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 문재인 정부의 제1 과제는 노동개혁(개악)”

재계와 보수 언론의 이런 주문은 문재인 정부 자신의 다짐이기도 하다. 조국 사태와 지지율 하락 등 정치적 위기에 처한 문재인은 기업주들의 지지를 구하려고 10월 초부터 친기업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문재인은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애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개악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던 재계의 요구에 적극 응답한 것이다.

지난 한 달여간 문재인의 행보는 거침없다. 10월 4일 경제단체장 간담회, 8일 국무회의, 17일 경제장관회의,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은 탄력근로제 개악 입법을 강력히 촉구했다. 10월 10일과 15일에는 각각 삼성과 현대차를 찾아 재벌 총수들의 기업 활동 지원을 약속했다. 경제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내년도 예산안도 기업 지원에 역점을 두고, 데이터3법과 소재·부품·장비 특별법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요행이나 바랄 때가 아니다 민주당 vs. 한국당 갈등 때문에 노동개악이 지연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안이하다. 10월 31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이미진

10월 11일에는 2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과 동시에 탄력근로제 개악안을 의결했다. 물론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개악에 반대한 경사노위 계층별 위원들을 해촉하고 자기 입맛에 맞게 교체하는 불명예를 감수하고서야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경사노위가 노동개악을 위한 ‘답정너’ 기구일 뿐임을 재확인시켰다.

개악 3종세트 ― 노동시간, 임금, 단결·행동권 공격 

그리고 급기야 10월 21일, 서로 물어뜯고 싸우던 집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이 노동개악 법안들을 신속히 통과시키기로 전격 합의했다. 국회에서 노동개악 강행 처리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이다. 지난 수개월간 다른 쟁점을 놓고는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던 민주당과 한국당이 노동자 공격에는 한통속임을 다시금 보여 줬다.

당면한 노동개악 법안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임금, 단결·행동권을 공격하는 것들이다.

·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사용자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는 한도를 크게 늘리는 것.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고 추가 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가능케 한다.

·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전에 임금 인상 폭의 구간을 미리 설정하는 사전 단계를 만드는 것.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해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통에 내몬다.

· 노사관계법 개정: 노동기본권의 보장은커녕, 오히려 ILO 기본협약 비준을 빌미로 사용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노동자들의 저항권 제약이 핵심 내용이다.

이 같은 개악안들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 파탄을 상징하는 대표 입법으로 꼽혀 온 것으로, 올해 상반기부터 노동자들의 상당한 반발을 샀다. 

발목 붙잡는 진영논리

그럼에도 문재인은 한일 갈등과 조국 사태 국면에서 노동계 대표 조직들을 정부 지지로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우파의 부상을 막으려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차악론이 노동운동 내에 퍼진 결과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영논리는 우리 쪽의 저항 태세를 약화시켜 개악을 막는 데도 우파의 부상을 막는 데도 해악적이다. 최근 한 진보계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역대 민주당 정부가 세 번 집권할 동안 노동권이 점차 후퇴하게 된 데에는 노동운동이 민주정부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까닭도 있다.”

집권한 민주당은 늘 이전 우파 정부들이 실패한 노동개악을 마저 완수하는 구실을 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밀어붙였고, 노무현 정부가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을 확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가 못 다 한 각종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또다시 패스트트랙 문제 등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붙잡아 두고 정부와의 정면 충돌을 자제시키려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에 단호히 맞서길 주저해서는 안 된다. 패스트트랙이나 강기정 발언 등을 둘러싼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의 갈등 때문에 노동개악이 지연되길 바라면서 추후 총선 대응과 연결해 대응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봐서도 안 된다. 세계적인 장기 경제 침체 때문에 노동개악에 대한 한국 지배계급의 의지는 굳건하다.

그 점에서 최근 정의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두고 민주당과의 공조를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공조하려는 쟁점이 다르지 않느냐는 것은 형식적인 접근일 뿐이다. 정부·여당이 노동자 공격에 힘을 쏟는 상황에서 국회 의석수 확대라는 의회주의적 계산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투쟁의 타이밍

노동개악이 임박한 지금, 민주노총은 즉각 실질적 총파업에 나서야 한다.

10월 21일 여야의 노동개악 추진 합의 직후 노동운동 좌파단체 10곳이 신속하게 공동 성명을 발표해 민주노총의 “즉각적 총파업 돌입”을 촉구했다. 이것은 결코 성마른 투쟁 촉구가 아니었다. 여야가 예고했던 10월 31일 개악 처리가 약간 늦춰지고 있지 않느냐며 요행을 바라는 것은 효과적인 저지 투쟁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국회에서 개악안 강행 처리는 이미 기정사실로 돼 있다. 정부는 일찌감치 11월 개악 입법 완료를 못 박았다. 이에 제동을 걸려면 단호하고 과감하게 저항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채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 소위 일정에만 촉각을 곤두세워서는 안 된다. 지난해 최저임금 개악 때도 봤듯이, 법안심사 소위에서 노동개악안이 통과되면 바로 다음 날이라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될 수 있다. 형식적인 하루 파업이나 항의 집회에 그쳐서는 개악을 막기 어렵다.

지도부가 국회 일정 쫓기 식이면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단호하게 싸울 의지가 있는가 하는 회의감을 느끼며 투쟁 태세를 갖추기 어렵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금 당장 실질적인 총파업을 명령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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