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노동계급 기반이 실천적으로 뜻하는 바에 대해 두 문장을 추가했다. 글 전체의 내용 상 수정은 없다. 


2019년 10월 창당 7주년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는 심상정 대표 ⓒ출처 정의당

정의당은 2012년 10월 21일 창당했다(창당 당시 당명은 진보정의당, 이하 정의당). 통합진보당에서 9월에 탈당한 ‘혁신파’들이 그 주축이었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을 매개로 조직 노동계급과 연결돼 있으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자본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표현하는 정치 조직이다. 대표적으로 공공운수노조·화학섬유노조연맹 소속 지도자들과 일부 금속노조와 금융노조(한국노총 소속) 지도자들이 정의당을 지지한다.

노동자 정당이되 자본주의의 한계를 고수한다는 점 때문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 당’이라고 규정했다.

단순한 자본주의 정당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을 ‘범여권’, ‘민주당 2중대’라고 부르는 것은 오류이다. 특히, 우파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툭하면 정의당을 ‘범여권 정당’이라고 빈정거린다. 노동계 진보 정당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자 양당 체제(민주당-한국당)의 정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하지 않은 정당을 여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치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이므로, 여당은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 또는 정당들의 하나이다.(원내 제1당이라 해도 여당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의당을 ‘민주당 2중대’라며 자본주의 정당 취급을 하는 것은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등에서 정의당에 투표한 200만 명(대부분은 노동계급 사람들이었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물론 정의당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라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정의당 지도부도 자신들이 서구식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의 강령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한국 자본주의의 민주적 개혁”을 표방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최근 “세습 자본주의의 척결”을 말한다. 즉, 정의당이 집권하더라도 급격한 변화 없이 좀 더 공정하고 살 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7월 정의당 대표 선거 때 양경규 후보가 내건 가치인 “민주적 사회주의”로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서구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정의당 사이에 무시해서는 안 되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 서구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1990년대 후반에 오랜만에 집권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제3의 길’, ‘사회자유주의’, ‘신중도’라는 이름으로), 9·11 이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2세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고, 복지국가를 공격하는 등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반면, 정의당은 아직 국가 권력에 접근하지 못했고, 공식 정치에서 주변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그 당의 온건함이 노동계급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음이 광범한 대중에게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정의당의 ‘현실주의’ 노선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포부는 20년 전 민주노동당 또는 10년 전 진보신당의 포부에 견줘도 작다. 심 대표는 부유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제한 등 이전 진보 정당들의 포부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당장 실현 가능한 개혁만을 요구해야 한다며 ‘현실주의’를 주장한다.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국회 내 세력관계이다. 국회에서 입법 협상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면 표를 잃을까?’가 정의당 의원들의 모든 말과 생각의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된다. 그래서 당의 정책은 흔히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현실적인’ 정책이 득표에 유리하다고 여긴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의 압력을 덜 받고자 주류 사회민주의 정당은 운동과 정치를 분리한다. 정의당이 투쟁적이지 않고 온건하다고 지적받으면 정의당 지도자들은 ‘투쟁을 말하려면 정치를 하지 말고 운동을 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이를 두고 ‘진보의 세속화’ 또는 ‘진보 정치의 현대화’라고 한다.

분명히 해 두자면, 혁명가들이 ‘현실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개혁을 위한 투쟁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현실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보다 헌신적으로 개혁을 위한 투쟁에 임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개혁 투쟁을 통해서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찮은 개혁을 성취하려면 노동자들은 국내적·국제적 수준에서 사용자와 정부 관리들의 계급의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 따라서 개혁 성취는 흔히 매우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투쟁의 산물이었다.  

반면,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지배계급의 이익 수호에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의 구실, 사회 구조나 인간 관계를 끊임없이 헤집어 놓는 사용자들의 이윤 축적, 인류의 미래 생존을 위협하는 제국주의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개혁 제공에 대부분 실패했다.

그럼에도 정의당 지도부의 온건함만 보고 그 당을 무시하거나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특히 정의당의 선거적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상황을 주도하는 정당이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 내는 정당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 상황에서 정치적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면, 2004년 3월 초순경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등 우파 정당들이 추진한 노무현 탄핵에 처음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탄핵 직후 항의 운동이 일어나고 각종 여론 조사에서 탄핵 반대 여론이 훨씬 높게 나오자 탄핵 반대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그때조차 탄핵 반대 운동은 지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 사실을 거의 몰랐다. 그러나 탄핵 후폭풍으로 대규모 탄핵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 직후 실시된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었다.

