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정국에서 우파 야당에 밀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기업주들의 환심을 사고자 안간힘을 쏟는다. 대외 정책에서도 우파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게서 노동 존중이니, 소득주도성장이니 하는 침 발린 말들이 사라진 지는 사실 오래다. 하지만 최근 행태는 뻔뻔하리만치 노골적이다. 오만과 오판으로 헛되이 보낸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한 기세다.

조국 등을 앞세워 반일 민족주의를 부추긴 문재인 정부는 일왕 즉위식에 국무총리 이낙연을 보내어 일본 총리 아베와 면담하도록 했다. 미국 측에서 지소미아 파기 등에 부정적 반응이 나오던 터였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미 대사관저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요구 등에 비폭력적인 상징적 항의를 한 대학생들을 4명이나 구속했다.

10월 20일에는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 입법이 연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주52시간제를 못 지키는 기업들을 위해 청와대가 직접 움직이겠다고 밝혔다. 내년 1월부터 주52시간 적용이 시작되는 50~299인 사업장에 계도 기간을 둬 처벌을 유예하겠다는 것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발전 하청노동자 고(故) 김용균의 죽음, 톨게이트 노동자 대량 해고, 세월호 수사 등에서 보인 태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이날 청와대 발표는 국회에서 노동개악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라는 촉구였다.

사생결단으로 “조국 대전”을 치렀지만 민주당 원내대표 이인영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이 노동개악 처리 시한을 합의하는 데에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국당은 모두 경제·안보 위기에 뚜렷하고 효과적인 대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막말과 폭로로 소모적 경쟁을 벌인다. 이 때문에 공식 정치는 매우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문재인이 기업 친화성을 드러낼수록 우파의 사기는 올라간다. 노동운동이 독립적으로 문재인에 맞서야 하는 이유다 ⓒ출처 청와대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와 싸워야 한다

이인영과 나경원과 오신환(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이 노동개악 법안 처리키로 합의한 10월 21일에는 군인권센터가 옛 기무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의 2017년 촛불 진압 비상계엄 선포 계획 문건을 폭로했다. 이 문건에는 박근혜 탄핵 선고 이후 그 결과에 관계없이 사회 혼란을 이유로 군대가 출동해 정부기관, 법원, 언론 등을 일거에 장악할 계획이 담겨 있다.(물론 이를 위해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하고 저항 움직임을 제압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에도 여권은 남북 화해 국면이 대중을 달래는 효과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노동개악을 추진하려다가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지자 기무사 문건 폭로를 활용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폭로가 아니다. 현 집권 세력이 군부를 들쑤셔 놓고는 판이 너무 커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맸다는 것이다.

결국 국회 청문회에서 기무사 영관급 장교들에 의해 공개적인 하극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당시 국방부장관 송영무가 (보고받은 바가 없다며 오히려 덮어 주려 했다가) 얼마 뒤 옷을 벗었다. 이번에도 국방부장관 정경두는 국회에 나가, 보고 받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당시 이명박 구속 등 개가를 올리던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도 이 건을 수사하는 데서는 맥을 못 췄다. 문건 작성 책임자인 전 기무사령관 조현천의 행방이 오리무중(미국 도피)이라며 수사를 중단한 것이다.

문재인은 기무사를 “해편”(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낱말인데, 청와대는 해체에 가까운 재편이라고 설명했다)해 안보지원사로 간판만 바꿔 다는 것으로 당시 상황을 수습했다.

새로운 폭로 관련 언론 보도에서는 기무사 조직이 재편돼 당시 일이나 문건을 수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23일 오늘밤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아내 정경심 교수의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공지했다.

만일 정경심 교수가 구속되면 문재인 정부는 더 곤란해지고, 우파 야당들은 목소리를 더 키울 것이다. 나경원은 지금도 패스트트랙 지정 방해 행위로 기소된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후보 선정 시 가산점을 주겠다고 호기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정경심 교수 구속영장이 기각된다고 해도 갈등이 무마되고 우파의 위협이 약화되는 건 전혀 아니다. 조국 문제로 특권의 실체와 위선을 목격하고 실망한 많은 사람들(주로 서민층 청년)은 구속영장 기각을 권력 남용의 결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이들 다수는 우파가 아니고 무당파다. 이 때문에 오히려 이들은 한국당과 민주당으로 양극화된 공식 정치에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과 좌파는 이런 불만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 효과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친기업 본색을 새삼 재확인한 대통령 국회연설

문재인은 10월 22일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 통과를 위한 시정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문재인의 친기업 기조가 정부의 진정한 기조임을 보여 줬다.

