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안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노동운동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부결 직후 노동자 투쟁은 꽤 탄력을 받으며 전개됐다. 국립대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 대우조선 매각 저지 투쟁,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김천시 관제사 정규직화 투쟁, 한화토탈 파업 등이 이때 벌어졌다.

경사노위 불참 이후 상반기:
왜 운동은 할 수도 있었을 전진을 하지 못했나?

이 시기에 노동운동은 중요한 정치적 소득을 얻었다. 4·3 재보선에서 정의당의 당선,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4월 11일), 제주 영리병원 취소(4월 17일) 등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이 더 전진할 수도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5월 말경에 이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이후 반토막 났던 지지율을 점차 회복하면서 주도권을 다시 강화했다. 그 경위는 아래와 같다.

노동운동의 정치적 소득에 대한 우파 측의 반동이 강화되고(그들 집회 규모의 성장으로도 나타났다), 이에 힘입어 한국당이 4월 말 패스트트랙 저지 국회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중도좌파(이하 진보) 측에서는 우파에 맞서 진보계와 민주당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화됐다. 이러한 소박한 민중주의적(진보 포퓰리즘) 사고는 여당의 “패스트트랙”(사법개혁과 선거제 개혁) 추진에 대한 진보계의 낙관과 관계있었다.

더구나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 대통령을 “사회대개혁” 추진의 일면 협력 대상으로 여기면서 그에게 정면 도전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김명환 집행부는 메이데이 행사를 전국집중 서울집회가 아니라 권역별 분산집회로 치렀다. 분노한 노동자들의 대규모 청와대쪽 행진이 문재인 대통령(그러잖아도 우파한테서 공격받고 있는)에게 부담을 줄까 봐 우려해서였을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이러한 타협주의적 전망에 따라 민주노총에 교섭전략특위를 설치하고 본인이 특위장을 맡으려 했다.

5월 24일 중앙위원회에 내려던 이 계획은 좌파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5월 21일에 발표된 좌파 공동성명의 제목은 “교섭틀 추진이 아니라 총파업 실질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였다.) 그러나 김명환 집행부는 대화·교섭 중심 계획이 거듭 좌초됐는데도 ‘사회적 대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좌고우면하면서, 투쟁을 이끌려고도 하지 않았다.

불만을 확인하다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무산은 정부의 노동정책과 경사노위에 대한 조합원들의 큰 불신을 보여 줬다. 불참 결정에 좌파들의 불참 운동이 기여한 바가 컸다 ⓒ이미진

반면, 민주노총 집행부의 예상과 달리 여야의 갈등으로 “노동개악이 물건너”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국회가 마비돼 있는 동안에도 탄력근로제 계도 기간 연장을 통해 이미 주52시간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또 강조했다.(그 결과 7월 12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역대 최저급 인상 수준인 사용자 측 안이 가결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적어도 5월 말경 계급 세력균형은 다시 정부 쪽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6월 10일 ILO 총회까지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겠느냐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기대도 빗나갔다.

심지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자신을 포함해 민주노총 상근간부들에 대한 탄압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공격에 실질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조차 마찬가지였다. 김명환 위원장은 보석 석방을 택했는데, 수배되거나 구속되면 정부와의 대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처지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을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부의 이런 소심함은 비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착각 때문만은 아니고, 경제가 위기인 상황에서 경제 회복에 협조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도 작용했다.

이는 구조조정 저지에 그들이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또, 최근 ‘군산형 일자리’ 협약에 한국노총뿐 아니라 민주노총 산하 조직(군산시지부)이 참여한 것도 이를 보여 준다.

상반기 내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진보정치 세력이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바람에 민주당 왼쪽에서 진정한 진보적 대안이 성장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좌파 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일 갈등 불거지다:
노동계 지도부들의 민족주의적 대응이 계급 대립을 흐리다 

7월은 전달부터 이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시작됐다. 6월 말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2차 파업이 있었고, 7월 1일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했고, 7월 3~5일 학교비정규직의 사흘 파업이 있었다. 학교비정규직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36퍼센트를 차지하는 중요한 집단으로, 노조 창립 이래 최대 규모가 이 파업에 참가했다.

그러나 7월 4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발표돼 본격적인 한일 갈등이 시작됐다. 그러자 이것이 다른 모든 쟁점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하는 민족적 진영논리가 득세하고 노동자 투쟁은 급속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 상황에서 애석하게도 진보계와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적으로 대응했다. 민주노총 집행부와 일부 산하노조 집행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경제 침략”으로 규정하고 반일·불매 운동을 지지했다. 국란 극복을 위한 ‘국민적 단결’에 힘을 싣자는 것이었다.

