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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진보 단체들의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제안 유감
민주노총은 보험료 인상 반대해야 한다

11월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연금 개혁, 이렇게 하자! - 연금특위 다수안의 의미와 입법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 등 1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이 주관한 토론회였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전 국민연금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형편없는 개악과 하나마나한 찔끔 개선안을 뒤섞어 국회로 넘겼다.(관련기사) 무려 4개 안이었는데 쓸만한 안이 없었다. 그러고는 사회적 합의를 하겠다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를 설치했다. 제안할 안 자체가 별 볼 일 없었으므로 이 위원회의 목적은 그저 노동계가 개악안을 받도록 만드는 데에 있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개악한 국민연금은 2008년 60퍼센트에서 2028년 40퍼센트로 매년 0.5퍼센트씩 수급액이 삭감되도록 돼 있다. 납부한 보험료에 대한 연금액 비율이 매년마다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가 나중에 받게 될 실제 연금액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예컨대 2018년에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그해 45퍼센트를, 2019년에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그해 소득의 44.5퍼센트를 적용해 합산해 받는 식이다(국민연금공단 웹사이트에 계산기가 있다).

그런데 2019년 현재 전체 연금수급자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2.1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 수치는 2050년이 돼도 22.6퍼센트에 머무를 전망이다.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이 액수는 39만 7000원이니 노후 생활 영위에 턱없이 모자란다. 최저생계비의 3분의 2도 안 된다.(월 소득의 9퍼센트를 내고 나중에 45퍼센트를 매월 연금으로 받는다고 하지만, 45퍼센트는 40년을 냈을 때 수치다.)

이런 조건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쟁점은 너무 명백하다. 진보적 개혁이라 하려면 수급액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현행 국민연금으로는 노후 생계를 유지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 4개 중 3개는 수급액을 인상하지 않는 것이므로 애초에 개혁안이라 부를 수조차 없다.

다음 문제는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냐는 것이다. 늘어나는 수급액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보험료를 내라고 한다면 잘해야 조삼모사고 심지어 개악안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4개 개정안은 모두 조삼모사거나 개악안이다. 그나마 수급액을 인상하는(소득의 50퍼센트로) 안은 보험료를 현행 9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대폭 인상하는 안이다.

연금특위는 공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기업주 단체들(경총, 대한상의)이 연금 인상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연금 인상 자체를 반대했고(‘노후는 각자 책임지라’), 일부는 보험료 인상에 반대했다.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의 보험료 절반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가입자들은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더 혜택을 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정부나 사측은 이 점을 노동자들 간 이간질에 써먹는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줘야 할 임금 일부를 보험료 명목으로 지출하고 있을 뿐이다. 사측의 보험료 지출 항목이 인건비인 걸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연금 보험료에서 기업주 부담 비율이 한국보다 높다. 현재 한국 사용자들은 보험료의 절반만 부담한다.

연금특위는 합의안 대신 세 개 안을 발표했는데, 사실 문재인 정부가 국회로 떠넘긴 4개 안과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연금특위에 참가한 연금행동이 한국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 등과 함께 보험료 인상을 전제로 한 연금 삭감 중지안(가 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은 현행 9퍼센트인 보험료를 10년에 걸쳐 12퍼센트로 인상하고 연금액은 45퍼센트 이하로 삭감하지는 않는 안을 내놓았다.

11일 국회토론회는 국회가 이 안을 채택하라고 촉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주은선 교수는 보험료 인상을 “노동계가 제안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며 이번이 “보험료 인상의 유일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더 많이 내고 그대로 받는’ 것을 개혁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노동계가 제안하기는커녕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아예 참가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경사노위가 노동개악을 강요하기 위한 기구라고 보고 불참을 결정한 바 있다. 실제로 이후 진행된 과정은 이 지적이 옳았음을 입증해 줬다.

물론 민주노총 집행부 안에는 보험료 인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상당한 듯하다. 그러나 어떤 연구와 통계 결과도 노동자들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민기채 한국교통대학교 교수는 노동자들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선택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독일은 보험료 수입액의 25퍼센트를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고 있고, 한국도 부유세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불평등이 전례없이 확대되고 있는 한국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간 보험료 부담을 동일하게 유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조합들이 보험료 인상을 수용한다면 전체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 것으로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발제자인 주은선 교수조차 “지금 보험료 인상이 필수적이지는 않[다]”고 인정했다. 오히려 “현재 약 700조 원의 국민연금기금이 조성되어 있는 데다 향후 20년 이상 계속 기금 규모가 증가할 예정이므로, 지금의 기여율[보험료] 인상이 국민연금 기금 규모를 지나치게 크게 만들어 운용에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진보적 연금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다.

이 점에서 연금행동이 노동자들의 보험료 인상안을 수용하고, 그것도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까지 붙여 국회 통과를 요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연금행동은 10월에도 민주당 의원들과 국민연금 개혁안 관련 간담회를 열었었다. 이 자리에 민주당 김상희·남인순·진선미 의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운동 출신 의원들로만 셋이나 참가한 것인데 참여연대 등 엔지오 주도적인 연금행동에 나름 맞춤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압박하고자 했을 법하다. 반면 노동계 출신 의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탄력근로제 개악 등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노동계를 설득하려고 내세울 친노동 정치인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세 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20대 국회에서 통과는 어렵다면서도 민주노총의 ‘보험료 인상’ 의지가 확실한지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도둑놈 심보가 또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지금 연금행동은 이런 민주당의 입장을 민주노총에 전달하는 벨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의 보험료 인상 압박을 거부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대폭 인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노동개악에 맞서 실질적인 저항을 조직해 노동자들의 힘을 키우는 것이 사회 개혁 투쟁을 발전시키는 데서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개혁! 사회안전망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 ⓒ조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