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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노(老) 혁명가가 말한다:
칠레 항쟁의 잠재력과 혁명적 좌파의 과제

이 글의 필자인 마리오 나인은 칠레의 혁명가이며, 1970년대 칠레의 혁명적 상황을 경험했고 피노체트 군부 독재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

10월 25일 광장을 가득 메운 칠레 민중들 ⓒ출처 Hugo Morales

칠레의 항쟁이 계속되면서 신자유주의, 어쩌면 자본주의에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총파업이 거듭 벌어지고 대규모 거리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0월 29일 발파라이소[수도 산티아고 근처의 항구도시]에서 출발한 거대한 행진이 11월 2일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시위가 어찌나 크고 격렬했던지 칠레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이름높은 두 국제 회담을 취소한다고 했다.

하나는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이고, 다른 하나는 12월 초로 예정된 유엔기후변화회의(COP25)였다.

이전까지 피녜라는 신자유주의의 성공 사례로 국제적으로 칭송받았다. 이제 피녜라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상징한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3주 내내 칠레를 휩쓴 저항이 “외세의 입김” 탓이라는 어리석은 소리를 했다. 또한 피녜라의 “질서 회복” 노력을 지지한다는 더 불길한 소리도 했다.

이번 항쟁은 외세가 아니라 칠레 사회 내부의 동학에서 비롯했다.

칠레 사회는 지극히 불평등하다. 2만 6000명이 영양실조, 의약품 부족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한 칠레 방송사가 최근 보도했다. 한 노부부가 먹을 것이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공공 병원의 여건은 19세기 영국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환자들에게] 신자유주의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다.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칠레 전체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노동자, 실업자, 심지어 중간계급 일부까지 포괄하는 사회의 광범한 층이 시위에 공감한다.

오직 최상층 엘리트만이 시위대를 멸시한다.

시위를 촉발한 것은 교통 요금 인상이지만, 쟁점은 순식간에 교육·보건·빈부격차 등으로 번졌다.

지배계급은 심각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경제적 위기에 빠졌다.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완전히 무기력하다. 자유 시장이 기적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을 더는 옹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칠레 경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팽창했다. 지금은 그 팽창이 멈췄고 지배계급의 정당성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지배자들은 시위대를 범죄자로 매도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를 택했다. 시위가 시작된 후 최소 20명, 아마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군경에 살해당했다.

올해 칠레 곳곳에서 열린 “사자(死者)의 날”[중남미의 명절, 보통 죽은 친지나 친구를 기리며 명복을 빈다] 행사는 이번 시위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을 기렸다.

지도력

이 사회 운동에는 아직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세력이 없다.

전통적 좌파 정당들인 사회당과 공산당은 피녜라 정권 이전의 “좌파” 정부에서 그들이 한 구실 때문에 이 운동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 당들도 신자유주의를 추진했다.

사회당 소속 미첼 바첼레트가 집권했을 때 고등학생들은 민영화에 반대해 거대한 저항을 일으켰다. 바첼레트 정권은 그 운동을 내쳤다.

2017년에 새로운 좌파 정치 연합 ‘광범전선’이 출범했다. 여기에는 급진 좌파, 녹색 정치, 자율주의 성향의 다양한 단체들이 결집했다. 그러나 광범전선 또한 아래로부터 운동을 건설하기보다는 선거에 매달리는 전략과 단절하지 못했다.

시위 현장에는 칠레 국기나 칠레 원주민 마푸체족의 깃발만이 나부끼고 있다. 주류 좌파 정당들의 깃발은 없다. 혁명적 조직이 메워야 할 거대한 정치적 공백이 있는 것이다.

과거에 지배계급은 조야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이들의 선전은 사회주의를 반(反)민주적인 전체주의 체제로 묘사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에서 공산당과 사회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데올로기는 쓸모가 없다.

“국민적 대화”나 “민중의회”를 하자는 논의가 위로부터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저항에는 훨씬 큰 잠재력이 있다.

칠레의 저항은 이런저런 작은 개혁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혁명적 사회 변화로 나아가야 하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