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공동사무국장, 주간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인 찰리 킴버가 8월 22~25일 방한해 노동자연대와 〈노동자 연대〉 신문이 주최한 ‘맑시즘2019’에서 강연을 했다. 이 글은 킴버가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한 강연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팀이 덧붙인 것이다.


오늘날 혁명적 좌파의 위기에 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주로 유럽 상황을 다루겠지만 다른 지역 상황도 함께 다루겠습니다.

'맑시즘2019' 포럼에서 연설하는 찰리 킴버 ⓒ조승진

정확히 40년 전인 1979년 크리스 하먼은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유럽 각지에서 혁명적 좌파들이 전반적 위기에 빠졌다. 여러 나라에서 잇달아 최대 혁명적 좌파 조직이 정치적 혼란에 빠져 마비됐고 그 결과로 분열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와해됐다.”

안타깝게도 지금 상황에 대해서도 거의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위기가 유럽에 국한되지 않을 뿐입니다.

미국에서는, 2001년까지 우리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일원이던 미국 국제사회주의단체(ISO)가 갑작스럽게 자진 해산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혁명적 좌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반자본주의신당(NPA)은 실로 장기 침체라 할 만한 오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노동자투쟁당(LO)도 최근 중대한 사태 변화[노란 조끼 운동]에 전혀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뿐 아니라, 시리자에서 왼쪽으로 분열해 나와 더 좌파적인 정치를 하려 했던 민중연합(LAE)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2018년 총선 때 기존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민주당(PD)보다 좌파적인 선거 연합이 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남아나지 못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자유와 평등’(LeU)은 주요 세력과 인물들이 모두 탈퇴했습니다. 기존 공산당과 재건공산당을 포함하는 더 좌파적인 선거연합인 ‘민중에게 힘을’(PaP)은 선거에서 고작 1.5퍼센트를 득표하고 심각하게 분열했습니다. 두 연합 모두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례도 많지만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점은 혁명적 좌파가 성장하는 것이 마땅해야 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혁명적 좌파의 성장이 마땅해야 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심각한 위기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사회주의로 대체돼야 한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깨달아야 마땅한 시기입니다.

둘째, 개혁주의도 위기 상황입니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앞서 말씀드린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심각한 위기에 시달리고 있죠.

그리스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래 양대 정당 중 하나이던 사회당(PASOK)이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집권당이던 사회당이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득표율 5위로 탈락해 2차 투표 문턱도 못 밟는 참패를 맛봤습니다. 독일에서는 주요 정당이던 사민당(SPD)이 2017년 총선에서 50년 이래 최악의 득표를 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SPD는 녹색당에게 밀립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하고 주류 개혁주의도 심각한 위기입니다. 그러니 혁명적 조직이 상당히 성장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나라들에서 혁명이 일어났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많은 노동자·청년·학생들을 자신 있게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능력이 있고 규모가 상당한 혁명적 조직이 번성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은 사실 저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도 해당합니다. SWP도 분열, 혼란, 당원들의 탈당으로 손실을 입는 시기가 있었고 5년 전보다 규모가 줄었습니다.

조건

위기의 원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원인은 객관적입니다. 즉, 혁명가들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원인은 혁명가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방기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노동쟁의의 수위가 1970년대 중반 이래 전반적으로 낮다는 것입니다.

파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목할 만한 매우 중요한 파업 투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례는 수십 개나 될 것입니다. 온갖 쟁점을 둘러싸고 노동계급 대중의 대규모 운동들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다만, 조직 노동계급이 계급으로서 지속적으로 반격한 시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혁명적 좌파는 일터에서 계급투쟁이 확산되는 시기에 성장합니다. 1860년대, 1880년대, 러시아 혁명 발발을 전후한 1917~1923년, 1930년대, 1967~1976년이 그런 시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시기가 조금 다를 것입니다.

