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또 후퇴할 것이라는 온갖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 체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위기의 근저에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책갈피) 저자이자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조셉 추나라가 짚어 본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한 가운데 새로운 위기가 닥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사상 최고로 좋다! 가짜 뉴스들도 거의 다 이게 내 덕분임을 인정한다!” 올여름 미국 경제가 121개월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 동안 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트럼프가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트럼프의 그런 모습을 보면, 노스요크셔에 있는 일류 놀이공원인 라이트워터 밸리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거기에 가면 꼭 타는 롤러코스터가 있었는데, 공원 측은 그 롤러코스터를 꼭 “유럽 최장”이라고 홍보했다. 가장 높다거나, 가장 빠르다거나, 가장 신난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장 길다는 것이다. 장장 2268.3미터나 되는 트랙 위에서 쉴 새 없이 덜컹거리는 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으면, “최장”이 꼭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다른 나라들의 처참한 성장률을 보면 미국의 느리고 꾸준한 성장은 그나마 나아 보인다. 2009년 이후 미국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보다 더 많이 성장했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국가들]은 금방이라도 경기 후퇴로 치달을 듯하며, 절름거리는 독일 제조업이 유로존의 경기 하강을 주도하고 있다. 올해 제2사분기에 독일과 영국은 모두 경제가 수축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전통적인 핵심부 바깥에서는 브라질이 올해 무지막지한 경기 후퇴를 피해 “더블 딥”[후퇴한 경기가 또 후퇴하는 것]을 간신히 면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국수주의를 공유하는 트럼프와 나란히 연설한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는 트럼프를 따라 둔화하는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법인세를 줄였다.

중국은 2008년 이전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지속하지 못했고 연간 성장률이 6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는 1992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이렇게 둔화된 성장조차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전의 높은 성장률은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였다. 특히 공산품 수출, 막대한 자본 투자 수준, 저임금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 세 요인이 압박을 받았다. 임금은 천천히 올랐고, 투자와 생산성은 감소했으며, 안 그래도 위기에 타격을 입은 수출은 미·중 무역 전쟁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

중국의 어려움은 중국으로 공산품이나 원자재를 수출하는 다른 국가들(미국 포함)에도 타격을 줬다.

미·중 무역 갈등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치명적인 악순환에 빠지는지를 잘 보여 준다. 2008년 위기는 오랫동안 심화해 온 주류 신자유주의 정치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정치 위기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집권하는 데에 도움이 됐고, 트럼프는 다시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성을 심화시켰다. 여기에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향후 관계를 협상하지 않은 채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의 가능성이 더해져 극심한 공포가 일고 무역이 줄고 있다. 최근 OECD 보고서는 “특이한 지정학적 위험”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무역 정책을 둘러싼 긴장의 고조는 정책 불확실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신뢰와 투자를 악화시키고 … 미래의 성장 전망을 위협하고 있다.”

어두운 전망

주류 논평가들이 새로운 세계적 경기 후퇴를 경고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역 분쟁이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배후에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무역이 위기의 “촉발점”일 수는 있지만, 대두하는 경제적 피로감의 근저에는 기업 이윤의 국제적인 하락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문제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 특히 2008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표준” 경제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 경제를 보자. 미국 경제가 다른 나라 경제보다는 나아 보일지 몰라도, 역사적 견지에서 보면 최근의 성장은 과거의 더 짧지만 인상적인 성장에 비해 초라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경제가 1991년부터 2001년까지 43퍼센트 성장했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의 더 짧은 호황기 동안에는 38퍼센트나 성장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에는 겨우 25퍼센트 성장했으며 연평균 성장률은 2.3퍼센트에 그쳤다.

이런 통계는 오늘날 자본주의에 관해 두 가지를 보여 준다. 첫째, 곧 새로운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주기적으로 위기에 빠졌다. 지배계급 구성원들이 취하는 조처가 위기의 양상과 시점을 바꿀지는 몰라도 위기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두 번째 특징과 이어져 있다. 바로 지배자들이 위기를 지연하려 할수록 성장이 더디고 저조해지며 새로운 불안정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산업 국가들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뚜렷한 패턴이 보인다. 어떤 시기에는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다. 이 시기에는 이윤이 생산에 대거 재투입돼서 자본 축적 수준이 높았다. 결국 이는 생산과정을 자동화해 노동자들을 기계 설비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급속한 성장은 금융 체제의 급속한 팽창을 동반했고, 성장기의 끝무렵이 가까울수록 금융 체제는 더 투기적인 경향을 보였다.

