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2020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9.3퍼센트 늘었고,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2009년 이후 최대인 GDP 대비 3.6퍼센트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보수·우파들은 이를 두고 “초유의 빚더미 예산”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얼마 전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담은 ‘민부론’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며 국가의 채무 한도가 GDP의 40퍼센트를 넘지 않게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초강경 긴축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도 4대강 사업에 막대한 돈을 쓰고, 박근혜 정부도 부자 재벌 퍼주기에는 아낌이 없었다. 보수 정부 아래에서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데 이용됐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일관되게 구현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간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던 말과는 달리 긴축 정책을 써 왔다. 정부는 세금 수입을 보수적으로 계산해, 2016~2018년에 계획보다 더 걷힌 초과세수는 무려 68조 원에 달했다. 정부는 이 중 많은 부분을 지출하지 않고 국가 채무 축소에 사용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들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증가는 이전 정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통합재정수지도 큰 폭의 흑자를 기록했다.(2017년 24조 원, 2018년 31조 2000억 원)

정부는 내년 경제가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 그러나 그 수준은 우파들의 과장과는 달리 여전히 소심하다. 추경을 포함해서 보면 재정 지출 증가율은 올해 9.9퍼센트에서 내년 8퍼센트로 줄어들었다.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38.1조 원이 늘었지만 이는 지난 2년간 초과로 거둬들인 세수보다 적다.

정부는 확대 재정 정책으로 올해 37.1퍼센트인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2023년에는 40퍼센트 중반 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증가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OECD의 평균 국가 채무비율인 110퍼센트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칠 것이다.

친기업 경기 부양책

게다가 그나마 늘어난 예산조차 친기업 경기 부양책에 확실한 강조점을 찍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번 예산안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우파들은 보건·복지·노동 예산이 12.8퍼센트 늘어 너무 많다며 불평한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율은 11.1퍼센트로 여전히 OECD 회원국 평균(20.1퍼센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은 그대로고, 노인 자살율은 지난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굶어 죽은 탈북 모자 등 비극적인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대부분 단기 아르바이트 수준의 노인 일자리를 예년보다 13만 명 더 늘리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 외 일자리 예산들은 기업에게 고용 장려금을 주거나 직업 훈련 비용을 보조하거나, 창업하라고 권유하는 등의 시장주의적 방향에 맞춰져 있다.

반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가장 크게 증가해 27.5퍼센트나 늘었다. 경기 하강, 일본과의 갈등 속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5G, 인공지능, 바이오헬스 등에 지원을 크게 늘리기도 했다. 모두 삼성, 현대, LG, SK 등 재벌 대기업들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산업들이다.

복지 예산은 찔끔, 기업 지원과 국방 예산은 대폭 증액. ⓒ출처 청와대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12.9퍼센트나 늘었다. 그러나 서민들은 여전히 주택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교육 예산 증가율은 2.7퍼센트로 가장 낮은데, 그나마도 고등교육에서 친기업적 인재 양성이 강조됐다. 그러다 보니 공약이었던 공영형 사립대 예산은 배정되지 않았다. 유아·초중등 교육 예산은 고교 무상교육으로 인해 확대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국방비는 7.4퍼센트나 늘었다. 국방비 중에서도 스텔스 전투기, 항공모함 등 첨단 무기체계 확충을 위한 방위력 개선비의 비중이 더욱 늘었다.(32.9퍼센트→33.3퍼센트)

이처럼 정부는 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보호무역과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한 이후에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낮추고, 내년 전망치는 2.6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낮췄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낮은 이윤율이라는 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정부 지원을 조금 늘리는 수준으로는 기업 활력을 되살리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이 지난 20년간 매해 GDP의 3~10퍼센트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감수하며 기업을 위한 경기 부양을 하고 노동자들에게 불평등을 강요해 왔지만, 여전히 경제가 지지부진한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임금, 일자리, 복지 등을 지키려면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