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일본 아베 정부와 타협을 모색하는 듯한 제스처를 연일 취하고 있다.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직전 문재인은 일본 총리 아베에게 ‘단독환담’을 제안했다. 11분 동안의 만남에서 ‘두 정상은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고, 고위급 협의도 검토해 보기로 했다고 한다. 

11월 23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효력 종료를 앞두고, 이달 중순 한일 국방장관 회담도 열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방일 중인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 문희상은 11월 4일 한·일 기업과 ‘양국 국민’에게서 자발적 기부금을 모아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법의 제정을 ‘해법’이라고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가 고수해 온 ‘1+1안’(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기금 마련)보다도 더 후퇴한 안이다. 1+1안도 일본 국가와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비껴가는 안이었는데 더욱더 책임을 흐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언론들조차 이런 안으로 한국 내에서 합의가 가능할지 의구심을 표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대일 특사였던 문희상에게서 나온 안이어서, 문재인 정부가 여론을 떠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같은 날 국방부 장관 정경두는 국회에서 노골적으로 지소미아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 하고 말했다.

불과 몇 달 전 항일 투사 행세를 하던 정부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역겹게도 〈조선일보〉가 “‘이순신’ 찾고 ‘죽창가’ 부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11월 5일자 사설) 하고 비꼬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의 친제국주의적 행보는 국내에서 우파의 기를 살려 주고 있다.

11월 4일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아베와 회담한 문재인 ⓒ출처 청와대

문재인 정부의 이런 타협 행보는 진보·좌파 진영이 지소미아 즉각 종료를 요구해 온 것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진보·좌파 진영 일부가 지소미아 종료 통보를 환영하며 문재인 정부가 수십년간 한반도에서 유지돼 온 한·미·일 공조 체제(이른바 ‘1965년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보고 기대를 건 것이 단견이었음을 보여 준다.

지난 여름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로 곤혹스런 상황에서 지소미아 폐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에 기대어 위기를 모면하려 한 것이다.

한일 갈등에서 미국의 중재를 이끌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즉, 일관되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고 한·미·일 동맹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게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말은 드셌지만(이조차 점차 누그러졌다), 실천에서는 군사훈련을 포함해 미·일 군사 협력을 지속했다.

그런데 미국은 노골적으로 일본 정부를 편들었다. 며칠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스텔웰은 일본 방문 중에 지소미아가 “한국에도 유익하다”며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다시 압박했다. 일각에서 남·북·미가 일본을 패싱하고 있다고 본 건 피상적인 착각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자신도 ‘한미동맹 업그레이드’를 공언했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조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이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동맹 구조를 강화하자는 시도를 포함하는데도 말이다.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일본 제국주의와 타협을 모색할 여지가 컸던 것이다. 따라서 설사 이번에 지소미아가 종료된다고 해도 한·미·일 협력 문제는 또다시 제기될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에서 역대 민주당 정부가 미국·일본 제국주의와 협력해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은 평화를 바라는데 호전적인 국방장관이 걸림돌이라거나 하는 식의 구도가 전혀 아닌 것이다.

진보·좌파 진영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되고, 독립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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