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어느 정도 포함돼 있음을 미리 밝힌다.


살아 있는 타인과 결합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는, 인간의 건전한 정신을 충만케 하는 절대적인 것이다.1

2019, 김보라 감독, 138분
인간 본성은 사회 체제에 따라 변화하지만, 역사적으로 연속되는 특성을 갖는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협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 의지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들 간의 경쟁을 강요하고 사회적 관계들을 단절시키려 하는 체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말고는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2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체제다. 비인간적인 체제에 사는 개인들은 경쟁과 파편화의 압력 때문에 극심한 소외를 겪는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에서 살아 내기 위해 개인들은 어떻게든 타인과 모종의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거나, 소외를 손쉽게 잊게 해 주는 각종 모르핀들을 찾아 헤매곤 한다. 하늘을 나는 동물인 새로서 존재하기 위해 초당 50회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부단히 애쓴다. 〈벌새〉는 그런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그려 낸 영화다.

은희

은희는 관계에 목마른 아이다. 영화 첫 장면은 엉뚱한 집을 잘못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나 여기 왔다”고 외치는 은희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 중반부에서 여러 번 부르지만 돌아보지 않는 엄마를 보며 답답해 하는 은희의 모습이 비슷하게 반복된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놀라거나 두려움을 느끼면 자기도 모르게 “엄마야!” 라고 외친다. 언제나 내 편일 것 같은 사람인 엄마를 위급한 상황에 본능적으로 부르는 거다. 하지만 은희에게 엄마는 늘 내 편인 사람이 아니다.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관계처럼 보이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은희는 불안함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은희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은 매우 불안정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까지 하고, 자식들에게 대원외고와 서울대만을 이야기하는 은희의 부모는 자신들의 계급 상승 욕구를 자식들이 대신 이뤄 주길 바란다. 은희의 언니는 그 욕구에 부응하지 못해서 부모 눈 밖에 났고, 우등생인 오빠는 부모의 전폭적 지지와 지원을 받는다. 심지어 오빠가 은희를 상습적으로 폭행해도, 부모는 은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영화에는 은희 가족의 식사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하지만 화목해 보이기는커녕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은희에게 가족은 ‘비정한 세상의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학교에서 맺는 관계들은 불안을 넘어 위태해 보이기까지 한다. 은희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 누구도 은희가 그리는 만화를 봐 주지 않는다. 담임 선생은 늘 서울대만을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아이들에게 “노래방 다니고 연애하는 날라리들의 이름을 적어내라”고 한다. 단짝 친구와 노래방도 다니고 남자친구와 연애도 하는 은희는 날라리로 찍혀 학교라는 공간에서 배제되고 밀려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집과 학교에서 위태로운 관계 속에 사는 은희는 끊임없이 다른 관계들에 집착한다. 단짝 친구와 함께라면 콜라텍도 가고 담배도 피우고 도둑질도 한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아이를 만나는 걸 목격하고 상처받지만, 다시 그 남자친구를 만나 주고 기념일 선물까지 준비한다. 누군가와 이어진 채 살고 싶은 은희의 마음은, 잠시나마 자신의 몸의 일부였다 수술로 떨어져 나간 종양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할 만큼 간절하다.

그런 은희의 삶에 영지가 나타난다.

영지

오랫동안 휴학하고 노동운동을 하는 대학생 영지는 아르바이트로 은희가 다니는 한문 학원의 강사로 일하게 된다. 수업 내용인 어떤 글귀 구절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를 실천이라도 하듯, 영지는 등장인물들 중 처음으로 은희의 마음을 물어봐 준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임에도 하대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고, 학생들을 위로해준다고 노동가요 ‘잘린 손가락’을 불러 주는 영지가 은희 눈에는 특이하고 낯설지만, 은희는 영지에게 점점 마음을 연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단짝 친구와 싸워서 힘들다는 이야기, 매일같이 친오빠에게 맞는다는 이야기 등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던 속 이야기들을 꺼내 놓는다. 그런 은희에게 화답하듯 영지도 은희에게 속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며 둘은 얼굴만 아는 관계가 아닌 마음도 아는 관계를 맺는다.

재개발로 쫓겨나게 된 철거민들의 현수막 글귀들을 보며 ‘불쌍하다’고 하는 은희에게 영지는 함부로 불쌍해 하지 말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자신도 은희를 동정하거나 측은해 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서 함께 아파해 줄 뿐이다. 그리고 은희에게 더는 맞지 말라고 말해 준다. 누군가가 때리면 절대 맞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말해 준다. 마치 자신의 책상에 꽂혀 있는 책들에 쓰여 있는 내용들처럼,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실천했던 것처럼.