한국이 마치 지금도 일본의 식민지이거나 아니면 재식민지화 위험에라도 처한 양하는 이런 착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국가의 위상이 변해 현 제국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한 축이 됐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일본에 맞서 자국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반제 자주운동’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한 편을 드는 것일 뿐이다.

노동계 3대 조직인 민주노총과 정의당과 민중당의 지도부들은 모두 자유한국당을 친일 적폐세력으로 규탄하는 데 초점을 두면서, 문재인 정부는 거의 비판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전략적 선택(자주, 평화체제)을 하도록 “견인, 강제”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일본 대응에 사실상 협조했다. 정의당은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협의회’에 참가했다. 자민통계는 드러내놓고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자들과 함께 집회를 열었다.

그리하여 노정 간 세력관계가 더욱 문재인 정부에 유리해지고 노동자 투쟁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7월에도 노동자 투쟁은 지속되고 있었고, 최저임금 사용자 측 안 가결 등 정부의 노동개악도 지속되고 있었다.

이처럼 노동계급 투쟁이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 등 노동계 주요 조직들이 정부와 협조하는 것은 심각한 과오였다. 일본과 그 배후 미국의 제국주의적 공세를 폭로하면서도 노동계급의 대정부 투쟁을 강화할 수 있었는데도, 민족주의적으로 대처해 계급 대립을 흐린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문재인 정부는 국민 단결 기치를 내세워 노동자 희생을 정당화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이겨 내야 한다면서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산업 안전 규제를 풀고, 노동시간 연장을 추진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하기 전부터 “기간산업의 필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개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었다(7월 3일 발표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그렇지 않아도 하려던 기업 지원을 한일 갈등을 핑계로 정당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 전개를 추수해 현대차노조 집행부(노동전선 소속인 민투위가 배출한 하부영 집행부)는 파업을 유보했다.

사실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롯한 노동계 주요 조직들은 ‘재벌 중심 대외의존형 경제’ 탈피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이것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발목 잡히기 십상인 노선이었다. 민주노총은 최근 정세해설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6대 분야에서 핵심품목 100개를 선정해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여 5년 안에 자립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조차 얼마나 실효성 있고 일관되게 추진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민주노총 정세해설서 2019-09)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0일과 15일 각각 삼성디스플레이 공장과 현대자동차 연구소를 방문해 이 분야 기술 개발 지원을 약속했다. 소재부품장비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곧 재벌 지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조국 임면 정국:
계급 대물림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에 응답하지 못하다

8월 하순부터 10월 중순까지는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사퇴 문제가 한국 정치를 압도한 쟁점이 됐다. 예고되던 일본의 수출규제(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마침내 8월 28일 실행됐는데도, 조국 사태에 가려질 정도였다. 조국 임명 반대냐 지지냐를 놓고 이번에는 여야 자본주의 양대 정당 간 진영논리가 재연됐다. 

“과정은 평등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보통 사람들은 기대할 수 없는 특권을 행사해 온 인물을 개혁가로 내세운 것임이 드러났다. 그러자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실망과 분노가 분출했다. 그러자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등의 논리로 조국을 방어하면서, 조국 임명 반대자들은 곧 보수 또는 개혁 저항 세력이라고 몰아세웠다.

조국 사태가 계급 불평등 문제였는데도 안타깝게도 노동계 대표 조직들(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은 사이비 진영논리 안에 자신을 욱여넣기를 택했다. 노동자들이 정부와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편을 듦으로써 노동자들의 적인 정부와 한 편이 되는 길을 또다시 선택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민주노총 정세해설서는 “일본 무역제재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친일적폐세력의 총결사전”이 드러났다면서, “친일적폐세력의 온전한 청산”을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이와 달리 문재인의 정치적 위기를 투쟁 기회로 이용했다면 일정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8월 30일) 정부는 몇몇 투쟁에 양보해 불만과 저항의 확대를 일단 차단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쟁취한 것이다. 거기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정규직의 연대, 그리고 정부의 위기가 맞물리면서 노동자들이 성과를 거뒀다.(설사 이 노동자들 자신이 정부의 위기를 의식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의 지향은 이와 달랐다. 9월 3일 민주노총 임원들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만났다. 이것은 위기에 처한 정부에 개혁 색칠을 해 주고, 문재인 대통령이 시간을 벌게 해 주는 셈이었다. 오간 말보다 정부와 민주노총이 악수하고 함께 웃는 행위가 더 중요한 만남이었다. 그럼에도 오간 말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정 협의 틀” 마련을 촉구하고 김상조가 그것을 약속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정 협의 틀 마련을 약속 받고 위기에 처한 문재인 대통령이 숨 쉴 틈을 제공한 것이다.

