ‘지입료’로 또다시 소득의 일부를 빼앗긴다.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점 때문에 걸핏하면 ‘짐 받지 말라’는 위협뿐 아니라 차량 할부금, 보험료, 수리비 등을 모두 노동자가 떠맡아야 한다.

특히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운임을 낮추려는 공세가 갈수록 강화되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안전운임제는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

노동자들은 안전운임이 공표되는 10월 31일까지 투쟁의 강도를 높여 나가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9월 27일 하루 경고파업을 하고 다시 이곳에 모일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이 제대로 된 안전운임을 만들지 않으면, 이를 쟁취하기 위해서 화물연대가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결정을 그날 총회로 결의할 것입니다.” (8월 31일 결의대회 김정한 화물연대본부장)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정부의 양보를 강제할 힘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서 화물 노동자 “3회 파업으로 인해 국가 전체의 손실이 10조 1000억 원”이라고 밝힌 것에서 보듯이, 저들은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을 두려워한다.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를 위한 투쟁은 화물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도로 위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결의대회를 마친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장한빛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8월 31일 오후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장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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