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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판 아프리카돼지열병 한국 첫 발생:
자본주의가 부추긴 질병의 확산

이 글은 2019년 5월 9일 발행한 기사를 개정증보한 것이다. 당시 기사 발표 이후 한 달이 안 돼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고 이제 한국에서도 발병이 확진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9월 17일 파주에서 확진됐다. 국내 첫 발생이다. 같은 날 경기도 연천군에서도 의심축이 신고됐는데, 18일 오전 확진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잠복기가 최소 4일에서 최대 19일(평균 7일~10일)이다. 따라서 파주 농장에서 발병하기 약 일주일 전에 돼지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것이다. 이번 발생이 즉각 확대될지 몇몇 농가에서 멈출지는 앞으로 2주간 발생 추이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된 경로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다. 올해 5월 30일 북한에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야생 멧돼지를 통해 남하했거나, 태풍 링링이 질병 전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링링은 서해안을 지나 평양 바로 오른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환경 저항성이 강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휴전선을 넘어 남한까지 퍼졌을 수도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된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식품을 통해 유입됐을 수도 있다.

사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올해 5월 30일 북한에서의 발생 이후 동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었지만 북한과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국제화되면서 지역적 풍토병이 세계적 전염병이 될 위험을 키웠지만, 국가간 갈등과 경쟁이 지속되면서 필요하고 가능한 수준의 협력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가축 방역 관련 협력은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정부가 동참하는 대북제재들 때문에 거의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첫 발생을 계기로 중국에서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에서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해 8월 3일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녕성(선양시)에서 처음 발견됐고, 4개월 만에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첫 발병 보고 6개월 만에 공식 보고만 100차 발생을 기록했고, 돼지 1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4월 12일부터 25일 사이에 중국에서 7건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중국에서 길러지는 돼지는 세계 전체 돼지의 절반을 넘는다(2016년 기준 약 4억 5700만 마리). 따라서 중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유행은 국제적인 돼지고기 공급 부족을 낳았고, 돼지고기 가격을 인상시키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올 6월 중국의 돼지 사육마릿수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8퍼센트 줄어든 약 3억 4700만 마리로 추정했다. 약 1억 1000만 마리가 사라진 것이다. 중국 내 돼지고기 가격은 1년 전 같은 달 대비 올 6월 33퍼센트나 상승했고, 8월엔 46.7퍼센트 상승했다. 8월 기준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가격은 모두 11.6~12.5 퍼센트 상승했다. 계란 소비가 늘며 계란 가격도 6월 기준 16.8 퍼센트나 상승했다. 가격 부담은 중국의 노동자들과 평범한 민중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다.

한편, 중국은 최대 돼지 소비국이기도 하다. 중국은 돼지 수 급감으로 더 많은 돼지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수입량이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6.3퍼센트 증가했다.

네덜란드 은행 라보뱅크는 중국의 고기 수입량이 늘어남에 따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육류 수입국들에서 고기가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단지 돼지고기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단백질을 포함하는 것이다. 예컨대, 브라질은 최근 대중국 돼지고기 수출을 늘려왔는데 돼지고기뿐 아니라 소고기와 닭고기 수출도 증가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한 번 퍼지면 손쉽게 박멸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향은 상당히 오래갈 것이다. 미국 최대 육류가공업체 타이슨푸드의 최고경영자(CEO) 노엘 화이트는 “현 상황은 육류 업계에 특이하고, 어쩌면 전례가 없는 시기”라며 “육류 업계에 39년을 몸담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처럼 세계 단백질 생산과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사건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자본가들과 정부들은 이 재앙을 자국의 경제에 대한 위협인 한편 돈을 벌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단백질 공급 가격이 오르면 평범한 노동자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고통을 당할 것이다.

10년 넘게 확산 중인 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약 100년 전 아프리카 지역의 야생멧돼지에서 발견된 풍토병이다. 아프리카의 야생멧돼지에게는 큰 증상이 없지만, 사육돼지에게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야생멧돼지도 이 병에 걸릴 수 있다. 사육돼지가 야생멧돼지와 직접 접촉하거나 피나 부산물 등을 접촉하면 질병이 전파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선 야생멧돼지를 문 물렁진드기가 사육돼지를 물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이 질병의 확산을 통제하려면 야생멧돼지 관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질병이 아프리카를 벗어나거나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뛰어 발병하는 데에는 인간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멧돼지나 물렁진드기가 스스로 바다를 건너거나 사막을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질병에 직접 걸리지는 않지만, 감염된 사육돼지나 돼지고기의 부산물을 이동시켜 질병을 전파하는 구실을 해 왔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환경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것도 질병이 퍼지기 쉽게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가열하지 않은 돼지의 고기와 부속물에 바이러스가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다. 냉장육에선 100일 넘게 생존하며, 냉동육에선 1000일 넘게 생존한다. 이 때문에 장거리 수송이나 장기간 보관에도 쉽게 사멸하지 않고 감염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 무역량이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세계적 체제로 발전하면서 아프리카의 풍토병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됐다.

위험이 현실이 된 첫 사례는 1957년과 1960년 포르투갈에서의 발병이다. 1960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포르투갈을 넘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 전파됐다. 이후 30년이 넘는 방역 노력 끝에 1999년(포르투갈)과 1995년(스페인)에야 완전히 근절할 수 있었다.(예외적으로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섬에는 1982년 발병한 이래 현재까지 풍토병으로 남아 있다.)

2007년에 벌어진 두 번째 확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경유한 선박 한 척이 조지아의 포티 항에 들어왔는데, 이 배에서 나온 잔반을 그 지역 돼지에게 먹인 것이 발단이었다. 조지아 전역을 거쳐 동유럽, 서유럽, 러시아, 중국, 동아시아까지 10년 넘게 질병이 퍼지고 있다. 첫 확산 때보다 질병 전파 속도가 더 빠르고 범위도 더 넓다.

