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영국 총선, 노동당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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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용어 설명과 [ ] 안의 내용은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한 것이다.
20년 전 시애틀 항쟁은 반자본주의 투쟁의 새로운 주기를 열었다. 존 홀러웨이의 유명한 구호, “권력을 잡지 않고 세상을 바꾸자”로 대표되는 자율주의 정치가 영향력이 있었음에도 우세한 흐름은 국가를 이용해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이런 개혁주의 물결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스페인의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는 처음에 온라인으로 조직됐고 라틴아메리카의 온갖 운동과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프의 포퓰리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서 제러미 코빈과 존 맥도널이 이끈 노동당은 훨씬 전통적인 좌파적 개혁주의였다. 그러나 이런 조직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선거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자본가 권력의 중심부가 개혁주의를 혹독한 시험대에 올린 극적인 사례가 지난 두어 달 동안 두 번 있었다.
한편
볼리비아 쿠데타에 대해서는 조셉 추나라가 국제적 반란의 새 물결을 분석한 글
그러나 ‘가짜 뉴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노비에프 편지” 조작 사건을 떠올려 보라. 1924년 10월
정말이지 이번 선거운동을 보면, 사태를 규정하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여러모로 확인됐다.
보리스 존슨의 국수주의 도박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은 브렉시트였다.* 그래서 “브렉시트 선거”로 불렸다. 보리스 존슨은 총리가 되자마자 사면초가 신세였다. 노동당, 브렉시트 반대파 정당들, 보수당 내 소수의 브렉시트 반대파 의원들이 존슨에 대항하는 연합을 이뤄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존슨은 이 족쇄를 풀어버릴 방책으로 10월 17일 유럽연합과 새 브렉시트 합의안을 타결한다. 이 합의안은 전 총리 테리사 메이가 1년 전 유럽연합과 고생스럽게 협상해서 타결한 합의안과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달랐
메이는 2017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바람에
메이 합의안과 존슨의 합의안의 둘째 차이점을 보면, 보수당 우파가 왜 이 배신을 묵인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메이 합의안은 브렉시트 후에도 무역 규제에서 “공정 경쟁의 장”을 유지하라는 유럽연합 측 요구를 수용했다. 즉, 노동조건·환경 규제를 유럽연합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서, 유럽 대륙의 경쟁 기업에 대한 영국 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보수당 우파가 메이 안을 반대한 것은 영국이 계속 유럽연합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연합 바깥 나라와 마음대로 무역협정을 맺는다는 오랜 숙원을 이루는 것이 보수당 우파가 브렉시트를 추구한 핵심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존슨은 유럽연합과 벌인 탈퇴 협상 초반부터 “공정 경쟁” 요구를 기각하려 했다. 유럽연합은 영국이 “템스강의 싱가포르”가 돼 유럽연합의 규제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결국 양측이 합의한 문구에는 이런 우려가 반영됐지만, 영국이 재량을 발휘할 여지는 이전 합의안보다 늘어났다.
이런 성공 덕에 존슨은 의회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존슨의 구호 “브렉시트 완수”가 보수당 선거운동을 지배했다. 총리 취임 이래 존슨은 브렉시트 지지 표를 결집시켜 총선에서 승리하려 해 왔다. 존슨은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브렉시트당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브렉시트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는 지지자들의 압박에 굴복해 보수당 우세 지역구에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았다. 노동당 우세 지역구에서도 브렉시트에 대한 노동당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노동당에게 등을 돌린 브렉시트 지지 노동계급 표를 가져간 것은 주로 보수당이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수많은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투표한 것은 유럽연합뿐 아니라 대거 몰려오는 이민자들, 정치적 올바름, 진보적인 사회적 가치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권자들은 재원이 충분한 대규모 공공 서비스를 선호한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혹독한 자유 시장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이들의 희망사항은 브렉시트 지지 우익 이데올로그들이 선호하는 순수한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와는 까마득히 멀다.
존슨 정부는 유럽연합 모델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겠다는 자신의 제안과 보호받고 싶어 하는 새 유권자들의 욕구를 조화시키느라 진땀을 뺄 것이다. … 브렉시트의 마력은 런던 등 번화한 도시나 스코틀랜드처럼 유럽연합에 우호적인 지역에 살 법하지 않은 상대적 고령·저학력·블루칼라 표심을 보수당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보수당은 유럽 대륙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전형적 특징들을 띠게 됐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당 지도부 수준에서도 벌어졌다는 관측은 과장이다.