〈노동자 연대〉 신문은 박근혜 퇴진 운동 성공의 효과로 개혁주의가 득세하고 이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해 왔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대중이 진보적 사회 변화를 바라지만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부 노동자는 스스로 싸워서 부분적 개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개혁이 제공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초기에 노동자들은 그 정부에게서 개혁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됐을 때 그들은 문재인 정부에 불만을 갖고 그중 상당수는 선거에서 정의당을 선택하게 될 수 있다.

지난 7월 갤럽과 11월 〈중앙일보〉가 ‘내일이 총선이라면 어느 당에 투표할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10퍼센트가 정의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매주 실시하는 여론 조사에서도 정의당 지지율은 꾸준히 7퍼센트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에 불만이 있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선거에서는 정의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정의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싸우려 하지 않을수록, 또는 타협하고 얼버무리고 발뺌할수록 민주당 정부에 대한 환멸이 정의당을 덮칠 수도 있다. 정의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열의도 떨어질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일어났다. 그런데도 정의당 지도부는 당시에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손잡고 반우파 개혁 동맹을 추구하다 동반 몰락한 것으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이끌어 내지 않으려 한다. 당장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근시안적 ‘현실주의’ 탓이다. 

정의당의 기반

정의당의 당원은 2019년 10월 1일 현재 약 5만 2000명이다. 2012년 10월 창당 때(5000여 명)의 열 배로 늘었다.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들만이 반세기 이상 공식 정치를 지배해 온 나라에서 이는 적은 규모가 아니다. 20세 후반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20세기 전반의 고전적 사회민주의가 독일·영국 등지에서 누린 광범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충성을 — 독일 사회민주당은 “국가 안의 국가”로 널리 인식됐다 — 더는 얻지 못한다.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거듭 노동계급을 배신하면서 그 기반이 장기간에 걸쳐 상당히 침식돼 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즈음에는 고전적, 즉 좌파적 사회민주주의가 주류 사회민주주의에 비해 다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지지를 분석할 때는 이런 장기적인 국제적·역사적 변동을 고려해야 한다.

2019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정의당 당원들 ⓒ이미진

정의당원 가운데 4분의 1가량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추정된다. 특히, 공공운수노조와 화섬노조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많다고 한다.

정의당 후원금은 2017년 6억 5000만 원에서 2018년에는 16억 9400만 원으로 늘었다.

정의당은 2017년 대선에서 200만 표, 2018년 지방선거에서 226만 표를 얻었다. 반면, 민중당은 2017년 대선(당시 당명은 민중연합당)에서 2만 7000여 표, 2018년 지방선거에서 24만 표를 얻었다.

물론 득표만 갖고 민중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판단하는 것은 일면적 견해가 될 것이다. 노동운동 내 기층 조직 장악력과 동원 능력은 민중당이 정의당을 앞선다.

그럼에도 선거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좀 더 많은 수가 정의당에 투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40퍼센트가, 지방선거 때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60퍼센트가 정의당에 투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4월 창원 성산 보궐선거 때도 노동자들이 정의당에 많이 투표했다. 한 사례를 말하면,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쳐 사전 투표를 했는데, 자영업자들이 많이 투표한 금요일 사전 투표에서는 한국당 후보 지지가 많았고, 노동자들이 많이 투표한 토요일 사전 투표에서는 정의당 후보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정의당의 이런 노동계급 기반이 실천적으로 뜻하는 바는, 선거 등에서 정의당이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들과 대결하면 정의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고 가능하면 정의당과 공동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언론들도 정의당을 자주 보도한다. 과거에 진보 정당을 “한편” 정당이라고 불렀다. 언론들이 주류 정당들을 길게 다룬 뒤 기사 말미에 한두 줄로 “한편, 진보 정당은 이랬다” 하고 보도했다고 해서 진보 정당 내부에서 자조적으로 나온 우스갯소리였다. 일부 메이저급 언론들이 정의당을 자주 보도한다는 것은 정의당이 점점 한국 정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상시적 요인이 돼 가고 있음을 뜻한다. 부패하고 반동적인 우파와 우파보다 약간만 덜 부패하고 약간만 덜 보수적인 중도파가 번갈아 지배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결정적 문제임을 감지하고, 위기 안전판 구실을 할 믿을 만한 개혁주의 정당도 보험 삼아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긴 눈으로 내다볼 줄 아는 매우 소수 지배자들의 신중함을 반영하는 듯하다.

