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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시간 축소, 노동시간 유연화로:
파업으로 올린 임금 도로 뺏는 서울대 생협 경영진

지난 9월 19일 파업에 나선 생협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단호한 파업으로 임금 인상 성과를 거뒀다. 서울대 생협 경영진은 이를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이시헌

서울대 내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이 지난 10월 28일 직영식당 6곳 중 2곳의 운영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1월 1일부터 동원관식당은 저녁 급식이 중단돼 점심만 배식하고 있고, 학생회관 식당은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을 각각 1시간, 30분씩 단축 운영하고 있다.

생협 측은 운영시간 단축이 “직원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식재 보관량을 줄이고 창고를 확보하여 이를 휴게실로 전환”하기 위해 저녁 급식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민주당 김해영 의원의 질의에 대한 생협 측 답변서).

그러나 실제로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운영시간을 단축한 것임이 드러났다. 사측은 운영시간 단축만이 아니라 시차근무제·보상휴가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파업 성과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운영시간 단축과 함께 전환 배치도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조건은 오히려 악화됐다.

동원관 식당의 경우, 저녁 급식이 중단되면서 기존 전일제 식당 노동자 6명이 다른 식당으로 보내졌다. 대신 학생회관 식당 파트타임 노동자 4명이 동원관 식당으로 왔다.

하지만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5시간(9:30~14:30)만 일하고 가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에는 조리실장 1명과 조리원 3명이서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

한 동원관 식당 노동자는 노동강도가 심각하게 강화됐다고 말한다.

“제가 여기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지만, [사측이] 이렇게 한 적은 없었어요. 최소한 7명이 일했는데, 여러 명이 같이 손을 모아서 하면 빨리 끝나는 일을 3명이서 하고 있어요.”

노동강도는 강화됐지만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저녁 급식이 중단돼 ‘특근’(하루 8시간을 초과해 추가로 근무하는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월 10만 원 정도의 시간외근로수당은 낮은 기본급을 벌충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파업으로 기본급을 월 12~13만 원 정도 기껏 올려놨더니, 사측은 수당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수당 삭감

사측은 시차근무제와 보상휴가제를 활용해 시간외근로수당(특근수당·휴일근로수당)마저 대폭 삭감하려 한다.

학생회관 식당의 경우 매일 3800명가량이 이용해 노동자들은 특근과 휴일근로를 상시적으로 해 왔다. 비록 일은 가장 고된 편이지만 수당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아 왔다.

종전에는 저녁 배식을 위해 하루에 조리사와 조리원 8~9명이 특근을 해야했다.

그런데 이제는 저녁 시간도 30분 단축하고,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이른바 ‘시차근무’ 인원도 늘림으로써 특근 수당이 대폭 줄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특근을 줄여버린 탓에, 여성 조리원들은 월 16~17만 원 정도 받던 특근수당이 월 4만 원 정도로 깎였다.

늦게 출근하는 인원이 늘면서 일찍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도 크게 강화됐다.

그나마 발생하는 시간외근로도 ‘선택적’ 보상휴가제를 강제로 사용하게 해 수당을 주지 않고 있다.

예컨대, 1시간 특근을 하면 시간외수당을 주는 게 아니라 기존 근무 시간 중 1시간 30분을 유급휴가라며 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잠깐 쉰다 해도 전체적인 업무량은 그대로이므로, 결국 동료의 일을 돌아가면서 떠안아서 맡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선택적’ 보상휴가제는 일이 많을 때 특근을 시키고도 일이 없을 때 강제로 쉬게 해 수당은 주지 않아도 되는 탄력근로제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선택적’이지도 않다. 생협 사측은 노동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보상휴가 사용을 전제로 한 근무표를 짜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런 유연 근무 확대로 조리사들의 시간외근로수당은 11월부터 적게는 28만 원, 많게는 49만 원이나 감소하게 된다! ‘일은 더하고 돈은 더 적게 받게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생협식당들에서도 이런 방식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식수가 적은 방학 기간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시차근무제, 보상휴가제 같은 유연 근무 확대 조처들은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산업계의 ‘보완책’으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장려되고 활용돼 온 제도다.

서울대 생협의 반격은 정부·여당의 이런 노동개악 시도와 맞닿아 있다.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과 조국 국면에서 잠시 눈치보며 양보했던 서울대 당국이 사람들의 관심이 뜸해진 틈을 타서 다시 반격에 나선 것이기도 하다.

생협 축소로 인한 학생 피해

한편, 생협 식당의 운영 축소로 인해 학생들도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생협 직영식당은 값이 싸고 질도 괜찮아서 학기 중엔 매일 1만 2000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렇듯 생협 직영식당이 점차 축소되면 학생들은 값비싼 위탁식당과 외주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싼 돈을 내고 외주업체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생협 경영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매일 운영하던 기숙사 식당을 토요일에 휴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방학 기간에 302동 식당을 아예 휴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휴일 수당 삭감을 예고한 것이다. 생협 경영진의 노동자 공격이 학생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겨우 올린 임금을 도로 빼앗고, 학생들에게도 불편을 초래하는 생협 사측의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