존슨의 선거 공약도 일국 보수주의 경향을 따른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보수당 공약의 신중함은 재무장관 사지드 자비드가 비교적 전통적인 재정 정책을 지켜 내는 데 성공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비드는 노동당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전임자 필립 해먼드의 재정 준칙을 완화해 한해 220억 파운드
자본이 노동당에 맞서 결집하다
보수당이 선거운동에서 브렉시트를 중심에 놓자 유럽연합 잔류파 내에서도 ‘코빈 차악론’이 논쟁 거리가 됐다. 노동당이 브렉시트를 2차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때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오본이 이런 주장을 편 때는 존슨이 유럽연합과 탈퇴 협상안을 타결하고 탈퇴 시한을 연장하기 전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코빈 차악론은 무너지지 않았다. 싱크탱크 ‘변화하는 유럽 속의 영국’은 노동당이 제시한 소프트 브렉시트
그런 만큼, 유럽연합 잔류를 단호하게 주장해 온 자유민주당의 입지가 더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그러나 흥미롭게도, 가장 세련된 유럽연합 잔류파 언론들은 그런 결론을 도출하지 않았다.
반면
노동당의 총선 공약은 10년 동안 4000억 파운드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인 맥도넬이 공개한 투자 계획은 대부분 차입을 늘려서 자금을 댄다. 이런 정책에 대한 고전적인 반론은 “구축효과
이런 상황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신자유주의가 승리하면서 득세한 경제정책
일부는 현대화폐론
통화 조작으로 개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은 자본주의 사회 계급 관계의 모순을 외면하고, 부유층에게서 빈곤층에게로 부를 어느 정도 재분배하는 누진세의 구실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더그 헨우드가 말했듯이, “과세가 완전한 몰수는 아니지만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그나마 차선이다. 과세는 비록 온건하게나마 민간 투자와 소비를 공공지출로 전환시키는 사회화의 한 형태다.”
현대화폐론은 정설적인 정책 수립이 거의 마비된 덕분에 유행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극도로 낮은 금리를 이용해 차입을 늘려서 마련한 재원으로 생산 능력을 높이고 성장을 자극할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흔해졌다. 울프가 노동당을 비난하는 것은 위선적인데, 그는 몇 달 전에만 해도 현대화폐론이
그런데 코빈과 맥도넬이 하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결단” 즉, 차입으로 투자를 늘려서 경제를 자극하고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11월 중순
차입해서 특히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노동당의 공약이 지난주 공개된 후에도 영국 국채 시장은 잠잠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노동당이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투자자가 거의 없음을 시사한다. 물론 노동당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 시각은 많겠지만 말이다.
1990년대에 미국 민주당 고문 제임스 카빌은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국채 시장으로 환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영국 총선에서 영국 국채 시장 자경단
[인플레이션이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채권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국채의 대량 매도에 나서는 투자자들] 은 움직이지 않았다. … 블루베이 에셋 매니지먼트 최고 투자 책임자 마크 다우딩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정부 차입 계획을 바라보는 많은 채권 투자자의 시각을 이렇게 요약했다. “채권 시장은 확대 재정 정책을 펼, 30년에 한 번뿐인 기회를 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클 로버츠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채권 시장의 이완된 태도는 노동당의 공약이 비교적 온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국의 금리 생활자 경제를 고용이 생기는 생산적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국책 은행과
[신규 공공투자를 관리하기 위해 설립하겠다고 노동당이 약속한 — 캘리니코스] 투자위원회만으로 가능할까? 노동당은 5대 은행이나 주요 보험사와 연금 펀드를 공적 소유로 돌려서 운영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잠재적인 투자 자금은 대부분 이런 곳들이 계속해서 공급할 것이다 (이들은 GDP의 약 15퍼센트를 공급하며, 정부는 기껏해야 GDP의 4퍼센트 정도다) . 그래서 그들은 노동당 정부가 투자, 서비스, 소득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다. 엄청나게 부유한 자들에게서 소득과 부를 가져와 나머지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려는 노동당의 조세 및 기타 정책들 또한 매우 제한적 효과만 낼 것이다. 사실 노동당은 국민의료보험 (NHS) 지출을 매년 4퍼센트씩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는 블레어 정부 때보다도 적고 고령화하는 인구의 수요도 간신히 충족시킬 것이다. 노동당의 정책들은 극심한 불평등을 찔끔 완화하는 데에 그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당의 선거 공약은 고전적 케인스주의 강령으로서, 기저에 놓인 계급 권력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이런 계급적 동원을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파운드화의 동향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의회의 위기가 극에 달한 시기에는, 존슨이 잘 나가는 듯 보일 때마다 통화 시장이 추락하곤 했다. 존슨이 잘 되면 노 딜 브렉시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2월 초, 보수당의 승리 전망 속에서 파운드화는 4월 이래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12월 12일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에는 더 높이 치솟았다. 주식 시장도 다음 날 반등했다.
