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신화 물리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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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 한겨레신문사
저자는 이 책을 “신자유주의 퇴치 투쟁과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따르는 “장기간의 고된 싸움”의 일부로 펴냈다. “이 싸움에서 억압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담론구조의 구체적인 역사적 내력을 잘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이 목적을 훌륭하게 이뤄 냈다. 한국 사회는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다. 끔찍한 입시 경쟁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고, 비정규직 양산은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이 피곤한” 경쟁 사회의 기원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왜 사람들은 경쟁이 마치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경쟁’이라는 개념이 인류에게 일반화된 시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자본주의는 전근대적인 ‘도덕 경제’ 체제를 밀어내면서 이윤 경쟁을 지상 목표로 만들었다.
사회진화론은 19세기 서유럽에서 나타난 이데올로기였다. 한 마디로 말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강한 것이 곧 정의’이고, ‘약한 것은 죄악이다.’
초기의 사회진화론은 스펜서의 이론에서 잘 드러나듯이 철저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이것은 당시의 국가 개입 없는 자유방임 시장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과 같은 후발 국가의 엘리트들은 사회진화론 중에서도 ‘사회유기체설’을 강조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나라 간 경쟁이 결정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어떤 사회 세력보다 국가의 구실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한국의 개화파 지식인 사회를 석권했던 사회진화론은 서구 제국주의의 압력의 결과였다. 스스로 부강해지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동아시아 삼국에서 국가주의와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개화파 지식인들은 옛것은 모두 악이고 서구적인 ‘힘’이 선이라는 생각에서 위로부터의 엘리트주의적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력양성’과 ‘민족개조’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윤치호
사회진화론의 핵심 사상은 자본주의 경쟁 체제 그 자체다. 그것은 19세기에나 지금에나 여전하다. 80년 전, 현상윤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키우면서 경쟁하라. 경쟁력이 없는 자는 현대의 공기를 마실 권리조차 없”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지금의 입시 경쟁과 얼마나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에 대한 대안 역시 가능하다. 1920년대 들어 사회진화론에 대한 도전이 나타났다. 저자가 한용운보다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3·1운동 등 대중적 반제국주의 운동이 그것이다.
이 대중운동의 영향은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 등의 대안 이데올로기가 확장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 장병린의 불교유식론을 대신해 손문의 삼균주의나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진화론의 대안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쟁과 국가주의적 군사 경쟁에 신물난 현대인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