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공동 사무국장, SWP의 주간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인 찰리 킴버가 8월 22~25일 방한해 노동자연대와 본지가 주최한 ‘맑시즘2019’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8월 25일에 킴버가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이날 강연을 통역한 천경록은 전문 통역자이자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를 보면, 더 나은 세상을 쟁취해 온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뚜렷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합니다. 아마존 밀림이 지난 며칠 동안 화마에 휩싸인 사진을 보셨을 겁니다.

이는 결코 자연 재해가 아닙니다. 아마존 밀림에서는 매년 이맘때 화재가 나지만, 올해는 이전보다 세 배나 많이 났습니다. 왜냐구요? 브라질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자신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 준 자본가들의 고삐를 풀어서, 이들이 마음껏 밀림을 깎아 목장, 농장, 광산으로 만들고 이윤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원주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운명이 더 위태로워졌습니다.

어제 우리는 극우와 인종차별의 위협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관련 기사: ‘맑시즘2019 해외 마르크스주의자 강연 - 유럽의 새 극우와 파시즘’] 사진 1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단체인 카사파운드가 거리에서 행진하는 모습입니다.

사진 1 이탈리아 파시스트 단체인 카사파운드의 거리행진

전 세계에서 난민의 권리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사진 2는 그리스의 어떤 섬에 상륙한 난민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그리스의 새 우파 정부는 빈곤과 전쟁을 피해 온 난민들을 지금보다 훨씬 가혹하게 단속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진 2 거대한 수중 무덤이 된 지중해 ⓒ출처 Georgios Giannopoulos

그러나 이런 참상과 동시에 저항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8월 24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아마존 밀림 화재와 보우소나루 정부에 항의해 벌어진 거대한 시위는 환경 문제로 브라질에서 벌어진 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 집회 전에도 아마존 원주민의 권리를 지지하는 집회, 정부의 교육 개악에 반대하는 집회, 여성의 권리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사진 3은 올해 초 영국 중고등학생들이 벌인 기후변화 반대 시위를 찍은 것입니다. 이 운동은 거리 시위로 폭발했습니다. 자랑스럽게도 대열 한가운데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팻말이 있네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기후 말고 체제를 바꿔라’, ‘혁명만이 해법이다’. 새롭고 거대한 이 운동은 세계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사진 3 영국 청소년들의 기후 시위 ⓒ출처 <소셜리스트워커>

지난해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총파업이 벌어졌습니다. 인도 여성 노동자 2억 명이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법 개악, 임금과 노동조건 공격에 맞서 파업했습니다. 이런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노동계급이 반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작은 투쟁도 때때로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사진 4 속 남녀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9일 동안 벌어진 광원 파업 참가자들입니다. 이들은 랑세스 사(社)의 크로뮴광 갱도를 9일 동안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관리자의 성희롱과 구조조정에 맞서 단결해 9일 동안 지하에 있었습니다. 그 후 사측은 성희롱을 저지른 관리자를 내쫓았고 해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되찾았습니다. 노동자들의 힘을 차별에 맞선 투쟁과 연결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멋진 사례입니다.

사진 4 남아프리카공화국 광원 파업. 여성과 남성노동자들이 단결해 승리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희망이 절망을 몰아낼 수 있을까요? 세상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거나 한두 가지 작은 변화를 이루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계의 막대한 부를 어디에 쓸지를 평범한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세상, 누구나 지속 가능하고 좋은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리자

우리 편이 거의 승리할 뻔하다가 못한 최근 사례를 두 개 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투쟁의 잠재력을 살피고, 다음 번에 확실히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사례는 그리스의 급진좌파 정당 시리자입니다. 경제 위기가 그리스를 강타한 2010년에 그리스인들은 2008~2009년에 파산한 그리스 은행들과 은행가들의 막대한 빚을 갚으라는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대중의 생활 수준을 공격한 결과 그리스인들의 삶의 질이 60~7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습니다. 공공 의료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일자리 수십만 개가 사라졌습니다. 연금이 삭감됐습니다. 노동계급이 혹독하게 공격받아 사망률이 급등했습니다.

그 결과 평범한 사람들은 불같이 분노했습니다. 2010~2015년 동안 강력한 학생운동이 벌어지고, 연금 수급자들이 큰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서른두 차례나 총파업이 벌어졌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항하고 반격할 태세를 보여 줬습니다. 시리자는 이런 분위기의 정치적 초점이 됐습니다. 2015년 총선에서 그리스 사회당(PASOK)이 참패하고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로 당선했습니다. 