나는 앞에서 “사태를 규정하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위력”을 언급했다. 경우에 따라 이 말은 좁은 의미에서 그람시가 말한 “경제적 공동이익”을 뜻한다. 노동당이 국유화하겠다고 공약한 수도·전기·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 부문의 투자자들이 그런 사례다. 이들은 유럽경쟁법과 쌍무투자협정 위반으로
하지만 더 넓게 보아, 노동당에 맞선 지배계급의 공동 대응은 더 근본적인 것을 반영한다. 2007~2009년 세계적 경제·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입증했지만, 자본가 계급은 신자유주의를 버릴 태세가 안 돼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신자유주의가 자본가 계급에게 매우 득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하는 말이지만 “경제적 공동이익”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즉 엄청난 보수, 보너스, 스톡옵션 등 덕분에 기업 고위 경영자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큰 혜택을 누렸다는 의미에서 득이 됐다. 그러나 둘째, 케인스주의를 도입하면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기업 권력에 대한 더 큰 침해를 고무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코빈과 맥도넬과 그의 고문들은 사회주의자이고 장기적으로는 바로 그런 식의 변혁을 바랐다. 물론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신자유주의가 파산했기 때문에 경제를 정치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은 커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철저히 충성하고 선출되지도 않는 중앙은행에 그 일을 주되게 맡긴 채 꾸역꾸역 버티는 것이 더 안전한 베팅으로 보였다.
노동당은 왜 패배했는가
기업주들은 개혁주의 정부를 용인할 수 있다. 특히,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달래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혁주의 정부를 반기지는 않는다. 그들은 노동당의 패배로 큰 위험을 피했다고 자축하고 있다. 그러면 코빈은 왜 패배했을까? 이 글은 총선을 치른 지 나흘 뒤에 발표된다. 그래서 이 평가는 노동당은 물론 좌파 전체에게 참담한 결과가 나오면서 조성된 강한 압력 속에서 쓰였다.
노동당 우파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주장은 앞으로도 끈질지게 제기될 것이다. 그 주장이란 바로 코빈이 지도자로서 약점이 많고 강령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이런 견강부회식 평가로는 2017년 6월 8일 총선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당시 코빈은 올해 총선만큼이나 급진적인 공약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데도 노동당은 잉글랜드 북부 선거구를 넘보는 메이를 물리치고 2001년 이래 최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므로 코빈이 패배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네 가지 요인이 두드러진다.
첫째, 이번 총선은 사실상 브렉시트 선거였음이 드러났다. 존슨이 쉴 새 없이 되풀이한 “브렉시트 완수”는 매우 영리한 구호였다. 브렉시트 찬성 유권자에게 호소함은 물론, 상당수 브렉시트 반대 유권자도 설득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 브렉시트 반대 유권자들 중에서도 국민투표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여론 조사에서 응답한 사람이 꽤 많기 때문이다. 존슨은 정계의 끝없는 권모술수에 대한 대중의 커져 가는 염증에 호소할 수 있었다. 반면,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이어진 의회의 마비 사태는 코빈 지도부에게 매우 해로웠다. 코빈 지도부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예비내각과 의원단에게 실제로 포위됐고, 그들은 코빈에게 브렉시트를 뒤집는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라고 요구했다.
코빈은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지지자들을 잃지 않으려 했고, 옳게도 이런 압력에 저항했지만
그러나 브렉시트가 이번 총선의 중요한 쟁점이긴 했어도 그것만으로 코빈의 패배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노동당의 득표는 2016년 국민투표 당시 브렉시트 찬성 여론이 강했던 곳에서 10.4퍼센트, 브렉시트 반대가 강했던 곳에서 6.4퍼센트 줄었다. 전체적으로 보수당 득표율은 1.2퍼센트포인트 증가한 43.6퍼센트로 조금 올랐을 뿐이다. 그러나 노동당 득표율은 7.8퍼센트포인트 하락해 32.3퍼센트를 기록했다. 1983년 마이클 풋이 대처에게 괴멸적 패배를 당했을 때
한편, 이번 총선에서 두드러진 둘째 요인은 노동당 의원단 내에서 코빈에 대한 반대가 끈질겼다는 점이다. 그런 반대는 공공연했고 언론들에 의해 크게 증폭됐다. 특히, 코빈이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터무니없는 거짓 비방이 노동당 우파 측에서 나왔고, 아마 이것이 코빈의 이미지를 가장 많이 실추시켰을 것이다.