나라마다 그 시기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된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즉, 노동쟁의가 아주 많지 않고, 노동계급 투쟁이 벌어져도 일터에서의 투쟁보다는 거리 시위로 나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기가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크리스 하먼은 앞서 말씀드린 40년 전에 쓴 글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인내심을 갖자. 언젠가 투쟁이 다시 분출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있을 것이고,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좌파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오늘날 노동계급에 뭔가 문제가 있다거나, 노동계급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식의 온갖 주장이 난무했습니다. 노동계급이 불안정 노동에 완전히 짓눌려 투쟁할 수 없게 됐다거나, 노동계급의 구성이 바뀌어 예전처럼 대중 투쟁을 다시 벌일 수 없게 됐다고 말이죠.

시간 제약상 여기서 이런 주장을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맑시즘’ 포럼에서 한 것처럼 오늘날 노동계급의 성격에 관한 논쟁에 뛰어드는 것은 어느 나라 혁명가들에게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쟁을 할 때는 모든 것이 변했다거나, 반대로 노동계급의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함정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 상황에 비추어 한 가지 말씀만 드리자면 노동계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주장은 1860년대부터 나왔습니다. 그때도 영국 노동자들이 ‘너무 잘 산다’, ‘변했다’, ‘집이 있다’, ‘좋은 옷을 입는다’, ‘그래서 투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150년 전부터 그런 주장이 나왔던 것입니다.

사실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변합니다.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사회의 근본적 계급 관계가 바뀌느냐 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혁명적 또는 급진적 좌파 위기의 둘째 원인은 개혁주의의 재탄생, 재구성, 부활입니다.

아시다시피 개혁주의의 원인은 자본주의가 가하는 압박에 있습니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듯이 노동자의 의식은 모순돼 있습니다. 노동자는 자본주의에서 겪는 경험과 집단행동 경험을 통해 체제를 비판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의 경험은 이와는 다른 의식을 노동자에게 심어 주기도 합니다. 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거나, 사장과 노동자, 군림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거나, 세상을 바꾸는 길은 자신의 주변부터 조금씩 바꾸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그런 예입니다.

이런 두 모순된 생각이 노동자의 머릿속에 공존하며 줄다리기합니다. 노동자가 투쟁과 정치적 논쟁을 경험하면서 이 모순은 혁명적 방향으로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모순된 의식의 조직적 표현입니다. 개혁주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모순을 고착시킵니다. “그렇다. 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 시스템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생명력이 질깁니다. 개혁주의는 정치 무대에서 사라진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살아납니다.

개혁주의는 혁명이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떠올려 봅시다. 그전까지는 러시아에 이렇다 할 개혁주의 세력이 없었는데도 2월 혁명 직후 개혁주의가 급부상했습니다. 이 또한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입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개혁주의 정당들은 정치적으로 파산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이나 스페인 사회당(PSOE)처럼 긴축 정책을 직접 추진하거나 영국 노동당처럼 ‘연성 긴축론’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당시 노동당 대표 에드 밀리반드가 주장한 ‘연성 긴축론’은 사실상 ‘긴축 정책을 약간 손볼 수야 있겠지만 긴축 자체는 꼭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새로운 개혁주의 조직이 등장했고, 둘째, 몇몇 기존 개혁주의 정당이 눈에 띄게 부활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사회당이 파산하고 시리자가 부상했는데, 시리자 또한 개혁주의임이 드러났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사회당이 한동한 추락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스로를 개혁주의 조직으로 선보인 포데모스가 사회당을 대체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이 붕괴 직전까지 갔고,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불굴의 프랑스’가 새로운 형태의 개혁주의로 맹렬하게 부상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새로운 개혁주의 조직이 등장한 사례입니다. 기존 개혁주의 정당이 부활한 가장 명백한 사례는 단연 영국 노동당입니다. 영국 노동당은 2015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상당히 침체했지만, 완전히 뜻밖에 제러미 코빈이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특히 코빈 자신에게 뜻밖이었을 것입니다.) 코빈이 정말 흥미로운 점은 오래된 정당의 당대표 선거에 도전하면서 신당을 창당하기라도 하듯 선거 운동을 벌였다는 겁니다.