은희는 영지 말대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맞서 대든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무조건 은희를 꾸짖는 부모에게 당차게 대들고, 또다시 자신에게 손을 대려는 오빠에게 매섭게 달려든다. 자신을 떠나 다른 여자아이를 만났어도 눈감아 줬던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사회경제적 계급을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자 남자친구를 과감히 차 버리기도 한다.

영지는 어느 날 은희 곁을 훌쩍 떠난다. 영지와 계약 관계였을 뿐 인간적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던 학원 원장은, ‘영지 선생님 어디로 갔냐’는 은희의 물음에 성의 없이 잘못된 답을 해 줘서 은희와 영지의 관계가 지속되는 걸 의도치 않게 방해한다. 사라진 영지를 찾지 못해 낙담한 은희가 학교에 우두커니 있을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성수대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몇 일 뒤 은희는 영지에게서 온 소포를 받는다. 소포는 영지가 은희에게 주는 스케치북 선물이었다. 은희는 소포에 적혀 있는 주소를 찾아갔지만, 그 집에는 “어떻게 그 큰 다리가 무너지냐”고 흐느끼는 영지의 어머니와 영지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만 있었다. ‘그 큰 다리’가 끊어지면서 은희와 영지의 관계도 끊어졌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이윤 추구를 위한 계약 관계만 중시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부실하게 만들어 은희를 소외에 시달리게 한 이 사회는, 아예 부실하게 지어진 다리를 무너뜨려 은희가 가까스로 찾은 삶의 소중한 동반자를 죽여 버렸다.

영화는 영지가 스케치북과 함께 보낸 편지 내용을 되새기는 은희의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 된다. 은희와 영지의 관계는 영지의 죽음으로 단절된 듯하지만, 은희가 영지를 기억하는 한 둘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단절과 소외의 극복

영화에는 중요한 단절의 이미지가 두 차례 나온다. 첫 번째는 영지가 은희에게 불러 준 ‘잘린 손가락’ 노래다. 노동자가 소외된 노동을 하다 자신과 자신의 신체 일부가 단절되는 경험을 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비극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이윤을 생산하며 착취당하다 신체가 잘려 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이 사회가, 한 소녀가 어떠한 관계의 단절을 겪으며 사는지 관심 있을 리가 없다. 영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소외인 노동의 소외를 이야기하는 노동가요를 불러 주면서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를 겪는 은희를 위로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왼손잡이인 영지와 은희는 서로 연대하면서 소외를 극복한다. 함부로 서로를 가엾이 여기지 않고 함부로 서로를 연민하지 않으면서, 그저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소외를 이겨 낸다.

두 번째는 성수대교 붕괴다. 앞서 언급했듯 영지의 어머니는 영지를 찾아 온 은희에게 “어떻게 그 큰 다리가 무너지냐”고 흐느낀다. 그런데 은희는 예상 외로 울지 않고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 관계들을 경험해 온 은희는 어쩌면 관계의 붕괴를 늘 염두에 두고 마음의 대비를 해 왔을지도 모른다. 또는 다리가 무너지면서 물리적 관계는 붕괴됐지만, 영지와 나눴던 이야기들과 영지의 존재를 기억함으로써 영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어서 은희는 담담했을지도 모른다. 영지를 만나기 전의 은희였다면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영지를 만나고 변화하고 성장한 은희는 새로운 영지를 찾아 나설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누군가의 영지가 돼 줄 것이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고 영지에게 묻던 은희는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갈 것이고,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누군가와 함께 답을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소외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연대하며 소외를 극복해 낼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맺으며

영화는 1994년 서울이라는 특정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며 힘들어 한 경험이 있고, 누구나 소외를 겪으며 살아간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은희가 영화 속에서 겪은 상황과 감정을 비슷하게 겪으며 산다. 그런 점에서 영화 공식 소개 문구처럼 〈벌새〉는 보편적 이야기다. ‘그 큰 다리가 무너진’ 1994년이든, ‘그 큰 배가 뒤집힌’ 2014년 이후 5년이 지난 지금이든 사람들은 단절된 관계에서 소외를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사람들은 은희처럼 마음을 나눌 관계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런 단절과 소외의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묻는 영화 〈벌새〉를 추천한다.


  1. 에리히 프롬, 문국주 역, 1959, 『가치, 심리학과 인간존재』(불복종에 관하여, 범우사, 1996), 185쪽.

  2.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김태호 옮김, 1848, 『공산당 선언』(공산주의 선언, 박종철출판사, 1998),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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