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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9 해외 마르크스주의자 강연:
트럼프,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사회당(DSA)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공동 사무국장, SWP의 주간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인 찰리 킴버가 8월 22~25일 방한해 노동자연대와 〈노동자 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9’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8월 22일에 킴버가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이날 강연을 통역한 천경록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나와 동시통역사이자 번역가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발제

먼저, 제가 강연을 할 수 있게 해 준 ‘맑시즘2019’, 주최 단체 노동자연대, 사회자, 통역자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맑시즘2019에서 연설하는 찰리 킴버 ⓒ이미진

저는 지구 반대편에서 왔지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동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빈곤, 인종차별, 여성차별, 환경 재앙에 맞서 함께 투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투쟁 속에서 우리는 단결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국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노동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노골적인 우파적 반동이 부상한 것입니다.

트럼프의 정책을 봅시다. 최근 몇 달 동안 트럼프 정부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피난 온 난민 어린이들을 짐승처럼 우리에 가뒀습니다. 트럼프는 미국 여러 주에서 여성들의 권리, 특히 임신·출산의 권리에 대한 공격을 부추겼습니다. 또, 트럼프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와 기후 재앙의 증거를 한사코 부인합니다.

트럼프가 최신식 무기를 동원한 핵전쟁 가능성을 들먹인다는 것은 한국에 있는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트럼프가 미국의 최고 부자들에게 막대한 돈을 퍼 주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트럼프는 법인세를 35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인하했는데, 이는 사회 최상층부 부자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줬습니다.

트럼프는 [그저 예외적 개인이 아니라] 더 광범한 사회적 추세의 일부입니다. 트럼프는 이 사회에서 가장 인종차별적이고 후진적인 부위를 고무합니다.

오늘날 이탈리아를 봅시다. 실질적 지도자인 마테오 살비니는 사회의 진정한 문제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난민과 로마인[‘집시’는 이들을 경멸조로 부르는 호칭이다]에게 극악한 인종차별적 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심각한 경제 위기의 시기에 전 세계 지배자들은 우리들이 서로를 혹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탓하게 하려 애써 왔습니다. 우리의 분노가 사회 최상층부의 부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정치인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브라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브라질 대통령인 ‘미니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도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려 합니다.

반사이익

그러면 어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일까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출처 Gage Skidmore

먼저 지적할 점은, 사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총 득표수에서는 6200만 대 6500만 표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총 득표수에서 뒤지고도 대통령이 된 경우가 미국 역사에서 처음은 아닙니다. 트럼프 전에도 네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오직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으로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미국인들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사람들을 잘 조직했기 때문에 이겼다는 겁니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에 투표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흑인 버락 오바마를 두 차례나 대통령으로 선출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다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2016년 대선 과정을 돌아보면, 미국의 권력자들이 커다란 불신을 받던 바로 그 때 트럼프와 경합한 힐러리 클린턴은 그 권력자들의 후보로 비쳐졌습니다. 대중의 삶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아메리칸 드림’이 악몽이 된 시기에, 클린턴은 그런 상황을 낳은 체제의 유지를 상징했습니다.

트럼프가 다득표한 곳 중에는 진보 표밭으로 알려진 펜실베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아나, 미시건주(州) 등 소위 ‘러스트 벨트’의 노동계급 거주 지역들도 많았습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을 포함해] 수십 년간 엄청난 고통을 겪은 이곳 사람들이 트럼프에 투표했던 것입니다. 즉, 민주당이 워낙 우파적이었기 때문에 트럼프가 노동자들의 친구라도 되는 양 행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트럼프가 ‘변화’의 상징처럼 보였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도 드러납니다. 또한 2012년 대선 때 오바마에 투표한 유권자 중 400만 명 이상이 2016년 대선 때는 아예 투표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더 일반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존 사회가 붕괴하는 듯 보일 때 우파들이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안은 기존 체제를 수리해 재사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두 가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첫째, 빈곤·인종차별·여성차별·기후재앙에 맞서 단결한 투쟁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파 사상에 맞서 급진적·사회주의적 사상을 주장할 필요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주변화돼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

그 강력한 증거의 하나가 바로 버니 샌더스의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도전이었습니다. 샌더스는 경선에서 총 1300만 표 넘게 얻었죠.