문재인은 이 연설의 결론에서 “민생과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 중 하나로 “탄력근로제 등 보완 입법”과 친기업 규제 완화 법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민생 살리기”는 친기업, 이윤 살리기의 다른 말이다.

문재인은 현재 한국을 “부모 세대가 이룩한 경제적 토대 위에, 아들딸 세대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립했다”고 규정했다. 지배계급 언론들이 즐겨 쓰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합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문재인은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므로 국가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이자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지원과 국방비 예산의 증가 규모는 모두 액수로 표현했다. 연설에서 언급된 숫자들을 더해 보면, 증액된 예산의 대부분이 이 항목들임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은 소소한 복지 몇 개도 언급했지만 액수는 말하지 않았다.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이 “평화의 힘을 키우는 재정”이라고 언급한 예산 증가분의 실체는 “강한 안보”를 위한 군비 증가다. “잠수함, 정찰 위성” 등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외교와 ODA 예산을 대폭 늘려,” 대외적 위상을 높이려는 한국 지배계급의 열망도 반영했다.

한국 국가는 이 예산을 해마다 늘리고 있다. 이런 열망의 결과에는 경제적 우호 증진뿐 아니라 무기 수출, 해외 파병, 해외 진출 기업의 지위 보장과 노사관계 보호, 그리고 국내에서의 이견 단속도 포함될 것이다.

“공정” 개혁은 모두 경쟁의 공정에 관한 것들이었다. 서민들은 교육 개혁으로 입시 경쟁의 억제를 바랐는데, 정시니 수시니 하는 경쟁의 룰만 얘기했다. “갑을 문제 해소”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에 관한 것이지, 노동 존중은 언급도 없었다.

조국 일가(또는 그 덕분에 부각된 나경원 일가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원하는 결과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불평등하면 ‘공정한 경쟁’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다. 또한 결과의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쟁은 격화되고 과정의 공정성은 끊임없이 위협받을 것이다.

끝으로, 공수처 통과가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 기구”로서 중요하다고 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두 달간 여권이 정치적 자원을 총동원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와 보도를 방해해 온 것을 생각하면, 공수처의 미래도 뻔해 보인다.


기무사 계엄 문건에서 드러난 자본주의 국가의 실체

군인권센터가 폭로한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문건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 문건에는 계엄 준비 단계에서부터 계엄 이후 보도 통제 상황까지 “보수 언론”과 “경제단체” 등이 군부 쿠데타 세력의 협조자로 설정돼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령 준비 단계에서는 “보수 언론에서 계엄 선포 필요성 제언, 보수층 및 경제단체에서 동조”가 필요한 사항이라는 식이다. 계엄 후 언론 통제 시에도 “보수 언론 대상 정부 입장 홍보 및 시위대 폭력성 부각 보도”가 한 항목으로 돼 있다. 보도 통제의 한 수단이 “보수”(즉, 우파) 언론인 것이다.

이 문서는 “계엄 선포시 고려 사항”에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이 불가”한 “경비계엄” 대신 “국민의 기본권 제한[이] 가능”한 “비상계엄 선포가 타당”하다고 판단·제안했다. 그러나 계엄 직후 계엄사령관이 할 일로 “국내 외국인·기업 대상 재산권 및 자유로운 영업활동 보장”을 들었다. 계엄 하에서도 사용자들의 기본권(재산권)은 제한은커녕 보호되는 것이다.

이런 문건이 작성됐는데도 검찰조차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군부가 국가권력의 진정한 실세 중 하나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군 수사·정보 기관인 기무사의 기능을 국가 외부의 위협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검찰도 공유함을 보여 준다.

기무사 계엄 논의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자고 한다. 물론 검찰의 직접 수사도 기무사를 파헤치지 못했다. 기무사 수사는 계속 난항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 운동 때 진행된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수사는 국정원장을 두 명이나 구속시키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결국 이런 과정 전반을 보건대, 법원, 검찰, 경찰, 군대 같은 기관들은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는 개혁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대중 투쟁으로 아래로부터 압박할 때만 일시라도 그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세력을 추스릴 것이므로, 결국에는 해체시켜 산산조각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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