정의당의 뜨거운 감자 ① 민주당 문제

정의당은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는 사회민주당의 성격 규정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모순된 정당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또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핵심 기반을 이루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쟁점들에서 정의당은 모순을 드러내는데, 민주당 문제도 정의당이 쥐고 있는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정의당이 ‘조국 대전’에서 쩔쩔맸던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이미 2019년 4월에 ‘조국 대전’의 전주곡이 있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그것이다. 이미선 재판관 후보가 30억 원 되는 주식 보유 과정을 둘러싸고 불법 또는 편법 의혹을 받았다. 정의당 지도부도 처음에 그를 반대했다. 그러다 찬성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정의당이 창원의 은혜 갚음을 한 것이냐?” 4월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이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이뤄 선거에서 이긴 것을 가리킨 것이다. 개혁주의 정치 때문에 정의당은 부패와 특권에 대해 노동계급 사람들이 느끼는 반감보다 훨씬 무딘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관련해 정의당의 ‘데스 노트’가 주목받았다. 적중률이 높아서였다. 뒤집어 말하면, 정의당의 고위직 인사 적절성 기준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국민의 눈높이”).

정의당의 모순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를 비판하면서도 반우파 개혁 블록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에 있다. 예컨대, 2017년 10월 18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촛불개혁을 위한 연합정치”를 주장했다. 이정미 대표는 이것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민생개혁입법연대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배신하거나 후퇴하는 상황에서도 정의당 지도부의 이런 (근시안적) 상황 인식은 유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때도 흔히 ‘문재인 정부가 잘해야 한다’는 당부로 끝난다.

정의당 지도부가 민주당과 날카롭게 정치적으로 결별하지 않는 것은 선거중심주의 노선과 관계가 있다.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가 선거에 유리하다고 본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과의 선거 연합을 해 원내에 진출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1900년 창당한 영국 노동당도 1906년 자유당과 선거 연합을 해 29석을 얻어 처음으로 원내로 진출했다. 당시 노동당을 두고 당 지도자인 케어 하디는 “성대를 제거당해 짖지 못하는 개”에 비유했다. 그런 노동당이 불과 18년 뒤인 1924년 소수파 정부(노동당 지도자 램지 맥도널드가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해 총리가 됨)를 탄생시켰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29년 총선에서는 제1당이 돼 노동당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이고, 언제든지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 정당의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민주당은 이정미 의원을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배제하고, 심상정 의원을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직에서 ‘해고’했다.

정의당의 뜨거운 감자 ② 제국주의와 북한 문제

정의당은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바라는 보통의 사람들이 정의당에 투표하도록 하는 데서 이런 입장은 정의당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의당 지도부는 안보 문제에서 냉전 시기 서방의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연상시키는 행보를 하고 있다. 냉전기에 서방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공공연한 반공주의 정당이 돼, 자본가들보다 공산당을 더 큰 적으로 여겼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반공주의에 자유주의적 외피를 씌워 줬다. 노골적 ‘빨갱이’ 탄압에는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자유주의적 반공주의는 지지할 태세가 돼 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정의당도 자본주의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유능함을 입증하고 싶어 한다. 국가 방위 지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정의당이 선거에서 야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의해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자국 안보(즉, 자국 지배계급)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갈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남북 대결과 긴장이 고조되면 정의당 지도부는 북한이 긴장 고조의 원인 제공자인 것처럼 비판하고 남한 국가를 지지하곤 했다. 몇 가지 사례만 언급하겠다.

· 2016년 1월 8일 정의당 지도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북한 핵실험 규탄 국회 결의안에 찬성했다.

· 김종대 의원은 F-35A 전투기 도입·배치를 반대하지 않은 채 ‘청주공항 전투기 정비 거점화’(정비 국산화)를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까지 F-35A 전투기 40대를 수입해 실전 배치하기로 하고 그중 10대를 올해 청주공항에 배치했다.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 스텔스 전투기 보유국이 됐다.

· 2019년 7∼8월 북한의 잇단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해 김종대 의원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이런 일들로 알 수 있듯이, 정의당 지도부는 한국의 군비 증강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2018년 8월 정의당 정책위와 김종대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2019년 국방예산안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국방예산의 증가가 국방력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예산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꼽아지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2019년 정부예산안에 대한 정의당 심사 방향)

좀 더 본질적으로 정의당 지도부는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적 경쟁 문제들에서 반제국주의 관점이 아니라 ‘국익’ 논리를 따른다. 가령 한·일 갈등 국면에서 정의당 지도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적극 “재검토”하라고 촉구하면서도, 일본과의 기술 경쟁에 맞서기 위해 첨단소재 부품의 국산화와 다변화를 제안했다. 