사진 5는 선거 승리에 기뻐하는 치프라스의 모습입니다. 치프라스만 기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사람들은 이제 긴축이 끝나리라 기대했습니다. 시리자는 민중의 삶을 파탄낸 긴축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시리자 집권을 전환점으로 끔찍한 긴축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습니다.

사진 5 그리스 전 총리 치프라스 ⓒ출처 DTRocks

그러나 시리자는 체제를 무너뜨리기보다는 체제 내에서 변화를 이루고자 했고 기존 체제의 선출되지 않은 강력한 세력, 즉 은행, 기업, 국제 금융 기구의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모두 시리자가 조금이라도 긴축을 완화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세 기구를 묶어 ‘트로이카’라고 하는데, 당시 트로이카의 수장인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거가 경제 정책을 바꿔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 투표하든 같은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6개월 동안 시리자 정부는 유럽 자본가 기구의 권력자들과 대화하고 협상했습니다. 시리자와의 협상 기간 내내 그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긴축을 시행하라.’ 그리스인들은 그러려 하지 않았습니다.

치프라스는 긴축안을 수용할지를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그러면서 치프라스는 그리스인들에게 트로이카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긴축안을 거부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인의 61퍼센트가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의 긴축안에 반대 투표를 했습니다. 

시리자 정부에 입각했던 인사들의 회고록에서 이후 드러났다시피, 치프라스는 사실 긴축안 찬성 표결을 원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즉 긴축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긴축을 시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표 결과가 긴축 거부였는데도 시리자 정부는 7일만에 부자들이 요구한 긴축안을 모두 수용했습니다.

치프라스 개인이 특별히 부패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시리자 같은 부류의 좌파 정부가 집권했을 때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좌파 정부가 선거로 집권하더라도 은행·공장·사무실·광산을 지배하는 자본가들의 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권력은 여전히 자본가의 손에 있고, 자본가들은 막강한 그 권력으로 선출된 정부를 압박합니다.

당시 시리자가 승리할 유일한 길은 ‘빚을 갚는 데에 돈을 쓰지 않겠다, 은행을 접수하겠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겠다, 다른 나라들에게 긴축에 맞선 우리 투쟁을 지지하고 자기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하라고 호소한다’고 선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스 민중은 다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사진 6은 당시 총파업 사진입니다. 이번에는 긴축을 시작했던 보수당 정부가 아니라 시리자 정부에 맞선 총파업이었습니다.

사진 6 긴축 정책에 맞선 그리스 총파업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투쟁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리자가 이토록 사람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에 보수당이 다시 집권했습니다. 이제 금융 기구들은 그리스인들에게 2060년까지 부채를 상환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경험은 의회에는 진정한 권력이 없다는 혁명가들의 교훈을 되새기게 합니다. 그리스에서 있었던 투쟁이 허사였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에서 쟁취한 모든 것이 이 투쟁의 성과였습니다. 요즘에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 사례는 선거로 얻는 승리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수단

둘째 사례는 북아프리카 수단입니다. 수단은 이 시대에도 혁명이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초기처럼 수단 항쟁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수단 항쟁은 2018년 12월에 시작됐습니다. 이 항쟁은 빵[팔라펠]과 생필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30년 동안 수단을 잔혹하게 통치한 알바시르에게 항거하는 정치적 투쟁으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알제리에서 독재자 부테플리카에 맞서는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알제리 항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엘시시의 반혁명에 짓밟힌 이집트에서 2011년 혁명 때 울려퍼진 구호 “민중은 정권 타도를 원한다”가 수단뿐 아니라 알제리,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거리 시위가 계속되면서 여러 명이 총에 맞았지만 항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문제에서 시작된 항쟁이 정치 투쟁으로 확대됐고, 이는 다시 경제 투쟁으로 확산됐습니다. 점차 넓은 층의 사람들이 항쟁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층과 여성이 대거 참가했습니다. 항쟁은 정부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진 7에 나온 여성은 알라 살라입니다. 알라 살라는 아마 수단 항쟁의 가장 유명한 아이콘일 것입니다. 그러나 항쟁은 단지 거리 시위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술자, 교사, 의사 등 여러 부문이 파업에 나섰고 정부에 대한 압력이 커졌습니다.

사진 7 수단 혁명의 아이콘이 된 알라 살라. 수단 민중은 30년 동안 수단을 지배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를 쫓아냈다 ⓒ출처 @iAlaaSalah

4월에 수단 수도 하르툼 소재 국방부 청사 앞, 포트수단 등지에 있는 군사 기지 앞에서 광장 점거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수백, 수천 명 수준이 아니라 수만, 수십만 명이 국방부 청사 앞 광장을 점거했습니다.

