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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 학생들의 '조국 반대'가 보수 엘리트 항의?

서울대·고려대·부산대에서 조국 딸 특혜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나도 조국 딸과 비슷한 때 대학교에 갔지만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제도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평범한 집안 배경의 학생들이 사회가 강요한 ‘사다리 걷어차기’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할 때 누군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특권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들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클라스’(Class)가 얼마나 다른지 더 여실히 느껴져 열 받는다.

8월 23일 열린 고려대 1차 시위에 500여 명이 모였는데, 학생들은 삼삼오오 집회장으로 들어가며 “나도 억울하지만 엄마, 아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8월 28일 열린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는 800여 명이 모였다.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 투표했다는 한 학생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한 정부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 시절 우리가 몰랐던 제도

그런데 유시민 씨(이하 존칭 생략)는 서울대 집회를 가리켜 “뒤에 자유한국당 패거리의 손길이 어른어른한다”며 “왜 마스크 썼냐”고 조롱했다. 유시민은 “‘조국 편드는 놈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고 진영논리’라는 건 횡포이자 반지성주의, 선동”이라며 우파를 비판했다. 그런데 본인도 진영논리로 서울대 학생들 배후에 한국당이 있다고 한다.

한편 우파들도 이 논리를 그대로 뒤집어서 이 시위를 이용하려고 지지하는 척한다. 계급 불평등 해소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자들이 말이다.

오히려 이처럼 진영논리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집회에 나온 학생들이 비정치성을 표방했을 것이다.

물론 ‘비정치’는 가능하지 않다. 어떤 운동이건 다양한 정치적 주장과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학생들이 표방한 이데올로기에 약점이 있더라도 운동 참가자의 구성과 염원이 더 중요하다. 훈련된 활동가도 아닌 젊은 사람들이 처음 모일 땐 혼란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운동의 이데올로기에 일부 약점이 있다 해도 그 점만으로 운동 전반의 성격을 단정해선 안 된다 ⓒ이시헌

한편, 일부 학생 운동 단체들은 서울대, 고려대가 학벌 서열의 정점에 있는 대학이라는 이유로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특권층이라며 비판하고 거리를 뒀다.(그중 일부는 조국 문제를 옳게 계급 문제로 비판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단일한 계급이 아니다. 물론 이 대학들에 상대적으로 상층 계급 학생들이 더 많을 수 있지만 전부 그런 것도 아니다.

단일한 계급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경쟁과 소외라는 비슷한 경험,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한 조건 덕택에 사회의 모순에 훨씬 크고 민감하게 진동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항에 나설 잠재력도 있다.

가령, 최근 찜통 같은 더위에 휴게실에서 죽은 서울대 청소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을 폭로하고 진상 규명 활동을 하는 서울대 학생들도 있다. 그 중엔 자사고 출신도 있고 부잣집 학생도 있다. 이것이 문제인가?

한 서울대 학생은 집회에서 “국민의 57퍼센트가 조국 교수 임명에 반대”하는데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전부 … 한국당 지지자일 리 없다”며 시위를 보수 엘리트 소행으로 몰아가는 주장의 모순을 꼬집었다.

한편, 이런 비판이 일자 조국은 은근슬쩍 계급 문제를 개인의 도덕 문제로 바꿔치기하는 꼴사나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기자 간담회에서 조국은 자신은 “김용균”의 고통을 “10분의 1도 모를 것”이라며 자책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김용균에게는 해당도 안 되는 ‘김용균법’을 만들어 노동자들과 유가족을 우롱하고 바로 그 시기에 민주노총을 앞장서 비난한 청와대 전 민정수석 조국이 할 말은 아니다.

올해 초 고려대에서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생 단체가 주최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초청 강연회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학 가는 걸 사치라 여겨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실업계를 졸업하면 대부분 비정규직, 생산직, 공장에 취업합니다. ‘정부가 저렴한 노동력을 위해 실업계를 만들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해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 뿐입니다.”

교육 제도만이 문제인가?

문재인은 아세안 3개국 순방 출국 전 “대학 입시제도가 여전히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며 입시제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하지만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해 놓고 최근 일부 지방 교육청의 자사고 취소를 되돌린 것은 바로 문재인 정부 자신이다.

애초에 권력과 부의 불평등은 계급의 존재에서 비롯하므로 소위 더 ‘공정한’ 입시 제도로 바꾼다고 근본적으로 불평등이 없어지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참가한 많은 청년들은 “정권 하나 바꾸려고 촛불 든 거 아니다” 하고 외쳤다. 이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낳은 청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의 문제였다.

이런 계급적 분노를 정치와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청년·학생 좌파는 청년 세대의 정당한 공분을 대변하고 시위를 지지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청년들의 분노와 항의를 우파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더 급진적 방향으로 이끄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