9월 3일 민주노총 임원들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만남 요청을 수락한 것은 위기에 몰린 문재인 정부에 숨 쉴 틈을 준 셈이었다 ⓒ출처 금속노조

민주노총과의 만남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 필요성 논리로 국면 전환을 시도해 엿새 만에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속 하락하면서 결국 조국은 임명 한 달여 만에 사퇴했다. 정부 편에 섬으로써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한 결과, 노동계 대표 조직들은 이른바 ‘조국 대전’이 치러지는 동안 정말로 존재감 없이 주변화됐고 지금은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국 사태가 지속되는 동안 그 흔한 성명서 한 장 내지 않았다. 두 달 내내 조국과 정부·여당 비판을 일절 삼간 것이다. 정의당도 한국당을 강경하게 비판한 반면 민주당 비판은 삼가면서 사실상 정부·여당을 지지했다. 민중당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이들은 모두 민주당 왼쪽의 진정한 진보적 대안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진보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었다.

노동계 대표 조직들의 이런 행동은 정치적 지지를 확대할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점에서 심각한 과오였다. 아무리 ‘노오력’ 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격차를 뛰어넘기 어렵다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끼는, 정치 경험 없는 청년들을 오른쪽으로 떠밀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처럼 지지자가 될 수도 있는 집단이 적으로 변하면 장차 노동운동은 이런 실수의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 경제 위기 시기의 정치 격변에 잘못 대처하면 이런 위험이 증대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정의당, 민중당의 과오는 특권 계급의 일부이자 그 옹호자인 정부·여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해서 빚어진 일이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 주면서 개혁을 조금씩 얻어 내는 것이 진보적 전진을 위한 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특히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거의 목을 매고 있고, 민주노총은 노사·노정 교섭의 안정화를 통한 조합원 조건 개선을 기대할 것이다. 모두 이를 통해 연립정부를 향한 발판을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민중주의 전략(계급을 초월한 국민 연합)은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세력과의 동맹에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을 묶어 둠으로써 진보적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는 난점이 있다. 특히 지금 같은 장기 경제 침체 상황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수준으로 벌어지지 않고는 부분적 개혁조차 쟁취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동력인 기층 운동을 활성화시키기는커녕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민중주의 전략의 핵심적 난점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억제하면 우파에게 득이 된다.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총이 사회대개혁에 나서겠다면서, “사업장 담장을 넘어 한국사회 대개혁으로!”라는 기치를 걸었다. 이 말은 노동조합의 협소한 부문주의와 경제주의를 비판하는 말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김명환 집행부가 패스트트랙, 한일 갈등,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에서 취한 입장과 그 결과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민중주의적인 사회대개혁 노선이 노동조합 부문주의·경제주의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조국 사태 동안 노동자 운동은 더욱 주변화됐다. 그리고 지지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던 문재인은 위기 탈출을 위해 지금 다시 친기업 정책 추진에 빠르게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동개악 친기업 문재인:
불법일지라도 정치적 총파업이 필요하다

문재인은 조국 사퇴 직전 즈음인 10월 초순부터 부쩍 기업주 친화성을 보여 주려고 발벗고 나섰다. 단지 정치 위기뿐 아니라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점 때문에도 문재인은 친기업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0월 17일 뉴욕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설명했는가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잘 알 수 있다. “기업에 부담이 갈 정책”인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다.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해서도 “기업의 흡수능력을 감안”할 것이라고 했다. 또, 내년에 늘어날 재정 지출과 관련해 “투자에 비중을 뒀다”고 했다. 내년 산업 분야 재정지원 예산은 올해에 비해 27퍼센트 늘어나고, 연구개발 지원은 17퍼센트,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13퍼센트 늘어났다. 반면 복지 분야 증가율은 12퍼센트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 같은 친기업 정책들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한다. 10월 21일 집권 민주당과 한국당은 노동개악 법안들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둘은 다른 문제들에서는 서로 물어뜯고 싸우지만 노동자 공격에는 한통속임을 다시금 보여 준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공격을 만만찮게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은 연말 연초 국면에서도 올해 내내 재미를 본 방법을 재활용하려 할 것이다. 즉, 패스트트랙 문제를 이용해 또다시 노동운동을 붙잡아두고 정부와의 정면 충돌을 자제시키려 할 것이다. 최근에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여야 갈등 덕분에 정부의 실수가 가려지는 형국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측근 복은 없지만 야당 복은 있다”고 했는데,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올해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운동의 전진에 여러 걸림돌들이 있다. 주로 개혁주의에서 비롯하는 이런 문제들은 거듭 재연될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이어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윤을 실질적으로 공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조건을 조금 개선하려는 투쟁조차 지배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이런 조건 하에서 개혁주의자들은 체제가 제공할 개혁이 별로 없다는 점을 노동자들에게 납득시키려 한다. 구조조정과 임금, 일자리 문제 등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가령 그들은 구조조정 반대에 적극 나서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제조업 경쟁력 강화” 같은 “우리 사회의 난제”를 노사정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점점 더 크게 내고 있다. 미래 산업 경쟁력을 위해 노조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노조 집행부가 미래차 생산에 따른 인원 감축을 부분 수용한 것은 이런 난점을 잘 보여 준다.

