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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크리스 하먼 10주기: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등불이었던 크리스 하먼

다음 글은 영국의 저명한 아동문학 작가이자 철학자인 마이클 로젠이 쓴 고(故) 크리스 하먼 조사로, 애초 〈가디언〉에 2009년 11월에 실렸던 글이다.

2005년에 크리스 하먼은 30년에 걸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출간 사업이 완료되는 과정에 관한 글을 썼다. 50권에 이르는 전집 중 제50권에 대한 서평이었다. 당연히 하먼은 그 전에 출간된 마흔아홉 권을 한 권 한 권 출간될 때마다 모두 읽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향년 66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하먼은 다른 사람이 쓴 요약을 읽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 그런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하먼이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려면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마르크스주의는 공산당이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보듯 공산당 독재가 마르크스의 사상과 실제로 맺은 관계라곤 왜곡해서 자신들 수사에 끌어다 쓰는 것뿐이었다.

하먼은 왓퍼드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왓퍼드는 좌경적 독불장군 해리 레가 교장을 지냈고, 사관학교 출신 보수주의자, 웨일스 출신의 나이 많은 사회주의자, 청년 반핵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교직원으로 있었다. 내가 하먼을 처음 본 게 그 학교였던 것 같은데, 그는 내 선배였던 어느 좌파 인사의 친구였다.

왓퍼드를 졸업한 하먼은 1961년에 리즈대학교에 입학했고 거기서 새로운 조류의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다. 그 조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과 독일혁명, 소련 블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전 세계 다양한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주목 등 주요한 사상·역사·실천을 포괄하려 했다. 그런 프로젝트는 1930년대에 시작됐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 애쓰던 지극히 작은 단체들 중 하나에 하먼은 가입했다. 바로 토니 클리프가 주요 이론가인 ‘소셜리스트 리뷰 그룹’이었다.

1964년에 하먼은 런던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이하 LSE)에 입학해 현[2009년] 외무장관의 아버지인 랠프 밀리반드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당시는 미국의 시민평등권 운동, 반식민지 투쟁,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서 혁명적 기류가 불어오던 때였다. 그 기류 속에서 어느새 LSE 구내식당과 LSE 인근 홀번 지구의 술집들은 좌파 사상의 토론장이 돼 있었다. LSE는 영국의 연좌 농성과 자유 대학의 초점이 됐다.

나는 하먼이 다니엘 콩방디[이후 프랑스 1968년 5월 투쟁에서 학생운동 지도자가 된다]와 LSE에서 나란히 연설하는 것을 지켜 봤고, 한번은 그가 프랑스 르노 공장 점거 노동자 현장위원과 함께 연설할 때, 또 한 번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현장에서 연설할 때 봤다. 그 사이에 ‘소셜리스트 리뷰 그룹’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이 됐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대안이] 아니다”가 이들의 슬로건이었다.

많은 사회주의자들,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 공산당원들은 소련을 향한 하먼의 적개심에 움찔했다. 한 모임에서 하먼이 미국에 맞선 베트남인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호치민의 공산당을 호되게 비판하는 것에 일부가 놀라워 하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1968년 5월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일[프랑스공산당은 대중 항쟁에 직면해 풍전등화였던 드골 정부와 타협했다]을 보며 하먼은 자기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됐다고 말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던 기존 정당들이 혁명을 일으킬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말이다.

그 후 40년 동안 하먼이 한 모든 활동은 바로 그 의지와 능력이 있는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먼은 IS와 그 후신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연설하고, 글을 쓰고, 편집하고, 조직하고, 운동을 건설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하먼은 2004년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였고, 그 전에는 20년 넘도록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 편집자를 지냈다.

대화를 할 때면 하먼은 이따금씩 눈길을 떨구며 귀로 상대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나중에 그의 답을 들어 보면 자신이 듣는 말들을 머릿속 도서관의 내용들과 연결시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먼은 박사과정을 마치지 않았지만 수많은 논문·사설·책을 썼다.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이론을 더한층 발전시킨 《동유럽 계급투쟁》[국역: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 갈무리](1974년에 쓴 《동유럽의 관료와 혁명》을 개정한 것이다), 독일 혁명의 역사를 다룬 《패배한 혁명: 1918~1923년 독일》(1982)[국역: 《패배한 혁명》, 풀무질], 마르크스주의 고전 《민중의 세계사》(1999)[국역: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등. 하먼은 당시 경제 상황을 꿰뚫어 보는 글들을 여러 번 썼는데, 이는 각각 1984년 출간된 《위기를 설명하기》[국역 정보: 《마르크스21》 12, 13호에 일부 번역돼 있다]와 2009년에 출간된 《좀비 자본주의》[국역: 《좀비 자본주의: 세계경제 위기와 마르크스주의》, 책갈피]로 집대성됐다.

하먼의 말은 빨랐지만 분석적이었으며, 역설과 모순에 능했다. 하먼의 라이프스타일은 극도로 검소했다. 학자 생활이나 명망에 무심했다. 나는 기성 신문이나 TV 토론에서 전쟁이나 세계 자본주의의 상태를 다룰 때 하먼을 초청하지 않는 것이 줄곧 안타깝고 짜증났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금 이제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애석하다. 하지만 하먼은 주류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역작을 잔뜩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