자기 파괴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이런 성장은 자기 파괴적이다. 마르크스가 분석하기에 체제가 낼 수 있는 전체 이윤은 체제가 착취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량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죽은 노동”(기계 설비나 원자재의 형태로 표현된, 과거에 들인 노동)에 대한 투자는 자본가들의 경쟁 때문에 [“산 노동”(노동자가 하는 노동)에 대한 투자보다] 훨씬 빨리 늘어난다. 이는 결국 투자 대비 수익률이 줄어들게 한다. 그 결과 마르크스가 말한 악명 높은 “이윤율 저하 경향”이 나타난다. 신용 확장은 일시적으로 균열을 봉합하고 자본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하지만, 결국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오히려 금융 불안정이 신뢰를 깨뜨리고, 갑작스러운 신용 수축을 일으켜 위기를 재촉할 수도 있다.

위기가 오면 보통 대량 실업, 임금 하락이 뒤따른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많은 자본이 파산하거나 채무 이행 불능 상태에 빠진다. 그러면서 수익성이 나쁜 자본은 해체되고, 악성 부채가 파괴돼 이윤율이 회복되고 새로운 호황의 가능성이 열린다.

20세기 중반에는 이런 패턴이 바뀌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자본주의 기업이 커졌다. 위기가 끝나려면 기업들이 파산해야 하는데 거대 기업들이 경제 전반을 지배하면서 그러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기업이 파산하면, 지속적이고 회복하기 어려운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규모는 거의 20세기 내내 불어났다. 기업 규모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의 경제 위기 직후 조금 줄었다가, 그후 30년 동안 계속 다시 커졌다. 금융이나 정보 기술 부문 등이 핵심이었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이런 상황을 한탄했다. 마틴 울프는 1980년대 이래로 새로운 기업이 생기는 속도가 줄면서 경쟁이 줄고 경제가 독점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마틴 울프는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기업 규모의 증대와 잘 들어맞는 두번째 요인은 국가 개입의 증대다. 1930년대 이래 자본주의는 점점 “국가자본주의”, 즉 국민국가에 기반을 둔 자본과 그 국가가 단단히 결합한 복합체들이 경쟁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런 경향은 옛 소련과 같은 나라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지만, 다른 곳에서도 다양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이 국가와 자본의 복합체들이 세운 계획도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문제를 근절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 계획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제적 수준의 무정부적인 경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 개입이 강화되자, 위기가 터지면 국가가 나서서 위기를 관리하게 됐다. 많은 경우 국가는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구제하거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려 했다.

국제 무역의 점진적인 증가와 자유화된 국제 금융 체제는 193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 여러 국가 개입을 약화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이후에는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개입하는 양상이 일부 변화했다. 물론 정부 활동의 목표가 바뀌어도 전반적인 정부 지출의 규모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변화와 함께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볼 때 “낭비적인 지출”이 늘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냉전 때 치솟은 군비 지출이다. 그러나 군비 지출보다 덜 어처구니없는 정부 지출도 있다. 이런 지출은 그 자체로는 이윤을 내지 않지만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하게 얽혀 있고 체제의 재생산에 필수적이다. 이런 지출들은 성장률을 낮추고 체제가 위기에 빠지는 경향을 완화했다.

그 결과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이윤율은 철저한 위기를 통해 회복되기보다는, 여러 경기 순환에 걸쳐 서서히 떨어졌다. 그래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자본주의가 유례 없이 길고 강력한 호황기를 맞이했고, 1980년대에는 침체로 향하는 경향을 보였다.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산업을 일부 구조조정하고,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몇몇 조처들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윤율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 수준으로 결코 회복되지 않았고, 경기 순환이 거듭될수록 더 낮은 수준에서 오르내렸다.