마침내 4월 11일, 30년 동안 수단을 지배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가 퇴진했습니다. 군부는 알바시르에게 당신을 더 지킬 수 없다, 체제의 나머지를 살리려면 당신을 치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항쟁은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은 연좌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당시 상황을 좀 자세히 묘사하고 싶습니다. 대중이 스스로 자기 삶을 다스리기 시작할 때의 분위기를 힐끗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전합니다.

“차르를 타도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상주의에 도취된 단명한 1871년 파리 코뮌이 어땠는지를 상상하기란 어렵겠지만, 아마 2019년 4월의 하르툼 같았을 것이다.”

혁명이 역사책 속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기업주를 대변하는 우파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가 인정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소셜리스트 워커〉가 인터뷰한 현장 목격자의 말을 꽤 길게 전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현재 청년 혁명가들이 완전히 장악한 수도 하르툼 도심으로 걸어 들어가면, 변화를 알 수 있다.

“자원 활동가들이 몇 미터마다 검문소를 설치해 무기가 반입되지 않게 한다. 여성이 여성을, 남성이 남성을 검사한다.

“자원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약국을 운영한다. 약이 무료로 제공된다.

“사람들이 투쟁 자금을 모금한다. 돈 가방이 도로변에 있어서 집에 갈 차비가 필요한 사람은 거기서 돈을 꺼내 간다.

“기부 물품 차량이 아니면 진입할 수 없다. 예외는 없다. 그곳을 방문하러 온 수단 주재 미국 대리대사의 차량도 입구에서 저지당했다.

“부랑아들이 굶지 않고 보살핌을 받으며 이 새로운 사회의 일원이 된다.

“시위대는 침탈에 대비했다. 야간 침탈을 막기 위해 벽돌을 쌓아 도로를 막고, 다른 데서 가져온 동작 감지기를 달아 놓았다.

“무슬림이 기도할 때 콥트교인들이 그들의 머리 위로 장막을 들어서 햇볕을 가려 준다.

“통치자 따위 없이도 이 젊은이들은 농성장을, 이 작은 ‘국가’를 사실상 운영하고 있다. 자존심을 앞세우거나 싸움과 시비를 걸지 않고 의젓하게 그러고 있다. 웃음, 협력, 단결, 연대가 이곳의 질서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당시 수단은 노동계급이 사회의 권력을 장악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노동자 평의회 같은 기구가 사회를 운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광경은 우리가 꼭 지금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힐끗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때 수단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수단 노동조합 운동의 중심지인 아트바라 시(市) 철도 노동자들은 아프리카 최초로 운송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르툼 광장을 지키러 농성에 합류하러 온 사람들을 이 노동자들이 기차로 실어 날랐습니다.

5월 28일 수단 전역에서 멋진 총파업이 벌어졌습니다. 노동자 80~90퍼센트가 참가했습니다. 하르툼 북부의 발전소 노동자들이 발전소 앞에 모여 안전모를 벗어 아랍어로 ‘민간 정부’라는 글자 모양으로 늘어놓은 모습을 찍은 사진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노동자들은 군부 독재에 신물이 났고, 노동자로서의 힘을 발휘해 군부를 몰아내겠다고 웅변한 것입니다.

이 사진은 1968년 프랑스의 놀라운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총파업이 벌어졌을 때, 베를리에 공장 노동자들이 공장 벽에 붙은 ‘베를리에(Berliet)‘라는 글자를 ‘리베르테(liberté)’[자유]로 고쳐 달았죠.

수단 지배계급은 총파업에 겁을 먹었습니다. 군부도 겁에 질렸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항쟁의 지도자 일부도 겁에 질렸습니다. 실제로 지도자가 없는 운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운동을 논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안이 없으면 기존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상이 운동을 지배합니다.

운동이 더 나아갈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지역마다 항쟁 위원회들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 평의회가 수립될 잠재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단 항쟁 지도부는 총파업을 중단시켰습니다.