개혁주의가 새로 등장하거나 부활한 얘기에 덧붙일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앞서 지적한 노동쟁의의 수위가 저조하다는 맥락 속에서 혁명적 좌파의 많은 부분들이 새로운 개혁주의 조직으로 휩쓸려 들어갔습니다. 나라별 사례를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겠지만, 아까 말씀드린 조직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혁명적 좌파였던 많은 사람들이 시리자(그리스), 포데모스(스페인), 노동당(영국)에 합류했습니다.

정말로 특별한 사례는 미국에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은 혁명적이기는커녕 진정한 의미의 개혁주의 정당도 아니고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 정당입니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의 선거 운동이 열풍을 일으키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이 당선되면서, 한때 혁명적 좌파의 영향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거나 발을 걸쳤습니다.

시리자에 입당하지 말고 독립적 혁명적 조직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동지들이 겪은 애로를 떠올려 보십시오. 스페인에서는 국제사회주의경향 소속의 자매단체인 ‘엔루차’가 와해됐고, 그 대부분이 포데모스에 입당했습니다.

영국에서 SWP가 코빈에게 잃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첫째, 코빈 쪽으로 넘어갔을 법한 사람 상당수가 진작에 SWP에서 나갔습니다. 둘째, 그럼에도 그후 SWP에 가입한 당원의 일부는 이제 넌지시 이렇게 얘기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나중에 노동당 내 선거에서 코빈에게 투표해야 할 때를 대비해 아직 노동당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어요.”

돌파구

현재 혁명적 좌파가 위기에 처한 첫째 요인을 계급투쟁 수준, 둘째 요인을 개혁주의의 회생으로 꼽았습니다. 셋째 요인은 대중운동이 벌어졌지만 돌파구는 열지 못했던 것입니다.

21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반자본주의 운동이 분출했고, 그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몇 년 후에는 ‘점거하라’ 운동 등이 분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참가한 거대한 운동들이었습니다. 긍적적이고 중요한 운동이었으며, 혁명가들이 핵심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 혁명적 좌파들이 그런 운동에서 중추적 구실을 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했던 것은 완전히 옳았습니다.

국제사회주의경향은 혁명가들이 소수이더라도 무슬림·이주민을 단호하게 방어하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 건설에 나서면 제구실을 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스페인·미국 등 조직이 큰 위기를 겪거나 없던 곳에서 이렇게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올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영국 시위(3.17) 모습 ⓒ출처 가이 스몰만

영국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실로 규모가 엄청난 대중 운동이었습니다. 아마 거리로 나온 사람 수로 보면 200년 이래 최대였을 것입니다. 이 운동은 지속적으로 영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영국 지배계급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줬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고 실제로 이라크 전쟁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부가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하려고 이라크에 파병하자, 반전운동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환멸을 느꼈다는 것을 압니다.

‘점거하라’ 운동 역시 중요한 운동이었지만 지속적인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한때 이런 운동들은 정당이나 노동조합을 문제 삼는 자율주의 사상이 유력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아직도 노동계급이나 학생들 사이에 토론 거리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훨씬 두드러진 경향은, 운동이 꺾이자 사람들이 새로 떠오른 개혁주의 정당들에 합류했다는 것입니다.

차별

넷째 요인은 차별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혁명가들의 태도 문제입니다. 즉, 여성 차별, 인종 차별, 성소수자 차별을 혁명가들이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랑스럽게도 우리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이 문제를 훌륭하게 다뤄 온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가들이 모든 형태의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함을 절대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많은 동지들은 노동자연대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돼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접했을 겁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 위원장을 모범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모든 차별과 천대에 맞설 수 있는 “인민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레닌은 말합니다.

