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쿠바 혁명 1주년 기념 행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행진을 이끌고 있다

칠레와 에콰도르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반란으로 라틴아메리카가 다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 반란들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계속해서 엄청난 대중 저항을 불러일으키는지 보여 준다.

이것은 10월 26일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저널이 주최한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행사의 주제 중 하나였다. 이 행사에서는 이전의 반란들이 어떻게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부, 특히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각각 정권을 잡은 소위 “핑크 타이드[파도]”를 일으켰는지도 분석했다.

하지만 핑크 타이드는 약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브라질에서 이를 확연하게 볼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2002년 노동자당이 집권했지만, 2016년 합헌 쿠데타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해임되고 전임자 룰라가 투옥됐다. 이후 극우 선동가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연사들은 이러한 좌절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갔다. 앤디 브라운은 좌파 정부 중 어느 곳도 자본주의와의 진정한 단절을 추구하지 않았고, 그래서 대중의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우파의 반동에 취약했다고 주장했다. 클라우디아 페레스 파리아는 보우소나루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새로운 “고삐 풀린 약탈 자본주의”로 나아가 환경을 파괴하며 천연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고 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리오 나인이 지적했듯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 모델은 1958~1959년 쿠바 혁명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크 가르시아 에르난데스가 콘퍼런스에서 연설한 것은 매우 행운이었다.

프랑크는 올해 초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레온 트로츠키에 관해 역사에 남을 만한 학회를 조직한 쿠바의 사회학자, 역사가다. 쿠바 정권이 소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트로츠키는 쿠바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는데 프랑크는 쿠바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재평가를 선도하고 있다.

프랑크는 경제 개방 시도의 결과로 쿠바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얘기했다.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었을 당시에 쿠바와 화해 정책을 추진했다. 쿠바는 그 이전까지는 혁명 아주 초기부터 [60년 가까이] 미국의 경제 봉쇄를 받아왔다.

프랑크는 경제 개방으로 특히 아바나의 관광 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이념적으로도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계급투쟁이 새로운 형태로 재등장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쿠바 경제를 봉쇄하려 함으로써 이 과정을 늦추고 있다.

나는 프랑크와 대화를 나눴다. 나는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7·26 운동(M-26-7) 동지들이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잔혹한 독재정권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데서 보여 준 영웅적 행동을 아주 높이 샀다. 나는 스티브 쿠션이 쓴 《쿠바 혁명의 숨겨진 역사》에서 나온 새 연구 결과도 얘기했다. 그 연구는 무엇보다도 쿠바 혁명에서 조직 노동자들이 중요한 구실(특히 카스트로가 요청한 1959년 1월 1일 총파업)을 했고, 이것이 혁명의 승리를 굳히는 구실을 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나는 쿠션의 발견이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가 쿠바 혁명 직후인 1960년에 한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클리프는 쿠바 혁명이 소위 “빗나간 연속혁명”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연속혁명 이론을 처음 공식화한 것은 트로츠키였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이고 어느 나라도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노동계급이 이끄는 투쟁은 기초적인 민주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더라도 사회주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클리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노동계급이 투쟁을 이끌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중간계급 중 급진적 민족주의 부문이 권력을 쟁취하고 제국주의와 단절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와는 단절하지 않는다.

이것이 쿠바에서 벌어진 일이다. 노동자들은 혁명을 지지했지만, 1959년에 권력을 잡은 것은 7·26 운동의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이후 스탈린주의 공산당과 통합됐다. 쿠바 혁명의 가장 영웅적인 인물인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초 산업부 장관으로서 중앙집중적인 국가자본주의 경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주장이 옳다면 쿠바 혁명에서 분명 영감을 얻을 순 있지만 그것을 모범으로 삼을 수는 없다. 프랑크는 동의한 것 같지 않지만, 우리가 논의했던 주제들은 거대한 희망과 두려움으로 고군분투하는 라틴아메리카 좌파에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