운동의 약한 모습을 눈치챈 군부는 항쟁을 진압할 조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부는 군대의 이반을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군대 일부는 항쟁의 여러 국면에서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이웃 나라들, 특히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반동적 통치자들을 만나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해도 지지해 주겠다는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마침내 6월 3일 수단 군부는 [군부 직속 무장 조직인] 신속지원군을 투입해 하르툼 광장을 점거한 시위대를 살해했습니다. 최소 150명이 신속지원군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는 지배 질서가 위협받으면 지배계급이 민주주의적 외양을 걷어치우고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200년 전 영국 맨체스터 성 피터 광장에 모여 의회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지배자들이 학살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1973년 칠레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위협한 노동자 운동을 분쇄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30년 전 중국 지배계급이 자신들을 몰아낼지도 모르는 운동에 직면해 텐안먼 광장에서 학살을 자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가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학살한 것은] 수단 사회의 특수성 때문이 아닙니다.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지배계급은 자기 지배가 위협받으면 그렇게 대응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요? 심지어 이런 가혹한 탄압에도 수단 항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파업이 계속 벌어지고, 거리 시위도 조금씩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전략이 없었던 운동 지도부는 군부와의 협상 테이블로 되돌아갔고, 사실상 몇 년 동안 군부에게 권력을 주는 합의안에 조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와 수단에서 나타난 문제가 전 세계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해결된 역사적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 때도 수단에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선에서 사람들이 죽고 본국에서 빈곤이 만연한 현실에 맞서 반란이었습니다.

수단인들이 알바시르를 끌어내린 것처럼 러시아인들도 1917년 2월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힘으로 차르[황제]를 권좌에서 쫓아냈습니다.

이 때도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정도가 최선이다’, ‘너무 빠르고 근본적인 변화는 안 된다’, ‘너무 멀리 가지 말자’ 같은 주장이 있었습니다. 차르를 끌어내린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 다수가 처음에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러시아에는 수단과 달리 볼셰비키라는 혁명적 조직이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는 수십 년 전부터 노동계급 내에 뿌리내리고, 각종 노동계급 투쟁,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에 개입하고 참여하면서 노동계급 안에서 자신들의 정치로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 덕분에 볼셰비키는, 차르 몰락 이후 집권한 임시정부를 지지하지 말자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을 즉각 끝내고, 농민들은 토지를, 노동자들은 공장을 접수하자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 평의회의 성장을 지지했습니다.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의 대표자들이 자기 작업장뿐 아니라 더 넓은 사회의 운영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기구였습니다. 볼셰비키는 이러한 노동자 평의회, 즉 소비에트가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지배자들이 피바다를 만들어서 혁명을 끝장내려 했지만, 그 결과는 6월 3일 수단 하르툼 광장과 달랐습니다. 노동자들은 코르닐로프 장군의 쿠데타 시도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고 반격했으며, 혁명가들이 총살당하지 않게 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볼셰비키가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농민의 지지를 이끌어 낸 러시아 노동자들이 핵심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항쟁에서 승리하는 데에서 볼셰비키는 전체 노동계급과 구분되는 [또 다른 핵심] 요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단에는 그런 조직이 없었습니다. 혁명가들의 소규모 단체들은 있지만, 항쟁의 향방을 좌우하기에는 너무 작고 취약하고 영향력이 미미했습니다.

그리스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그리스에는 저희 자매 단체 동지들을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있었고, 이들은 계급투쟁 수위를 높이려 분투했으며, 시리자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손 놓고 기다려선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사태를 바꾸기에는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서 혁명가들이 조직돼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수많은 한국 노동자들도 수단인들처럼 항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가서 ‘우리도 조직을 만들어야겠네’ 하면 너무 늦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제가 보여 드린 사진들을 보십시오. 민중은 들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우리 앞에 놓인 분열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흑인과 백인 노동자를 가르는 분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 분열의 장벽은 투쟁 속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변화와 단결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빈곤, 전쟁, 긴축을 막아야 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기후변화가 단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국가로 나뉜 세계에서는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습니다. 억만장자들이 모든 우선순위를 정하는 세계에서는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억만장자 43명이 못사는 세계 인구 절반과 같은 부를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43명이 아니라 26명이 못사는 세계 인구 절반과 같은 부를 소유합니다. 

세상은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을 승리로 이끌 조직을 갖춰야만, 자본주의에 도전할 만큼 큰 투쟁이 다시 벌어졌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토론 정리

발언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난민 분들을 대표해 발언하신 이집트 동지에게 환영의 뜻을 보냅니다.

맑시즘2019에서 연설하는 찰리 킴버 ⓒ조승진

어떤 분께서 자신이 다니는 공장이 머지않아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에도 무시무시한 통계가 있습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30년에 최소 12기의 핵발전소가 일부 혹은 완전히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어떤 난리가 날지 상상이 안 됩니다.