달리 말해, 레닌은 정치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러시아에서 유대인 차별, 여성의 처우, 소수 종교 차별 등에 맞서지 않으면 진정한 혁명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성 차별, 인종 차별을 계급 관계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더 넓은 맥락과 분리하고 별개 문제로 취급하는 주장이 차별에 관한 논쟁을 점차 지배했습니다. 그 결과, 계급투쟁을 무기로 갖가지 문제를 놓고 싸우는 노동계급 운동이 필요하다는 사상에서 이반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우리 국제사회주의 전통은 차별 문제를 결코 일터에서의 노동계급 투쟁 문제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문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할 때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파업을 하면 되겠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면 알아서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문제가 해결될 거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종 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의 피해자가 어떤 계급 소속이든 우리는 그 차별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계급 전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야 하며, 차별에 맞서고 차별을 근절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계급투쟁이라는 방식임을 주장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지 않으면, 차별 문제를 다룰 때 계급 정치와 결별하고 개인적 투쟁으로 회귀하는 것을 열어 두게 됩니다.

ISO

미국 ISO를 사례로 삼아 이런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ISO 해산이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기에 사례로 드는 것입니다.

미국 ISO는 핼 드레이퍼가 주창한 사상을 중심으로 모인 어떤 조직에서 1977년에 갈라져 나와 결성됐습니다. 핼 드레이퍼는 — 여러분도 아마 그의 책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통》[《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책갈피)에 수록]을 통해 접해 보셨을 텐데 —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매우 설득력 있는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매우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됐습니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개혁주의도, 당시 소련 사회도 대안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ISO는 결성 후 곧 국제사회주의경향에 가입했고, 그후 오랫동안 영국 SWP는 ISO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며 활동했습니다. 국제사회주의경향에서 ISO는 매우 중요한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나 ISO는 2001년 국제사회주의경향에서 분리했습니다. 직접적 사유는 ISO가 그리스 자매단체(사회주의노동자당 SEK)에 저지른 일[내분 일으키기]이었지만,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당시 전 세계에서 부상하던 반자본주의 운동의 중요성과 혁명가들이 이 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SWP 중앙위원회는 저를 1999년 11월 30일 시애틀 시위에 파견했습니다(당시 저는 중앙위원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시위는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이른바 ‘팀스터[미국 운수노조]와 거북이[환경 단체의 상징]’가 단결한 시위였죠. 노동계급 조직들이 환경, 무역 등 여러 문제를 놓고 행동하고 싶어한 청년들과 단결했습니다.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끝나고 ISO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우리는 오늘을 새로운 흐름이 시작된 날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하며 연설을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나치게 들떴던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ISO 대열은 쥐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상황을 마주한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마치 ‘너무 흥분하지 마, 찰리’ 하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맞서 벌어진 투쟁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부활을 알린 역사적 시위였다 ⓒ출처 Jim Levitt

ISO의 진정한 문제는 우리 주장에 절반만 동의하는 사람들과 혁명가들이 어떻게 함께 활동할 것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ISO는 공동전선 전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실제의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에 일조할 태세가 돼 있지 않은 채, 그 문제에서 자신의 조직을 중심 요소로 여기는 종파주의의 고전적 정의에 꼭 들어맞게 굴었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ISO 동지들이 있었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했다”고 주장했을 겁니다. 사실이긴 합니다. 예컨대 ISO는 사형제 폐지 운동에서 활동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혁명가가 아닌 사람들과 체계적으로 활동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트럼프 당선 직후에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트럼프 취임식 전부터 여성들이 대규모 행진을 벌일 것임이 명백했습니다. 그런데 ISO는 내부 문건에서 회원들에게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했다. 지금은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상황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리 시위에 참가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트럼프 반대 운동에 동참하자는 주장은 전혀 없었습니다.

한편 ISO는 종파주의를 사상적 기회주의와 결합시켰습니다. 즉, 실천에서는 공동전선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론에서는 여성 차별 등 여러 쟁점에서 후퇴했습니다.