선거 유세를 하는 버니 샌더스 ⓒ출처 Gage Skidmore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샌더스의 ‘사회주의’는 저나 노동자연대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아주 오랫동안 미국 공식 정치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것조차 정치적 자살행위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샌더스의 성공 비결은, 끔찍한 고통을 받아 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대변하고, 그들의 분노를 [이주민들이 아니라] 최상층 ‘1퍼센트’, 대기업들, 미국 사회의 부패에 돌렸던 것이었습니다.

샌더스 이후 새로운 민주당 의원들이 등장해 모종의 사회주의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일한 오마, 아이아나 프레슬리, 라시다 틀라입이 대표적이고 이들의 모임은 ‘스쿼드’[군대의 분대를 뜻한다]로 불립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인 중 43퍼센트가 사회주의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8~30세의 젊은 층 중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됩니다(45퍼센트). 2010년에는 68퍼센트가 자본주의를 좋게 본다고 답했습니다.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사람들이 크게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혁명가인 것도, 미국이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여론 변화는 사상뿐 아니라 기층 운동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봅시다. 이 운동은 소름끼칠만큼 빈번한 미국 경찰의 흑인 살해를 규탄한 중요한 운동입니다.

노동자들도 투쟁하고 있습니다. 2018년 미국에서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의 수는 32년 전인 1986년 이후 최다였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의 파업 수위는 여전히 꽤 낮지만 높아졌고 특히 미국 여러 주에서 벌어진 일련의 교사 파업들은 중요한 사례입니다.

또 트럼프에 대한 첫 대응이었던 여성 행진도 있었습니다. 트럼프 취임일부터 며칠 동안 여성들은 대규모 규탄 시위를 벌였습니다.

정치

이런 운동들에 어떤 정치가 영향을 주는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투쟁에 나서거나 사람들이 사회 상층부에 도전하기 시작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투쟁이 어떤 정치로 조직되느냐도 중요합니다.

1980년대를 돌아보면, 조건이 비슷한 세 나라에서 위대한 노동자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남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입니다. 세 나라 모두에서 노동자 투쟁이 멋들어지게 분출했지만 근본에서는 유실되고 말았습니다. 그 운동들의 정치가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치 문제에서 미국 상황은 어떨까요? 저는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성장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트럼프에 사회주의로 맞서자”(反)트럼프 정서가 커지며 미국 민주사회당(DSA)가 새로운 구심점이 되고 있다 ⓒ출처 Molly Adams

어떤 점에서 보면, 민주당이나 민주당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된 세력이 강한 곳에서 조금이라도 급진적 정치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150년 전만 해도 미국 민주당은 노예 소유주들의 정당이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노예제에 맞선 전쟁[남북전쟁]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은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 소속이었습니다.

그랬던 민주당은 1930년대 심각한 사회 위기를 거치며 재창당 수준의 변신을 이뤘고, 1960년대 반란들의 일부를 흡수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은 노동조합원이 대부분 투표하는 정당이 됐습니다. 영국의 노동당과는 다릅니다. 영국 노동당은 노동조합 지도부에 기반을 둔 정당이지만, 미국 민주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많은 이들에게 진보 정당으로 여겨집니다.

DSA는 사실상 1982년에 창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약 30년 동안 DSA는 대개 주변화돼 있었고, 민주당 우파를 돕는 구실을 해 왔습니다. 민주당이 복지를 삭감하고, 중동에서 잇따라 전쟁을 벌이고, 자본가 계급을 충실히 대변하는 동안 DSA는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버니 샌더스의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선거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들, 트럼프에 맞선 저항에서 정치 조직을 건설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DSA는 새로운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DSA 회원이 모두 민주당원인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보다 좌파적인 여러 종류의 견해가 DSA 안에 공존합니다. 공개적으로 사회주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그 나물에 그 밥’인 기성 정치로부터의 이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DSA는 2~3년 만에 당원 수가 1만 명에서 6만 명으로 크게 늘었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운동들에 적극 개입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쟁점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단체가 미국에 생겼다는 점을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DSA는 뉴욕, 로스엔젤리스, 시카고, 워싱턴 DC에 각각 1000명이 넘는 당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세력을 건설하려고 애써야 마땅한 대도시들에서 말이죠.

