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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구원 투수가 돼선 안된다

노무현 정부의 위기와 ‘연립 정부’

노무현이 ‘연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마도 이후의 일은 노무현의 연정 구상 배경, 즉 정부와 여당이 처한 심각한 위기 상황이 어떻게 발전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미 “정부와 여당은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고 따라서 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이 구상이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국방장관 윤광웅 해임건의안이 부결되기 전까지 노무현과 열우당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해 왔다. 4·30 재보선 참패에 이어 오일게이트, 행담도 의혹, 부동산 가격 폭등, 전방 총기난사 사건 같은 대형 악재가 터져나왔다.

집권당 지지율이 10퍼센트대로 떨어지더니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레임덕” 얘기가 나돌았다.

부패, 개혁 배신, 경제 위기로 요약되는 중도 ‘개혁’ 정부의 위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돼 왔다. 노무현이 말하는 “통합의 위기”는 심각한 양극화 압력의 다른 표현이다.

왼쪽에서는 최근 우파 노조인 한국노총의 지도부가 이례적으로 “투쟁을 위한 투쟁”, “정권 퇴진” 등을 외치며 저항에 나서고 있다.

정부·집권당의 위기와 함께 이러한 저항 때문에 노무현은 비정규직 개악을 강행하기 어려웠다. 만일 민주노총이 실질적 공동 투쟁에 나섰다면 상황은 우리편에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우파의 압력도 강화됐다. 때마침 터진 총기 난사 사건이 이들의 공세에 명분을 제공했다.

총기 난사 사건은 노무현에게는 재앙이었다. 한미정상회담, 정동영 방북 및 김정일 면담, 남북장관급 회담 등 노무현이 애써 준비한 이 모든 것을 총기난사 사건이 덮어 버렸다. 국면 반전의 수가 어이없이 망가지자 위기가 더욱 심화됐다.

대다수 주류 언론들이 해임건의안 부결 이후 열우당이 정국 주도권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해임건의안 부결은 노무현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노무현은 잠시 우파의 공세를 모면했지만 그 와중에 대중과 정부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졌다.

위기를 낳았던 요인들이 여전히 잠복해 있다. 주요 비리들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고, 김우중 블랙홀이 노무현 정부 인사들을 빨아들일 수도 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제 상황이 정치 위기의 근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림은 더욱 어둡다. 연초 5퍼센트 성장을 장담하던 정부는 최근 3퍼센트대도 쉽지 않을 거라고 시인했다.

내수 부진은 계속되고, 그나마 버텨 주던 수출 증가율마저 지난해 31퍼센트에서 올 들어 10퍼센트 안팎으로 떨어졌다. 유가 급등과 미국 경제의 하강도 문제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의 교차점인 듯하다. 경기부양 압력 탓에,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말과 실제 행동 사이에 심각한 모순이 존재해 왔다. 한편으로는 규제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개발 정책들을 쏟아냈다.

경기부양 효과는 보잘것없었다. 반면, 계급 불평등 ― 따라서 계급 불만 ― 이 극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만일 부동산 거품이 꺼지게 되면 정치·경제 위기가 모두 더 고조될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상황 악화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부담을 ― 약간의 권력과 함께 ― 의회 내의 다른 세력과 나누려 한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가해지는 좌·우의 압력을 완화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연정에 참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 조직노동자 운동과 연계된 ― 을 끌어들이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연정 구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옳게도 “연정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혔던 심상정 의원이 하루 만에 “대통령은 연정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의 구체적인 대안을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협상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 입장으로 후퇴한 것은 따라서 우려스럽다.

노회찬 의원은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연정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노 의원은 이미 1996년에 부르주아 정당인 개혁신당의 공천을 받으려다 좌절한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나든 전력이 있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연정에 참가한다면 그것은 당의 지지자들을 심각한 사기저하와 혼란, 분열로 이끌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노무현의 실패를 경험하며 더 왼쪽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에게도 혼란과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이는 당의 성장에 완전한 재앙이다.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 내 일부는 우파의 득세를 막기 위해 지배계급 내 상대적 개혁파와의 연합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물론 우파의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르주아 ‘개혁파’의 개혁 실패야말로 우파를 강화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처음에 노무현 정부는 ‘여소야대’를 핑계 삼아 개혁 후퇴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한 후에도 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바로 이런 배신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환멸이 커졌고 찌그러졌던 우파가 세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역사적 경험은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과의 동맹이 매우 위험천만한 일임을 보여 준다. 1932년 독일 사민당은 히틀러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주의자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 6개월 후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 10년 전 이탈리아에서는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무솔리니를 막기 위해 자유주의자들에게 의존했다. 1922년 10월 자유당 국회의원들은 무솔리니를 지지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 때문에 우파가 이득을 볼 수는 있지만 그들 역시 근본으로는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 역시 현재의 사회·경제 위기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관건은 지배계급의 우파와 자유주의 분파 모두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대안과 투쟁이다.

지금 이러한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열린우리당 실패는 범진보진영의 실패”(민주노동당 천영세 원내대표)라는 식의 당 안팎 일부의 비관적 가정이다.

진실은 그 반대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개혁 실패와 위기는 민주노동당 같은 더 급진적인 대안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한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는 독립적·좌파적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당의 발전에 훨씬 이로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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