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장에서 나온 바체테 씨가 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 목사와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는 288일 만에 입국장 밖으로 나왔다 ⓒ조승진

“도와 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교육 시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입국장으로 나온 루렌도 씨는 벅찬 표정으로 288일 만에 공항 노숙 생활에서 벗어난 소감을 말했다. 부인 바체테 씨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그들 가족을 환영하는 난민 운동 활동가들과 포옹했다. 드디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된 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다. 막내인 다섯살 그라샤는 환영 꽃다발을 건네는 이들을 꼭 안아주기도 했다.

한국에 오고서 세 번 계절이 바뀌고서야, 항소심에서 승소한 지 꼬박 2주 만인 10월 11일 루렌도 가족이 공항 밖으로 나왔다.(바로보기 : 사진으로 보는 루렌도 가족의 한국살이 첫날)

이제 SNS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얼굴 맞대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루렌도 가족 환영객들은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루렌도 가족의 싸움을 꾸준히 지원해 온 ‘난민과함께공동행동’ 활동가들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루렌도 가족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팻말을 편 채로 입국장 문 앞을 지켰다. 가족들이 언제 나올지 몰라 입국장 문이 열릴 때마다 바쁘게 입국객을 살폈다. 한 지지자는 ‘그간 10개월을 기다렸는데 지금 기다리는 이 몇 시간이 더 긴 것 같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입국장 문이 열리고 루렌도 가족의 모습이 보이자 환영객들은 준비한 꽃다발을 건네며 뜨겁게 가족을 환영했다.

그간 늘어난 세간살이를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가족이 가져 나온 짐 중에는 후원자들이 네 자녀에게 전달한 장난감과 책, 옷이 특히 많았다. 지난 10개월 동안 가족들은 후원자들이 전해 준 식료품과 생필품, 모금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가족들은 안산의 쉼터에서 당분간 머무를 예정이다. 가족들과 활동가들은 임시 거처 주변 고깃집에서 따뜻한 식사 한 끼를 했다. 가족들은 고기 구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거의 매일 우유와 씨리얼로 하루 한두 끼를 때워야 했던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한 식사였을 것이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스스럼 없이 지지자들에게 장난을 치는 아이들 덕분에 식사 자리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은 더는 24시간 조명이 켜진 채로 먼지와 소음 속에 소파 위 불편한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주변 눈치를 보느라 조용히 말할 필요도 없다.

루렌도 가족을 환영합니다 288일 만에 공항을 나온 루렌도 가족과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을 비롯한 루렌도 가족 환영객들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조승진

창살 없는 감옥

그간 루렌도 가족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생활해 왔다. 아이들은 한창 뛰놀며 커야 할 시기인데도 공항에 갇혀 지내며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해 왔다. 루렌도 씨와 바체테 씨의 건강 상태도 날로 악화됐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어려웠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처방한 약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에게 약을 지원해 온 우석균 의사는 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너무 제한적이라 감옥보다도 못 한 지경이라고 했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도록 그간 루렌도 가족의 법률 대리인단(사단법인 ‘두루’ 이상현 변호사 등)과 난민 운동 활동가들은 루렌도 가족이 입국해 재판을 받게 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차갑게 거절했다.

심지어 법무부 산하 인천공항출입국(이하 출입국)은 상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상고를 하게 되면 루렌도 가족은 난민 심사를 신청할 수 없다. 난민법상 난민 신청 후 6개월 동안 취업이 금지돼 있고, 대법원 계류 기간까지 더해지면 루렌도·바체테 씨는 오랫동안 ‘합법적으로’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

만일 정부가 상고를 결정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일이다. 지난 항소심 재판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증거가 허위일 가능성이 불거졌다.

1심 당시 출입국은 앙골라 대사관한테서 루렌도 가족의 집주인 진술을 얻어 증거로 제출했다. 루렌도, 바체테 씨가 앙골라 경찰의 불법 구금과 폭력을 당하기 전부터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으며 가족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에 떠나기 직전까지 현지 집에 머물렀다는 것이 진술의 요지다.

1심 재판부는 이 증언을 중요한 증거로 삼아 루렌도 가족의 박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출입국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과정에서 루렌도 가족 변호인단은 집주인으로부터 자신은 그런 내용의 증언을 한 적이 없다는 진술을 확보해 법원에 제출했다. 한국디아코니아 등이 발 벗고 나선 끝에 루렌도 씨가 경찰서에서 도망 나왔을 때 은신처를 마련해 준 목사의 증언도 재판 막바지에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입국은 이런 증거들에 제대로 된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고등법원은 루렌도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출입국의 주장을 사실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루렌도 가족이 입국한 날 정의당 박예휘 부대표는 “국가가 나서서 난민 인정 심사를 받지 못하도록 고의로 방해한”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책임있게 소명하라고 지적했다.

그간 루렌도 가족 지지자들은 가족의 운명이 공항에서의 졸속 심사로 위험에 빠졌다고 비판해 왔다. 출입국은 재판이 시작되고서야 자기 결정을 정당화하려고 가족들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국경 수비대’ 운운하며 난민을 침략자 취급해 왔다. 출입국은 루렌도 가족에 대한 심사 보고서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비인간적 조처로는 부족한가? 정부는 상고하지 말고 루렌도 가족이 제대로 일하고 배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더는 공항에서의 무자비한 난민 심사와 추방 시도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