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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정치 위기와 여야 갈등:
여권의 부패 의혹은 꼬리를 물고, 한국당은 여전히 불신을 받는다

여야 갈등 속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은 예상대로 강하게 반발했다.

12월 11일(오늘)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 이른바 패스트트랙 법안들(선거법, 공수처 신설 등 검찰 관련 법안들, 유치원 3법)의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국당의 비난은 설득력이 없다. 통과된 안은 정부 원안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원안 자체가 과감한 적자 예산안도 아니었고, 우파가 경기를 일으키는 복지 확대 예산도 아니었다. 오히려 최초로 50조 원을 돌파한 국방예산 규모와 증가율이 화제가 됐다. 정부는 기업 지원 예산의 증가도 부각시켰다.(※ 관련 기사: 2020년 예산안: 노골적인 기업 퍼주기, 그런다고 경제가 살아날까)

한국당을 뺀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도 복지·고용 분야 예산이 1조 원가량 줄고 기업 지원과 지역 개발(SOC) 예산이 늘었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 선심성 개발 예산(총선용) 혜택에 한국당 의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상반기 패스트트랙 법안 때와 달리, 한국당이 예산안 통과 때 단순히 퇴장 방식으로 표결 불참만 한 이유일 것이다. 한국당의 “세금 도둑질” 운운이 꼴사나운 억지 소리인 까닭이다.

한국당이 예산안을 문제 삼은 것은 예산안 자체보다는 패스트트랙 법안의 통과를 막고 저지할 명분 쌓기다. 예산안을 통과시킨 4+1(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안신당) 연합이 의석 과반 지위를 이용해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검찰 개혁의 허구성 드러낸 청와대 핵심들의 부패 의혹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는 청와대 실세 정치인들의 월권 행사 의혹으로 번졌다.(※ 관련 기사: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권력형 부패 때문인가?)

조국 민정수석실이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던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일을 수사하던 것이 이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윤건영, 경남도지사 김경수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재수, 김경수, 윤건영, 전 민정비서관 백원우 등은 자신들만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국정 관련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커진 것은 그들 사이 대화 중에 감찰 중단 논의도 있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조국을 뺀) 이들 모두는 문재인과 함께 노무현 청와대에 함께 있었던 인연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너서클’(권력 실세)이 개입했다는 의혹인 셈이다.

권력 실세끼리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아직 이 부패 고리가 어디까지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여러 현안들을 상의하는 은밀한 네트워크가 유재수 감찰 무마 건처럼 부패 비리를 보호해 주거나, 새로운 권력형 비리를 벌이거나 감싸 주는 구실을 했을 거라는 의혹은 꽤 타당하다. 이 점에서 조국과 정경심의 WFM과 상상인, 우리들병원 대출 의혹 등은 여전히 수사 대상이다.

이런 의혹들이 수사로 파헤쳐지길 바라는 것은 검찰의 부패성과 억압성에 대한 불신과는 별개 문제다. 문재인이나,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 강금실이 노무현 정부 초기에 검찰이 노무현 정부의 대선자금 수사로 성과를 내면서 검찰 개혁의 적기를 놓쳤다고 회고했을 때, 그들은 검찰 “개혁” 기치에 담긴 목적이 부패 척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자신들의 (재)집권에 유리한 여건 조성이 본질적인 목적일 것이다.

이런 모순 때문인지 몰라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추미애는 말을 아끼고 있다. 추미애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 초기에 당대표로서 문재인과 박근혜 간 거래를 중개하려 했었다. 거국 내각을 꾸리면 퇴임 이후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검찰 문제뿐 아니라 박근혜 사면과 관련해 추미애 임명이 주목되는 이유다.


여야를 막론하고 친자본주의 정치인들끼리 통하는 “여의도 문법”

한국당의 예산안 통과 비난은 억지에 가깝고 꾸민 말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번 심사에서 SOC 예산은 9000억 원가량 늘어났다. 여기에 의원들이 탐내는 지역구 개발 예산이 포함돼 있다. 내년이 총선이기 때문에 더 민감했을 것이다. 늘어난 지역구 개발 예산 혜택은 심사에 직접 참여한 4+1 정당들뿐 아니라 한국당 의원들도 쏠쏠하게 챙겼다.

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친문 실세 전해철, 민주평화당 정동영, 조배숙, 대안신당의 박지원, 유성엽 등 4+1 연합의 지도부도 각 지역구에서 혜택을 봤다. 전해철은 정부 원안에도 없던 지역구 예산을 따냈다.

한국당도 다르지 않다. 중앙당이 예산안 통과를 저주하며 결사 항전을 선포하던 때, 경북 구미가 지역구인 장석춘(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로봇인력 양성기관 유치 예산 약 300억 원을 따냈다며 보도자료를 뿌렸다. 혜택을 받은 한국당 의원들이 그밖에도 있다.