특히, ISO의 핵심 인물 섀런 스미스는 여성 차별에서 남성이 득을 본다는 주장을 수용하는 쪽으로 기운 글을 썼습니다. 이 쟁점은 여성 차별에 관한 분석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가부장제 이론 지지자들 사이의 핵심 쟁점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득을 본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를테면 미국 백인 노동계급이 인종 차별로 득을 본다는 주장에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배후사정에 따라 2018~2019년 ISO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당시 명료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ISO에서는 인종차별 문제, 흑인 회원들의 권리 문제, 미국 민주당원들과 관계 맺는 문제를 두고 격렬한 내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ISO 특별 대의원협의회가 열렸는데, 거기에서 기존 지도부 전원이 교체됐습니다. 흑인 회원들에게 별도 부문조직 결성을 허용하는 문제, 대의원으로 선출되지 않은 흑인들에게 협의회 방청을 보장하는 문제, 흑인 회원들이 조직 내에서 받은 대접에 대해 지도부가 공식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는 문제 등이 그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이런 쟁점들의 옳고 그름을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임 지도부의 일원이 몇 년 전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혐의가 제기됐습니다.

ISO 회원들은 향후 행보를 두고 완전한 공황 상태에 빠졌고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조직 해산 여부를 투표에 붙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투표에서 70퍼센트가 조직을 완전히 해소하는 데에 투표했습니다.

ISO를 어떻게 평가하고 뭐라고 비판하든 간에, 회원이 1500여 명이나 되는 혁명적 조직이 미국에서 사라진 것은 전 세계 좌파에게 손실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례는 혁명적 조직이 차별 문제에 잘못 대응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교훈

남은 5분 동안 결론을 맺으면서 이와 다르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답변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차별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 일들은 차별 문제에 관해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차별에 맞선 모든 운동에 깊숙이 뛰어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 운동에서 가장 굳건하게 싸우는 투사가 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둘째, 단체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단체 내의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지는지에 관해 충실한 규칙을 세워야 합니다.

한국의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온갖 거짓말·음해·왜곡으로 점철된 역겨운 모함을 받아 왔다는 것을 알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 모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규칙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영국 SWP도 그런 문제로 다섯 차례 풍파를 겪었지만, 저희는 저희 규칙 전체를 개정하고 행동 수칙을 제정해 신입 당원에게 배포하는 자료집에 실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한 것은 매우 옳은 일이었습니다.

셋째로 정치적 명료함이 중요합니다. 그런 명료함은 마르크스, 레닌, 클리프의 저작을 모조리 탐독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동지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개혁주의, 노동조합 관료주의, 자율주의에 대처하는 데에 필요한 주장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주장들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사상을 명료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되도록 활동과 결합해야 합니다. 어떤 활동이 가능한지는 나라마다 다를 테지만,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십시오. 미국에서는 ISO 붕괴 이후 아주 소수, 그러니까 10~15명의 동지들이 우리 경향의 조직을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핵심 목표는 사상을 명료히 하고 ISO 붕괴 경험을 철저히 평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동지들은 2019년 3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조직해 냈습니다. ISO가 바깥 세계에 대해 외향적 태도를 취했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를 고작 한두 명의 개인이 보여 준 것이죠.

혁명적 정치, 단호한 행동으로 규모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11월 23일 홍콩 항쟁 지지 시위 ⓒ조승진

마지막으로, 우리 급진적 또는 혁명적 좌파 측이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배계급에게도 상황이 좋지 않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전 세계의 많은 지배계급이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심해지면 심해지지, 완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점이 되면 40년 전에 크리스 하먼 등이 말한 것처럼 투쟁 수위가 지금과는 질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를 갈구해야 하고 급진적 또는 혁명적 좌파들이 기회를 놓친 것을 개탄해야 하지만, 동시에 조직을 성장시키고, 새로운 사람을 조직에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단련시킬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하고, 광범한 계급투쟁에 개입할 모든 기회를 탐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지금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강력하게 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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