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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투쟁:
중국 정부의 기만과 탄압에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다

9월 4일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약속했지만, 홍콩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홍콩 자치정부가 8월 31일에 이어 9월 15일 집회와 행진(민간인권전선이 주최하는)도 불허했지만, 9월 15일 홍콩 시민 수만 명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여전히 대다수 홍콩 사람들은 송환법안 폐기 이상의 진보를 원한다. 직선제 실시, 경찰 폭력에 대한 조사, 캐리 람 사퇴 등 자신들의 요구를 모두 성취할 때까지 거리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고 여긴다.

물론 캐리 람은 송환법 개정안 철회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대중 시위와 노동자 파업에 부딪히자 그런 발표를 한 것이다.

그러나 캐리 람은 송환법안 폐기 여부를 입법회(의회)에 부쳤다.(본지 297호에서 필자가 캐리 람이 송환법을 철회했다고 쓴 것은 단정적인 보도였다.) 그는 입법회에서 송환법안 폐기 약속이 뒤집힐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최종 결정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따라서 그새 정부가 시간을 벌면서 태도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시위대의 다른 핵심 요구들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콩 사회주의자 람치렁은 9월 17일 본지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캐리 람이 진짜 양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시위대에] 양보하기는커녕 시위대에 대한 경찰 폭력 수위를 높였다.”

경찰은 시위를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탄압했다. 시위 참가자를 폭행하고 연행했고, 최루탄·고무탄으로 대열을 공격했다. 또, 시위 참가자를 색출해 체포하려고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쐈다. 시위대는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에 저항했다.

9월 16일 홍콩 경찰대원협회 주석은 “폭도”가 경찰한테 화염병을 계속 던진다면 경찰이 “실탄”을 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소규모 ‘친중’ 시위,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공격하는 진짜 깡패들은 계속 비호한다.

이런 협박이 시위대에게 쉽게 먹히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당분간 시위를 비롯한 대중 행동이 지속될 것 같다. 학생들은 동맹 휴업을 중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히, 중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10월 1일 다시 한 번 대규모 집회를 열자는 호소가 반향을 얻고 있다.

홍콩 운동은 지금까지 100일 넘게 지속되며 노동계급 사람들과 평범한 대중이 다수로 참가하는 대중 투쟁으로 부상했다. 그들은 사회를 바꿀 잠재력을 보여 줬다. 이 과정에서 홍콩 대중이 보여 준 자발성은 정말 대단하다.

흔히 홍콩 운동을 가리켜 “지도가 없는 운동”이라고들 한다. 이는 자발성 개념에 사로잡힌 착각이긴 하지만, 분명 운동 참가자 다수는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처럼 기성 정치 세력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겉보기로는 순전히 자발적인 듯한 운동도 실제로는 기층에서 초보적이나마 조직되는 것이라고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당연하게도 홍콩 운동 내부에는 의식적인 지도의 요소가 있다.

즉, 상이한 정치 전망을 가진 이질적인 세력과 개인들이 운동을 이끌려고 하고 있다. 진보 운동의 노련한 개혁주의자들, 2014년 우산 운동을 계기로 각성한 새 세대 급진 청년들,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서구식 민주주의에 환상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자 등. 이런 세력들의 개입 활동이 낳은 효과로 운동의 향방은 장차 분화될 수 있다.

최근 홍콩 운동 내에서 서방의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좀 더 시끄러워졌다. 9월 8일 일부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앞세우고 미국 영사관으로 행진했다. 이 행진을 주도한 자들은 강력한 중국에 맞서려면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지배자들의 진영논리에 맞선 나름의 진영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이날 시위 참가자는 평소보다 적었다. 서방 지원 촉구 세력이 운동 안에서 대세를 장악하지는 않은 것이다.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다른 시위 참가자들한테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있다.

홍콩 운동이 이런 시위가 표방한 지향과 계속 다른 선택을 하려면 혁명가들이 이 운동을 반자본주의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운동에 개별적으로 참가해 온 노동자들이 일터와 거리에서 파업과 시위를 벌이도록 고무해야 한다. 단지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들뿐 아니라 경제적·노동계급적 요구들도 제출되기를 고무해야 한다.


서구 지배자들은 홍콩 시위대의 친구가 아니다

조슈아 웡은 2014년 우산 운동의 스타이자 현재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사무총장)이다. 9월 17일 그는 미국 하원 청문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미국 하원이 ‘홍콩인권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웡은 독일에 가서 독일 외무장관과 정치인들을 만났다. 거기서 그는 홍콩이 “새로운 베를린”이라고 했다. 냉전 시절에 동서 양 진영이 대치했던 베를린처럼 이제 홍콩도 독재와 (서구식) 민주주의가 대치하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이처럼 조슈아 웡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서구 정치인들의 지지를 중시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웡처럼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독재 대 민주주의’로 오해한다.

서구 정치인들은 말로는 민주주의·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실제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잔인하게 짓밟아 왔다. 미국은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사우디 왕가를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 영국이 식민 통치한 홍콩에서는 민주주의가 없었고, 영국의 홍콩 식민 당국은 중국 못지 않게 정치적 탄압을 자행했다.

서구 정치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홍콩 운동을 미국이 공작하는 “색깔 혁명”이라고 곡해하는 데나 도움을 줄 뿐이다. 그리고 중국 본토 사람들을 적대하며 홍콩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일부 우파들이 홍콩에서 성장할 여지를 줄 수 있다.

홍콩 운동에 대한 국제 연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서도 서구 정치인들에 의한 가짜 ‘연대’와 서구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진짜 연대를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진보·좌파의 침묵은 금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홍콩 운동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낸다. 그래서 홍콩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한국의 진보·좌파에게도 회피하기 어려운 쟁점이 되고 있다.

홍콩 운동에 여전히 침묵하는 정치 세력이 더 많다. 정의당 지도부는 3개월 넘게 홍콩 운동에 관한 공식 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아마도 홍콩 운동을 지지하면 문재인 정부에게 외교적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민주주의보다 한국 국가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정의당 지도부의 접근법은 그 당 안에서도 특히, 청년 당원들 일부로부터 이의 제기를 받고 있는 듯하다.

한국 진보·좌파의 일부는 홍콩 운동을 비난한다. 중국이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하는 세력이라는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홍콩 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자본주의의 득세를 경계하며 홍콩 운동을 지지하기를 꺼리며 침묵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신비화를 벗겨내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100년 전 영국과 독일의 갈등과 성격이 똑같다. 즉, 제국주의적 갈등이다.

지금 홍콩에서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은 점점 계급 분단선을 따라 정해지고 있다. 대부분이 노동계급 성원인 운동 참가자들이 맞서는 대상은 중국 지배 관료, 홍콩 자치정부, 홍콩 재벌의 동맹이라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에 비춰 보면, 대다수 진보·좌파가 홍콩 운동에 대한 지지를 꺼리는 것은 국제적 계급투쟁에 대해 헷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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