셋째 요인은 가장 불 보듯 뻔한 것으로, 언론들 자신이 “정상적으로” 선거 운동을 펼치며 자본의 이익에 따라 코빈을 헐뜯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다른 좌파 영웅들, 예컨대 대처 시대의 노동당 좌파 지도자 토니 벤이나 광원 파업 지도자 아서 스카길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넷째, 마이클 로버츠가 지적하듯이 많은 논자들이 간과하는 경제라는 요인이 있다.
선거는 보통, 경제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이번 총선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제적 안녕” 지표
(실질 가처분 소득과 실업률 변화를 함께 계산에 넣는 지표) 는 전 보수당 총리 메이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2017년 이래 개선됐다. 투자와 산출 수준으로 보면 경제는 정체했지만, 영국의 평균적 가구들은 2017년보다 살림이 살짝 나아졌다고 느낀다. 고용이 개선되고 실질 소득도 올랐다. 이것이 존슨 정부에게 도움이 됐다.
노동당은 선거운동 기간에 사회적·경제적 공약을 중심으로 넓은 활동가 기반을 단호히 동원해 이런 요인들을 극복하려 했다. 노동당의 공약은 코빈이 계속 되풀이했듯이, 브렉시트 지지와 반대를 불문하고 모든 노동계급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전국의 가가호호 방문 유세단에 참가한 수많은 활동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특히, 선거운동 막바지에 활용한 대중 집회 방식의 유세는 2017년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재현했다. 이런 활동들이 얼마나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많은 토론이 당연히 벌어지겠지만 그것은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치러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많은 노동계급 유권자들과 정치과정 사이의 심대한 괴리를 목도하고 있다. 그런 괴리 때문에 많은 노동계급 유권자들은 2016년 브렉시트 찬성에 투표했고, 이제 그중 다수가 보수당에 투표했다. 또는 아예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좌파들은 건성으로 그런 노동자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한다. 보수당에 투표한 많은 노동자들이 국수주의나 심지어 인종차별 사상에 분명 이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티모 펫처는 최근에 발표한 연구에서 보수당-자민당 연립정부의 긴축 정책이 2016년 브렉시트 찬성 결과가 나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주요 “복지 개혁” ― 저소득층 지방세 감면 중단, 장애인 생활 보조금 개악, “침실세” 부과
잉글랜드 북부에서 노동당 표가 붕괴한 것은 훨씬 더 장기적인 맥락에서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노동계급 조직과 지역이 점차 붕괴한 것이 바로 그 맥락이다. 예컨대 이번에 보수당에 투표한 폐광 지역들을 보자. 1984~1985년 광원 대파업이 패배한 이후 이 지역들에서는 석탄 산업이 사라졌고, 임금이 괜찮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공급할 다른 산업이 성장하지 않았다. 1997~2010년 기간에 집권한 신노동당 정부는 이 지역들을 자신의 표밭으로 여겨 공적자금을 들여 간신히 지탱했다. 긴축 정책은 이 버팀목을 치워 버렸다. 오래된 노동계급 조직들은 쪼그라들었으며, 노동운동이 더는 유의미해 보이지 않자 노동운동의 틀 바깥에서 분노와 설움이 표출됐다. 결국 우리는 1980년대에 대처주의가 산업 노동계급의 핵심 집단들 — 광원뿐 아니라 철강·자동차·항운 노동자들까지 — 을 깔아뭉갠 후과를 아직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선거 당일
전국에서 브렉시트 표가 가장 많았던 지역의 하나인
[잉글랜드 동부에 속한] 이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브렉시트가 약속한 미래에 투표했지만 그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를 갖다 바친다”는 보수당의 거짓 광고 문구가 찍힌 버스는 믿을지 몰라도 금발의 거짓말쟁이 당대표 [보리스 존슨] 는 믿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엉망임을 인정했지만, 정치인들이 세상을 개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이는 브렉시트를 지지한 노동계급에 대한, 흔히 묘사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순된 그림의 일부다. 이런 그림 없이는 이번 선거를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 첫째, 그들에게 유럽연합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아주 흔한 대용물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병원 치료가 지체되고, 딸이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가족들과 이웃들이 쪼들려 사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 유럽연합에 화풀이를 한다.