독립성

그럼에도 DSA에 관한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당 역사를 보면 민주당은 거대한 사회적 저항이 일어날 때마다 거듭해서 그 저항이 양당 정치 체제에 도전하지 않도록 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인종차별과 빈곤에 맞선 도시 흑인들의 운동 등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에 이 운동들은 민주당에 짙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베트남전은 민주당이 시작한 전쟁이었고, 도시 흑인이 겪는 차별과 가난에도 민주당 책임이 꽤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결국에는 정치적 대안이 없었던 탓에 이 운동들의 기세는 민주당으로 수렴됐습니다.

1980년대에 흑인 활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오늘날 샌더스처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해 후보 지명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한 후 잭슨은 나머지 민주당 세력에 순순히 합류해 그들을 도왔습니다.

DSA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DSA는 지금 떠오르는 투쟁의 기운을 미국 자본주의의 주요 정당[민주당]에게 넘겨 주는 구실을 할 것인가? 아니면 투쟁 수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작업장과 거리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의회 내 다툼보다 훨씬 중요함을 주장할 것인가?

이는 미국 정치에서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계급 투쟁이 거대하게 분출한 1930년대에도,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1917년의 여파 속에서는 유진 데브스라는 인물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데브스는 노동조합 투사 출신으로 1880년대에 풀먼 철도 파업을 이끌었는데, 당시 투쟁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파업 참가자 13명이 파업 중에 총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데브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데브스는 파업에서 한 구실 때문에 투옥됐고, 비범하게도 옥중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독했습니다. (아마 오늘날 미국 교도소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훗날 데브스는 《자본론》을 읽자 마치 두뇌 회로가 풀가동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확고한 혁명가가 돼 출소한 데브스는 미국사회당을 창당했고, 사회주의 혁명을 건설하는 투사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일례로, 데브스는 청중을 인종별로 나눠 앉히는 곳에서는 연설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졌는데 말입니다.

데브스는 제1차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또 감옥에 갇혔습니다. 옥중에서 데브스는 대선에 출마해 혁명적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100만 표 이상 득표했습니다.

데브스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첫째, 데브스는 미국의 지배 양당인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주공화당[민주당과 공화당을 한 당으로 부른 말이다]은 계급투쟁에서 자본가계급을 대변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 담당 부서이며, 그들 간 갈등은 원칙이 아니라 전리품을 두고 벌어지는 것일 뿐이다.”

둘째, 데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찍어서 얻지 못하는 것이, 원하지 않는 것을 찍어서 얻는 것보다 낫다.”

이런 전통이 오늘날 미국에 중요합니다. 물론 데브스가 활동한 1918년과 지금 상황이 모든 면에서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트럼프에 맞서 저항이 커지는 지금, 단지 체제 내에 머무는 비판이 아니라 현 체제를 넘어서 완전히 다른 체제를 주장하는 비판을 제시할 세력이 등장할 것인가?’

우리 모두 똑같은 문제에 여러 번 부딪힐 것입니다. 이런 조직을 지금부터 건설하기 시작한다면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미국에서든, 영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자본주의 위기와 혼돈에 대한 혁명적 사회주의 대안을 건설하는 과업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동지들. 그 투쟁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발언

발언해 주신 모든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몇몇 동지들이 사회주의의 의미를 둘러싼 의견 차에 관해 질문하셨습니다. 여기에 답하며 정리 발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세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사례는 영국 노동당 내 좌파 단체 ‘모멘텀’입니다. 최근 ‘모멘텀’은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동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동영상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의 사례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들입니다. 국민보건서비스(NHS), 우체국, 심지어 경찰도 사례로 들었죠.

