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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
호르무즈해협 파병 반대한다

12월 13일에 보도한 기사를 이후 상황을 반영해 12월 18일에 개정·증보했다.

문재인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우선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해협 호위연합체 지휘부에 장교 1명을 파견하고, 내년 2월에 청해부대를 파견한다고 한다. 내년 2월에 출항할 왕건함이 아덴만에 있는 강감찬함과 교대하고 호르무즈해협으로 파견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다섯 달 전부터 눈치만 살피고 있었을 뿐 사실상 파병하기로 맘먹고 있었던 듯하다 ⓒ고은이

최근 북·미 대화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도모한다는 계산이 이번 파병에 깔려 있는 듯하다. 〈중앙일보〉는 파병 결정을 보도하며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굳건한 한·미 공조가 요구된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이라크 파병 때 편 논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에 응하면서 북핵 문제에서 미국의 협조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노무현 정부의 그런 구상을 불쾌해 하며 단칼에 거부했고, 결국 미국은 북한을 압박했으며, 이는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역시 한반도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파병 요청은 중동에서의 안보 부담을 동맹국들과 분담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쇠퇴한 패권을 지키느라 여러 딜레마에 빠져 있다. 중국을 진정한 위협으로 여기는 미국은 오래전부터 중동에서 개입을 줄이고 싶어 했지만, 이는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동맹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그런 어려움에서 미국에게 숨통을 틔어줄 것이다. 숨통이 트인 미국은 더 본격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려 할 것이다. 이미 국방장관 에스퍼가 한반도와 일본에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배치를 거론하고 중국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한편 이번 파병은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강하게 촉구하는 상황에서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파병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카드로 쓰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파병에 개의치 않고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향후 일본, 나토와 벌일 협상에서 미국에게 유리한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맹국에게 더 많은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트럼프만의 아집이 아니다. 이 또한 미국이 한정된 역량으로 세계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서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반영한다.

문재인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추진하면서 친제국주의적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재연장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문재인 정부는 한·미·일 동맹의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일본을 핵심 축으로 다른 열강(특히,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지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일본이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공식화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도 파병을 감행한다면, 한국 군함과 자위대 군함이 미군에 협조해 호르무즈해협에서 함께 작전을 펼치게 될 것이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불 속에 섶을 지고 뛰어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곳의 군사적 긴장은 이미 잔뜩 고조돼 있다. “우리 국민과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그곳에 병력을 보내는 것 자체가 그 긴장을 키울 것이다.

파병은 중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복잡한 갈등과 충돌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을 더 키울 것이다. 11월에는 이란의 후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한국 국적 선박을 억류했다가 선박의 국적을 확인하고 풀어 준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하고 미국의 부당한 대(對)이란 위협에 힘을 실어 준다면 이런 사태는 더 심각하게 흘러갈 것이다.

미국의 제재는 이란 민중을 상당한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군사 충돌이 벌어지면 중동 민중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한국군 파병으로 미국의 제재와 군사 위협을 지원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중동을 둘러싼 더 큰 지정학적 갈등에 한국이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이란은 중국,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12월 말에는 인도양에서 세 국가가 공동 해상 훈련을 한다고 한다. 한국군 파병은 미·일·중·러가 경쟁하는 한반도와 그 주변 상황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파병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평화를 바라는 진보·좌파들은 이런 시도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