2007년 조지아 전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졌고, 같은 해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 나라(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로 퍼졌다. 특히 러시아는 국토가 동유럽에서 아시아까지 걸쳐 있고 최대 돼지 생산국인 중국과도 인접해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질병의 전파는 멈추지 않았다. 2012년 우크라이나, 2013년 벨라루스, 2014년 폴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지로 확대됐다. 2017년에는 루마니아와 체코까지 발병국에 포함됐다. 결국 2018년 중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졌고, 올해 몽골과 베트남에서도 발병 사례가 생겼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북한, 그리고 한국까지 추가해 현재 유럽 나라 15곳, 아시아 나라 8곳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질병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퍼졌는데, 첫째는 야생멧돼지들과 사육돼지 사이의 감염을 통한 전파이고, 둘째는 돼지부속물을 인간이 장거리로 수송해 “점프”가 일어난 것이다. 감염된 돼지부산물을 야생멧돼지가 먹거나 사료로 사육돼지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질병을 퍼뜨렸나

특히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2007년 유럽의 조지아에서 3000킬로미터 떨어진 체코까지 전파되는 데 11년이 걸렸는데, 중국에서는 북부의 선양에서 약 2100킬로미터 떨어진 상해 남부까지 고작 3주가 걸렸다.

중국에서 질병의 전파 속도가 이토록 빨랐던 데에는 지역적 불균등성과 시장에 내맡겨진 돼지고기 공급 체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체제의 이윤 논리와 국가 간 경쟁이 질병의 확산을 막지 못하게 한 걸림돌이 됐다 ⓒ출처 NRCS

첫째, 중국 사육돼지의 52퍼센트는 소규모(30두 미만) 농장에서 사육된다. 이런 농장은 집 가까운 곳에서 돼지를 기르기 때문에 ‘뒷마당 농장’이라고 불린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로 더 큰 규모의 기업 농장이 늘었지만 여전히 절반은 뒷마당 농장이다. 이런 농장은 차단 방역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고 돼지를 잔반을 먹여 기른다. 전염병이 발생해도 신고하지 않고 심지어 도축하거나 매매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중국 동부의 헤이룽장성에서 키우던 돼지들이 약 2000킬로미터 떨어진 허난성으로 수송된 뒤에야 감염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둘째, 돼지의 생산과 공급이 완전히 시장에 내맡겨져 있다. 중국 내에서는 지역별로 돼지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 그래서 돼지 값이 비싼 지역으로 2000킬로미터 이상 장거리 수송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감염된 돼지를 몰래 팔려고 외지의 냉동 가공 공장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말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승객들이 휴대한 만두, 순대, 소시지 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 이는 감염된 돼지가 도축되어 팔리거나 가공됐음을 뒷받침한다.

셋째, 감염된 돼지의 피로 만든 사료도 전파 경로가 됐을 수 있다. 돼지의 혈액에서 단백질을 얻는 ‘혈장 단백질’은 섭씨 121도에서 15분간 멸균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이런 제조공정을 지키면 단백질 성분이 파괴돼 단백질 함량 기준을 맞추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섭씨 8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짧은 시간만 열처리를 함에 따라 바이러스가 사료에 포함돼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외에도 지난해 8월 중국 동부 해안을 덮친 태풍 룸비아로 인한 홍수, 오염된 사람과 차량으로 인한 전파, 전문성을 갖춘 수의사의 부족, 아프리카돼지열병 진단 실험실 부족 등도 전파 확산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유럽 나라들에서는 대부분 사육돼지보다 야생멧돼지의 발병 보고 사례가 많다. 사육돼지로의 전파를 막기 위해 야생멧돼지들에서 발병을 감시하고 대책을 세워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보고한 야생멧돼지의 발병 사례는 단 한 건뿐이다. 야생멧돼지 발생이 실제로 적었을 가능성보다는 사실상 야생멧돼지 관리를 거의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지적했듯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박멸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제 위기와 국제적 경쟁은 중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많은 위험에 대한 예방적 조처에 더 투자하기를 꺼리게 만들고 있다.

50여 년 전에 이미 그 위험이 잘 알려진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지속적 확산은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고 위험 요인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다.

이 질병이 소비자 물가 인상 등 자본주의 경제에도 영향을 끼치므로 뒤늦게나마 여러 국가가 나름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이 질병의 특성상 단기간에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고 노동계급이 고통받게 될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동물 전염병의 확산은 국가간 경쟁·갈등과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중국은 돼지고기 수입을 늘리는 와중에도 미국과의 무역 전쟁의 일환으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국가간 갈등이 심해지면 질병 정보에 대한 공유도 줄어들고, 질병을 통제하기 위한 협력도 요원해질 것이다.

유럽 지역에선 야생멧돼지의 이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국경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국가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시도는 자본주의에서 국경을 둘러싼 갈등과 이민 통제와 연결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질병 같이 인류가 협동해서 해결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이윤추구와 경쟁이라는 속성은 이런 문제를 악화시킨다.

자본주의가 질병 통제력을 크게 잃어 버리는 때가 전쟁의 시기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국가간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까지 치달을 때 생길 위험은 심각할 것이다. 이미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질병들도 큰 위협이 될 수 있고, 최악으로는 질병을 무기로 사용하는 일조차 벌어지고도 남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간 갈등이 지속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끝내지 않는 한 이런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협력하고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선 불안정하고 무계획적인 시장 경제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계획된 경제가 필요하다.

노동계급은 직접적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할 잠재력도 갖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발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도 발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