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남·북·미 세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나고 나서, 대통령 문재인은 그 회동이 “북미 간 적대 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 선언”이라고 했다. 많은 진보계 지도자들도 미·중 대결로 악화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한국이 잘 헤쳐 나가려면 현재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북한이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연말 북·미 관계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면 2018년 이전의 한반도 긴장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2월 3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정은을 다시 “로켓맨”이라고 불렀다. 미군은 한반도 주변에 정찰기를 연달아 띄우면서 이 비행들을 의도적으로 외부에 흘렸다.

같은 날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런 담화를 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

트럼프가 “무력 사용”을 언급하자, 북한 당국은 고위 관료들이 잇달아 담화를 내어 반발했다. 그리고 트럼프의 “로켓맨”에는 2017년처럼 “늙다리”로 응수했다.

마침내 12월 7일 북한 당국은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에서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이라고 본다.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은 북한이 크리스마스에 ICBM을 발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12월 8일 트럼프는 김정은이 적대적 방식으로 행동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12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소집했다. 북한에 보내는 경고다.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남·북·미 정부가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한반도를 둘러싼 기존의 지역 질서에 ‘균열’이 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이 ‘패싱’ 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면, 이런 사태 전개는 꽤 당혹스런 일일 것이다.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한반도를 조망해야 한다.

12월 7일 미국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레이건 국방 포럼’ 연설에서 중동에서 위협이 증대하고 있지만 미국 군사력의 초점을 중국과 러시아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동에 과잉 집중된] 병력과 장비 등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거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

중국을 견제하고자 상당한 역량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투입한다는 구상은 이미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방향이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것으로는 중국 등을 제압하는 데 불충분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경쟁적 세계” 속에서 중국 같은 경쟁국들의 도전에 더 단호하고 공세적으로 대응해 미국의 기존 지위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에스퍼도 인정했듯이,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미국의 군사력을 전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중동에서 아예 발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12월 3일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트럼프가 중동 군사 개입을 줄이겠다고 말했지만 실제 현실은 사뭇 다르다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지에서 미국은 군대를 다 빼지 못했고, 심지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면서 불거진 갈등 때문에 중동에 군대를 증파해야 했다.

그럼에도 아시아·태평양에서 트럼프 정부의 전략적 방향은 명백히 중국을 무릎 꿇리는 데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으며, 일본·인도·호주 등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거기에 한국을 비롯한 다른 동맹국들을 결합시키려 한다. 그리고 우주사령부 창설, 첨단무기 개발 등 군 전력 증강에 애쓰고 있다.

한정된 역량으로 세계 곳곳에 관여해야 하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책임 분담을 요구한다. 실상 ‘세계의 경찰’ 구실을 내려놓는 구걸 행위에 가깝다. 트럼프 자신이 “미국은 계속 세계의 경찰일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를 한국이 부담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전쟁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자극받은 중국도 맞대응하고 있다. 10월 1일 건국절 열병식에서 중국은 첨단 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를 공개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대응책 중 하나다.

미·일과 중·러의 제국주의적 경쟁은 한반도의 지정학을 다시 그리고 있다. 예컨대 지난 7월 동해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전략 폭격기까지 동원해 작전을 펼치고, 이에 대응해 11월에 미군 전략 폭격기가 일본 군용기와 함께 동해에서 작전을 벌였다.

“좋은 관계”?

이처럼 한반도 주변에서 열강 간의 갈등과 경쟁이 점증하는 것은 남·북한에도 상당한 압력을 준다.

6월에 트럼프와 김정은은 판문점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지만, 회동 후 바로 양측 간에 불협화음이 불거졌다. 대화 재개부터 쉽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 없이 비핵화의 구체적 조처 이행을 북한에 요구하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아서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실무 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트럼프 정부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대화”를 강조했지만, 실제 대화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미국의 고강도 대북 제재는 유지됐고, 한미연합훈련도 야금야금 진행됐다. 결국 말로만 “좋은 관계”였을 뿐이다.

북한 김정은 정부는 북·미 관계에 좌절하고 초조해 하는 듯하다. 11월 22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는 미국에게 받은 것은 “배신감뿐이다” 하고 한국 기자들에게 말했다. 김정은 정부는 트럼프가 국내 정치적 필요 때문에 북·미 대화를 이용했을 뿐이라고 불만을 터뜨려 왔다.

북한 정부는 트럼프 정부에게 북·미 대화에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면서 올 연말을 그 시한으로 제시해 왔다. 그리고 그 “연말”이 다 돼 가고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개혁파 주류 언론들은 현재 미국과 북한이 “강 대 강” 대치를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북한이 먼저 ‘중대한 시험’으로 행동한 것이 기껏 일군 대화 분위기를 망친 괘씸한 일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중심으로 점증하는 긴장, 치열한 군비 경쟁 상황 등 한반도 주변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무리한 요구와 대북 제재 유지가 북·미 관계를 다시 악화시킨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달에 들여오는 글로벌 호크 이런 전략 무기를 속속 도입하면서 북한 미사일 시험을 비난하는 건 전형적인 “내로남불” ⓒ출처 미 공군

문재인 정부가 미국산 첨단 무기를 꾸준히 도입하는 것도 북한을 자극한다. F-35 전투기에 이어 첨단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도 이번 달에 들여온다.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북한의 서해위성발사장 활동 재개가 남북 합의 위반이라고 성토하지만, 한국의 군비 증강이 남북 합의상의 ‘군축’에 어긋난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한·미·일 동맹이 여전히 굳건한 가운데 가해진 대북 압박을 봐야 한다. 그러면 북한의 잇단 방사포 발사와 서해 해안포 사격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행태가 훨씬 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진정한 문제다.

장기적 추세

물론 지금 당장 “화염과 분노” 같은 말이 나온 2017년 하반기 같은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북·미 관계를 돌아보면, 서로 으르렁거리던 양측이 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곧이어 교착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래서 대화는 긴장과 적대가 새롭게 쌓이는 시작이 된 경우가 많았다.

일부 사람들은 그간 외교적 치적으로 북·미 대화를 꼽아 온 트럼프를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책임질 유일한 주체”로 보고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와 그의 지지 기반은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나름의 방법으로 지키려는 정치 세력이다. 트럼프의 과장된 언변과 정상회담이라는 형식 외에 북·미 관계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여태껏 거의 없는 까닭이다. 냉정하게 보면, 조지 W 부시 정부 하에서 나온 북·미 간 합의들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에서 더 나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장기적 추세는 모호함 속에서도 좀 더 위험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어느 순간에는 다시 상황이 악화하는 쪽으로 급변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다시 북·미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큼 진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트럼프, 문재인 등에게 걸린 불필요한 기대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 경쟁의 현실과 그 경쟁이 초래하고 있는 긴장과 갈등, 모순을 경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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