한 동지께서 수단 항쟁에서 여성들이 한 [적극적인] 구실에 관해 발언하셨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수단 항쟁이 부족 간 장벽도 극복했다는 사실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특히 수단 서부 다르푸르가 그 사례입니다. 알바시르 정권 당시 다르푸르에서는 내전이 벌어져 [종족 간 갈등으로] 20~30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이번에 항쟁이 시작되자 알바시르는 다르푸르 사태를 이용해 항쟁을 폭력적이라고 매도하고 탄압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단 운동은 다르푸르인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다르푸르인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이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동지께서 1917년에 볼셰비키의 성장에 관해 질문하셨죠. 수치가 대단히 놀랍습니다. 1917년 3월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도시인 페트로그라드에서 볼셰비키 당원 수는 2000명이었습니다. 4월에는 그 숫자가 1만 6000명으로, 7월에는 3만 6000명으로 늘어납니다. 러시아의 방직 도시인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에서는 1917년 3월에 볼셰비키 당원이 단 10명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인 4월에는 10명이 3500명으로 늘었고, 7월에는 5400명이 됐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조직적 활동이 중요했습니다. 주변 노동자들에게 신문을 판매하고, 작업장에서 모임을 열었던 덕분이죠.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치적 역량이었습니다. 그런 역량 덕분에 볼셰비키는 혁명 전부터 모든 투쟁에 개입하고, 1917년 혁명이 진행될 때에는 전쟁에 반대하고, 임시정부를 넘어서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자고 주장하는 올바른 정치를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바로 작업장으로 달려가 “동지들, 내일부터 혁명을 일으킵시다” 하고 외치는 식으로는 혁명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그다지 멀리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혁명을 준비하려면 혁명의 정수에 담긴 논리를 오늘날의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 녹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의회가 아니라 노동자 평의회를 원합니다. 노동자 평의회를 준비하려면 우리는 모든 쟁점에 대해 ‘거리와 작업장에서 우리가 스스로 하는 행동이 선거나 투표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혁명

어떤 동지께서 혁명적 위기가 오려면 전쟁이나 그 비슷한 사회적 혼란이 있어야 하는지를 질문하셨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컨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전쟁은 핵전쟁이 되지 않겠습니까? 미국이 제대로 한판 붙는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클 것입니다. 그런 전쟁이 벌어지면 후대에 물려줄 세상이 거의 남아 나지 않을 것입니다.

레닌은 혁명이 일어날 조건으로 두 가지를 들었고, 트로츠키가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레닌이 말한 두 조건은 ① 지배계급이 기존 방식대로 더 지배할 수 없을 때, ② 노동계급이 기존 방식대로 더 살기를 거부할 때입니다. 트로츠키는 혁명적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죠.

레닌이 제시한 조건은 결국 위기를 뜻하지만, 위기는 여러 형태일 수 있습니다. 수단에서 그 위기는 장기 집권으로 오랫동안 불만이 쌓인 독재 정권의 위기였습니다. 2011년 이집트에서는 그 위기는 무바라크 정권의 위기였습니다. 둘 모두 전쟁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례 모두 국제적 사태 전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이유로 국제주의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노동계급은 국제 혁명으로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주의를 주장합니다. 수단 항쟁도 알제리 항쟁에서 큰 용기를 얻었고, 이집트 혁명은 직전에 일어난 튀니지 혁명과 이어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단 항쟁의 정치적 약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사실 그리스에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둘 모두 중대한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그 고비는 국민투표였고, 수단에서 그 고비는 하르툼 광장 학살이었습니다.

수단 항쟁 지도부와 그리스의 시리자 모두 기존 방식을 버리고 뭔가 다른, 혁명적 정치로 나아갈 태세가 돼 있느냐는 정치적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둘 모두 기존 체제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시리자는 유럽연합 자본가들과, 수단 항쟁 지도부는 군부와 기존 체제 내에서 협상하는 길을 고집했으며, 결국 상대의 저항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모든 차별과 착취에 반대하고, 그리스와 수단에서 있었던 것과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낼 조직을 지금부터 건설해야 합니다.

강연 도중 졸은 동지의 심정, 십분 이해합니다. 앞으로도 조는 사람은 계속 있을 겁니다.[좌중 웃음]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혁명가가 돼야 합니다. 모두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미몽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놓인 가능성에 눈뜨고 혁명적 조직을 건설할 필요성에 눈떠야 합니다. 

그러니 지난 며칠 동안 ‘맑시즘2019’에서 토론을 즐기신 동지들은 모두 노동자연대에 가입해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함께 하시기를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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