자본주의의 야만성 체제 위기의 대가를 누가 치러야 하는가 ⓒ조승진

그 결과 미국과 유럽 중심부 국가들은 점점 신용 확장과 금융 과열에 의존해서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했다. 국가 개입의 형태도 점점 금융화했다. 예컨대 2001년 미국 경제가 후퇴로 치닫자 미국 중앙은행인 미국연방준비은행은 금리를 깎아 부동산 거품을 조장했다. 이 거품은 미국 경제를 한 번 더 전진시켰다.

2008년이 되자 금융 거품과 신용 확장으로도 낮은 이윤율을 상쇄할 수 없는 시점이 왔다. 위기가 터지자 국가는 일종의 “금융화된 구제”로 대응했다. 감세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국가의 직접적인 지원은 금융 부문을 위한 것이었다. 더 중요하게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을 펴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금융 부문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자본 축적의 새롭고 강력한 중심지로 부상한 중국은 옛 자본주의와 새로운 자본주의의 요소를 겸비했다. 중국은 투자 수준이 19세기와 20세기 초기에 성장하던 산업 국가들을 능가했지만, 국가의 개입 수준도 매우 높았다. 과거 경제 대국들과 마찬가지로 빠른 투자 속도는 결국 이윤율을 끌어내렸다. 낼 수 있는 이윤은 한정돼 있는데 투자 규모가 급속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도 세계경제로 통합되면서 경쟁국들처럼 금융 정책으로 성장을 지속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위기가 중국의 수출 기반 모델에 타격을 줬을 때 중국 정부는 막대한 양의 신용을 풀었다. 이것은 성장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됐지만 대규모 악성 부채와 투기를 키웠다.

세계 도처에서 노동계급을 쥐어짜서 착취율을 끌어올리고 구제금융을 한 결과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런 조처 때문에 체제는 철저히 정리되지 못했고, 순전히 자본주의 논리로 볼 때 파산해야 마땅한 수익성 없는 기업들이 살아남았으며, 이윤율은 낮게 유지됐다. 그 결과 생산 활동에 대한 투자 수준도 계속 낮았다. 이런 이유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성이 정체하고 중국에서는 심지어 떨어진 것이다.

기업들이 자동화와 혁신에 투자하지 않는데 생산성이 어찌 오르겠는가? 단기간에 이윤을 얻기 위해 금융 투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투자의 둔화는 영국의 높은 고용률도 설명해준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니 더딘 성장조차도 고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그 일자리가 저질이고 저임금인 경우가 많을 뿐이다.

“새로운 표준” 경제의 특징은 극도로 낮거나 마이너스인 금리, 감세, 양적완화에 의존해 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체제를 운영하는 자들은 되도록 경제가 이런 처방에 의존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근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기록적으로 낮은 유로존의 금리가 “사실상 상시화”돼 새로운 금융 거품을 일으키고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를 되돌리기는 극도로 어려웠다.

실제로 9월에 유럽중앙은행은 통화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새로이 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기준 금리를 -0.5퍼센트로 삭감했다. 미국연방준비은행은 이미 3개월 전에 금리를 삭감했는데, 트럼프는 더 깎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브라질, 인도, 남한, 멕시코 중앙 은행도 금리를 낮췄다. 일본은행은 이미 마이너스인 금리를 더 낮추려 들고 있다.

경쟁

각국 중앙은행들은 점점 경쟁적으로 부양 정책을 펴고 값싼 신용을 장려하는 듯하다.

“새로운 표준” 경제의 또 다른 측면은 언제 새로운 경기 둔화가 올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무역 협상을 타결하면 경제 상황에 대한 신뢰가 한동안 높아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앙은행들이 성장을 지속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면서 금융 체제를 더 불안정하게 하고 더 깊은 위기의 가능성을 열 테지만 말이다.

2020년 초나 그 후에 세계경제가 둔화하면 중앙은행이 꺼내 쓸 무기는 많지 않을 것이다. 2009~2010년에 취한 조처를 되풀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사상 최저이고 또 다른 양적완화도 투자자에게 확신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물음은 이런 것이다. 또 다른 긴축 정책, 임금 삭감, 노동조건 악화, 실업률 증가로 노동계급이 체제가 실패한 대가를 기꺼이 대신 치르려 할 것인가? 수많은 청년과 노동자들은 이미 자본주의가 환경 재앙을 막을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워한다. 머지않아 이들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야만성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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