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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영화평 〈조커〉(2019):
그저 기뻐 웃는 얼굴은 없다

히어로물 중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조커〉의 인기가 한국에서도 상당하다.

이 영화는 흔히 생각할 법한 ‘히어로들의 영웅담과 화려한 액션’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주인공을 매개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다. 이에 더해 배우의 놀라울 만큼 섬세한 연기 때문에 호평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조커’를 떠올려 보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배트맨이 주연인 영화에 나오는 악역 조커일 테고, 그 다음으로는 ‘왜 그렇게 진지해?(Why so serious?)’ 라는 명대사를 날린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분)가 생각날 것이다. 배트맨 서사의 주된 배경인 고담시(市), 등장 인물인 웨인 가족이 나오는 것만 제외하면 이 영화는 기존의 배트맨-조커 영화와는 연관 없는 영화로 봐도 될 듯하다.

영화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의 삶을 조명하며 고담시의 어두운 측면을 풀어 냈다. 이 영화는 개인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 끝내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압력이 ‘조커’를 만들어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언제나 나쁘고 잔인한 짓만 벌이는 평면적인 악당 캐릭터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해 감상을 주저했다면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고담시에서 산다는 것

아서 플렉은 작은 엔터테인먼트 사무소의 출장 광대다. 그는 훌륭한 코미디언으로 칭송받는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 분)을 존경하며 본인도 그런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한다.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꿋꿋이 광대 분장을 하고 일을 나간다. 하지만 플렉은 웃음을 제어할 수 없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곤 한다.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무조건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고, 아픈 홀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꿈을 가지고 살아가던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그는 정신질환을 이겨내기 위해 시에서 지원하는 무료 상담 치료를 꾸준히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시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더는 상담 치료와 약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아서의 치료를 맡은 심리 상담사는, 주기적인 상담 치료가 필요한 아서가 이젠 그러지 못할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도 무심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동시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허술한 제도의 일부인 이 상담사도 소외를 겪는 듯한 모습이 그려진다.

‘노력’하는 이들의 도시

영화가 끝날 무렵 고담시의 상황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뉴욕 금융권 월가를 떠올리게 하는 고담시의 한 거리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벌어진다. 19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고담시의 분위기는 (고담시의 모델이 된) 미국 뉴욕시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휘황찬란한 이미지와 대조적이기에 더 인상 깊게 다가온다.

차기 시장 후보로 출마한 권위주의적 기업가 토머스 웨인은, 자신처럼 자본의 선두에 있지 않고 사회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게 광대처럼 보인다’ 라고 말한다. 고담시의 노동자들과 빈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토마스 웨인과 같은 자본가의 삶을 살 수 없다.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면, 사회의 다수임에도 웨인와 같은 소수의 배를 부르게 하는 데 이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된다. 도대체 왜?

〈조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소외 가득한 인간이 그동안 억눌러 왔던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영화 스토리 진행 때문에 그런 설정이 어느 정도 활용됐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이 감정을 표출하느라 동반된 폭력성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고담시가 혼란스러워진 그 현상 전반을 되짚고 싶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마스크를 쓰고 고담시의 거리로 뛰쳐나와 소요를 벌인 이들이 영화가 끝나고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상상에 맡겨 보자. 결과가 어떻든 이들이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진득하게 되돌아 보자. 실업과 가난이 만연하지만 ‘웨인엔터프라이즈’ 같은 금융사는 승승장구하고, TV 쇼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현실을 사는 절대 다수를 비웃는 조롱 섞인 웃음만 가득한 그 상황 말이다.

아서 플렉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절대 개인의 잘못이나 무능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다. 아파서 치료하고 싶어도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돈을 벌지 못하고 치료를 못 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이끌었는가? 어떤 사회적 요소가 아서 플렉을 조커로 변하게 했는가? 〈조커〉의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어떻게 하면 이 (영화 속의 고담시 같은) 사회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기 때문에 〈조커〉를 보는 것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영화에 나온 빈곤, 실업, 취약한 복지 체계는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행동과 실천은 영화가 끝난 후 고담시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현실의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