동지들. 경찰은 사회주의의 사례가 결코 아닙니다. 경찰은 사회주의로를 향한 변화 일체를 막기 위한 조직 중 하나입니다. 국가가 운영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사회주의의 증거는 아닙니다.

둘째 사례는 옛 소련이나 오늘날 북한을 사회주의로 보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그런 사회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칠 것입니다. 저도 같이 도망칠 것이고요.

1989년 영국의 거리에서 [저희 단체가 발행하는] 신문을 판매하고 있으면 ‘사회주의가 그렇게 좋으면 소련으로 가!’ 하고 저희를 꾸짖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스탈린주의자라도 되는 양 말이죠.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소련은 망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노동자 민주주의와 해방에 관한 것이며, 기존 전체주의를 분쇄하는 것이지 새로운 전체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아님을 참을성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셋째 사례는 지금 DSA 내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DSA 안에는 여러 종류의 정치가 있습니다만,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미국 좌파 언론 《자코뱅》 편집자 바스카 슌카라는 ‘계급 투쟁적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이는 20세기 초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로 회귀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 정당들은 당시로서는 유례 없던 대재앙, 제1차세계대전 때 자국 지배계급을 지지했습니다, 1920~1930년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대해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공동전선

이런 것들이 사회주의의 이상이 아니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 혁명가들은 극소수이지 않습니까? 이 물음은 ‘행동에 나서기 전에 운동 내 의견 차이부터 해소해야 하지 않느냐’는 어느 한 분의 질문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공동전선은 혁명가들이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일부입니다. 그것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공동전선에는 두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첫째, 단지 말이 아니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즉, 공동전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든 사안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임금 인상을 위해서나 파시즘, 인종차별, 성차별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에 좌파들이 파시즘의 부상에 맞서 단결하지 못해 히틀러와 나치당이 권력을 잡는 것을 보며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공동전선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행동 통일이 공동전선의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공동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이 그저 서로 친한 친구가 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파에 맞서 함께 행동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독자적 정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요건입니다.]

예컨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여러 문제에서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들과 함께 인종차별에 맞선 운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파시즘과 인종차별에 맞설 때는 단결하지만, 동시에 논쟁의 자유를 한사코 견지하며 그리스 시리자가 왜 실패했는가, 어떻게 변화가 가능한가, 개혁주의 전략으로는 왜 변화를 쟁취하지 못하는가 등에 대해 논쟁합니다.

함께 행동하기 위해 모든 사안에 관해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행동하는 과정에서 논쟁을 벌여야 합니다.

DSA와 영국에서 노동당 같은 단체가 하는 구실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노동당 현 대표 제러미 코빈의 사례가 의미심장합니다.

코빈이 당 대표로 선출된 덕분에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기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러나 코빈 열풍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코빈주의의 변증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코빈은 사회주의에 관한 토론을 수월하게 했지만, 거리 운동을 완화시키고 가라앉히는 구실도 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파업하고 시위할 때가 아니다. 코빈을 당선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DSA도 마찬가지입니다. DSA는 대중이 사회주의적 주장에 귀를 열게 했지만, 대중을 주류 정치로 돌려보내는 구실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이 곧 DSA 같은 흐름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논쟁의 일부여야 하며, 동시에 독자적 조직을 갖추기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극단주의에 관해 한 마디 보태겠습니다.

저는 전 세계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정도면 꽤 온건한 강령이지만, 지배계급은 꽤나 극단적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야 저는 극단주의자겠죠. 인정합니다.

지배계급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극우·극좌 모두 피해야 할 극단주의 정치다.’ 그러나 소위 ‘중도’ 정치야말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극심한 빈곤의 증대, 전쟁, 기후변화 재앙으로 인한 인류 멸종 위기를 불러온 주역입니다. 바로 그 자본주의적 중도 정치는 특정 상황에서 파시즘을 이용하고 파시스트를 권좌에 앉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이 삶의 경험에 비춰 이해할 수 있도록 혁명적 정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주의는 위험한 도박이나 모험이기는커녕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파멸에 대한 유일한 대안임을 설명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 사회주의임을 자신 있게 주장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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