노조 지도자들의 다수는 독일의 산업 4.0 논의에 참여한 독일 노동조합의 노동 4.0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최근 독일 제조업이 유로존 경기 하강을 주도하고 있는 현실은 이것이 경제를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을 악화시킬 노동개악에 과감히 저항해야 한다 ⓒ이미진

임금 문제는 개혁주의자들이 가장 꺼리고 피하는 쟁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용자들의 임금 비용 부담을 줄여 주려고 추진하는 직무급제에 대해서 노동조합 지도부의 입장은 모호하다. 다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논의해 수용할 수 있다고 내심 생각한다. 이들은 조합원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지 않고, 의견을 청취하지도 않는다. 노조 활동가들은 노조 지도부가 직무급제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정규직 임금에 대해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최저임금도 그렇다. 지난 2년 최저임금 인상 폭이 조금 커지자 사용자들이 총반격을 해서 올해 인상률을 역대 최저 수준으로 결정케 했다. 그런데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올해 만만찮게 저항을 조직하지 않았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10퍼센트)은 노무현 정부 때(10.6퍼센트)보다 낮다.

또, 노동계 대표 조직들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민중주의 전략을 계속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법 논의가 지연되기를 바라면서 총선을 기다리거나, 선거제도 개선에 계속 목을 맬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앞서 지적했듯이, 노동계 지도부들이 운동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하면 우파가 득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 2010년 희망버스 운동이 성공을 거두고, 그 연장선에서 2011년 박원순이 오세훈을 제치고 시장에 당선한 이후의 상황이 그랬다. 개혁주의자들은 운동을 자제시키고 사태를 관망하면서 선거를 기다렸는데 결국 2012년 총선에서 우파가 득을 봤다.

물론 박근혜 정부를 경과하면서 커진 반우파 정서가 여전하기 때문에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게 박지원이 말한 “야당 복”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 조건 하에서 정의당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정치가 중요하다

정치, 즉 사회적 권력을 얻기 위한 주장과 활동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정치 위기가 조성되기 쉽고, 이것이 어떤 요인들과 맞물리면 거대한 투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장기 경제 침체 속에서 이런 사례를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가 인상이 촉발한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 에콰도르 시위, 지하철 요금 인상이 촉발한 칠레 항쟁 등등이 그렇다.

지금 같은 시기에 노동조합 쟁점들에만 관여한다면 효과적 좌파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정치적 권력을 위한 전 계급적 투쟁이 중요하다. 비록 이 투쟁이 현재로선 소수 혁명적 좌파가 대변하는 사상 투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올해 노동운동의 교훈을 돌아보면서 다른 활동가들과 대화하고 연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연대를 거부한 채, 이미 전투적인 사람들만의 전투성으로 충분했던 옛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방식을 답습하면 사용자들과 정부의 공세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좌파는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는 공동 성명(10.23)을 발표한 상태다. 좌파 공동 성명은 많은 활동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좌파들은 공조해서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노동개악에 실질적으로 반대하도록 압박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불법’인 정치적 총파업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에 악영향을 미칠 노동개악에 맞서 단호하고 과감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권력과의 충돌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추천책

구입문의: 02-2271-2395, mail@workerssolidarity.org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김하영, 책갈피, 2017)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계급 구조와 노동계급의 조건 변화를 분석한 책. 오늘날 노동운동 내에 상식처럼 퍼져 있는 노동계급 약화론을 이론, 구체적인 실증 자료, 역사적 경험 등에 비춰 다각도로 논파한다.

《임금, 임금격차, 연대》 (김하영, 노동자연대, 2016)

임금격차 증대의 본질을 밝히고, ‘조직 노동자들이 잘 싸울수록 임금격차만 커진다’는 냉소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얇은 분량(130여 쪽)임에도 알차고 간단명료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입소문 탄 소책자.

《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미래를 바꿀까?》 (김하영, 노동자연대, 2019)

4차 산업혁명이 자본주의를 위기의 늪에서 꺼내 줄까? 인공지능 로봇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노동계급을 약화시키진 않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실체와 관련 논의들에 숨어 있는 정치적 의도를 들춰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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