압권은 예결위원장 김재원일 것이다. 김재원은 “세금도둑질” 발언의 당사자이다. 그는 국회 예결위원장도 모르는 예산이 어떻게 통과될 수 있냐며, 예산안 작업에 동참한 기획재정부 공무원을 고발하겠다고까지 엄포를 놨다. 그는 이번 예산 심사로 지역구 예산 100억 원을 추가로 챙겼다.

예산을 심사한 여권이 국회 관례와 예우, 그리고 입막음과 달래기 차원에서 챙겨 줬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주류 정치인들이 “여의도 정치 문법”이라고 부르는 관행일 것이다.


변모는커녕 변장도 어려운 한국당

여야 갈등이 심각하지만 경제 위기에 직면해 기업을 지원하고 노동자들이 위기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에는 여야 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중의 불신도 점점 자라나고 있다.

그래서 두 당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최근 여당에서는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젊고 개혁적인 인사들을 많이 내세워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조국 사태 등으로 진보층과 청년층에게서 지지를 많이 잃은 것에 대한 대응이다.

한국당도 엄격한 공천 배제 기준을 발표했다. 11일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입시, 채용, 병역, 국적에 관한 비리와 편법에 관해서는 불관용을 원칙으로 하고 편법 재산 증식, 권력형 비리 연루, 여성과 성 관련 혐오감 유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합리한 언행을 한 사람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성범죄 전력에 관한 기준도 높였다.

조국 사태를 염두에 뒀겠지만 한국당의 변장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반한국당 정서가 광범하다. 민주당의 부패 추문에도 한국당은 반사이익을 별로 얻지 못했다. 이는 무엇보다 광범한 반한국당 정서가 박근혜 퇴진 운동 여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이를 알지만, 인적 구성이 그런 혁신을 어렵게 한다. 12월 9일 한국당 의원단은 비박계 심재철을 원내대표로 뽑았지만, 그의 러닝메이트는 박근혜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친박 중의 친박 김재원이었다.

그래서 갑질과 부패의 원산지인 한국당은 변신은커녕 변장도 아직은 어렵다. 당대표는 세월호 수사 방해,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신임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누드 사진을 검색해 보다가 들킨 인물이다. 공천 배제 기준을 발표한 총선기획단 대변인 전희경 자신이 노동자 혐오 발언 전문가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당의 공천 도덕성 기준 강화 소식을 듣고 한국당이 총선에 안 나오는 거냐고 비웃는다.

결국 촛불 운동의 여파가 경제 위기와 맞물려 아직은 공식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여권은 촛불 염원에 못 미쳐 위기를 겪고, 한국당은 촛불의 최저 기준 격인 반우파 정서의 벽에 막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회 건너뛴 노동개악

위선적 행각으로 우파의 기만 살려 주는 건 정부·여당 자신이다.

가령 검찰 관련 법안들은 개혁성도 없을 뿐 아니라,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로 시작해 여권 핵심부로 검찰 수사가 번지면서) 정치적 동력도 많이 약화된 상태다. 청와대 인사들의 부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여권 수뇌부가 앞장서 방해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그 말의 진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그 수사 자체가 공수처가 할 일인데도 말이다.

선거법 개정은 사실상 진보적 개선인지 확신하기 힘든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 여당은 한국당의 억지 때문에 개혁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이미지(총선용)만을 누리고자 하는 듯하다.

이처럼 개혁은커녕 스스로 진보 염원 대중을 속이고 뒤통수 치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여권은 사용자들이 (경제 위기 대비를 위해) 바라는 노동개악은 신속·정확하게 처리되고 있다.

12월 11일(오늘) 고용노동부는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도록 돼 있는 50∼299인 기업들에게 계도 기간 1년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되돌리는 법 개악을 기다리지 않고 행정부가 직접 실행한 것이다.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특별연장근로 허용 사유에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 “노동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와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는 천재지변 같은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 경영상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 규제를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개악은 사용자들이 집요하게 요구한 것들이다. 최근에는 여야 당 대표들 회동에서 문재인의 설득으로 노동개악 법안들을 통과시키자는 대강의 합의도 이뤄졌었다. 지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개악 법안들이 대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은 사용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김진표를 차기 국무총리 유력 후보로 꼽았다가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임기 초부터 세월호 수사, 산재 근절, 노조 인정, 노동3권 보장,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석방 등은 국회와 기성 정치권 핑계를 대며 회피하더니 사용자들의 민원(“민생”)에는 행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공감’ 제스처에 만족하라는 식이다.

행정부가 이렇게 나선 것은 국회에서 노동개악 법안 처리가 자꾸 지연되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에서 개악 처리가 지연된다고 해서 개악 저지 투쟁에 실질적인 힘을 쏟지 않는 것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