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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보육체계 개편안 — 빛 좋은 개살구

조삼모사식 보육 대책에 아이들과 부모, 보육교사들의 처지는 거의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미진

문재인 정부가 ‘맞춤형 보육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보육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새 보육체계는 내년 3월부터 모든 어린이집에 적용된다.

박근혜 정부가 시행한 ‘맞춤형 보육제도’는 홑벌이 가정 자녀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하고(맞춤반), 맞벌이 가정의 자녀만 12시간 이용 가능하게 한(종일반) 차별적 제도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한다. 개편안에 따르면, 모든 가정의 아이들이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기본보육을 받고, 오후 4시~저녁 7시 30분까지는 연장보육을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번 개편안으로 “장시간 보육이 필요한 영유아 가정은 눈치 보지 않고 필요한 시간까지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연장보육 전담교사 배치로 “보육교사 근무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민주당도 “‘자신이 죄인 같다’는 워킹맘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정책”이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이 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든 아동의 온종일 돌봄이 가능”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자화자찬은 참말이 아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연장보육 방안

우선, 기존의 차등 지원 체계를 계승하고 있다. 복지부의 시행규칙에 따르면, “0~2세반은 맞벌이, 다자녀, 취업 준비 등 장시간 보육 필요가 확인되어야 한다.” 즉, 연장보육 신청에 자격 제한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맞벌이 인증 등을 요구하면, 도로 맞춤형 보육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연장보육 전담교사 지원으로 보육서비스가 크게 향상될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도 과장된 얘기다.

연장보육 신청자가 5명 미만이면 정부는 어린이집에 전담교사 지원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연장보육 전담교사 신규 채용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연장보육 전담교사가 최소 2만 9000명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2020년 보육 예산안을 보면, 월급이 111만 2000원에 불과한 4시간짜리 시간제 전담교사 1만 2000명만 신규채용 할 예정이다.

부족한 인력은 “담임교사의 연장근로나 보조교사의 전담교사 겸임”을 허용해 메울 계획이다. 심지어 어린이집 원장도 전담교사로 근무할 수 있도록 열어 놨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 원장들은 연장보육 전담교사를 신규 채용하기보다 기존 담임교사들에게 몇 푼의 수당을 쥐어주고 연장근무를 시키려 한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원장들은 자신을 연장보육 전담교사로 등록해 놓고 담임교사나 보조교사에게 연장보육을 떠넘기고 전담교사 지원비를 가로챌 수도 있다. 돈을 최대한 안 들이고 연장보육을 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술책이 이런 문제들을 양산할 수 있다.

보육교사 처우 개선 없음

문재인 정부는 보육교사 8시간 근무제와 휴게시간 보장을 약속해 보육교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새 보육체계 개편안은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에 짓눌린 보육교사들의 고통을 줄여 주지 못한다.

가령, 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는 ‘어린이집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문구만 형식적으로 추가됐을 뿐 강제 조처는 없다. 갑질의 끝판왕인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자발적인 근로기준법 준수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복지부가 마련 중인 ‘대면보육 7시간+휴게시간 1시간+행정업무 1시간’ 근무 방침도 문제적이다.

보통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7시간이나 돌보면 교사들은 진이 빠져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된다. 7시간 대면보육 이후, 1시간 만에 행정업무를 끝내라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보육교사들은 각종 일지 작성과 행정업무가 너무 많아 서류뭉치를 싸들고 집에 가서 나머지 업무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허울뿐인 1시간 휴게시간 제도는 보육교사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다. 보육교사들은 안전 문제 때문에 한시도 교실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몇 분만 교실을 비워도 아동학대범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교실을 맡아 줄 대체 교사도 없고, 독립적인 휴게 공간도 없는데 누가 마음 편히 휴게시간을 이용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보육교사 휴게시간이 의무화됐지만, 쉴 수 있는 실제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휴식은커녕 1시간 공짜 노동만 늘어난 셈이 됐다. 오죽하면 휴게시간을 없애라는 요구까지 나왔을까.

복지부는 시간제 보조교사를 늘렸다고 하지만, 전일제 보육교사의 근무조건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조 교사를 고용해도 업무 규정이 불명확해 원장들이 자신의 업무 보조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휴게시간 사용 내실화를 위해 교사 한 명이 두 개 반을 담당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삼모사식 방안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법적으로 교사 1인이 돌볼 수 있는 아동 수는 3세 15명, 4세 이상 20명이다. 한 교사가 휴식하는 동안 동료 교사 혼자서 30~40명의 아이를 돌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안전하고 질 좋은 보육서비스”인가?

누구의 삶이 달라졌나? 2018년 1월 24일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한 문재인 ⓒ출처 청와대

양질의 보육 확대와 거리가 멀다

종합해 보면, 문재인 정부의 보육체계 개편안은 번지르르한 말 포장과 달리 보육교사 처우 개선 요구를 반영하지 않았다. 보육교사의 처우가 열악한데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차등 지원에 기초한 연장보육 방안도 이전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안을 내놓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며 더 나은 개선책을 요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돌봄 서비스 확대와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사회서비스원 정책에서도 후퇴를 거듭해 개혁 염원을 배신한 바 있다.

보육예산 대폭 확대, 정규직 보육교사 대량 고용, 8시간 근무 연속2교대제, 교사 한 명당 아동 수 줄이기 등 보육의 질 개선에 진짜 효과가 있는 방안을 요구하며 투쟁해야 한다. 정부 직영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폭 확대하고 양질의 보육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라고도 촉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