2019년 11월 22일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유예"하자 정의당은 대변인 논평에서 실망감을 드러내며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 한 달 뒤에는 “지소미아의 조건부 유예를 철회하여 일본의 확실한 수출규제 철회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의 뜨거운 감자 ③ 노동자 투쟁과 사회적 평화

정의당은 국회 내에서 민중당과 함께 노동개악을 반대한다. 그리고 파리바게뜨노조, 네이버노조가 정의당 비정규직 상담 창구(비상구)의 문을 두드려 노동조합 설립에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정의당 지도부는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가령 2014년 정의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일방적 추진”은 반대했다. 확실하게 박근혜 정부 편을 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공무원연금 수급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모순의 내재적 논리는 사회적 평화 — 계급 화해 — 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또, 정의당 지도자들은 2019년 초 민주노총 핵심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를 지지했다. 이정미 전 대표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직전에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민주노총 대의원 다수는 이정미 의원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런데 정의당이 노동자 투쟁과 사회적 평화 사이에서 불편부당한 중도를 걷는 것은 아니다. 투쟁을 반대하기도 한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던 날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당과 함께 철도 파업 종료를 철도노조에 종용했다.  

110 년 전 폴란드 출신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혁주의 정당은 혁명가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표를 향해 간다고 지적했다. 철도 파업 종료 종용 과정에서 정의당 지도자들은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더 부드럽고 온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투사들에게 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

정의당의 좌파

대다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조직된 좌파가 있다. 그들은 흔히 신문이나 의원단, 또는 유명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물론 우파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완전히 지배한 경우도 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이언 버철에 따르면, 통일 이전 서독 사민당 안에는 매우 소규모의 조직된 좌파가 (주로 사회주의청년단Jusos을 중심으로) 있었는데, 그들은 당 관료들에 의해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좌파 국회의원들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사민당 바깥에서 녹색당이 사민당의 표밭을 잠식하며 선거에서 성공을 거뒀다.

정의당 안에도 좌파가 있다. 이들은 정의당을 좌파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투쟁하는 활동가와 파업 노동자를 지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정의당 좌파의 일부는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조직 노동계급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거나 사회연대전략(정규직 노동자 양보론)을 지지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정의당 ‘좌파’는 아직 형성 중인 모호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가들은 사회민주당 내의 좌우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좌파는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강령을 지지하고 대중 투쟁에 친화적이었다. 이 점 때문에 혁명가들은 선거나 특정 쟁점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우파에 맞서 좌파를 지지한다.

정의당 좌파도 자신들을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토니 벤 등 영국 노동당 좌파 지도자들이 공공연하게 ‘사회민주주의’를 거부하며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들’,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부른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정의당 좌파는 혁명적 사회주의와도 분명히 차이를 긋는다. 그들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일시적 체제 전복” 시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이 용어에 혁명을 쿠데타와 동일시하는 편견이 묻어난다.)

정의당의 좌파가 당 지도부의 오그라든 개혁 포부와 온건한 현안 대응에 이견을 드러냄에도 핵심 정치 전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 전략은 사회를 (국가를 통해) 위로부터 바꾸는 것이다. 정의당 좌파가 우파 지도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사회주의적으로 변모한 정의당을 통해서 사회를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정의당의 주된 전략도 국가를 민주화하면서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 좌파의 당면 전략적 목표는 정의당의 변화다(주도 세력 교체).

그래서 당 밖, 의회 밖 투쟁에 대한 정의당 좌파의 열의는 높지 않은 편이다. 올해 봄과 가을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 홍콩 항쟁 등 굵직한 이슈들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정의당 좌파는 여름의 한·일 갈등과 조국 임면 때처럼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반면, 정의당 내 좌파적 청년 학생들은 비교적 행동주의적으로 보인다. 대학 청소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홍콩 항쟁 지지 활동을 벌이고, 조국 사태에 대한 당 지도부의 입장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국제적 경험을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좌파가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둔 경우는 의회 밖 투쟁과 연결될 때였다. 정의당의 청년·학생 조직들이 그러기를 바란다.