둘째, 정치인들은 일주일 지난 일도 고대사로 치부하며 잊기 일쑤지만 유권자들은 위기가 올 때마다 삶이 얼마나 숨 막혔는지를 기억한다. 예컨대, 내가 만난 게리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에 “갖다 바치지” 않아도 되는 돈이 결국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돈은 런던 금융가의 그들 패거리에게 떨어질 겁니다.” 이번 선거 기간에 들은 말 중 금융가를 언급한 것은 이것이 유일했지만, 실제로 이번 선거는 2008년 금융 위기와 그 후 공공부문과 일상 생활수준이 퇴보한 현실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불신이 수십 년간 쌓인 결과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브렉시트에] 허황한 기대를 품지도 않고, 상류층 도련님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무한정 믿지도 않는다. 오히려 깊게 침잠한 울분을 품고 있다. 그 어느 정당이나 민주적 기구로도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없고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이토록 무너져 내린 노동계급의 의식을 만회할 유일한 방법은 집단적인 조직과 자신감을 재건하는 투쟁뿐이다. 하지만 영국의 파업 수준은 지독하게 낮다. 게다가 코빈 열풍에는 모순이 있다. 코빈이 그토록 존경받을 만한 이유 하나는 35년 이상 의원을 지내면서 운동적 활동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코빈은 운동을 대변하는 의원이었다. 그가 대표를 맡으면서 노동당은 열성 당원을 거느린 대중 정당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전쟁, 긴축, 기후변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운동을 한단계 고양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코빈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선거로 이목이 쏠리면서 코빈이 총리가 되길 기다리는 수동적 분위기가 조장됐다.
아쉽지만 ‘총리 코빈’은 물 건너갔다. 선거 전에는 “코빈 없는 코빈 정치,” 즉 노동당이 패배해도 다른 인물로 코빈의 구상을 이어 가자는 논의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워낙 크게 패배한 탓에 노동당 우파가 늑대처럼 달려들고 있고 친기업 언론의 응원을 받으며 좌파를 갈갈이 찢어 버리려 할 것이다. 늘어난 당원들
첫째, 여러 평론가가 지적하듯이 “브렉시트 완수”는 간단치 않을 것이다. 물론 영국은 분명 1월 31일에 유럽연합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훨씬 어려운 문제들이 남을 것이다. 존슨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해야 한다. 존슨은
만일 존슨이 과도기
둘째, 이번 선거는 지리적 경계선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반목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잉글랜드는 유럽연합 잔류 여론이 강한 남부와 탈퇴 여론이 강한 북부로 나뉘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잔류를 지지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지지를 얻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탈퇴를 지지하는 영연방병합당이 두 석을 잃었고, 탈퇴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과 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
셋째, 존슨은 자신이 말한 “일국 보수주의”에 어느 정도 알맹이를 제공해야 할 상황에 부딪힐 것이다. 앞서 봤듯 보수당 득표는 살짝 늘었을 뿐이다. 노동당은 크게 패배했지만 여전히 3분의 1을 득표했고 대도시 표밭들을 지켰다. 보수당은 이번에 획득한 잉글랜드 북부 선거구들을 붙잡아 둬야 한다. 노동당에 투표하던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몇 년 동안 붙잡아 둘 무언가를 존슨이 제시할 수 있을까? 존슨이 보수당을 유럽 대륙의 매우 우익적인 정당들처럼 바꿨을지는 몰라도 앞서 봤듯 신자유주의와 단절한 것은 아니다.
끝으로, 마이클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카드놀이의 조커 같은 변수가 있다. 바로 세계경제다. 현재 주요 선진국 경제는 2008년 이래 대불황 중에 가장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일시적 휴전에 돌입하더라도 다시 터질 것이다. 게다가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기업 이윤율이 떨어지고 기업 부채가 늘고 있다. 세계경제가 다시 크게 후퇴할 가능성이 2008년 이래 가장 높다. 새로운 세계적 경기후퇴가 닥치면 영국 유권자들의 태도는 급변할 수 있고, 그러면 존슨 정부의 브렉시트 거품은 터질 것이다.
따라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저항할 일이 많을 것이다. 대담해진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더 쥐어짜려 들고, 긴축 공격이 간판만 바뀐 채 계속되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영국판 도널드 트럼프가 총리직으로 복귀한 것에 신이 나서 설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라는 재앙이 넘실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투쟁과 함께 정치적 토론과 논쟁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번 선거는 선거 위주 정치의 한계를 뼈아프게 확인시켜 줬고, 노동당의 가장 훌륭한 사회주의자가 실천하는 선거 위주 정치조차도 한계가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좌파는 이번 재앙에서 회복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올바른 교훈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