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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과 성노동자

지난 6월 29일 수천 명의 성노동자들이 모여 자치조직인 ‘전국성노동자연대 한터여성종사자연맹’(이하 한여연)을 출범시키면서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성매매 여성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며 이들의 단체행동을 막으려 한다. 여성가족부 등 정부는 압력을 넣어 한여연의 출범식 장소 대관을 가로막았다.

성매매 여성들의 저항은 성매매방지법을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것으로 포장해 온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여성단체연합 등 주요 여성단체들도 비슷한 시각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운동에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 과정에서 성적 착취와 억압을 경험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많은 가정에서 폭력이 저질러진다고 해서 결혼을 금지하자고 할 수 없듯이).

한여연 부대표 정희주 씨가 7월 3일 세계여성행진 한국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밝혔듯이, “성노동자들 절대 다수는 가족들의 가난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다.

“성노동자들이 짊어진 생의 무게에 비해 마땅한 일자리는 정말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가족부가 지급한다는 1인당 37만 원 수준의 긴급생계비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성매매를 줄이기 바란다면 정책의 중심이 빈부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신매매나 감금 등을 통한 강요된 성매매 금지를 넘어 개인의 선택(그것이 진정한 자유와 거리가 멀다 해도)에 따른 성매매까지 금지하는 것은 자신의 성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성노동자”)을 억압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성노동자들의 반대를 그저 포주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성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생계 대책은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억압적 정책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등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성매매 합법화에 대한 지지가 곧 성매매를 지지하는 것(내가 2001년에 성매매 합법화를 지지한 이래 받았던 오해)은 아니다. 성매매는 평등과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사라져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매매를 낳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한다.

성매매는 개인의 도덕성(여성의 도덕성이건 남성의 도덕성이건)을 문제삼는 것으로는 결코 없앨 수 없다. 가난과 실업이 번성하고 성의 억압과 소외를 낳는 자본주의에서 성이 상품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포주와 업주뿐 아니라 성 구매자들을 처벌(성 판매자들은 비범죄화)하는 스웨덴 모델을 지지하지만, 1999년 ‘성구매방지법’이 도입된 후 스웨덴에서 성매매가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 법 개정 전인 1995년에 스웨덴의 성매매 여성 수는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매우 적었다(2천5백 명으로 추산). 이것은 상대적으로 나은 사회복지체계(1990년대 동안 사민당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커다란 타격을 입혔지만)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구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게 된 것은 해외에서 이주해 온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하는 것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성매매의 증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심화하는 빈부격차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시장 정책과 각종 여성 차별 정책을 시행하면서 성매매를 금지하는 국가의 정책이 위선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여느 노동자들의 투쟁과 같은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일부이며,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함께 싸워 가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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