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휘두르는 폭력이 나날이 가관이다.

11월 11일 시위 현장에서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해 21세 남성이 위독한 상태다. 발포 과정이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전파되며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6월에 시위가 시작된 이후 경찰 실탄에 시위대가 맞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10월 1일과 4일에도 각각 18세와 14세 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았다.

11월 11일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하는 장면. 이 모습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됐다

11월 4일 홍콩과기대 2학년 알렉스 차우츠록(周梓樂) 씨가 시위 진압 경찰을 피하다 건물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11월 8일 사망했고, 9일 저녁에는 그를 애도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추모 집회에는 10만 명이 참가했는데,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홍콩 경찰의 과잉 대응 때문에 차우 씨가 죽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학생과 노동계 등이 총파업(罷工), 동맹 휴업(罷課), 영업 중단(罷市) 등 이른바 3파(三罷) 투쟁에 나서고 있다.

며칠 전 방한한 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의 얀 호 라이(Yan Ho Lai)는 최근 홍콩 시위에서 발생한 석연찮은 죽음들을 언급하며 “젊은 시위 참가자 8명이 갑작스레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2명이 의문사하기도 했다”면서 “과잉 진압으로 3000명이 넘는 시민이 체포됐고, 홍콩 시내에는 평일·주말 할 것 없이 경찰이 쏜 실탄과 최루탄에 맞아 다친 이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현지 사회주의자들은 홍콩 경찰의 폭력이 중국 사회의 진정한 성격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출처 Studio Incendo(플리커)

캐리 람과 시진핑의 만남 

최근 홍콩 경찰의 과격 진압은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만남과 무관하지 않다. 10월 31일 끝난 중국공산당 4중전회에서 시진핑은 미중 무역협상의 원만한 타결 등을 통해 지배계급의 재신임을 받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시진핑은 캐리 람에게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11월 4일 캐리 람을 만난 자리에서 시진핑은 “법에 따라 폭력을 진압하고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대다수 홍콩 시민의 복지를 수호하는 것이다. [이 원칙을] 흔들리지 말고 견지하라”고 말했다. 이틀 뒤 캐리 람은 베이징에서 홍콩·마카오 업무를 담당하는 한정(韓正) 부총리를 만났다. 한 부총리는 “홍콩에서 폭동 제압과 질서 회복은 홍콩 행정, 입법, 사법기관의 공동 책임”이라고 했다.

얼마 전 〈파이낸셜 타임스〉는 홍콩 시위에 책임 지고 캐리 람이 교체될 것이란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캐리 람의 임기가 2022년이지만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그 전에 그만두게 할 수 있다. 2003년 홍콩 기본법 23조(일명 국가보안법)를 입법화하려는 시도가 좌절되면서 홍콩 초대 행정장관 둥젠화(董建華)도 중국 정부에 의해 경질된 바 있다. 이번에 캐리 람과 한정 부총리가 재신임을 받으면서 홍콩 시위 강경 진압 임무에 더 충성을 드러낼 수 있다.

홍콩 경찰은 강경 진압 외의 수단으로도 민주 세력들을 자극하고 있다. 11월 8일 홍콩 경찰은 5월 홍콩 입법회[의회]에서 송환법 수정안을 심사하려던 친중계 여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혐의로 에디 추(朱凱廸) 등 야당 의원 3명을 체포했다. 에디 추는 2016년 선거에서 최대 득표로 당선된 저명한 환경운동가다. 

최근 입법회에서 송환법을 폐기한 마당에 그와 관련하여 의원 3명을 체포하고 다른 의원 4명에 대해서도 체포 위협을 한 것 자체가 민주 세력에 대한 도발이다. 이를 두고 11월 24일 구의원 452명을 선출하는 선거를 연기하기 위한 캐리 람의 책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캐리 람은 9월 친중파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시위가 발생한 선거구의 선거 취소에서부터 전체 구의원 선거 취소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빈과일보〉 등 유력 언론들도 시위가 계속되면 캐리 람이 이를 빌미로 구의원 선거를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비록 홍콩에서 구의원의 권한이 크지 않을지라도 이번 선거에서 민주파가 친중파에 승리한다면 캐리 람과 이를 후원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대 여론이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 기조는 중국 지배자들의 더 큰 우려에서 비롯한 것이다. 11월 11일치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지방정부 디폴트가 크게 늘어 수주업자들 타격받아’)는 중국 경제가 둔화해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홍콩대학교 아시아글로벌연구소 소장 첸지위는 “지방 정부의 디폴트가 증가하면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행정 당국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할 수 있다. 이것은 베이징 중앙 정부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고 말했다.

홍콩 시위를 중국 경제에 미칠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협소하다. 홍콩에 투자한 자본의 3분의 2가 중국 자본이고 홍콩이 금융 중심지이긴 하지만, 홍콩이 없더라도 중국은 상하이를 통해 투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홍콩의 비중도 1997년 전체 중국의 18퍼센트에서 현재는 2.8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홍콩 경제 규모는 홍콩에 인접한 선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지배자들은 홍콩을 ‘포기’(무력 진압을 포함한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하더라도 중국 자본시장이나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홍콩의 시위대가 중국 정부에 저항해 다섯 가지 요구*를 쟁취한다면 이것이 미칠 파장은 중국 지배계급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대만을 장기적으로 흡수통일하려는 시도가 근본적으로 차질을 빚을 것이고, 신장 위구르나 티베트의 소수민족들에게 분리독립의 희망을 자극할 것이며, 광저우를 둘러싼 제조업 중심지의 노동자들에게는 중앙 정부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중국 정부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홍콩을 진압하고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1926년 3월 18일 베이징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군벌 돤치루이가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47명이 죽고 2백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루쉰의 경고(‘꽃 없는 장미 2’)가 캐리 람과 시진핑에게 딱 어울린다.

“이 청년들을 모조리 죽인다 하더라도 학살자들이 결코 승리자가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중국은 애국자의 멸망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멸망까지는 안 가더라도 장래의 일은 학살자들이 예상한 것과는 다를 것이다. 이는 지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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